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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코로나19 시대의 먹거리 문제와 대안으로서의 ‘로컬 푸드’ 본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황윤재 연구위원
마스크와 공존하는 삶이 당연해진 지금에 이르기까지,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의식주 전반에 걸쳐 많은 일상을 변화시켜 왔다. 우리 사회 먹거리 역시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 볼 때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에 지난 1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주관으로 열린 “제 24회 농업전망” 웨비나에서는 농정(農政)현안과 관련하여 ‘코로나 시대, 먹거리 문제와 대응’이라는 주제로 발표가 진행되었다. 해당 발표에서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먹거리 문제가 부각된 배경, 먹거리 문제의 현황과 전망, 먹거리 정책방향과 과제 등의 문제가 제시되었다. 이에 본지는 이번 발표를 맡았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황윤재 연구위원을 만나 코로나19로 인해 발생한 먹거리 문제와 극복 방향성에 대한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코로나19가 일깨운 식량안보
코로나19 사태 이후 먹거리 문제와 관련해 식량 공급의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여러 먹거리의 지속가능성이 약화되는 등 여러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러한 변화는 코로나19와 어떻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물었다.
“사실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가 먹거리 문제를 촉발시켰다거나 강화시켰다기보다는 그것을 부각시켰다는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 이후로 언론이나 빅데이터 차원에서도 확실히 식량안보 문제에 대한 키워드가 본격적으로 노출되기 시작했고요. 국민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했을 때 ‘농업’이나 ‘식량안보’ 등 ‘먹거리 관련 이슈가 중요해졌다’고 응답한 비율 역시 눈에 띄게 증가했습니다. 물론 코로나19가 먹거리 문제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농업의 생산성 측면에서 보면 여전히 인력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인데, 인적 자원의 이동이 크게 제한되면서 실질적으로 농업 인력 자체가 부족해진 점 등은 분명히 악영향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소비 차원에서도 물류의 이동 제한과 전반적인 경제 침체 등으로 예전과 같은 가격이나 유통 방식으로 먹거리를 확보하는 것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게 됐죠.
그러나 그보다는 이전부터 문제시돼왔던 것들이 코로나19로 인해 수면 위로 드러났다는 점이 더 중요합니다. 예전에는 경제적, 환경적 변화로 일부 작물에 재배 쏠림현상이 심해져 국내 생산이 불안정한 작물의 경우 대부분 외국에서 수입해왔습니다. 물론 이 역시 문제적 요인은 많았지만 직접적인 위기의식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2020년 3~4월,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세계적으로 자국의 식량자급률 자체에 대한 불안이 싹트기 시작하면서 식량 수출이 큰 폭으로 줄게 됩니다. 이제는 많이 옅어진 줄 알았던 국경선이 코로나19로 인해 다시 짙어진 셈이죠. 이 사건을 기점으로 기존까지는 전혀 문제가 없었던 ‘순조로운 식량 수입 체계’가 의심을 받기 시작했고, 언제든지 식량 문제로 한국이 고립될 수 있다는 사실이 명확해졌습니다.
한국의 경우 당장 먹을 것이 부족하지는 않기 때문에 위기를 체감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예기치 못한 식량 위기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는 인식도 조금씩 생겨나고 있습니다. 식량을 어떻게 국내외적으로 안전하고 확실하게 공급해야 할지, 우리 먹거리의 지속가능성을 발전시킴으로써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이제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곡물 위기의 역사적 배경
지적한 바와 같이 곡물 수급 문제로 인한 식량자급률의 위기는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야기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식량자급률의 위기는 구체적으로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어떠한 역사적인 배경에서 촉발된 것일까.
