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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불편을 넘어 보편을 지향하다 - 장애인 이동권 투쟁 20년을 돌아보며 본문

3면/쟁점기획

불편을 넘어 보편을 지향하다 - 장애인 이동권 투쟁 20년을 돌아보며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1. 5. 6. 16:34

[쟁점 기획] 

  지난 4 20, 장애인의 날을 기념하여 각종 단체에서는 장애인의 인권 신장을 요구하며 나섰다. 이들의 요구사항에는 이동권과 평생교육, 탈시설 권리, 건강권 등 장애인 생활환경의 개선을 위한 기본적인 조항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이에 본지에서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앞장서서 이끌어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활동가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울러 학내 장애인이 경험하는 이동권의 한계와 현실적인 어려움을 묻기 위해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생 김진영 씨를 만났다. 

 

불편을 넘어 보편을 지향하다

- 장애인 이동권 투쟁 20년을 돌아보며

 

전장연은 2001년에 발생한 오이도역 휠체어 리프트 추락 참사를 계기로 이동권 투쟁을 시작하여 20년간 시위를 지속해왔다. 이들의 기나긴 투쟁 끝에 서울시는 지난 2015년 장애인의 이동할 권리를 보장하겠다고 선언하고 서울시 전() 역사 1동선 엘리베이터 확보와 저상버스 100% 도입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당초 계획과는 달리, 예산 확보 등을 이유로 들며 추가적인 설치를 계속해서 지연시키고 있다. 한편 지난 3월에는 장애인 이동권과 부양의무자 기준폐지 등을 요구하며 투쟁한 결과로 벌금 4천여만 원이 선고되어 활동가들은 노역 투쟁을 결의하기도 했다. 본지는 최근의 노역 투쟁을 비롯하여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오랜 역사를 톺아보고, 휠체어 리프트 추락 참사 20주기를 맞은 현재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묻고자 전장연 변재원 정책국장을 만났다.

 

 

 

지난 2월 10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서울 지하철 4호선에서 장애인 이동권 예산 확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mbc 뉴스 제공

 

노역 투쟁 결의 배경과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의미

 지난 3 18, 전장연의 활동가 4명은 오랜 투쟁으로 선고받은 벌금 4,400만 원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노역 투쟁을 결의하며 스스로 구치소로 향했다. 이처럼 노역 투쟁을 결의하게 된 경위와 전장연의 결성 배경, 그리고 장애인 운동의 역사에서 특히 이동권의 투쟁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물었다.

 

  “노역 투쟁의 결의 배경은 사실 간단합니다. 한 국가의 국민인 장애인에게 마땅히 법적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은 국가인데, 저희가 형법적 책임을 지며 벌금을 낼 필요를 못 느꼈기 때문입니다. 실제 중증 장애인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 전장연에서 벌금을 낼 여건이 되지 않는 현실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지만, 역사 앞에서 우리는 떳떳한 노역을 하겠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크게 담긴 결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이렇듯 저희가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이동권 문제는 사실 전장연의 역사와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패럴림픽이 세계최초로 동시 개최되었습니다. 당시 정부에서도 이를 국내 장애인 체육의 지평을 열어줄 대회라며 적극적으로 홍보했지만, 사실 당사자들은 이러한 일회적·홍보적 성격에 반대했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당시 조금씩 터져 나오던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장애인 인권을 고려한 운동들이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2001년 오이도역에서 휠체어 추락사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와 같은 참사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장애인인권연대가 만들어졌고, 그것이 오늘의 전장연이 되었습니다. 결국, 당시 한국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한 이동권 문제를 계기로 전장연이 전국적인 단체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죠. 여기서 이동권이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첫걸음으로서 어디로의 이동, 어디로의 접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가장 기본적이자 핵심적인 권리입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저상버스 도입 확대와 같이 점진적인 해결책을 고려하고 있는데, 이를 해외 다른 사례와 비교해보면 한국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저상버스를 운행하지 않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엄연한 차별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계단식 버스 운행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 저상버스의 도입은 단순히 편의를 재고하는 수준에서가 아니라 도입하지 않으면 불법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이처럼 단호하고 신속한 저상버스 보편화로 가는 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입니다. 점차 저상버스와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있다고는 할 수 있겠습니다만, 다른 한편으로는 비용의 문제로 저상버스를 계속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저상버스가 폐기되면 다시 계단버스를 도입하여 운행하여도 아무런 법적제재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기도 하죠. 따라서 정부 차원에서는 저상버스의 확대가 교통약자라는 소수의 목소리가 아니라 모든 국민을 위한 일이라는 점을 인식할 수 있도록 꾸준한 공론화가 필요해 보입니다.”

