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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보틀팩토리가 검증해낸 가능성, 재활용에서 제로 웨이스트로 본문
[기획의 변]
인류의 역사는 언제나 쓰레기와 공존했지만, 사람들은 이를 망각하거나 애써 외면해 왔다. 그러나 극에 달한 환경 위기는 더 이상 당면한 현실을 거부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제 쓰레기 걱정 없는 삶은 단순히 개인의 희망 사항일 뿐만 아니라 기업의 경영전략이 되었으며, 나아가 전 지구의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되었다. 이에 본지는 쓰레기 감소와 관련된 개인적‧사회적 차원의 노력을 알아보고자 보틀팩토리 정다운 대표와 연세대학교 ESG/기업윤리 연구센터 이호영 연구센터장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쓰레기 처리 문제가 점차 중요해짐에 따라, 쓰레기를 감축하는 방안은 리사이클(Recycle), 업사이클(Upcycle), 제로 웨이스트(Zero-Waste) 등의 형태로 다양하게 분화되었다. 특히 제로 웨이스트는 쓰레기(Waste) 배출량을 0(Zero)으로 만들자는 의미로,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최소화하자는 취지의 운동이다. 제로 웨이스트 기업 ‘보틀팩토리’의 정다운 대표는 제로 웨이스트의 일환으로 플라스틱 쓰레기를 최대한 감축하기 위해, 플라스틱 일회용 컵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 ‘보틀라운지’를 운영하는 등 여러 기획과 운동을 실천해왔다. 이에 본지에서는 정다운 대표가 가졌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그것을 통해 개인적인 차원에서 제로 웨이스트에 참여하는 의미를 묻기 위해 그를 만났다.
‘쓰레기여행’과 보틀팩토리의 탄생
정다운 대표는 2017년에 떠났던 ‘쓰레기여행’을 계기로 보틀팩토리의 창업을 결심했다. 처음에 플라스틱 컵을 추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며, 그때의 경험이 어떻게 지금의 문제의식과 보틀팩토리로 이어졌는지 물었다.
“플라스틱 컵을 추적하게 된 계기는 간단합니다. 과거 회사를 다니며 일회용품을 별 생각 없이 참 많이 사용했는데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이게 정말 재활용이 될까’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인터넷을 아무리 찾아봐도 플라스틱 컵이 어떤 과정을 거쳐 재활용되고 무엇으로 다시 쓰이는지 알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 과정을 직접 알아보기 위해 떠난 게 ‘쓰레기여행’입니다. 쓰레기 수거차를 따라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장장 6개월 동안 플라스틱 쓰레기의 행로를 추적했고, 이로 인해 얻은 결론은 재활용되는 플라스틱 컵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엄연히 재활용 마크가 붙어있는데도 여러 이유로 재활용이 되지 않는 것을 직접 보니, 세상에서 배출되는 모든 재활용 쓰레기가 결국은 그대로 쓰레기가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어떻게 재활용이 잘 되게 할까’의 문제의식보다는 ‘어떻게 하면 일회용 플라스틱을 안 쓸 수 있을까’의 문제의식을 가지게 된 거죠. 일회용 플라스틱을 아예 쓰지 않고도 운영할 수 있는 카페를 구상하게 된 것은 그때였습니다. 이후 다른 문제의식도 발전하면서 자연스럽게 현재 보틀팩토리가 제가 구상하는 여러 제로 웨이스트 사업 기획의 중심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버려진 플라스틱 컵을 추적했던 것처럼 버려진 음식물쓰레기의 행로를 추적하는 등 정다운 대표의 쓰레기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여정들은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또 다른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는지 물었다.
“부끄럽지만 진행 중인 사업이 워낙 많아서 ‘음식물쓰레기여행’의 경우 현재는 거의 진행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식물쓰레기여행을 하면서 다시 한 번 느낀 점은, 쓰레기들이 정확히 어디로 가며 어떻게 사라지는지를 알아내기가 정말 힘들다는 점이에요. 처음에 쓰레기여행을 떠났던 이유도 쓰레기가 발생하고 소멸되는 프로세스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였는데, 인터넷과 정보망이 굉장히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정보는 거의 대중이나 언론에 공개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언제든 기회가 되면 또 다른 쓰레기여행을 떠나서, 좀 더 사람들에게 많은 정보를 전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보틀팩토리 운영 상의 보람과 어려움
현재 운영하는 보틀팩토리는 ‘지구의 미래를 의탁하는 곳’, ‘가능성을 검증하는 공간’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또한 보틀팩토리 창업 이전에는 친환경 디자인 스튜디오 ‘이베카’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했는데, 고유한 경영철학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러한 사업을 진행하면서 느꼈던 특별한 보람이나 어려움이 있었다면 무엇일까.
