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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면/미니픽션

신입사원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0. 11. 9. 13:58

-심아진

소설가·동화작가

 

그림_유지안

 

 

 

 5년간 해외 근무를 했던 황 부장은 오래간만의 본사 근무에 설렜다. 한국을 떠나기 전과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고들 했다. ‘꼰대처럼 굴면 안 된다는 게, 퇴사를 앞둔 선배 부장의 조언이었다. 황 부장은 자신 있었다. 명색이 런던 파견 근무 직원이었다. BBC 방송에서 오늘의 단어로 소개한 바 있는 ‘kkondae’의 뜻이 자신만이 옳다고 믿는 사람이라는 것 또한 모르지 않았다. 요즘 젊은이들의 라이프 스타일, 소위 달라진 기업 문화에 적응하기 어렵지 않으리라 여겼다.

 

 첫 출근을 한 황 부장이 이미 안면이 있는 직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러고는 곧 신입사원 유의 자리로 갔다. 누군가가 신입사원을 데리고 와서 인사를 시키거나 신입사원이 제 발로 찾아오기 전에, 자신이 아랫사람에게 다가가는 소탈한 면모를 보이고 싶었다.

 

 반갑습니다.

 

 황 부장은 손아래 직원에게 하대를 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나이가 적거나 입사가 늦다는 이유만으로 반말을 찍찍 날렸던 회사 사람들 모두가 반면교사였다. 요즘은 존댓말 자체를 없애버린 회사도 있다고 들은 바 있었다. 그것까지 찬성할 수야 없겠지만 서로 높임말을 쓰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황은 유의 오른손을 힘차게 흔들었다. 20년 전의 사원들은 윗사람이 한 손을 내밀면 황송해서 두 손 모두를 내밀며 허리를 굽히곤 했다. 황 부장은 그렇게 쓸데없이 권위를 내세우던 시대가 지나가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애로사항이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세요.

 

 부장이 신입사원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유는 네, 하고는 앉았다. 황 부장은 자신이 등을 돌리기도 전에 자리에 앉는 신입사원이 낯설었다. 하지만 낯설게 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외국에서는 헤이, 하며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어깨를 툭툭 치기도 하지 않는가. 황 부장은 필요할 때 쓰려고 숨겨두었던 미소를 보자기처럼 쫙 펼쳐 얼굴에 씌웠다.

 

 오전 근무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점심 예약은 내가 할게요. 다 같이 식사하면서 얼음 좀 깨봅시다.

 

 황 부장이 오 주임이나 권 대리가 할 일을 자신이 한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며 말했다. 젊을수록 할 일이 많으니 나처럼 관리자급에서 그런 일을 하는 게 맞아. 그는 속으로 그렇게 말했는데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저는 따로 점심 약속이 있는데요.

 

 신입사원이 비딱하게 등을 돌리며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말했다. 황 부장은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펼친 미소 보자기를 오므리지 않았다.

 

 아, 그렇군요. 그럼 저녁은 어떤가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저녁 자리를 안 좋아한다고 해서 일부러 점심이나 할까 한 건데.

 

 오늘 저녁은 곤란합니다. 회식 일정을 미리 알려주시면 비워 놓도록 하겠습니다.

 

 신입사원은 자세를 고치지 않고 말했다. 황 부장은 김 과장과 권 대리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고 느꼈다.

 

 아, 그래요. 그래……, 알겠어요. 미리 정해서 알려줄게요. 일 보세요.

 

 황 부장은 자리로 돌아왔다. 자신이 입사했던 첫날 회식 자리가 떠올랐다. 신입사원인 황은 주임, 대리, 과장 등 소위 윗분들 모두에게 술을 따랐고 감사합니다를 연발했으며 사소한 말씀에도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였다. 술자리는 2, 3차로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간 노래방에서는 잘게 찢은 휴지를 꽃잎처럼 뿌려대며 탬버린과 한 몸이 되었다. 다음 날 퍼렇게 멍이 든 손바닥을 발견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그런 건 다 구세대 적폐야. 황 부장은 생각했다. 생각만 했는데 실제로 파리를 쫓듯 손을 흔들고 있었다. 점심을 같이하지 못해 얼마간 불편한 마음일 수 있을 신입사원에게, 자신이 권위적인 상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회의실로 오세요.

 

 황 부장이 회사 내 인터넷망으로 신입사원을 불렀다. 금방 읽음표시가 떴다. 젊은이들은 역시 이런 소통 채널에 적응이 빠르군. 황 부장은 생각하며 통유리로 둘러싸인 회의실로 향했다. 녹차 티백 하나를 컵에 넣고 우렸다. 혹시 몰라 커피도 한 잔 준비했다. 유가 들어섰다.

 

 녹차 마시겠어요, 아니면 커피?

 

 괜찮습니다.

 

 황 부장은 의아했다. 괜찮다면 아무거나 마시겠다는 의미인가, 아니면 아무것도 마시지 않겠다는 의미인가. 하지만 꼬치꼬치 묻는 건 꼰대나 할 짓이다. 하릴없이 커피를 내밀었다. 유는 커피잔을 옆으로 살짝 밀어내더니 손을 깍지낀 후 편안하게 등을 구부렸다. 황 부장은, 윗사람 앞에서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테이블 아래로 다소곳이 손을 숨기곤 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불시에 떠오른 기억이었다. 낡은 세계에서 군대 내무반 냄새 같은 게 흘러나오는 듯했다. 생각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게 코를 킁킁거렸다. 당당하니 얼마나 보기 좋아! 황 부장은 신입사원을 바라보며 냄새를 몰아내려고 애썼다.

 

 첫 직장이지요? 혹시 어려움이 있나요?

 

 없습니다.

