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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역사의 우연과 필연, 그 폭발적인 만남을 위하여 -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과거와 현재 본문
미얀마군의 쿠데타에 반발하여 지난 2월 22일을 전후로 미얀마 각지에서 전개된 ‘미얀마 민주화 운동’이 많은 희생자를 낳으면서 열기는 점차 격화되고 있다. 오랜 군부정권의 역사를 지닌 미얀마 사회에서 민정 이양 후 불과 10년 만에 다시 군부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배경과 전개 양상을 짚어보고, 역사적 배경과 국제적 정세에 따른 운동의 현주소를 심도 있게 알아보기 위해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엄은희 선임연구원을 만났다.
미얀마 쿠데타의 배경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민주주의민족동맹’(이하 NLD)이 압승을 거두자 군부는 이에 반발하여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처럼 정당하게 세워진 내각이 쉽게 전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정부와 군부의 철저한 이원화가 지적되고 있다. 이와 같은 기형적인 정치체제가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은 무엇인지, 또 NLD의 승리가 쿠데타의 계기로 작용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물었다.
“미얀마 사회에서 군부의 위상은 식민지 시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얀마가 1943년부터 일본의 지배 아래 놓이면서 아웅산 장군이 조직한 항일무장세력이 미얀마 군대의 시초였습니다. 식민권력에 대항하여 조직되었다는 점에서 군은 현대 미얀마의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조직입니다. 즉, 미얀마의 주권을 영속하기 위해서는 군이 필요하며, 필요하면 언제든지 나서야 한다는 인식이 군부 내에 팽배했던 것이죠.
1948년에 독립한 이후 경제적 파탄과 소수종족 문제로 야기된 사회적 혼란을 틈타 군부는 영향력을 유지해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1962년에 네윈(Ne Win)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장기독재와 ‘버마식 사회주의’라는 고립경제 정책으로 돌입하면서 미얀마는 더욱 피폐해져 갔습니다. 이와 같은 군부의 권력 독점에 대한 오랜 불만은 결국 1988년 8월 8일의 대규모 학생시위로 터져 나왔고, NLD 역시 그 과정에서 탄생하였습니다. ‘8888 항쟁’ 이후에 등장한 신군부는 민정 이양을 약속하였고, 군내 온건파 킨뉸(Khin Nyunt)은 2004년에 현대적인 민주국가 건설 계획인 “규율민주주의를 향한 7단계 민주화 이행 로드맵”을 발표했습니다. 이에 따라 2008년에 신헌법이 통과되기도 했고 2010년대 테인 세인(Thein Sein) 정권의 개혁개방 정책, 그리고 2015년·2020년 총선에서 NLD의 승리 역시 이와 같은 단계적 이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주도해온 NLD에 대한 군부의 견제는 초반부터 강했습니다. 1990년 5월 선거에서 전체 492석 중 친군부 계열의 ‘국가통합당’(NUP)이 10석을 얻은 데 비해 NLD가 329석을 차지하자 군은 선거를 무효로 했고 2011년까지 NLD는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NLD가 내세운 헌법개정, 국영기업 민영화, 소수종족 화합의 과제 역시 군부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되었습니다. 2008년 헌법은 국회의원 25%를 군부에서 구성하도록 하는 독소조항을 통해 군의 권력을 보장하고 있고, 주요 국영기업은 사실상 군영 기업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소수종족 간의 갈등은 미얀마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문제이자, 사태의 진압을 앞세운 군부가 막강한 권력을 누리도록 하는 명분이기도 합니다. NLD의 과제는 이처럼 군부의 정치·경제적 권력을 제한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로 나아갈 기반을 만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군부는 2020년 선거에서 NLD의 압승을 군에 대한 위협이자 쿠데타의 원인으로 인식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전개와 전망