“식량 자급의 차원에서 한국의 위기는 곧 곡물의 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채소의 경우에는 신선식품에 대한 수요가 현저히 높기 때문에 아직도 자급률이 50~70%를 웃돌고 있습니다. 반면에 곡물은 심각한 수준인데, 1980년에 56%이던 곡물자급률이 2019년에는 무려 21%까지 떨어진 상황입니다. 그마저도 완전 자급이 가능한 쌀을 뺀 주요 곡물을 살펴보면 밀이 0.7%, 옥수수가 3.5%, 콩이 26.7%로 자급률이 매우 낮아요. 문제는 먹거리 산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가공식품과 사료에 대부분 이 곡물들이 사용된다는 점입니다. 만약 코로나19나 다른 요인으로 인해 수입 안정성이 지금보다 악화된다면, 이러한 곡물과 직결된 먹거리 산업 대부분이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고, 전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도 엄청날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렇게 한국에서 특히 곡물 위기가 심화된 배경으로는 급격한 산업화·도시화를 꼽을 수 있습니다. 70~80년대의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경지 면적과 농업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하는 와중에, 국민소득은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식생활이 다양해지고 식품의 종류와 그 수요도 함께 늘어났습니다. 농업이 소비를 아예 따라갈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당대의 농업 계획에 결점이 많았던 탓도 있어요. 농업을 일방적으로 희생시켜서 다른 산업을 급격히 육성했고, 각 마을 실정에 맞지 않는 무리한 증산 계획과 기계화 영농 추진 등은 농가 부채만 가중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산업화와 도시화가 어쩔 수 없는 당대의 발전 도식이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한국에 곡물 위기가 찾아오는 것은 막을 수 없는 흐름이었다고도 생각합니다. 다만 지금은 그 급격한 발전의 폐해를 잊지 않고 당면한 정책과 올바른 인식을 세워나가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정부 개입의 근본적 한계와 민간 주도의 필요성
정부에서는 곡물 수급 안정성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곡물조달시스템 등 직접적인 문제해결에는 아직까지 그 정책의 성과가 미흡하다는 비판 역시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현 정책의 한계는 무엇이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정부 차원에서 곡물 조달 체계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근본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에서 곡물을 통제할지언정 정작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민간이나 시장이기 때문이죠. 이는 산업적인 문제입니다. 쌀과 다른 곡물을 비교하여 예를 들어볼까요. 쌀은 주곡으로 가정에서 직접 조리하고 소비하기 때문에 신선한 국산 쌀에 대한 수요가 높고, 당연히 가격 안정성도 높습니다. 그래서 쌀의 자급률은 현재까지도 100% 선에서 큰 변화가 없습니다. 반면 다른 곡물의 경우, 그것들이 많이 사용되는 식품 제조업의 특성상 신선도 등 품질보다는 가격이 더 중요한 결정요인이 됩니다. 따라서 정부에서 애써 통제를 해도 민간이나 기업이 외면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이렇게 정부와 민간이 따로 움직이는 정책은 한계가 명확합니다. 시장과 이렇게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산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정책의 일반적인 추세도 아니고요.
물론 정부도 농업을 취약산업으로 규정하고 있고, 식량안보 문제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실질적인 개입이 필요한 영역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시도들을 해왔던 것이고요.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제 정부의 지원을 통해 민간 기업 주도의 조달 시스템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현재진행형으로 구상 중인 내용이기 때문에 이러한 정책에 대해서 자세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곡물을 조달하는 민간 기업에게 규제 완화나 금융 지원 등 정책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점차 나아갈 것이라고 예측해 볼 수는 있겠습니다.”
종합적 대안으로서의 로컬 푸드
지역 먹거리에 있어서의 지속가능성 약화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되었으며, 이에 대한 정책으로 ‘지역 푸드플랜’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먹거리 지속가능성의 문제가 정확히 무엇이며, 지역 푸드플랜 정책과 현재 대안으로 제시되는 ‘로컬 푸드’가 어떤 원리와 방식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는지 물었다.
“국가 경제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농업의 특성상, 기존에는 가시적인 발전을 위해 상업적인 대농(大農) 위주의 정책을 시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농산물 시장 역시 고투입-대량생산과 장거리-대량유통 방식으로 바뀌게 됐고요. 그러다 보니 지역 특산물 등을 생산하거나 자체적으로 소비하는 지역의 중소농·영세농들이 자연스럽게 주류시장에서 소외되었고, 판로(販路) 또한 현저하게 좁아졌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지역 농업을 책임지는 것은 대부분 이러한 중소농·영세농이었고, 이들의 약화는 지역 먹거리의 지속가능성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2017년부터 시행된 지역 푸드플랜은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에 이미 완성된 문제의식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중소농·영세농을 지원함으로써 농업 기반을 건강하게 만들고 지역 먹거리의 지속가능성을 끌어올림으로써 식량 위기에도 대비하는 것이죠. 로컬 푸드는 여기에서 핵심적인 매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지역 푸드플랜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역이 자체적으로 생산하여 자체적으로 소비될 수 있고, 전체 시장에서도 나름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으며, 중소농이나 영세농도 소화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판로를 확보해주는 구심점이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조건에 맞는 것이 바로 로컬 푸드인 셈입니다. 그리고 로컬 푸드를 활용한 지역 푸드플랜의 목적은 단순히 생산의 지속가능성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지역 전체의 경제·사회·소비 차원에서의 종합적인 지속가능성까지도 포괄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지역 푸드플랜 정책의 일환으로 로컬 푸드 직매장을 만들고 그것을 특화한다면 일자리도 창출되고, 판로도 쉽게 확보되며, 지역 사회의 취약계층에 대한 먹거리 지원도 용이해집니다.
