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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그것’ 만은 잃지 말길(모두 정신승리 하세요) 본문
‘그것’ 만은 잃지 말길(모두 정신승리 하세요)
어느 대학원생
“선생님은 대학원에 일하러 가는 거 아니니까, 공부 열심히 해요” 대학원에 들어가기 몇 달 전 함께 일하던 선생님께서 당부하셨다. 갑자기? “아 그러죠, 근데 걱정이에요. 사실 대학원에 엄청난 뜻이 있어서 지원하게 된 건 아니었어요” 그 당시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던 그 대화가 석사 내내 머리에 맴돌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지.
입학 전 학비 걱정을 하던 나에게 지도교수님이 제안한 조교 업무는 ‘공부도 하면서 학비도 벌 수 있고, 생활비도 꼬박꼬박 받을 수 있는’ 알찬 대학원생이 되는 길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적지 않은 학비를 내고 학부보다 낮은 질의 수업을 듣고 싶지도 않았고 (모두 그런 것은 절대 아니지만), 무엇보다 일찍이 지원 범위를 학부까지만 상정하셨던 부모님의 말씀도 귀에 맴돌았기 때문이다. 4학기의 수업료를 모두 조교로 충당해온 본인에게 지난 2년의 시간은 사실 내가 지금 연구를 제대로 못 해서 꾸중을 듣는 대학원에 있는지, 하루 종일 연구와는 하나도 관계가 없는 업무를 하다 집에 가는 직장에 있는지, 혹은 중간에 힘들다고 하면 지도교수님께 ‘지금이 사회생활의 초입이야. 너 직장에서도 이렇게 하면 잘려’라고 듣는 대학직장원에 있는 건지(참고로 지도교수님은 한 번도 직장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 하셨다) 혼란스러운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물론 무한한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들어온 곳도 아니고, 어느 정도의 힘듦을 감수하리라 마음도 먹었지만 중간중간 서러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의구심이 들게 하는 일들은 더더욱 마음만 지치게 했다. 물론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당위성을 따지려거든 대학원을 나가야 속이 편한 경우가 많지만, 모던 타임즈도 아니고 적어도 사람한테 무조건적인 일을 시키려면 이해가 되는 일을 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공동체를 운영해야 하는 입장에서 일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은 중요하다만 사실 개인의 입장에선 생존이 제일이다(한 가지 더불어서 이야기하자면, 외국인이라는 신분으로 상당한 장학금을 수령하는 학생들에게 외국인이라서 일을 못 시키겠다는 교수님의 이야기에 너무 분노하지 않길 바란다. 이 이야기는 사실 지난날의 나에게 해주고 싶던 말이기도 했다. 그냥 내려놓고, 잠깐만 교수님을 미워하고 받아들여라. 분노한다고 안 바뀐다.).
혹자들은 국내 대학원은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설포카(서울대, 포항공대, 카이스트) 대학원도 일부 학과는 정원 미달을 면치 못했고, 적어도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교수님들과 일찍이 대기업 사원이 된 학부 동기들, 그리고 사이버 머니로만 존재하는 적은 연구비를 보자면 불투명한 미래와 불안한 현실만 나에게 남은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돈을 벌자고 들어온 곳은 아니지만, 언제까지고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알바를 하자니, 밀린 조교들도 산더미다. 입학 전 이 분야에서만큼은 탑일 것이라 생각했던 지도교수님보단 구글과 더 많은 소통을 하고, 생각보다 많은 일을 혼자서 헤쳐나가면서(정말 대학원생은 혼자다. 혼자. 아주 고달프다.), 첫 학기의 자퇴 고민을 왜 이행하지 않았는지 후회했던 지난날들에도 지금까지 버텨온 자신이 한편으론 대견스럽기도 하다. 분노와 애증의 감정이 뒤섞인 지도교수님과의 관계를 뒤집고 뛰쳐나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나 자신을 아주 칭찬해주고 싶다. 가히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2년이었다고 할 수 있었으니까. 성공한 학자라는 로맨틱한 꿈을 이루지 못해도 괜찮다. ‘석사는 존버’ 라는 일념으로 인생에서 가장 잘 버틴 지난날이 아닌가 싶다. 꼰대같은 말이지만, 몰아닥치는 일들을 어찌어찌해내서 지금 약간은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간혹 교수님께 필요한 것이 나라는 사람인지, 나의 노동력인지 판단이 흐려질 때가 있다. 만사가 그렇듯 서로의 필요가 맞아떨어졌을 때 관계가 지속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나 역시 무조건적으로 지도교수님께 나의 노동력과 시간을 제공하기보단 대학원 진학의 궁극적 목적을 지도교수님을 통해 어떻게 이룰 수 있을지를 항상 마음속에 지니고 있어야 할 것이다. 사실 대학원을 들오기 전 뚜렷한 목표는 없었어도, 어느 정도 학문적 성취를 소망했을 것 아닌가? 학계에 남는 것이든 취직을 하든 좋은 논문을 여러 편 게재하든 어떤 형태로든 이곳을 나갈 때 이루길 바랐던 ‘그것’ 말이다. 물론 몰아닥치는 여러 잔일이 나의 목적의식을 흐릿하게 만들겠지만, 언제든 잃지 않길 바란다. 하루하루 지긋지긋해도 결국 ‘벌써?’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빠르게 시간은 흘러가기 때문이다. 나만 그대로고 시간만 지나면, 그게 시간 낭비지 무엇이겠는가? 지금 위기라는 국내 대학원에서 몸을 담그고 있어도, 들어올 땐 아무 생각이 없었어도, 뭐 하나는 꼭 손에 쥐고 이곳을 탈출하기 바란다. 위에선 논문을 예시로 들었는데, 생각해보니 그게 꼭 논문이 아니어도 될 것 같다. ‘존버 지구력’이든, ‘PPT 교수님 맘에 들도록 만들기’, ‘데이터는 망했지만 그럴듯하게 말하기’ 등등 그게 어떤 기술이든 지난 시간들과 내가 포기한 것들이 아깝지 않도록 정신승리만 해도 괜찮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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