지난 4월 16일, 민주화 운동 세력이 소수민족 세력과 연대하여 ‘국민통합정부’(이하 NUG)를 수립한 것을 기점으로 운동이 점차 내전의 양상을 띠고 있다. 현재까지 미얀마 민주화 운동은 어떻게 전개되어왔으며, 전망은 어떠한지 물었다.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주요 특징은 명시적인 지도부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조직적으로 잘 움직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와 같은 항쟁은 군에 대한 시민의 불복종 운동이라는 의미의 ‘CDM‘(Civil Disobedience Movement)으로 명명되었습니다. CDM은 군부의 불법 권력 찬탈과 정치 일선 복귀에 대해 저항 의지를 드러낸 의료·행정·경찰·운송 등 부문의 공무원들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이내 개혁개방과 디지털 전환으로 이룩한 호황을 가장 직접적으로 누려온 20·30대 청년들도 합류했습니다. 이러한 CDM은 평화시위로 출발했지만, ‘피의 일요일’ 등 시위대에 대한 잔혹한 진압이 이어지면서 무장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쿠데타 발생 직후에는 임시 의회 성격의 ‘연방대표자회의’(이하 CRPH)가 출범했습니다. 이들은 쿠데타의 정당성을 거부하는 성명서를 내고 시위대의 유혈 진압을 규탄하며 CDM을 지지하는 등 점차 적극적인 활동을 펼쳐 나갔습니다. 그러나 CRPH는 소수종족 문제 등을 둘러싸고 때로는 시민사회와 마찰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CRPH을 흡수하며 4월 16일에 출범한 NUG는 무장세력을 갖춘 소수종족들이 참여하는 연방군 창설 계획을 밝히는 등 전반적인 시민 세력의 연합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현재 미얀마 시위세력은 NUG를 미얀마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해줄 것을 국제사회에 호소하고 있지만, 군이 시위 진압과 함께 은행, 인터넷 등을 함께 통제하는 상황에서 이는 쉽지 않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미얀마의 상황을 두고 내전적 상황이라고 설명하기도 하지만, 사실 내전이라고 하기에는 전력 차이가 너무 큽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NUG나 CRPH의 실질적인 활동과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많고, 당장 생활이 급급하여 방관자적인 태도의 시민들도 다수인 상황입니다. 따라서 미얀마의 시위 열기가 계속되고, 그 열기를 시민 전체가 공유할 수 있도록 특히 젊은 세대의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민주화 운동과 미얀마 사회의 여성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열기가 강해지자 군경은 시민들을 대상으로 불법 체포와 성폭력을 자행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여성들은 자신이 겪은 성폭력을 폭로하고 군경에 적극적으로 대항하면서 민주화 운동의 주요 세력 중 하나로 부상하게 되었다. 이처럼 이번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계기로 가시화된 미얀마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시위에서의 역할에 관해 물었다.
“무력 갈등이 발생하면 여성과 아이들은 항상 이중의 피해자가 됩니다. 이번 시위에서도 여성 수감자들에 대한 성고문이 끊임없이 보도되고 있죠. 이는 2016년 로힝야족의 학살로 공론화되었던 미얀마 군부의 잔혹한 성범죄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 뒤에는 근본적으로 미얀마 사회의 남녀 차별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는 전통적인 미신이나 신앙과도 연계되는데, 미얀마 남성들은 여성의 속옷이나 생리혈을 터부시해서 이를 마을 입구에 놓아두면 군경이 시위 참여자들을 색출해내지 못하고 떠난다고 합니다. 또 미얀마에서 시위가 가장 격렬하게 탄압되고 있는 곳은 ‘M’으로 시작하는 도시들입니다. 미얀마어에서 ‘M’은 여성형으로, 군인들이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을 먼저 진압해야 한다고 믿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시위를 통해 미얀마 사회의 구조적인 차별의 현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죠. 상황이 좋아져서 군의 여성 성폭력 문제를 국내 법정에서, 또 국가폭력의 사안으로 국제사법재판소에서도 다루어 진상 규명과 함께 책임을 묻는 날이 올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다만, 이번 항쟁에서 여성들은 두려움 없이 앞장서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4월까지 CDM은 평화시위 기조를 보였는데, 이러한 움직임에 여성들이 앞장섰습니다. 이는 미얀마의 개혁개방을 통한 봉제·섬유 등 2차산업의 활성화로 여성들이 공장 노동자의 대다수를 이루게 되면서 사회경제적 지위가 향상된 것에 기인한다고 봅니다. 그 결과 노동자 조직화도 상대적으로 발전하고 있고, 국내에서 활동하는 미얀마 청년활동가 조직에서도 여학생, 여성 노동자의 참여가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결국 군부의 여성 성폭력 문제는 오랫동안 지속해온 악습 중 하나지만, 현재 민주화 운동에서는 이러한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여성들이 시위 전면에 나서고 있는 것 역시 하나의 중요한 특징이자 의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소수종족의 연대와 전망
군부의 오랜 횡포에 맞선다는 목표로 결집하기는 했지만, 민주화 운동 세력 내부에는 아웅산 수찌의 복권을 목표하는 NLD 계열부터 독립과 자치를 요구하는 소수종족 계열까지 여러 가지 목소리가 공존하고 있다. 민주화 운동을 전개하면서 이들은 어떻게 결합했으며, 향후 이들은 각기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움직이게 될까.
