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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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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면/기자 칼럼

‘이 시국’의 출국과 보건 패스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1. 9. 19. 21:22

연구실에 서식하는 이공계생에게 방학이란 수업 여부 외에 사실 평소와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그렇기에 2달 전부터 포효하며 쟁취한 일주일의 산소 같은 휴가를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던 찰나 프랑스에서 원고 작업 중이신 한 선생님께서 자료 조사를 도와줄 수 있냐는 달콤한 제안을 하셨다. 마침 백신 접종도 완전히 끝났고, 큰 제약 없이 입국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한 후 속히 비행기 예매를 완료했다.

 

한때 일터였던 공항과 비행기를 간만에 마주했지만, 예전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고 100명도 안 되는 승객이 분산적으로 앉아 소독제를 잔뜩 바르고 마스크 쓴 채 11시간 비행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낯설었다. 하지만 도착하니 여전히 한밤인 시간대,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들려오는 대화 등 이국의 생경한 모습은 이런 고생을 아무것도 아니게 했다. 그러나 이내 나를 가장 반긴 건 보건 패스반대 시위로 인한 극심한 교통체증이었다. 식당, 백화점, 박물관, 동물원 그 어디를 들어가도 가장 먼저 요구하는 건 보건 패스였다.

 

프랑스 정부는 대중이 모이는 장소에서 보건 패스제시를 의무화했다. 보건 패스는 백신 접종을 완료했거나 코로나 항체 생성 등을 증명하는 패스이다. 증명하지 못하면 사실상 일상생활이 어렵기에 백신 접종을 의무화 조치로 여기고 있고 이에 1회 이상 접종 완료한 사람이 국민의 70%에 육박할 정도로 효과를 보였다. 그러나 백신을 거부하고 PCR 검사 결과서로 증명하는 사람들이 생기자 프랑스 정부는 공짜로 해주던 PCR 검사를 유료로 바꿨다. 이 때문이었을까, 한국 입국 시 PCR 검사 결과서 의무 제출로 검사 받으러 갔다가 몰려든 각국의 수많은 인파에 4시간을 땡볕에서 기다린 후 5분 만에 검사를 마칠 수 있었다.

 

며칠 지내보니 전반적으로 실외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실내에선 착용하는 분위기였다. 이러니 하루에 몇만 명씩 나오지하며 KF94 2장씩 쓰는 여러모로 답답한 나날을 보냈지만 그런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고 되려 내가 이상하게 보였다. 며칠 마스크와 눈치싸움을 하고 현재의 시위를 가까이 보니 조금씩 시위의 이유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개인의 자유를 더 중시할지 국가 차원에서의 질병 관리를 더 중시할지의 줄다리기에서 지금도 백신 알람을 켜두고 수강 신청하듯 기다리는 상황이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부분은, 어쩌면 그동안 너무 세상 관심 없이 살고 있던 게 아닐까 하는 아쉬움을 안겨줬다.

 

다시 돌아온 한국에서 나를 제일 먼저 반긴 3시간 입국 심사였다. 4명의 검역관과 1명 안내자가 전부인 상황은 어딘가 씁쓸한 생각에 잠기게 했다. 코로나와 공존한 1년 반이 지난 이 시점에서 과연 진정한 방역이라는게 무엇일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 일주일이었다.

 

김연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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