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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면/쟁점기획

이콘에서 불도저 전시회까지, 우리가 몰랐던 러시아 미술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1. 12. 4. 00:04

이콘에서 불도저 전시회까지, 우리가 몰랐던 러시아 미술

 

 

혁명과 눈의 나라 러시아는 12세기 이콘화부터 현대 미술까지, 그 역사만큼이나 역동적인 예술사를 구축해왔다. ‘세계 모더니즘의 뿌리를 자임했던 19~20세기 부흥기와 암흑의 시대라고 불린 스탈린 집권기의 대립적 구도 속에 숨겨진 러시아 예술의 진면목을 살펴보고자 한국외국어대학교 김은희 특임교수를 만났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김은희 특임교수 / 인터뷰이 제공

 

 

 

[기획 인터뷰] 

 나폴레옹 전쟁, 서구주의와 슬라브주의의 갈등, 1·2차 세계대전, 러시아 혁명 등 처절한 사회적 혼란과 격변을 겪었던 러시아는 한반도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서도 그 문화를 잘 알지 못하기에 소문의 나라라고 불렸다. 혼란의 역사 속에서 러시아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 볼쇼이 발레단 등 최고의 문화·예술을 꽃피웠으며, 미술에서도 현대 모더니즘의 토대가 된 샤갈, 말레비치, 칸딘스키 등을 배출하였다. 하지만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서양미술사의 흐름에서 많이 배제되어 있으며, 부흥기 이후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과 1990년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수립하며 이들의 예술을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2020년 러시아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개최된 한러문화예술교류 30, 그리고 미래 비전 포럼에서는 한국과 러시아의 문화적 우호 관계를 증명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이에 본지에서는 19~20세기 러시아 문화·예술을 되돌아보고 그 현재적 의미를 묻고자 유튜브 채널 리드 러시아(Read Russia)’를 통해 러시아의 문화·예술을 소개하고 있는 한국외국어대학교 김은희 특임교수를 만났다. 

 

보리스 쿠스토디예프 <마슬레니차>

 

유튜브 채널 리드 러시아를 운영하게 된 계기

 김은희 교수는 올해 초부터 러시아의 예술과 문학, 역사를 소개하는 리드 러시아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다. 러시아 문학을 전공했지만, 문학 작품 이상으로 다양한 미술작품을 소개하며 러시아의 명화에도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러시아 문학을 넘어 미술에도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이며, 명화를 통해 러시아를 소개하는 유튜브 강의를 기획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물었다. 

 

 "20세기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면서 모스크바에서 유학하던 시기, 처음으로 국립 트레차코프  미술관을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 러시아 이동파 화가들의 사실주의 회화를 처음 봤을 때 이른바 스탕달 신드롬을 경험했습니다. 스탕달 신드롬이란 예술품을 보고 황홀경을 느끼는 독특한 경험을 말하는데요, 지금도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소름이 끼치기도 합니다. 당시 제가 본 작품은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 <미지의 여인> 등이었는데, 초상화임에도 당대에 화가가 느꼈던 고뇌도 함께 전해져 감동이 더했습니다. 이후 미술사 공부를 하게 되면서 러시아 초상화는 한 사람을 그리기 위해 그 대상과 거의 한 달 동안 꾸준히 만나며 그 사람의 생각과 삶의 태도, 그리고 그 사람만의 특이한 제스처 같은 것을 담아낸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나니, 한국에는 일리야 레핀이나 바실리 수리코프 정도의 화가만 알려져 있는 상황이 안타까워 이를 더 널리 알리고 싶은 욕구가 생겼습니다.

 물론 예술을 전공하신 분들은 잘 알겠지만 제가 러시아 문학을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있을 때 러시아 미술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고 느꼈기에 저 스스로도 미술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유튜브 채널을 시작하기 이전에 그림으로 읽는 러시아 등 책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만, 문자 시대에서 시청각 시대로 옮겨간 추세에 따라 올해부터 유튜브라는 매체를 선택해보았습니다. 또한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수업하게 되면서, 제가 하는 강의를 소개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러시아 미술과 문화를 주로 하며 역사, 문학, 음악에 대한 콘텐츠까지 다양하게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

 

일리야 레핀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

 

김은희 교수가 추천하는 러시아 명화

 김은희 교수는 리드 러시아 채널에 70여 개의 유튜브 영상을 업로드하며, 다양한 러시아의 예술 작품과 작가들을 소개해주고 있다. 리드 러시아 채널의 여러 영상 중 가장 애착이 가거나 추천하고 싶은 영상이 무엇인지 물었다.