 

 

이동권 투쟁의 성과와 한계

  오랜 투쟁을 통해 최근에는 장애인 이동권의 공론화, 저상버스 보급 확대 등 일정 수준의 성과가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정책상의 한계, 예산 배정의 어려움 등 많은 과제가 남아있어 보인다. 이동권 문제와 관련하여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부분은 무엇인지, 이런 문제들과 더불어 앞으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초점을 맞춰야 할 제도적 개선은 무엇일까.

 

  "그동안 전장연 활동의 가장 가시적인 성과로는 지하철 내 엘리베이터의 확대와 특별교통수단의 보급 확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서울시 기준으로 보면 최근에 지하철 6호선 상수역에도 1동선 엘리베이터가 개통되었고, 저상버스 보급률은 전체 버스의 53.9%에 달합니다. 그리고 이를 점진적으로 확대하여 1역사 1동선 엘리베이터 확보와 저상버스 100% 도입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속적인 농성을 통해 마침내 고속버스에도 저상버스 노선을 도입하는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아직은 4개 노선에 불과하지만, 점차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제도적 개선을 조금씩 이루어 가고 있다고 할 수 있죠. 최근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을 대표로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는데, 그 핵심내용은 2022년까지 저상버스 도입률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시내버스 운송업자가 대폐차를 진행할 때 저상버스로 우선 교체하며 장거리 노선에서 저상버스의 도입을 의무화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단계적인 변화이기는 하지만, 이전보다는 조금씩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관심이 늘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먼 것도 사실입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장애인 이동권 보장이 수도권에 국한되지 않고 전 국민에게 확대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입니다. 2020 9월 기준 전국 저상버스 도입률은 23.4%에 불과합니다. 지역별로 보면 충남의 경우 보급률은 9.3%, 세종시는 23% 수준에 미칩니다. 이마저도 실제 저상버스의 수가 아닌 운행노선까지 고려한다면 12%에 그치는데, 다시 말하면 장애인은 10곳 중 1곳밖에 못 가는 셈인 거죠. 모든 국민은 출신·거주 지역에 따라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기본적인 권리 중 하나인데, 이러한 당연한 권리마저 장애인들에게는 사치일 뿐입니다. 이처럼 지역적 편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중앙 정부의 예산 배당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현재 저상버스와 장애인 특별교통수단은 지자체의 예산과 조례에 따라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많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버스를 구입할 때 약 20%를 정부에서 지원하고 나머지는 지자체에서 충당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지방에서는 저상버스와 장애인 콜택시의 보급률이 현저하게 떨어집니다. 따라서 이러한 예산을 효율적으로 분배하여 장애인 이동권이 전국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한편 정책으로서 장애인 이동권을 다룰 때 그 근본적인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예컨대 LPG 자동차를 운전하는 중증 장애인들에게 유류세 일부를 지원하는 등, 장애인들에게 직접 경제적 지원을 해주는 정책은 사실상 장기적인 효과를 보기 어렵습니다. 실제 중증 장애인 중에서 차량을 직접 몰거나 구매할 형편이 되는 이들은 극히 일부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처럼 단기적인 재정적 지원보다는 더욱 넓은 범위의 교통약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전장연의 이동권 운동은 인권운동입니다. 다시 말해서 특정 집단의 이익, 소수 장애인의 이권과 경제력을 보장하기 위한 단편적인 과제가 아니라,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이동할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저희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따라서 앞으로도 이러한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뿐 아니라, 중앙 정부와 지자체, 장애인 단체들과의 시민사회의 유기적인 논의와 공감을 통해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꾸준히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비휠체어 장애인들의 이동권 문제

