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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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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면/원우발언대

더위를 피하는 방법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1. 9. 20. 11:09

더위를 피하는 방법

어느 대학원생

 

36°C, 37°C... 이번 여름은 기온이 계속해서 올라가는 정말 더운 여름이었다. 지금도 더위는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매일 아침에 결연한 마음가짐으로 오늘 하루도 열심히 공부할 것을 다짐하며 집에서 나오지만, 밖에 나오기만 했는데도 땀이 흐르는 그런 환경에서 마음가짐은 점차 약해진다. 오후의 체감 온도는 아마도 더 높을 것 같다. 나의 소원은 냉방이 되는대학원도서관 열람실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해보는 것. 해가 떨어지지도 않은 오후 다섯 시 반쯤 대학원도서관의 냉방은 종료된다. 중앙냉난방 시스템이라 전원이 한 번에 꺼지다보니 단번에 그 소리를 알아챌 수 있는데, 그 소리가 마치 학생들이 내뱉는 탄식과 같이 들린다. 절망스럽다. 그래서 나는 매일 무거운 책과 짐을 이고지고 조금 더 시원한 곳을 찾아 나선다.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에는 짐 때문에 더 땀이 나고 더 더워지는 그런 악순환 속에 있다.

 

그렇다면 대학원도서관은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 내 주위에서도 대학원도서관 열람실이 너무 더워서 저마다 밤까지 냉방이 되는 곳에서 공부한다는 원우를 여럿 보았다. 누구는 중앙광장에서, 동기는 백주년기념관 열람실에서, 선배는 중앙도서관에서...학교는 대학원생을 위해 지난 방학에 대학원도서관을 리모델링 하였다. 외관이 아주 멋지기도 하고 소중한 지원을 받았으니 재개관한 이후에는 운영시간 중에 홍보영상 촬영도 많이 한다. 열람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갑자기 직원분들과 함께 들어오는 카메라와 셔터소리에 놀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리고 그 공사를 위해 방학 중에도 한 달 넘는 기간 동안 세미나실과 열람실을 이용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공간사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공사 이전 열람실에 있던 에어컨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

 

한번 총학생회 게시판에 글을 남겨볼까 하여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게시판을 확인하니 이미 누군가가 냉방에 관한 문의를 해놓았다. 사실 이 문제가 학생회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인지도 모르겠지만. 답변은 대학원상황실의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로 냉방을 자율화하기에는 어렵고 문제 발생 시 유선 문의를 주면 조치하겠다는 것. 그리고 열람실 뿐 아니라 논문작성실과 다른 연구실도 모두 같은 사정임을 알게 되었다.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는 건 어렵지 않은데도 고작더위 때문에 항의를 한다는 것이 왜인지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렇게 생각은 하지만 나에게 더위가 미치는 영향이 너무 커서 지금 아무 것도 못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이어지는 자책과 나의 현실에 대한 우울감은 덤이다. 그리고 퇴근시간 이후에는 누구에게 어디로 문의를 하라는 것인지, 이 답변이 정말로 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지 등 질문은 계속 떠오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시간이 흐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조금이라도 시원한 곳을 찾아 헤매는 것뿐이다.

 

공부에 집중을 할 수가 없으니 내 신경은 온통 시원한 공간에 쏠려있다. 머리 속으로 동선을 그리면서 생각한다. ‘저 방은 해가 안 들어서 그나마 조금 시원하긴 하고, 오션존은 에어컨이 나오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자리 예약 하는 것이 어렵고, 거리두기는 해야하니 막무가내로 들어가서 앉을 수도 없고...’ 그래서 공부 공간이 있고 사람이 그나마 적은 중앙도서관 4층 자료실에 가보았다. 그런데 그곳은 심지어 중앙냉방도 너무 약해서 직원 선생님들도 모두 선풍기를 뒤에 하나씩 끼고 있었다. 이렇게 종일 학교를 돌아다니다보면 내 현실의 취약함이 느껴진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구차해 보인다. 생각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물론 에어컨은 남을 덥게 만들어서 나를 시원하게 만드는 이기적인 기계이긴 하지만, 냉방시설이 없다면 이제는 정말 생존에도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까지 상기한다. 그리고 그 환경을 조장하는 사람들에게 괜히 분노를 느낀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학교 포털사이트를 보니 긴급공지가 올라왔다. “냉방 열원설비인 흡수식 냉·온수기의 버너 고장으로 인해 본관 및 중앙도서관(대학원)의 냉방 공급이 중단되고 있습니다. 불편하시더라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대학원이라는 글자가 처연하게 보인다. 그나마 한여름이 아니라는 것에 감사해야할까? 비싼 등록금을 내고, 학교 시설을 이용 못해서 결국 집에 있게 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는 말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는데, 사실은 너무나 기본적인 명제이고 지켜져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든 생각에 가깝다. 학생들은 사소한 결정 하나에서조차 소외되고 있다. 특히 사회인도 아니고 대학생도 아닌 그런 애매한 상태에 놓인 대학원생은 문제 해결을 위해 더욱 모이기 어렵고, 세력화도 말처럼 쉽지 않다. 그렇지만 적어도 대학원생을 위해 있는 공간에서 허락된 시간까지는 공부를 마음 편히 할 수 있었으면 한다. 겨울이 되어 추위를 피하는 방법이라는 글이 또 나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나는 오늘도 생각한다. 태양이 싫어... 태양이 싫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