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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호밀밭의 파수꾼 본문
석사 과정을 밟으며 내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자취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학교까지 최소한 3번의 대중교통 환승이 필요했지만 일찌감치 해치우는 느낌이라 1교시를 찾아듣곤 했다. 매일같이 어슴푸레한 한남대교를 지날 때 들을 노래를 고르기 위해 반쯤 뜬 눈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던 것은 하루를 시작하는 나의 예법이었다. 가끔은 이 예법을 제쳐두고 두 다리로 몸뚱이를 지탱한 채 한 손엔 노트북을 들고 한 손으로 타자를 치며 과제를 완성한 적도 있긴 하다. 자취를 시작하고 나서는 버스카드를 강박적으로 확인할 일도, 안암역과 고려대역을 두고 햄릿처럼 고뇌할 일도 없어졌다. 지나고 나면 추억이라 했나, 크고 작은 등하굣길 에피소드는 설익은 시절을 웃음 짓게 하는 낭만으로 여길 수 있게 되었다. 자취의 첫 번째 수확은 여유로운 아침이다.
공간을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점유할 수 있다는 것은 두 번째 수확이다. 본가에도 내 방이 있긴 하지만 인테리어 업자와 부모님의 합작으로 가공된 공간에 캐리비안의 해적 포스터를 하나를 붙이며 나의 공간이노라 짐짓 선언해볼 뿐이었다. 그마저도 데비 존스의 문어발 얼굴이 징그럽다는 이유로 내 방문에서 빠르게 종영했다. 육면을 채울 수 없다면 문을 닫고 그 부피만큼을 점유해보고자 했지만 답답한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던 부모님께서는 밀실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나는 학창시절을 광장에서 피켓시위대쯤으로 살아왔다. 다행인 것은 이제 이명준과는 다르게 나는 배에서 내려 이 곳 안암에 닻을 내렸다는 것이다. 대단한 중립국은 아니지만, 나는 이 공간을 어떻게 지배할 지에 신이 났었다.
한 사람이 필요한 짐의 양은 대단했다. 죽을 때 이고 가지도 못할 이 많은 짐은 살아가는 데에는 꽤 필요해 보였다. 짐의 부피를 줄이고자 내가 포기한 것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책이었다. 도서관이 가까우니 석사 공부를 위해 필수적인 책만 가져오자 다짐했다. 머신러닝, 경제수학, 경영통계, 꼭 이름이 4글자인 것도 규칙적으로 보이는 책을 챙기다가, 문학도의 마지막 양심인 양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가장 맨 위에 얹어왔다. 가장 얇고 작아 책꽂이에서 보이지 않는 이 책은 어릴 적 캐리비안 해적 포스터처럼 나의 다짐 같은 것이기에 괜히 잘 보이게 앞으로 빼어두기도 하고, 프라도 미술관에서 사온 책갈피를 처음 꽂아두기도 했다. 아무튼 내 방은 월세라는 한계로 인해 온전히 내 마음대로는 아니더라도 꽤 내 마음을 그럴싸하게 반영한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순탄하기만 한 여정은 멋이 없다. 멋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순탄하기만 한 여정은 존재하지 않기에 애써 멋으로 포장한 것 같기도 하다. 내가 가장 처음 맞닥뜨린 위기는 다름이 아니라 바 선생이시다. 화가 난 미국 부모처럼 미들 네임을 넣어 풀 네임을 부르기에는 나의 서열이 한참 낮기에 그를 바 선생으로 부르기로 했다. (그에게 님이라는 존칭어는 붙이지 않기로 한 것은 나의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다.) 학부 시절에는 안암이라는 동네에 흉흉한 바 선생 소문을 무시했다. 한 학기 운 좋게 잔여석이 있어 기숙사에서 산 적이 있는데, 그 당시에 바 선생을 조우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출몰이 자자하다는 음식점에 방문했을 때에도, 공용 공간인 샤워실에서도 본 적이 없기에 철 지난 소문이라 생각했다. 오히려 강력한 산모기 때문에 내 발목은 처참한 전장이 되었다.
그러나 비로소 안암 주민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나지 않는다. 그는 정말 유비쿼터스의 존재이다. 나는 당시까지만 해도 그의 정확한 생김새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는데, 유전자 깊이 박혀있는지 보자마자 바로 그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분명 다른 것은 보지 않고 대로변과 가까운지, 벌레는 없는지 이 두 가지만 고려해서 방을 골랐는데, 웬걸, 바람이 따스한 어느 봄날 건물 1층에서 그의 사체를 목격했다. 크고 흉측했다. 이 건물이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꽤 무던한 성격이라 그런지 누군가 내 방 도어락 번호를 세 개나 눌렀을 때에도, 에어팟 프로의 노이즈 캔슬링을 뚫고 들어올 정도로 선명한 폭포수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길가에 소변을 누고 휴지로 엉덩이를 닦는 노숙자를 마주쳤을 때에도 놀란 마음이 금방 누그러지곤 했는데 조금 다른 종류의 공포였다. 눈에 작고 검은 환영이 보일 정도의 편집증적 증세를 겪기도 했다. 그 이후로 이틀에 한 번 꼴로 1층 복도에는 새로운 사체가 전시되었는데, 부동산에 강력히 항의했으나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약이라 했나, 점점 그의 피사체를 내면화하면서 나는 이제 나에게 다가오지 않는 이상 꽤 능숙하게 그를 대면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것 또한 수확이라고 볼 수 있겠다.
어쨌든 나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서 이 작은 일곱 평 방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전부인 나날들이지만 말이다. 항상 썩 흥미로운 일들이 일어나진 않는다. 매주 화요일 교수님 미팅을 준비하기 위해서 주말을 반납하고, 학부 때와는 전혀 다른 전공 공부를 하면서 나는 대체 어떻게 이 학교에 입학했으며, 왜 이렇게 무지할까 하는 자괴감에 머리가 지끈거리는 삶이다. 무엇을 지키기 위해, 누구를 만나기 위해 나는 파수꾼처럼 밤새 이 방을 지키고 있는가? 또 나는 무엇을 위해 이 글을 쓰겠다 했을까. 콜필드는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말라. 말을 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니까’라며 챕터를 닫았다.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과 이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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