“미얀마 현대사에서 1947년 삥롱회담(Panglong Conference)은 식민지 시기부터 버마족과 소수민족 사이에 뿌려진 갈등의 씨앗을 스스로 해결하고자 했다는 중요성을 지니는 사건입니다. 그러나 소수종족과 화합하여 하나의 연방 국가를 수립하겠다던 아웅산 장군의 약속은 70년이 넘도록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아웅산 수찌 역시 로힝야족 학살에 대해 미온적 반응을 보여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기도 했죠.
그러나 NUG는 출범 시기부터 버마족 중심으로 움직였던 NLD의 과거를 반성하고 미얀마의 민족적·종족적 다양성을 국가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습니다. 미얀마 역사상 최초로 종족적 다양성을 강조하여 정부 형태에 반영한 것이죠. 실제로 쿠데타로 인해 아웅산 수찌 국가 고문과 NLD 지도자들이 구금되면서, 현재 카친족인 부통령과 카렌족인 국무총리 등 소수종족 출신 인물들이 권한 대행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또한, NUG는 연방군을 버마족이 아닌 소수종족의 무장세력을 중심으로 창설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NUG는 소수종족과 관련된 갈등 국면을 적극적으로 봉합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봉합에는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있습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NLD 내각 주요 인사들이 부재한 상황에서 새로운 지도자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현재 주목받고 있는 NUG 국제협력부 장관이자 대변인인 Dr. 사사는 친족 출신 의사로, 개혁개방 정책에 따라 들어온 보건 원조와 인도적 지원을 담당하며 지지를 얻어온 인물입니다. 이처럼 종족과 무관하게 지역사회에서 새로운 지도자를 육성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며, 특히 젊은 세대는 이번 민주화 운동을 통해 선거와 정치의 중요성을 자각해야 하고 적극적으로 제도권 정치에 참여해야 합니다.”
미얀마와의 연대를 위한 국제사회의 움직임
미얀마 민주화 운동 세력은 분명한 명분과 전 세계의 지지를 얻고 있지만, 실질적인 원조는 받지 못한 채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이처럼 미얀마에 국제사회가 개입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이며, 마지막으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미얀마 민주화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미얀마 민주화 운동이 세계적으로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은 사실 우리의 희망에 더 가깝습니다. 이는 민주주의 수호에 적극적인 국가들이 코로나19 사태로 자국 방역에 주력해야 하는 상황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현 국제사회의 구조적 현실 때문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 남미의 독재자 당선 등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사건 사고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은 즉시 주목과 공감을 받는데, 또 어떤 일은 그렇지 않죠. 다시 말해서 특정 사안에 대한 국제사회의 전폭적인 지지와 즉각적인 대응이 나오는 것은 사실상 어렵습니다. 이는 국제정세의 변화가 초래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엔이 출범했을 당시에는 세계를 분할했던 냉전적 국제질서가 국내정세에 상당한 규정력을 발휘했다면, 지금은 많은 국가에서 국내정치가 더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보호주의나 선거 권위주의, 포퓰리즘 등이 곳곳에서 대두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죠.
물론, 국제사회의 노력이 저조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많이 연대하는 ‘해외주민운동연대’(KOCO)의 경우, 위험을 무릅쓰고 미얀마 지역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고, 국내 미얀마 유학생·청년노동자로 조직된 ‘행동하는 미얀마청년연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미얀마 사태에 관심과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타국의 상황에 대통령부터 시민사회까지 일관된 성명을 낸 것은 아마 한국 역사상 처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기에는 한국사회의 군사독재와 민주화 운동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된 심정적 유대도 있지만, 저는 무엇보다 미얀마 유학생과 노동자들의 역할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는 이들이 현지의 상황을 즉각적으로 통번역해준 덕분에 미얀마어가 낯선 한국인들에게 정보가 신속하게 전달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시민조직 간의 연대를 조직하고 지속적인 관심과 응원을 보내는 것은 분명 미얀마 시민들에게도 엄청난 힘이 될 것입니다.
미얀마 민주화 운동은 동남아시아의 민주주의를 다시 쓰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사실상 민주주의를 10년밖에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은 믿기 힘들 정도로 성숙한 인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지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 세력이 승리하는 방법은 장기적으로 힘을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의 보편적인 진리는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할 수밖에 없고, 부패는 내분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준비된 실력이라는 ‘필연’과 그들의 실수라는 ‘우연’이 만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 최서윤 기자(seoyoon2290@daum.net)
■ 이영서 기자(youngseo5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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