“경영철학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겠지만, 일단 저는 제가 하는 일과 저의 가치관이 일직선상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했습니다. 물론 직업과 활동의 영역이 분리될 수도 있지만, 저는 거기서 오는 괴리감이 싫었어요. 회사를 다닐 때도 아무렇지 않게 대량으로 버려지는 일회용품과 종이를 보면 불편했고, 일상생활 속에서 그렇게 괴리감을 느낀다면 계속 일하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이전에 ‘이베카’를 통해 친환경 청첩장을 기획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습니다. 결혼은 주변에서 굉장히 자주 있는 일상적인 이벤트인데, 금방 버려지는 청첩장을, 리본 등 화려한 장식까지 넣어서 5~600장씩 찍어내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사람들 입장에서는 결혼식과 같은 일상적인 생활에서부터, 제 입장에서는 자신이 하는 일에서부터 출발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직접 친환경 스튜디오를 기획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업을 진행하면서 보람을 느꼈던 적은 많지만,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처음에 보틀카페를 시작했을 때 일회용 컵에 대해서만 생각을 했지 캐리어는 미처 생각 못했던 거예요. 그래서 여러 잔을 주문하신 손님께 임기응변으로 제가 정말 아끼는 바구니에 텀블러를 담아 드렸습니다. 그때 ‘누가 그걸 돌려줘? 안 될 거야’ 같은 생각을 했다면 그러지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제 손님들이 제 문제의식에 공감해주시는 분들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실제로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단 한 분도 빼놓지 않고 빌려간 물건을 돌려주시러 오셨습니다. 이런 시도들이 유의미해지고, 그로 인해 신뢰가 쌓여 갈 때 가장 커다란 보람을 느껴요.
어려움이라고 한다면, 저를 활동가나 전문가로 인식하는 시선들이 간혹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이 사업은 저에게 엄연히 직업이고 생계의 수단이기도 한데, 좋은 일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측면이 가려지거나 간과될 때가 많거든요. 저는 이러한 인식이 사라지고, 또 어느 정도는 수익이 보장되어야 새롭게 이러한 사업에 관심을 가지는 분들도 많아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데서 오는 어려움도 있다고 독자분들께 한 번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없어도 된다’는 경험
보틀팩토리의 활동은 여러 카페와 함께 ‘리턴 미(return me)’ 컵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컵공유 플랫폼 운영, 구매자들이 용기를 직접 가져오는 ‘채우장’, 일회용품 없는 일주일 ‘유어보틀위크(your bottle week)’의 기획 등 매우 다양하다. 위 프로그램들은 어떠한 취지로 기획되었으며, 이를 통해 어떠한 변화가 나타났는지 궁금하다.
“리턴 미 공유컵의 경우, 다회용 컵을 활용하는 행사가 많아지면서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행사를 할 때는 고객들로부터 안 쓰는 텀블러를 기부 받아 진행했었는데, 이 텀블러들이 전부 모양이 다르니까 관리가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컵을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지금의 리턴 미 컵을 직접 만들게 되었습니다. 컵은 뜨거운 물에도 문제가 없는 에코젠이란 소재를 사용했고 컵홀더가 필요 없게 디자인했습니다. 현재 공유 플랫폼은 20여 개 정도의 카페가 가입되어 있고, 점차적으로 확대할 전망입니다.
