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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인공지능 시대의 인문학 공부 본문
어느 대학원생
코로나19의 공포 아래 살아가는 요즘, 몸살 기운이라도 있을까 싶으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학교와 집만 오가는 일상임에도 불구하고, 들른 곳은 없을지, 만난 사람은 없을지 기억을 돌이켜본다. 그런데 막상 떠올려보면, 며칠 전 일들도 기억이 흐릿하다. 나조차 내 하루를 온전히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다행히(?), 나의 하루는 빅데이터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거리를 물샐 틈 없이 지키는 CCTV와 항상 내 곁을 지키는 휴대폰은 위치정보를, 학업 어플은 공부 시간을, 넷플릭스는 여가 시간을 담고 있다. 수업 중 지우고 싶은 부끄러운 순간들도 차곡차곡 녹화 파일로 쌓여간다. 내가 보고, 듣고, 쓰고, 느끼는 모든 것이 데이터로 기록되는 시대다.
게으른 학생의 마음으로는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인공지능이 부러울 따름이다. 쌓여가는 데이터처럼 지식도 차곡차곡 저장되면 좋으련만, ‘Ctrl C + Ctrl V’가 통하는 컴퓨터와 달리 인간은 배움에는 느리고, 망각에는 빠르다. 부지런히 보고, 듣고, 되새기더라도 어제의 기억이 흐릿해지는 데는 찰나의 시간이면 족하다. 어느 순간 돌이켜보면, 남은 건 파편화된 기억의 조각들뿐이다. 그나마 위치를 알 것 같은 조각들은 이따금 ‘공부’란 이름의 접착제로 모아 붙이나, 막상 붙여놓고 보면 묘한 위화감을 풍기는 것이, 꼭 무엇 하나 어긋난 느낌이다. 저장도 잘하고, 탐색도 잘하는 컴퓨터에 비해 인간인 나는 불량인 것만 같다.
괜한 열등감에 전의를 불태우며 책상 앞에 앉지만, 그도 잠시, 울적한 마음에 책을 덮고 만다. 기분을 전환할 겸 넷플릭스를 켜보니, 장엄하면서도 아름다운 서사들이 현실과 가상의 무대를 오가며 펼쳐진다. 한참을 배우들의 감정선과 스토리에 심취해있던 중, ‘띵동’ 알림이 울린다. ‘지금까지 시청한 작품들을 빅데이터로 분석한 결과, 사용자의 취향에 ~% 적합한 새로운 이야기들을 찾아냈다’는 내용이다. 알림에 적힌 숫자들을 읽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돋는다. 이 숫자들이 진정 나의 취향과 일치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잠깐의 일탈이 데이터로 기록되어 지구를 순간 이동하며 불로장생할 것을 직감하는 순간이다. 앞으로는 인공지능이 나의 영화 취향을 넘어 나와 맞는 대선후보, 나아가 결혼 상대까지 점지해주는 삼신할매가 되는 것은 아닐까.
사실 시중에 떠도는 인공지능에 관한 상당수의 예언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한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가장 유능한 길잡이를 대신하고, 가장 뛰어난 바둑 기사를 압도한 것 또한 사실이다. 인공지능이 쓴 소설이 인간의 심장을 두드리고, 인공지능이 감염병 예방을 돕고 있기도 하다. 시대 변화에 민감한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인공지능 만능 시대가 멀지 않았다고.’
하지만 얼치기 인문학도인 나에게 이런 인공지능은 부러움의 대상이지만 경계의 대상은 아니다. 경제적 효용성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자유’는 얼마만큼의 가치를 갖는지에 따라 그 크기가 결정된다. 그런데 같은 논리로 인공지능 또한 더 큰 가치를 우선한다. 그렇기에 무용(無用)한 인문학은, 역설적이게도 무용하다는 그 이유 때문에 수백, 수천억의 몸값을 지닌 인공지능과의 정면 대결을 피할 수 있다. 무용하기에 자유로울 수 있는 것, 인공지능 시대에 인문학이 지닌 무용지용(無用之用)의 가치다.
더해서 인문학이 인공지능과의 대결에서 꼭 불리한 것만은 아닐 수 있다. 『내일을 위한 역사학 강의』(문학과지성사, 2018)의 저자 김기봉은 인공지능 시대의 빅데이터가 지식은 데이터화할 수 있으나, 의미를 데이터화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오늘날 인류는 빅데이터의 도움을 받아 그 어느 시대보다 더 많은 정보와 지식을 저장한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데이터가 있다 해도 해석이 부재하면 잡음에 불과하다. 빅데이터의 기록 속 인간은 ‘어제의 인간’이다. 인공지능은 무수한 ‘어제의 인간들’을 모아, ‘내일의 인간’을 예측할 수는 있다. 그러나 ‘오늘의 인간’에게는 그 예측을 비틀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인간은 변화한다. 인문학은 그런 변화하는 인간에 대한 공부다. 그렇기에 인공지능 시대에도 인간의 꿈과 상상, 기억을 해독하는 데 인문학은 필요하다.
내가 이렇게 인공지능에 대한 뜬구름 잡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첫째 해당 분야의 문외한이어서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바로 지난 학기 대형 강의 수업 조교를 하며 느낀바 때문이다. 당시 코로나로 인해 모든 것이 낯선 가운데 여기저기서 문제가 발생하고, 시행착오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학부생들의 의견을 취합해, 경향을 파악하고, 이를 수치화해 교수님께 전달했다. 그런데 수치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백 수십 명의 수강생이 적어준 이모저모의 이야기들은 단순한 호불호의 데이터가 아니었다. 새내기의 봄날을 기대하며 입학한 신입생의 아쉬움, 낯선 방식이지만 한 학기 내내 열정적으로 강의해준 교수님에 대한 고마움, 투병 중에도 빠지지 않고 수업에 참여한 절실함 등 수많은 감정의 조각들이었다. 내 업무는 인공지능처럼 그것들을 수치화하는 것이었지만, 적어도 내 마음에만큼은 그 감정 그대로 담아두기로 했다. 그것이 인문학이 내게 준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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