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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정치 고인물 되기 본문
-이영서 기자
‘고인물’이란 게임 등 특정 분야에서 지나치게 전문화되어 신규 유입자들의 진입장벽을 높이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 비판적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 말에 나름의 경의를 담는다. 그 경지(?)에 오르기까지 그들이 바쳤을 시간과 노력, 그 결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퍼포먼스는 감히 손도 대지 못할 분야에 대한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잠들기 전에 게이머나 피아니스트, 요리사나 무용수 등 각종 고인물 영상을 찾아보는 것은 어느새 하루 일과가 되었다. 언젠가는 필자도 다른 연구자에게 대리만족을 줄 수 있는, 그런 ‘공부 고인물’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과거 민주화운동을 이끌었으며 현재 여당의 주역으로 자리 잡은 ‘86세대’는 이제 명실공히 ‘정치 고인물’이다.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에게 참패하고 81석에 머물렀던 민주당은 2020년 총선에서 180석을 차지했고 현재 의회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그야말로 권토중래요, 괄목상대요, ‘왕의 귀환’이라 할 만하다. 문제는 그들의 ‘고임’이 오로지 정권 획득과 정책 집행을 위한 기술의 차원에만 철저히 한정된다는 것이다. ‘조국 사태’라는 위기를 반격의 기회로 삼아 검찰에 대한 반감을 끌어올리고, ‘진흙탕 싸움’에 국민들의 시선을 돌린 채 관련 입법을 차례차례 통과시키는 기술은 전에 없이 ‘절묘’했다. 그러나 검찰의 독점권은 또 다른 특권 기관에 분배되었을 뿐, 이 개혁에 시민을 위한 자리는 없었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 50주기를 내세워 노동법을 개정하는 ‘세련됨’을 보였지만, 정작 새로운 노동법은 김용균을 위한 자리는커녕 전태일을 위한 자리조차도 만들어주지 못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티 나지 않고 매끄럽게’ 보류 혹은 외면되었고, 대학도 군대도 성소수자를 위한 자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들의 ‘정치 기술’이 의회에 100석의 자리를 마련하는 동안, 그들의 ‘정치’는 사회에 단 하나의 새로운 자리도 마련하지 못했다.
민주화 운동의 성공과 실패,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그리고 참여정부의 성쇠를 거치며 쌓아온 정치 철학과 비전과 이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고이다 못해 썩어문드러져 가는 것은 오로지 정권 획득을 위한 기술뿐이다. 물론 여당을 욕하는 것보다 쉬운 일은 없다. 다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현상이 단순히 현재 여당의 한계가 아닌 정당 정치의 본질에서 기인한다는 점이다. 정당은 개인의 정치를 대리한다. 그러나 대리된 목적은 망각될 수밖에 없고, 정당에 남은 목적은 이겨서 권력을 유지하는 것뿐이다. 때문에 대리된 정치는 기술에서밖에 고일 수 없으며, 철학과 비전을 고민하는 것은 결국 개개인의 몫이다. 이것이 다른 분야와는 달리 정치 고인물이 결코 어떠한 대리만족도 줄 수 없는 이유이다. 정치에서만큼은 스스로 고여야 한다. 내가 고였던 자리가 언젠가 하나의 새로운 자리가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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