채우장은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팝업 장터이고, 구매자가 직접 용기를 가져와야 잼이나 장과 같은 것들을 담아주는 구조입니다. 연희동의 소상공인 분들을 중심으로 진행하다 보니, 사실 처음에는 걱정도 많이 했어요. 어쨌든 돈이 돼야 하는데 구매자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굉장히 호응이 좋았고, 이용자분들께서도 적응해보니 불편하지는 않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2018년에 처음 열린 유어보틀위크는 저희 보틀팩토리를 비롯해서 연희동의 카페 일곱 곳이 합심해서 ‘일회용품 없는 일주일’을 기획해보자는 취지로 시작한 것입니다. 참여한 가게에서는 일회용 컵, 빨대 등이 없고 음식 역시 일회용 포장이 아닌 본인이 들고 온 용기에 가져갈 수 있습니다. 2019년에는 카페뿐 아니라 동네 떡집과 분식집도 참여했고, 2020년에는 음식점과 반찬 가게, 동네 마트 50여 곳도 새롭게 참여해주셨습니다. 현재는 올해 마지막으로 진행될 유어보틀위크를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달라진 점으로는 지역사회적인 측면과 개인적인 측면을 나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먼저 지역사회적인 차원에서 동네가 바뀌기 시작한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예컨대 행사에 참여했던 가게의 사장님들이 행사 중이 아닐 때에도 대안적인 선택지를 준비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어떤 카페에서는 원래 포장된 형태로만 원두를 팔았다가, 이제는 용기에 손님이 원하는 만큼 덜어서 구매하는 옵션도 추가했다고 하더라고요. 이러한 지역사회 사장님들의 인식 변화가 정말 크다고 생각합니다. 옛날 같으면 장사하는 입장에서 일회용품을 준비해놓지 않는다는 것은 물건을 팔 생각이 없다는 소리였는데, 이제는 사장님들부터 일회용품이 필수적인 게 아니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확인한 거죠.
또한, 소비자 입장에서도 일회용품이 없어도 불편하지 않다는 경험을 한 번 해본 것이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일회용품이 너무 가득해서 우리는 일회용품 없는 삶을 살아보기가 힘들어요. 그러나 그것을 한 번이라도 겪고 나면 달라집니다. ‘없어도 된다’라는 경험은 미래의 가능성과 확신을 만들어냅니다. 아까 질문에서도 언급해주셨듯이 어떤 분이 감사하게도 저희 보틀팩토리를 ‘가능성을 확인하는 공간’이라고 명명해주셨는데, 이러한 경험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시켜드리는 것이 저희의 목적이었고 부분적으로나마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재활용보다는 재사용, 플라스틱의 지속가능성
플라스틱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플라스틱을 대체할 수 있는 많은 소재와 제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지속가능성의 차원에서 플라스틱 없는 삶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우리 일상의 제로 웨이스트는 어느 수준까지 실천 가능할지에 대해 마지막으로 정다운 대표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플라스틱을 환경 상 문제가 없는 제품으로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좋겠습니다만, 그건 앞으로도 꽤 오랜 시간 동안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플라스틱이 나쁜 소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처음에 나왔을 때만 해도, 플라스틱은 가볍고 견고한데 대량생산까지 가능한 완벽한 소재였죠. 다만 이렇게 오래 쓸 수 있는 좋은 소재를, 그게 편하고 돈이 많이 안 든다는 이유만으로 일회용으로 쓰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일부러 썩지 않도록 만든 소재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버리는 시스템이 잘못된 것이죠. 저도 플라스틱을 아예 안 쓰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버릴 플라스틱’을 아예 안 쓰는 것은 가능합니다. 제가 지속가능성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도 이런 맥락 위에 있어요. 버린 플라스틱을 잘 재활용하는 것도, 플라스틱을 아예 쓰지 않는 것도 현실적으로 지속가능한 방법이 아닙니다. 오히려 버릴 플라스틱이라면 처음부터 사용하지 않고, 버리지 않을 수 있는 플라스틱만을 ‘재사용’하는 것이 제가 쓰레기여행에서 얻게 된 지속가능성에 대한 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실천적 측면에서 예를 하나 들어 보자면, 자신만의 ‘평생 용기(容器)’를 만들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죠. 샴푸나 세제, 섬유유연제나 화장품 등을 쓸 때 그 처음의 용기를 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거기에 리필을 해서 쓰는 겁니다. 실제로 시중에 판매중인 플라스틱 용기들은 특별히 신경 써서 보관하지 않아도 거의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으니 말입니다. 만약 그걸 실천할 수 있다면 그냥 쓰고 버렸을 수백 개의 용기를 아끼게 되는 거고, 그렇게 생각하면 불편함보다는 뿌듯함이 느껴질 거예요. 그런 보람들이 모여서 우리의 생활이 하나하나씩 바뀌고, 그렇게 바뀐 경험들이 모여서 세상이 바뀌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차원에서 제로 웨이스트에 참여하는 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한 번이라도 실천해본다면,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불편함이 얼마나 사소한 것인지 알 수 있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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