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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겨우 밀크티 본문
겨우 밀크티
어느 대학원생
대학원 진학을 결정한 순간부터 가장 걱정했던 것은 학비 문제였다. 학부보다 곱절은 비싸진 등록금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할 때마다 막연하게 ‘대학원생이니까 조교를 하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학부생 시절 시험 감독을 들어오거나 수업시간에 늦은 교수님을 대신해 출석을 부르러 왔을 때 가끔 만나던 조교들은 항상 멋져 보였던 것 같다. 그런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나도 조교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조교가 될 수 있다면 나도 멋진 대학원생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일단 조교가 되는 것부터 쉬운 일이 하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간단한 면접을 마치고 연락을 받았다고 하는데 나는 조교 면접을 30분이나 봤기 때문이다. 면접에서 받은 질문도 ‘일을 하게 된다면 무엇을 못 할 것 같냐’와 같은 질문이었다. 잘 할 수 있는 일들을 물어봐도 불안한데 못하는 것을 물어보다니. 나는 그 날 그 면접을 보고 역시 학원 강사 아르바이트나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며 나왔었다. 역시 내가 마음에 안 들었던 것 같다며 자책을 하고 있는데 같이 일하면 좋을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당장 내일부터 나올 수 있냐는 물음에 일정을 바꿔야 했음에도 뛸 듯이 기뻤던 것 같다. 학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에 감사했고, 나도 학교에 일할 곳이 생긴다는 것이 기뻤다.
그렇게 나는 그 사무실에서 대학원 생활의 절반 이상을 보냈다. 사실 처음의 기쁨과 출근하는 보람은 얼마 가지 않았다. 직접 조교가 되어 생활을 해보니 막연하게 느꼈던 ‘멋진’ 겉모습 이면의 조교 근무 여건에는 열악한 것이 너무 많았다. 그럼에도 나를 그 사무실에 그렇게 오랜 기간 앉혀둔 것은 그저 관성이었다. 어차피 학교에서 부서를 이동하는 정도의 개념이면 다른 곳도 크게 다를 것 없다는 주변의 말들과 그렇다면 차라리 익숙한 곳이 나을 것이라는 판단으로 나는 그 사무실에서 가장 오래 일한 조교가 되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조교는 마음껏 아플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같이 일하는 조교 중에 내 근무시간을 대신해 줄 사람을 찾을 수 없다면 결근은 불가능했다. 교직원들은 ‘대타 구하고 쉬세요’라는 말을 너무나도 쉽게 했지만, 수업이 없더라도 개인적인 스터디나 연구실 일 등 각자 하는 일이 다양했기 때문에 대타 구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행정보조인 조교는 직원과 마찬가지로 명확하게 맡은 업무가 있었고, 그래서 꼭 필요한 존재였다. 하지만 행정보조이며 학생 신분이라는 이유로 조교의 존재는 항상 평가절하당했다. 부서의 운영을 위해 조교는 꼭 필요했지만, 노동자가 아니라 학생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복지 혜택에서는 배제되었다. 언젠가 수술 경과 확인을 위해 지방의 대학 병원에 다녀올 수 있겠냐고 물었다가 대타가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거절당하는 동료 조교를 보며 여기서 일하는 동안은 절대로 아프면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아파도 출근 안 하는 날 아파야 한다고.
실제로 겨울방학 때 설 연휴를 앞두고 내내 몸이 안 좋은 상태로 출근하다가 연휴 전날 퇴근하고 독감으로 앓아누웠던 적이 있다. 정말 내 몸은 ‘아프면 안 된다’라는 눈치로 배운 교훈을 본능적으로 열심히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일이 있고 한참 뒤 우리 기준으로 예삿일에 불과한 장염으로 교직원이 조퇴를 했다. 아프면 휴가를 쓰고 쉬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지만 왜인지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한번은 갑자기 병원에 가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생겨서 당일 날 급하게 전화로 소식을 전하고 병원에 다녀왔던 적이 있었다. 워낙 급한 일이었기 때문에 병원에 다녀올 수는 있었지만, 나는 다음날 ‘혹시 전염병은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다. 당연히 물어볼 수 있는 사안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이 역시 기분이 상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픈 사람을 굳이 따로 물어서 물어본 것이 전염병이냐는 질문이라니, 그것도 진짜 전염병이면 당장 그만 일해달라고 할 것 같은 분위기로. 아무리 조교는 학생과 직원 사이의 애매한 무언가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고작 이 정도 취급받으며 일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그 교직원은 근무 중에 밀크티 한잔을 대뜸 선물했다. 평소에 내가 좋아한다고 말했던 밀크티였다. 장기간 자리를 비워서 도대체 어딜 간 건가 생각했는데 학교 밖으로 밀크티를 사러 나간 것이었다. 뿌듯한 표정으로 내밀던 밀크티 한 잔.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조교의 존재를 위로하는 건 겨우 밀크티 한잔이었다.
논문을 준비하며 나는 조교를 그만뒀지만, 아직도 그 자리에는 누군가가 마음껏 아프지도 못하면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꼭 내가 일했던 그 자리가 아니더라도 지금도 학교의 많은 조교들은 학생도 직원도 아닌 그 애매한 위치에서 자기의 몫을 해내고 있다. 마음껏 아플 수 있는 권리라는 것이 참 모순적으로 느껴지지만 조교로 일하면서 대학원생에게는 이것조차 보장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언제든지 교체 가능한 학교의 소모품이 아닌 건강한 학교의 구성원으로 대학원생과 조교가 자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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