 

 아……. 사수가 권 대리지요? 혹시 과도하게 일을 시키지는 않나요?

 

 황 부장은 모든 일을 신입인 자신에게 미뤄놓고 주야장천 담배를 피우러 나가거나 심지어 사우나를 가기도 했던 옛 동료들을 떠올렸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요. 하긴 권 대리가 그럴 사람은 아니지. 그래도 혹시…….

신입사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황 부장은 자신이 두 번이나 혹시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의식했다. 같은 말을 반복하면 안 되는데……. 꼰대처럼 보일 텐데……. 부장은 급격히 자신감이 떨어졌다. 만회하고 싶었다.

회사에 다른 불편한 점은 없나요?

 

 네.

 

 황 부장은 불편한 점이 있어서 네, 라고 하는지 없어서 네, 라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있으나 말하기 싫어서 네, 라고 한 게 아닐까? 혹은 사정을 일일이 설명하기 힘들어서 네, 라는 한마디로 축약시킨 건 아닐까? 황 부장은 이 풋풋한 신입사원에게 호의를 베풀고 싶었다. 자신의 예전 부장처럼 직원들끼리 알아서 하라는 태도로 방관하며 승진에만 몰두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어떤가요? 요즘 젊은 사람들 볼 때 우리 회사 시스템이?

 

 만족합니다.

 

 뭔가 불합리하다거나 바꿔야 한다고 느낀 점은 없나요?

 

 없습니다.

 

 황 부장은 신입사원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유가 분명 만족합니다, 없습니다, 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그렇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어쩌면 너무라거나 무척등의 수식어가 빠져서 그런지도 몰랐다.

 

 허심탄회하게 말해 보세요. 내가 그리 꽉 막힌 사람은 아닙니다.

 

 황이 유와 똑같이 손깍지를 끼며 테이블로 몸을 기울였다. 신입사원이 갑자기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부장에게 자신이 시계를 들여다본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리려는 듯한 거침없는 동작이었다.

 

 아, 점심 약속이 있다고 했나요?

 

 네.

 

 부장은 이상하게 초조한 마음이 되었다. 또 네, 라니……. 그저 일 뿐이라니……. 신입사원이 몽롱한 눈을 한 채 하품을 했다. 황 부장은 당황했다. 하지만 그저 하품일 뿐이지 않은가! 황 부장은 실망감을 감추기 위해 황급히 녹차 잔을 들었다. 뜻하지 않게 또 옛날 일이 떠올랐다. 미리 얘기를 하든지! 결혼기념일이라 오래간만에 화장도 하고 옷도 갖춰 입었던 아내가, 새벽이 되어서야 귀가한 황에게 맥주캔을 집어 던졌다. 자꾸 옛일이 떠오르면 안 되는데……. 신입사원이 손을 풀어 의자 팔걸이에 올리고는 이번에는 회의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황 부장의 시선도 벽으로 향했다. 열두 시가 조금 지나 있었다. 황은 유가 약속에 늦지 않도록 빨리 내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그의 입이 딴전을 피우고 있었다.

 

 언제 시간이 되나요? 전체 회식이 부담스러우면 나랑 따로 얘기를 좀 나눕시다.

 

 네?

 

 이번의 ?” 역시 이전의 .”와 마찬가지로 여러 추측이 가능했다. 진짜로 저랑 얘기를 나누고 싶다는 말씀인가요? 왜 저랑 따로? 도대체 제게 왜 이러세요? 신입사원 유의 얼굴에 조소가 일렁이는 듯했다. , 하고 비웃는 소리를 낸 것도 같았다. 황 부장이 인정하기 싫었으나 가장 합당한 ?”에 대한 추측은 왜 나를 붙잡고 못살게 구시죠?”였다. 황 부장은 그대로 물러설 수가 없었다. 내가 직원을 괴롭히는 못난 상사라니, 그럴 리 없어. 그럴 수는 없어. 황 부장은 속으로 부르짖었다. 뜻밖에 그의 머리가 좌우로 도래도래 흔들리고 있었다.

 

 더 하실 말씀 없으면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황 부장은 신입사원이 말하기 전에 먼저 나가보라고 하지 않은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가 기운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입사원이 의자 밀어내는 소리를 내며 회의실을 나갔다. 황 부장은 신입사원과의 면담에서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 무언가는 선명치 않았다. 황 부장은 회의실을 왔다갔다하며 생각에 잠겼다. 그렇다. 신입사원 유는 회사가 싫은 거다. 불만스러운 거다. 굉장히 시달리고 있고, 그래서 언제든 회사를 떠날 생각마저 하고 있는 거다. 그런데 무엇으로부터, 누구로부터 시달림받고 있는 걸까? 그는 권 대리, 김 과장 등 신입사원을 괴롭힐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았다.

 

 황 부장은 아랫사람의 고뇌를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면 부서를 책임진 자신이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 내가 다 해결해야 해. 황 부장이 혼잣말을 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주먹만 쥐었나 싶었는데 어느새 위로 들어 흔들기까지 했다. 별안간 회의실 문이 열리더니 빨간 장갑을 낀 아줌마가 들어서며 말했다.

 

 청소해야 하는데요.

 

 황 부장의 시선이 벽에 걸린 시계를 지나 통유리 너머로 향했다. 놀랍게도 사무실은 텅 비어 있었다. 신입사원은 물로 김 과장과 권 대리마저 보이지 않았다. 황 부장이 하릴없이 회의실을 나서려는데 청소하는 아줌마가 눈에 들어왔다. 휴지통을 거칠게 비우는 품이 아무래도 업무에 불만이 많은 것 같았다. 자기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혹시 일하시는 데 어려움은 없습니까?

 

 걸레로 휴지통을 닦아내고 있던 아줌마가 멀뚱히 부장을 쳐다보며 말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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