실제로 2011년 로컬 푸드를 중심으로 지역 푸드플랜을 시행했던 미국 버몬트 주의 경우 단순히 농업·식품산업뿐만이 아니라 환경·복지·교육 등을 포함한 25개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종합적인 목표를 수립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지역 푸드플랜은 현 정권에 들어와 시행된 정책이기에 아직 그 성과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것은 없지만, 지자체별로 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북 부안군 주산면에서 추진 중인 ‘주산 푸드플랜 300 프로젝트’를 한 예시로 들 수 있습니다. 300 프로젝트는 주산면 사계절 과일세트 3대 전략 등을 통해 미래 100년 먹거리 앵커상품을 개발하고 월소득 100만 원 이상의 소득을 창출하는 100 농가를 육성하는 사업으로 만들기 위해 다각도로 행정지원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봄복숭아, 아로니아, 천혜향 등 각 계절 과일 특산품을 재배하고 차별화된 지역 특화 먹거리 상품을 계속 발굴할 계획입니다. 이렇듯 로컬 푸드를 중심으로 한 푸드플랜의 운영은 코로나19 사태가 일으킨 위기의식과 맞물려 당초 목표한 여러 차원에서의 지속가능성을 발전시키는데 촉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정리하자면 코로나19가 불러온 위기가 결코 단순하지 않듯이, 코로나19가 드러낸 식량 위기 또한 복합적이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것입니다. 절대적인 식량 공급의 문제를 넘어 다양한 차원에서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 이러한 종합적인 식량 위기에 대응하는 종합적인 대안이 될 것입니다. 현재로서는 로컬 푸드가 이러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먹거리 기본권’ 문제의 부상
코로나19가 드러낸 식량 위기로 인해 우리 사회에서 앞으로 먹거리와 관련한 어떤 의제들이 부상하게 될지에 대해, 마지막으로 황윤재 연구위원의 전망을 물었다.
“이전부터 문제시되고 있었던 부분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앞으로 더 부각될 의제라고 한다면 ‘먹거리 기본권’ 보장이라는 문제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경제가 침체되고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사회적으로도 경제적 취약계층에 대한 관심이 전반적으로 높아졌습니다. 경제적으로 취약하다면 먹거리 문제에 있어서도 결코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는 건 당연하고요. 실제로 먹거리 양극화 현상이 심화됨에 따라 영양격차 문제가 상당히 심각한 수준입니다. 중위소득 30% 미만의 기초생활수급자·비수급자들의 식료품비 지출이 나머지에 비해 상당히 낮은 편이며, 이로 인해 권장량 대비 영양섭취 비율 역시 현저히 떨어집니다. 또한 기본권의 의미가 확대된 지금 다양한 식생활을 통해 나름의 기호를 충족할 수 있는 권리도 엄연히 먹거리 기본권에 포함되는데, 이 역시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와 농림축산식품부에서도 먹거리 기본권 보장이라는 방향에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지금까지 경제적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는 현금 위주로 많이 이뤄졌는데, 지원 대상과 지역을 고려하여 먹거리 현물을 직접 지원하는 방식도 섞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영양 차원에서 즉각적인 효과를 창출하면서도 국내 농업의 수요 기반 또한 확대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로컬 푸드를 공공급식이나 현물 지원 사업에 연결하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로컬 푸드를 활용하려고 계획 중에 있습니다.”
■ 이영서 기자 youngseo516@naver.com
■ 김연광 기자 dusrhkd99@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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