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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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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면/원우발언대

담쟁이 잎 하나가 되어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0. 11. 6. 14:53

-어느 대학원생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대학원에 입학하고 난 후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다음 학기 학비였다. 등록금 납부 기간을 한참 앞에 둔 시점이기는 했지만 어떻게 채워야 할지 막막하고 조급한 마음에 알아보기 시작한 것이 조교 자리였다. 처음 조교 자리에 붙었을 때,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연락을 주기로 했던 시간이 지나고 체념하고 있던 날이 지나길 며칠, 아무래도 마음이 끌려 꼭 와줬으면 좋겠다는 메일을 받고 정말 뛸 듯이 기뻤다. 그렇게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업무량이 많았지만, 처음에는 열정이 있었고, 우선 마음이 안정되어 감사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학교라는 조직에 대한 이해가 생기게 되자 더는 마냥 기쁜 마음으로 일을 하기는 어려웠다. 해당 학기에 채용한 조교를 하루아침에 자르는 일이 예사로 벌어지는 곳, 개인 사무를 조교에게 맡기는 것은 예사인 곳, 분명 직원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조교에게 떠맡기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곳. 일할수록 스트레스는 쌓여왔다. 차라리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 그만두었지만, 그 자리에 나를 대체하고 있을 누군가의 삶이 조금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대학원생 신분으로 학교에서 일하는 조교들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이 있다. 이는 실제 일을 하는 업무 환경에서 모두가 경험하는 정체성의 혼란일 것이다. 관리자들은 업무와 관련해서는 근로자로 바라보지만, 행정적인 측면에서는 학생으로 바라보는 이중성을 지닌다. 일을 맡기면서는 전문성과 책임감을 가지고 직원과 같이 일해주기를 바라지만, 막상 돈을 주는 시점이나 근무 시간을 계수할 때에는 학생이기 때문에 이 정도의 대우면 적당하다고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교들의 입장은 어떨까? 다른 일자리보다 급여는 작을지라도 학교와의 접근성이 좋기 때문에 학업에 더욱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 조교로 들어왔지만, 막상 업무 강도가 높고 팀의 인력은 부족하고 업무 분장이 확실하게 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 한 학기 정말 치이듯이 일하고 다음 학기에 더 나은 자리로 갈아타고 싶은 것이 간절한 현실이다. 실정이 이러다 보니 매번 학기 초에는 인수인계하느라 진이 빠지고, 때로 조교들이 한꺼번에 그만두는 사태가 발발해 인수해줄 인력이 없는 상황까지도 발생하는 것이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학생도 아니고 근로자도 아닌 이들은 누구일까. 학기가 시작함과 동시에 520시간을 채워야 하는 의무를 부여받은 소모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우리들은 명절, 법정공휴일도 없이 그 시간을 위해 소속된 부서에 근로를 제공한다. 15시간 이상의 노동을 제공하면 응당 받아야 하는 주휴수당이라는 개념 역시 찾아볼 수가 없다. 시간제 근로자에게도 동일하게 제공되어야 함에도 학교는 이를 외면한다. 사업장이 쉬면 근로자 개인의 사정이 아니므로 결근 역시 아니며, 노동을 제공한 것으로 당연히 보아야 함에도 상식밖의 일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말을 아낄 수밖에 없다. 조교는 물론 계약직 직원들도 하루아침에 잘릴 수 있다는 것을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자유, 정의, 진리라는 학교가 말하는 가치와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너무 다른 이야기라 다들 놀랄 수도 있겠지만, 내가 겪은 부당함을 침묵하기만 한다면 과연 변화가 있을 수 있을까?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적어도 학교에서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한 공휴일과 명절을 저당 잡히면서까지 혹사당하지 않도록, 비록 조교이지만 내가 소속한 곳에서 맡은 업무에 책임을 다하며 보다 나은 방향을 고민하고 더 멋진 학교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조교들에 대한 처우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 어느 조직이나 사람 귀한 줄 모르는 집단은 속에서부터 곪아 큰일을 감당하기 어렵다. 어떤 형태로든지 소속되어있는 구성원을 성장시키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야말로 궁극적으로 고려대학교의 발전을 이루는 길이라는 것을 꼭 이야기하고 싶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이 글을 보는 이들이 담쟁이 잎 하나가 되어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관심을 가지고 나부터 변화를 시작해주길 바란다.

 

그때,

바로 당신,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이 벽을 넘을 것이다.

 

-「담쟁이, 도종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