  이동권 문제와 관련해서는 주로 휠체어 이용자를 떠올리게 되지만, 시각 장애인과 청각장애인 등 또한 이동에 있어 여러 일상적인 불편을 겪고 있다. 이들 모두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어떤 부분에서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한지 물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비휠체어 장애인들이 탈 수 있는 특별교통수단의 확대, 그리고 이러한 기준에 대해 중앙 정부가 책임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먼저 전자의 경우, 국가에서 지원하는 장애인 바우처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택시의 보급률을 늘려야 합니다. 현재 장애인 콜택시는 특정 대형 차량에 점보 리프트가 달린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데, 앞으로는 이를 특수한 몇 대만으로 국한시키지 않고 현재 운행하는 모든 택시에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또 국가가 교통비의 80%까지 지원해주는 바우처 카드로 이러한 서비스를 이용하며 편안하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특히 다른 사람보다 취직과 노동의 기회가 제한되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기초생활수급으로 버텨야만 하는 중증 장애인들의 임금 수준을 고려한다면, 이를 해결하는 것은 시급한 과제로 보입니다. 

 두 번째로는 이러한 특별교통수단의 전국적인 확대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앙 정부의 효과적인 예산 편성과 운영이 필요합니다. 장애인 콜택시는 저상버스가 운행하지 않는 노선으로 직접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보완 노선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는 주로 지자체에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승차 거부나 승객 성폭행 사건과 같은 불상사가 종종 발생하는 상황에도 이에 대한 책임과 재발 방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실정입니다. 따라서 바우처 택시를 확대하면서 이 기준에 대해 국토교통부를 비롯한 정부 주요 인사와 기관이 중심이 되어 예산을 편성하고 관리·감독하여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저희의 중요한 목표이기도 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장애인 이동권의 악화

 코로나19로 인해 시설에서의 집단 감염 위험성은 물론, 탈시설-자립생활을 택한 이들 역시 비장애인보다 일상적인 영역에서 더욱 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발생한 여러 문제 중 비장애인에 비해 덜 가시화된 생활과 이동상의 불편함은 없는지 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장연의 활동에 대한 당부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대중교통의 감차(減車)가 저희에게 미친 영향 역시 상당합니다. 특정 지자체에서 장애인 콜택시 노선을 병원에만 국한하도록 규정한 사례도 있으며, 병원을 가려던 중증 장애인을 상대로 승차 거부를 한 장애인 콜택시의 사례도 있었습니다. 특히 장애인 콜택시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이처럼 코로나19 의심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는 데 주력하면서 다른 장애인들이 차량 배치를 받지 못하여 일상생활에서의 이동이 더욱 제한되기도 합니다. 장애인들은 스스로 운행할 수 있는 다른 이동수단이 없기 때문에 이처럼 승차 거부, 혹은 한정된 자원의 제한적인 활용이 초래하는 피해는 극심합니다. 또한 비장애인에 비해 폐활량이 30~40% 수준에 그치는 이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마스크 착용에 굉장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스크를 벗고 탈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보니 호흡기 장애인들은 대중교통을 통한 이동의 권리가 사실상 보장되지 않는다고 봐야 합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돌이켜보면 참 힘든 시기를 보내왔죠. 사실 코로나19의 예방책으로 나온 것이 사회적 거리 두기, 즉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두는 것이지만 장애인들은 그 누구보다도 직접적인 접촉과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중증 장애인에 대한 활동 지원 서비스 역시 매칭이 잘 안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로 최근 정부에서도 서비스 공백 시기에 따른 공적 책임감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많은 분께서 저희의 목소리와 활동에 크게 공감을 하지 않으실 수 있고, 되려 불편을 느끼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일정이 5분만 지연되어도 큰일이 나는 듯한 세상에서, 장애인들은 한평생 50, 500분을 기다리며 돌아서 가야 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점 역시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시민들이 인내해주시는 짧은 시간이 어쩌면 모든 국민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전장연의 활동은 인권운동입니다. 휠체어 장애인뿐 아니라 모든 국민이 평등하고 안전하게, 또 편리하게 이동하여 어려움 없이 사회생활로 진출하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올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최서윤 기자 seoyoon2290@daum.net

 황지원 기자 h950301@korea.ac.kr

 공혜령 기자 comcore@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