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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새로운 정상을 위한 소소한 제안 본문
<새로운 정상을 위한 소소한 제안>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 석사 금지원
본고는 코로나19가 대륙을 건너 전파되는 유행병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기에 다소 이른 시점에 빌 게이츠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 대한 숙고에서 시작되었다. 이 글에는 코로나19가 "우리 세대의 본질적인 의미를 규명하는 사건"이 될 것이라는 그의 확신이 담겨있다. 코로나 치사율이 높지 않은 한국에서 코로나는 생과 사를 가르는 역병이라기보다 일상에 불편함을 더하고 불시에 금전적 손실을 입힐 수 있는 성가신 변수라는 인식이 더 지배적이다. 눈여겨볼 것은 둘 모두 '인생. 한 치 앞도 모른다'라는 교훈을 공유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미래 계획 취·이직 등 다양한 선택의 기로에 놓인 한국의 청춘들에게 코로나의 교훈을 어떻게 삶을 살아가는데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2020년 상반기 모두의 일상에 해당되었을 ‘뉴 노멀(New Normal)’이라는 단어는 필자에게 3년 전 닥친 한 사건을 상기시켰다. 2018년 2월의 첫 월요일 낮, 필자는 스터디에 참석하기 위해 학교에 가던 길에 대형차에 머리와 쇄골을 받혔다. 동계올림픽 팬으로서 기대하던 평창 올림픽은 ctrl+x되어 시간 밖으로 사라졌고, 거실 소파에 누워 다큐멘터리 ‘스코어’를 보던 필자는 어느 날 병실에 가드를 올린 침대에서 무한도전 ‘컬벤져스’ 특집을 보고 있었다.
한 달간의 섬망(譫妄) 증세 동안 필자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대략 의식의 6차원 정도를 떠돌았다. 가족들과 병원 식구들의 증언에 의하면 필자는 동물이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듯 바닥에 침을 뱉었고, 야밤에 잦은 고성과 몸부림으로 간호사 창고로 강제 이동되기도 했으며, 틈만 나면 병원 탈출을 시도했다. 하루는 나의 탈출을 저지하던 이름도 성도 모르는 인턴 의사선생님 얼굴에 직격으로 ‘죽빵’을 날렸고(그 때문은 아니겠지만 그 선생님은 며칠 뒤 병원을 옮기셨다) 심지어는 오후 네 시 반에 카이로에서 미팅이 있으니 당장 인천공항에 데려다 달라는 창의적인 어록도 남겼다고 한다. 이따금 다양한 방면으로 사람들을 웃게 했다는데, 그 중 단연 최고는 방문해준 친구 및 가족들의 볼에 그렇게 입을 맞춘 것이다. 섬망은 다행히도 한 달 만에 가셨다. 10cm만 비껴 치였어도 생을 잃거나 심각한 장애를 갖게 될 수 있었다. 감히 상상하기도 어렵다. 사람은 참 간사하다. 얼마나 운이 좋은지 감사하는 마음에 과몰입되기 전에 또래압력이 급습했다. 스물일곱. 남들은 취직·이직·결혼 등 삶의 새로운 장을 맞이하고 있을 중요한 나이에 삶이 일시정지 됐는데 어떡하지. 결국 한 학기 만에 복학을 결정했고, 학교와 집만 오가는 단출한 생활에 적응되자 이력서의 활동 란을 채우기 위한 각종 활동을 재개했다. 필자의 첫 ‘뉴 노멀’이었다.
‘새로운 정상’에 적응하기 위한 행동양식과 마음가짐의 첫 번째는 ‘적게 말하기’였다. 퇴원 직후 나의 폐활량은 즐겨 부르던 노래의 한 소절도 따라 부르지 못할 정도였고, 한두 시간만 대화를 해도 낮잠이 필요했다. 한정된 발화(發話)는 더 경제적인 대화법을 깨우치게 만들었다. 핵심은 더 많이 듣고 효율적으로 표현하기였다. 많은 말을 할 수 없으니 상대의 말을 신속히 종합하여 본론에 들어가고자 했고, 감사한 마음은 가능한 지체 없이 전하고자 했다. 두 번째는 ‘계획하기’였다. 두어 달 만에 방바닥에 콘센트 플러그를 꽂으려 쪼그린 다리는 다시 일어서기 어려울 정도로 근육이 빠져있었다. MBTI 상 극강의 ‘P’를 자랑하던 필자는 생에 처음으로 ‘사전계획인’이 되었다.
다시 서두에 언급한 게이츠의 통찰로 돌아가 보자. 게이츠는 코로나바이러스를 우리 부모세대의 산업발전을 견인하고 삶을 송두리째 재건한 제2차 세계대전에 맞먹는 사건으로 규정했다. 이러한 격변기에 사람보다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자본의 흐름은 전례 없이 역동적이며, 40대 이전에 경제적 자유를 얻은 이공계·경제 계열 출신 ‘파이어족’들의 이야기가 기사화된다. 필자와 같은 ‘문송’들은 독립하려면 다시 태어나야 하나 생각하게 하고, 필자의 ‘친정’인 예체능계의 사정은 두말할 것도 없다.
삶은 본래 예측 불가능한 다양한 변수들로 가득 차있고, 개인의 변화는 자본이 주도하는 유행이 변하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그렇기에 필자는 현 세대에 전무후무한 역사적 순간에 역설적으로 그 변화의 물결에 거슬러 자기 자신을 탐색할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제안해본다. 삼년 전 필자에게 주어진 뉴노멀 시기는 필자의 과거와 현재를 엮어 가까운 미래를 위한 밑그림을 그려보기 적격이었다. 그때의 교훈은 나의 현재는 나의 선택만큼이나 내가 선택하지 않은 우연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 스쳐간 경험과 인연들을 소중히 하라는 것이었다. 그 순간순간의 자극들을 통해 형성된 나를 살피는 것은 미래의 내가 삶이라는 모험을 헤쳐 나가기 위한 나침반을 만들어주었다. 온갖 변수들이 몰아치는 삶이라는 상황에서 자신을 지탱해줄 것은 자신밖에 없다. 어쩌면 개인의 정신건강은 삶의 방향 잡는 소프트웨어이고, 신체건강은 계획을 실현시켜줄 모터와 같은 물리적 본체가 아닐까. 요즘 좋은 습관 만들기 챌린지, 집중력 asmr, 일반인 인플루언서들의 자기계발서 등 오늘날 자기계발에 대한 열풍이 뜨겁다. 자신의 목표를 향해 쏘는 화살과 조바심으로 물로 칼베기는 ‘노오력’의 두 얼굴이다. 조금 더디더라도 모두가 블루오션을 찾아 나가는 세대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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