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본문

7면/원우칼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1. 6. 4. 11:02

-University of Kansas, Communication Studies 석사과정 정범주

 

  나는 이따금씩 윤여정 선생님의 인터뷰 영상들을 즐겨본다. 그녀가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탄 것은 상을 탄 것 그 자체로도 기쁜 일이었지만, 내겐 그녀의 수상 연설을 즐길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녀가 하는 말들은 솔직하고 담백하면서도, 이따금씩 생각들을 곱씹어 보게 했으며, 직설적이지만 날카롭지는 않다. 뭉툭하게 던지는 말의 덩어리들이 무엇인지, 듣는 사람들이 그것들을 조각해보도록 하게 하는 힘이 있다. 사실 덩어리진 말들은 오해가 따라붙기 쉽다. 사람들은 보이는말들을 보기 때문이다, 혹은 보고 싶은 말들을 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자들도, 국민들도 윤여정의 말을 오해하지 않는 것은, 그녀가 보여주기 위해 말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에 들었던 말 중 가장 기분이 좋았던 칭찬은 내가 겉멋 없이 산다는 것이었다. 필연 멋있다는 말이 좋은 칭찬일 테지만, 멋이 없다는 말이 더 좋게 들리는 것은 조금 이상했다. 이 칭찬은 분명 내 취향에 잘 맞는 말인 것 같다. 나는 멋들어지는 것보다는, 멋있으려 하지 않지만 멋있어 보이고 싶어 했다. 꾸미지 않았지만 누군가 알아봐 주었으면 좋겠고, 화려하게 말을 하지 않더라도 단단한 삶을 살고 있다고 누군가 믿어주었으면 했다. 그런데 이 멋있음에 대한 집착은 내가 선택해야 하는 것들과 부딪히기 마련이었다. 예컨대 대학원을 가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하면 좋을 것들에 집착을 했다. 반듯한 직장이 주는 소속감과 이름이 주는 안정감은 나 혼자 느끼게 될 것은 아니었다. 그런 것들은 나에 대한 질문들을 어쩌면 나보다도 많이 받게 될 우리 부모님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나는 나에 대해 설명하는 것에 지쳐있었다. 내가 왜 재수를 했는지, 어떻게 지방대에 가게 되었는지, 인문사회 전공을 마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전망이 이러저러한데 어떻게 잘 해낼 것인지 등 사람들은 해결해 주지 않을 내 미래에 대해 걱정해 주었다. 나는 내가 무슨 공부를 하기 좋아하는지, 수업 중 기억에 남는 과제는 무엇이었는지, 수업 중 어떤 질문들을 했는지를 더 말하고 싶어 했다.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만 늘어가는 느낌이었다. 정작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질문들보다 내가 보는 것들에 대한 것, 더 구체적으로는 나는 꽤나 자주 보고 읽게 되는 일들이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되지 않는 것, 내 생각과는 다르게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는 것, 여과 없이 전해지는 날이 선 혐오의 표현들, 기계적 중립과 언론의 편향성 사이의 문제들, 언론의 자유와 주류적 의견의 재생산에 대한 것들이 궁금했다. 질문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고 했지만, 질문에는 많은 책임이 따른다. 궁금해해도 괜찮은 것들이 있었고, 어떤 것들은 궁금해하면 힘들어지기 시작하는 것들이 있었다.

 

  나는 보이지 않는 것을 궁금해했고, 사람들이 보이는 것을 말하기 시작하면 나는 이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면 답을 할 수 없는 질문들일지도 모른다. 내 속 깊은 것들은 나만 볼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내가 보지 못하는 나의 모습들은 다른 사람들만 볼 수 있다. 나 자신의 불완전에 대한 공포나 아직 미쳐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불안정함은 말을 거듭할수록 크게 그려질 뿐이었다.

 

  사람들은 왜 유학을 가느냐고, 대학원을 가서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어봤다. 이것은 어렵고 불편한 질문이었다. 가령 나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내게 이것은 도무지 내가 오늘부터 저는 시인입니다라고 써 붙이고 다닌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퇴직이 가까우셨던 시 수업 교수님께서는 그 오랜 세월 시를 쓰셨음에도, “오늘 아침에 내가 시를 쓰지 않았다면 나는 오늘 시인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시인이 되고 싶다고 나서서 주창한다고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나는 가능하다면 시인에 아주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고 싶었다. 그리고 그 길이 꼭 한 가지만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디지털 미디어에서 가짜 정보가 어떻게 퍼지고,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미디어 속 혐오와 차별에 영향을 미치는지 데이터를 통해 분석하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연구는 내가 시나 글을 통해 이해하고 싶은 세상과 다르면서도 같다. 시인 김수영은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 다음 시를 못 쓰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여직까지의 시에 대한 사변을 모조리 파산 시켜야 한다고 했다. 대학에서의 공부와 연구도 분명히 그럴 것이다. 늘 가지고 있던 시선, 익숙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들은 창의적인 연구와 새로운 발견을 모색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나는 어느 지점에서, 더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무언가를 하는 이유는 설명할수록 길어지지만, 무언가를 하고 싶은 이유는 아무리 길어도 내가 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참 부끄러운 이유다. 아주 절실하지만 하고 싶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내 대학원 생활의 철학이나 신조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지만, 바라건대 내가 하게 될 공부나 연구들이 자신들의 절실함을 증명해내야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가을학기 입학을 기다리는 요즘, 연락할 때마다 힘들다고 하는 대학원생 친구들 얘기를 들으면 덩달아 긴장이 된다. 각기 다른 공부를 하는 그들이지만, 내가 전해 듣는 어려움들은 공통적으로 대학원 생활을 버텨내는어려움이다. 그들은 몇 마디 말을 나누지 않고도 서로 이해하지만, 나는 한참을 묻고 나서야 머리로만 조금 이해할 수 있는 어려움이다. 고민 많은 모든 대학원생 동료, 선배들이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란다.

 

'7면 > 원우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침묵을 감득하는 법  (0) 2021.10.18
호밀밭의 파수꾼  (0) 2021.09.19
새로운 정상을 위한 소소한 제안  (0) 2021.05.07
정치 고인물 되기  (0) 2021.04.05
여행의 학교에서 은둔의 학교로  (0) 2021.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