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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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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면/강사 칼럼

당신의 강의실은 ‘안전한 장소’입니까?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1. 4. 4. 18:03

-어느 시간강사

 

  한국을 벗어나 독일의 작은 대학 도시에 흠뻑 빠져 6개월 정도 휴식을 취하던 무렵이었다. 작은 도시였지만 은퇴자들이 이사 올만큼 햇빛이 많고 사회 인프라와 치안이 갖춰진 도시였다. 조금만 걸어도 그림에나 나올 법한 숲과 너른 들판이 펼쳐진 곳이었다. 인구의 절반은 대학생 또는 대학 종사자였다.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은 이곳을 독일의 보편적인 모습이라 생각하지는 마. 여긴 대학 도시라서 외국인에게도 우호적이니까라는 말을 해주곤 했다. 이런 현실적인 조언조차 즐길 만큼 도시는 내게 안정과 평화를 건네고 있었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학생들에게 이곳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상찬하고 그들의 대학생활이 부럽다며 철부지 같은 소리를 늘어놓았다. 수업시간에도 날카로웠던 한 학생이 답했다. “그건 선생님이 남자라 그래요. 얼마 전에도 대학 기숙사에서 강간 사건이 있었고요. 선생님이 밤 산책 나가는 곳도 사건 사고가 많은 위험한 곳이에요. 우리는 혼자서 그곳을 가지 않아요.” 알록달록 찬란한 빛으로만 보였던 익숙한 장소들이 순간 머리를 스치면서 색깔의 반전이 일어났다. 그랬다. 수강생들은 전원 여학생이었다. 그들에게 이 도시는 대도시에 비해 안전했을지언정 누구에게나 안전한 도시가 아니었다. 이 때를 계기로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눌 일이 늘었고, 그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차별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아시안 남성으로서 겪는 불편함을 이야기하곤 했다.

 

  생활을 1년여 이어갈 무렵 다른 친구의 소개로 아프리칸 학생회 멤버들을 만날 일이 생겼다. 그들은 출신지, 시민권 여부, 경제 형편, 정치성향, 취향 등이 모두 달랐지만 피부색으로 겪은 차별을 공통분모로 모였다. 인종주의에 엄격한 독일이었지만 그들에게 차별의 장소는 강의실, 도서관, 거리, 파티장소, 관공서 등 공기처럼 퍼져있었다. 그맘때에는 나도 독일을 마냥 아름답다고 느끼지 않을 때라 더듬더듬 경험을 공유했다. 아프리칸과 아시안의 갈등, 차별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려 노력했다.

 

  이방인에서 내국인으로 돌아와 학교를 오랜만에 들렀을 때다. 도서관 앞에서 손잡고 걸어가는 남학생 커플이 눈에 띄었다.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을 삼키며 그래도 많이 변해서 참 다행이야~”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성애 커플이 손만 잡고 걸어도 학과 교수에게 잔소리를 들었던 학부시절과 비교하면 큰 변화이긴 했다. 그럼에도 이 캠퍼스는 누구에게, 얼마나 안전한 장소일까 하는 생각이 교차했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지만 학생간 성폭력 사건, 강의실 성폭력 발언, 교수-대학원생간 위계에 의한 폭력, 캠퍼스 주변의 치안 문제는 되풀이되는 사건이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 수 있다. “라떼는 말이야~ 그런 건 문제도 아니었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이다. 그때에도 지금도 문제는 맞았다. “문제화가 되지 못했을 뿐이다. 그때에도 지금도 차별과 혐오, 폭력의 피해자는 존재했다. 그것을 설명할 언어가 부족했고, 그것을 드러내고 싸웠을 때에 보호해줄 장치가 부족했을 뿐이다.

 

  강의실로 돌아와 보자. 강의실에서 교수자의 권한은 크다. 미국에서 신학을 강의하는 강남순 교수 수업에서 학생들은 자신을 소개할 때에 자발적으로 시스젠더/트랜스젠더, 논바이너리 등을 밝히고, 자신을 지칭하는 대명사-‘’(he), ‘그녀’(she), ‘그들’(they)-까지 말한다고 한다. 조민아 교수는 수업에서 볼티모어 흑인 시위를 토론하다가 단 한명이었던 흑인 학생이 궁지에 몰려 강의실을 뛰쳐나가자 그를 설득하여 강의실로 데려왔고, 모든 학생들과 사회적 약자,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고 한다. 나는 이 사례에서 강의실을 안전한 장소로 만들고자 했던 교수자의 역할을 배웠다. 학생들이 각자의 다름을 이야기할 수 있게 노력한 교수자의 모습을 보았다.

 

  다시 한국의 강의실을 보자. 강의실은 모두에게 안전한 공간이 아니다. 특히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의 안전장소’(safe space)가 되기에는 더욱 어렵다. 강의실은 같은 정체성을 계기로 모인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강의실에서 교수자는 더 예민하게 듣고,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 날카로운 레이더를 학생 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작동시켜야 한다. 강의실은 사회의 부조리한 차별 구조를 그대로 드러내는 어쩔 수 없는 장소인 동시에 폭력의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대안적이기는 어려워도 최소한 폭력을 방관하고 확장시키는 장소여서는 안 된다. 아무도 불평하지 않고 침묵하는 공간이라면 더 위험할 수 있다. 평화는 다름을 드러내고 그것이 차별이 되지 않도록 갈등하며 조정하는 순간에 만들어진다. 평화는 같은 과정을 되풀이하며 안전한 장소로 천천히 나아간다. 당신의 강의실에도 안정을 깨고 평화가 함께 하길 기원한다. 안전한 장소를 만들어가는 주인공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