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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교수님은 다 계획이 있으시군요, 굳이… 본문
-어느 대학원생
‘자유’, ‘방임’ 수많은 선택지 사이에서의 ‘방황’. 대학원생으로서 이런 표현들로 삶이 점철될 수 있다고 하면 믿겠는가? 나 또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교수, 대학원 특성 등 여러 가지가 맞아떨어지면 가능한 일이었다. 아, 물론 한국에서 있었던 일은 아니다.
유럽 언저리 어느 나라로 석사를 떠나기 전 들었던 대학원에 대한 소문(혹은 경고)은 마치 신화에 나올 법한 실로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이었다. 물론 모든 대학과 교수님들이 그렇지 않고 어느 정도 왜곡된 부분도 있을 것이며, 유럽이기에 그 정도는 아닐 거로 생각했지만 산 증인에게 들은 이야기는 이런 걱정을 증폭시킬 뿐이었다. 오죽하면 근로기준법에서 ‘사람’을 정의할 때 ‘대학원생을 포함한다’라는 단서조항을 달았을까.
그러나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시작한 1학기에 마주한 가장 큰 고난은 ‘방치’와 같은 느낌이었다. 지도교수의 연구 방향이나 최근 관심 분야 등에 의해 자신이 다룰 수 있는 연구나 논문 주제가 상당히 제한된다고 익히 들어왔던 터였는데, 실제로 열어보니 오히려 ‘주제의 바다’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정해진 것이 없어서 생각지도 못한 방황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나는 ‘동아시아 경제사회학’이라는 지역학과 사회과학을 아우르는 다소 난해한 전공을 공부했다. 석사과정에서 매 학기 작성해야 하는 텀 페이퍼(term paper)의 주제를 고를 때 ‘동북아와 동남아를 포함한 동아시아 전체 국가 중 2개국 이상이 포함’돼야 한다거나 ‘경제’ 세미나면 ‘경제’와 조금이라도 연결될 수 있는 주제, ‘정치’ 세미나면 ‘정치’와 약간이라도 관련이 있는 주제를 고른다면 그 외에는 제한사항이 전혀 없었다. 더군다나 졸업논문 주제로 가게 되면, 경제, 정치, 사회, 문화 등 사회과학에 포함되는 분야인 경우 그 어떤 주제여도 거의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영어 35,000 단어 이상이라는 조건이 가장 무서운 요소였다.
이런 상황에서,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전공의 학과장이자 지도교수였던 F교수는 연구년을 북한으로 떠날 만큼 한국과 북한의 경제 및 체제 전문가였다. 그래서 다른 국가보다 한국 전문가 밑에서 한국을 고르면(그리고 나 또한 한국인이기에) 좀 더 많고 유익한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이 또한 오산이었다. 텀 페이퍼 뿐만 아니라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도 F교수는 인과관계 및 상관관계 입증의 위험성이나 인용에 관련된 주의점들 외에는 주제나 방법론과 관련된 그 어떤 조언이나 도움도 주지 않았다. 본인은 논문의 주제가 석사과정에 적합한지 검토하는 것과 완성된 논문을 채점하고 디펜스(defensio)의 심사위원으로 참석하는 역할만 수행한다고 되풀이만 했을 뿐이었다. “아, 자유란 이토록 고독한 것일까” 그렇게 완벽히 홀로 남겨진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홀로 사투를 벌인 결과, 다행히 논문과 디펜스 둘 다 최고 학점을 받았고(그렇다, 이 놈의 학교는 논문과 디펜스 결과에도 학점을 매긴다. 또, 2월 혹은 8월 졸업이 아닌 디펜스가 끝나는 날이 졸업 일자가 된다) 대학원을 잘 마무리하고 있다는 건 익명 속에 숨어 뽐내는 나만의 자랑이겠다. 그렇다면, 부모님조차 읽어보지 않을 석사 논문과 혹여나 똑똑해질세라 날아 가버리는 휘발성 지식 외에 대학원 생활이 내게 안겨준 건 대체 뭘까. 도저히 일주일 내에 읽을 수 없는 자료를 다 읽은 척 연기하는 뻔뻔함? 넋 놓고 있다 기습질문이 들어왔을 때 집중하고 있었던 마냥 되받아치는 되바라짐? 문예창작과도 아닌데 단어 수를 뻥튀기할 수 있는 소설 집필능력? 모두 복수정답 인정. 실제로 이런 능력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어느 정도 윤활제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F교수가 전해주고자 한 조금 더 근본적인 가르침은 무엇이었을까?
실제로 F교수는 독일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북한 전문가라 그런지 상당히 5~60대의 한국인스러운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야 했던 그룹 발표에서 완전히 무임승차한 두 명을 고발했을 때에도, 그게 ‘인생’이라며 대학원에서 배워갈 수 있는 값진 교훈이라고 한 F교수였기에. 이런 면에서 F교수가 이 석사과정에서 우리에게 체험시키고자 했던 것 중 하나는 어쩌면 인생이 얼마나 ‘독고다이’이며 그렇기 때문에 얼마나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하는지, 그 씁쓸함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언제나 이 석사과정에서처럼 수많은 선택지를 빙자한 자유가 주어지지는 않겠지만,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린 이번 생에서, 실제로 여러 문제에 직면했을 때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앞으로는 훨씬 더 많은 기로에 놓일 것이기에 이에 대한 일종의 모의고사가 아니었을까. 아니라 해도 그냥 그렇게 믿으련다.
결국, 모두가 아는, 자기계발서의 단골 주제다운 진부한 결론에 다다르고 말았다. 하지만 이 자각은 글로는 도저히 온전히 형상화될 수 없는, 나만의 방식대로 값지고 뼈저리게 체화(體化)된 고난과 가르침이기에, 스스로에게 보내는 모종의 편지이자 일기라 생각하며 이 가치 있는 자서전의 한 페이지를 갈무리하고자 한다. 수고했다, 익명의 석사여. 앞으로 더 수고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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