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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여행의 학교에서 은둔의 학교로 본문
여행의 학교에서 은둔의 학교로
이희인 / 영상문화학협동과정 박사과정
어느 지면에 ‘여행’을 주제로 한 원고를 기고할 일이 있어 알랭 드 보통의 책 『여행의 기술』의 한 구절을 인용한 적이 있다. 제목과 달리 책이 어떤 유용한 기술을 알려주지도 않을뿐더러, 다 읽고 나니 저자가 그렇게 여행을 좋아하거나 즐기지도 못하는 사람, 그래서 여행 경험도 그닥 풍부한 많은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았다. 그의 책에서 내가 인용한 구절은 이랬다. “인간의 불행의 유일한 원인은 자신의 방에 조용히 머무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다음과 같이 씀으로써 알랭 드 보통의 말을 냉소적으로 비틀었다. ‘어떤 사람의 불행의 원인은 과감하게 몸을 던져 여행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에 있다.’라고.
그와 같은 책들이 널리 읽히던 무렵이 있었다. 여행이 주는 가치가 그 무엇보다도, 그 어느 때보다도 삶에 밝은 빛을 던져 주리라는 희망으로 가득 찬 때였다. TV 교양 프로그램과 예능 프로그램은 앞다퉈 우리 국토와 세계 도처를 누비며 여행지의 풍광과 풍물을 보여주는 데 몰두했고, 대형 서점에는 여행 관련 서적들이 매대의 중심을 차지했으며, 여행사와 저가항공사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기도 했다. 틀에 박힌 삶의 테두리를 뛰어넘는 경험으로서, 여행의 미덕은 한없이 강조되었다. 석가모니부터 사도 바울, 마르코 폴로, 찰스 다윈, 헤밍웨이, 체 게바라, 연암 박지원 같은 인물들의 위대함을 만들어 낸 것이 여행이며, 따라서 여행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학교이고 선생님이라는 사실이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여졌다. ‘역마살’이란 단어가 개인의 운명이나 기질을 표현한 말이 아니라, 흡사 시대를 특징짓는 표현이라도 된 것처럼 전 세계인의 역마살화(化)가 진행된 듯싶었다. 어마어마한 이동의 시대가 시작됐고, 역설적으로 여행은 하나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세상이 바뀌었다. 세상이 갑자기 멈추었다. 이동보다 멈춤이, 경험의 세계에 뛰어들어 직접 몸으로 부딪치고 느끼기보다 거리를 두고 바라봐야 할 세상이 된 지 꼬박 한 해를 넘겼다. 소박한 여행조차 불편한 일이 되었고 무책임한 이동은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 돼버렸다. 여행업에 종사하던 사람들로부터 숙박업이며 관련 산업들도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예기치 못한 이 상황이 풀리더라도 한동안 여행은 먼 일이 될 것 같다고들 전망한다. 어떻게 이렇게 세상이 완벽하게 바뀌어버릴 수가 있을까. 여행과 이동이 아니라 정주(定住)와 머묾의 지혜가 소환되었고, 고독과 마주하는 기술이 권장되고 있다. 사회학자 김홍중은 이참에 과열된 자본주의를 벗어나는 방법으로 ‘은둔’을 권하기도 한다. 그가 얘기하는 은둔은 ‘초연하고 귀족적이고 고상한 탈속이나 고고한 정신의 세계의 도피’가 아니라, ‘사회적인 것, 지배적인 것, 패권적인 것으로부터의 필사적인 탈주’를 의미한다.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과감히 ‘연결을 끊’고 은둔할 줄 아는 ‘은둔기계’가 되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여행은 신체의 모든 감각을 기꺼이 동원해 그 유기적인 작동을 통해 치르는 일이지만, 은둔에서는 ‘시각’의 역할이 특별히 더 강조될 수밖에 없다. 팬데믹 시대의 사람들은 다양한 형태와 크기의 스크린과 범람하는 시각적 콘텐츠들로 둘러싸여 있다. 하루 종일 자신의 목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만지고 부딪치는 대상들도 예전보다 한정적일 것이다. 정신과 이성을 과도하게 강조해 몸과 감각을 미심쩍은 것으로 폄하해 온 서구 사유의 여정으로 본다 해도, 지금 우리 감각이 처한 불균형의 상태는 유례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또 따지고 보면, 여행이 만든 사람들만큼이나 이동이 억압된 사람들, 그 극단에 있는 수인과 유형자들 중에도 훌륭한 사상과 업적을 쌓은 사람들이 허다하다. 도스토옙스키의 위대한 작품들도 시베리아 유형에 많은 빚을 지고 있을 테고, 정약전‧정약용 형제, 추사 김정희의 저작과 작품들도 기나긴 유배의 산물이기도 했다. 안토니오 그람시나 신영복 역시 감옥의 쇠창살 안에서 만들어진 사상가들이며, 어마어마한 대하소설의 세계를 구축한 조정래 작가는 스스로를 ‘황홀한 글 감옥’에 갇힌 수인으로 표현한 바 있다. 여행만큼이나 은둔 역시도 훌륭한 학교이자 선생이 될 수 있음엔 틀림없는 것 같다. 때때로 훌륭한 여행이 고독과 은둔의 형식을 취할 수도 있듯이, 고독과 사유가 함께하는 은둔도 조금 다른 형식의 여행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가만히 한곳에 오래 눌러 있지 못하던 나 역시 지난 한 해를 보내며, 일상과 습관에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팬데믹이 아니었다면 이렇듯 진득한 은둔의 시간을 체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팬데믹에도 배울 것은 있으며, 모든 일이 전적으로 나쁘거나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눈을 혹사하고 과도하게 정신적 활동에 몰두하는 시간이지만, 몸의 감각을 벼리기 위해 집 근처 탁 틘 산책로를 걸으며 대기를 호흡하고 계절의 흐름을 감지한다.
지난 여행들이 삶을 풍요롭게 살 찌워주었던 것처럼, 지금 이 은둔의 시간 역시 그러하다고 믿는다. 오래 전 냉소적으로 비틀어 돌려줬던 알랭 드 보통의 말을 다시 꺼내어 본다. “인간의 불행의 유일한 원인은 자신의 방에 조용히 머무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라는 그의 말이 이제야 마땅하다고 느껴진다. 얼마만큼 마땅하냐면, ‘어떤 사람의 불행의 원인은 과감하게 몸을 던져 여행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에 있다.’라는 말만큼이나. 다만 지금은 여전히 팬데믹의 시절이고 간신히 여행이 그립지 않을 무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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