 

 "제가 애착을 갖는 영상과 시청자들이 원하는 영상은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조회수가 높은 영상은 <안나 까레니나의 법칙>, <도스토옙스키의 세 여인과 자녀 이야기>, <단짠 음식 대명사 러시아 음식>이며, 미술과 관련해서는 <마슬레니차--쿠스토디예프> 영상과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에 대한 영상입니다. <안나 까레니나의 법칙>은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에서 안나 까레니나의 법칙이라는 장이 있는데, 이에 대한 설명과 톨스토이의 <안나 까레니나>을 비교한 영상입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세 여인과 자녀 이야기>는 도스토옙스키의 인생에 등장하는 3명의 여인과 도스토옙스키의 자녀인 딸 류보프, 아들 표도르의 이야기입니다. 대작가의 자녀들은 어떻게 되었는가에 대한 궁금증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였는데, 많은 분이 관심을 가져주셨습니다. 한편 최근 먹방 추세에 맞춰 음식을 소개하고자 달고 짠 러시아 음식의 역사를 추적해보았습니다. 소금과 설탕은 옛날에 권력의 상징이었기에 많이 넣을수록 자신의 부와 권력을 나타내는 행위로 이어졌고,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마다 소금과 설탕을 많이 사용한 문화가 일상화돼버린 것입니다.

 그림 중에서는 보리스 쿠스토디예프가 그린 마슬레니차 축제의 풍경과 축제에 관해 설명했습니다. 마슬레니차 축제는 입춘을 맞이하는 러시아의 카니발 축제로, 그림에서는 당시 사람들이 봄을 기다리며 설레하는 모습을 다양하게 담고 있습니다. 한편, 일리야 레핀이 그린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이라는 그림은 우리나라에 대입하면 거의 영조와 사도 세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친아들을 직접 죽인 후의 허망함과 참혹함이 생생히 드러나는 이 작품은, 러시아 그림 중 인지도가 높아서인지 조회수도 높았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영상으로는 니콜라이 야로센코의 <어디나 삶>을 설명한 영상입니다. <어디나 삶>은 시베리아 유형수를 실은 기차의 창살 너머로 아내와 아이와 할아버지 등 유형수의 가족들을 그린 작품입니다. 아이가 기차 안으로 빵 부스러기를 던지자 떨어진 조각들 주변으로 새들이 모이는 모습까지 예리하게 포착한 작품입니다. 마지막으로 일리야 레핀의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라는 작품을 설명한 영상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이 그림 역시 시베리아 유형수를 그린 그림입니다. 유형에서 돌아온 거실에 아내가 피아노를 치고 있고 어머니와 자녀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 작품입니다. 집에 들어오는 남성은 마치 영웅처럼 당당한 모습으로 그려질 것 같지만, 예상외로 그림에서는 소심하고 어깨도 약간 움츠리는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대의를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했다 하더라도 가족의 앞에서는 작아질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나타낸 것입니다. 굉장히 좋아하는 작품이라 영상에도 정성을 들였는데, 기대만큼 조회수가 많지는 않았습니다(웃음)."

 

일리야 레핀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러시아 예술 발전의 원동력, 러시아 정교와 예술가 자립 시스템

 19~20세기에 세계 모더니즘의 뿌리 역할을 했던 러시아 미술은 12세기 러시아 성상화(이콘화)’부터 19세기 이동전람회파까지 독자적인 흐름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형성된 러시아 예술의 고유한 특징은 무엇이며, 19~20세기에 문화적 부흥을 이뤄낸 역사적 배경은 무엇인지 물었다.

 

 "러시아에는 항상 독특한 뭔가가 있습니다. 러시아의 역사는 882 키예프루시로 시작되었으니 다른 나라에 비해 건국이 늦은 편이라 할 수 있고, 국교인 리스 정교도 988년에야 수용했습니다. 유럽의 다른 국가보다 전체적인 시작은 늦었지만, 세계 최초로 사회주의 체제를 도입한 나라이자 다시 자본주의 사회로 되돌아온 유례 없는 역사를 경험한 나라이기도 하죠. 이러한 특성이 예술에서도 나타납니다. 처음에는 이탈리아나 프랑스에서 건축가나 예술가를 초청해 다양한 건축물을 세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반대로 러시아의 건축가와 예술가들이 해외에서 활동하게 됩니다. 러시아가 예술 영역에서 이처럼 단기간에 변화를 만들 수 있었던 원동력에 대해 저를 포함한 많은 학자가 연구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독특한 미술인 종교화는 유럽의 유명한 작품들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풍깁니다. 이는 러시아 정교로부터 많은 부분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러시아 정교는 동로마제국의 그리스 정교에 연원을 두고 있는데요, 1453년 그리스 정교의 핵심인 비잔틴 제국이 멸망하자 러시아는 모스크바를 제3의 로마라고 선언하며 명실상부 가장 큰 정교 국가로 거듭났습니다. 이러한 정교 문화의 영향으로 화가들 대부분은 종교화를 그렸습니다. 러시아 작가 막심 고리키의 <어린 시절>이라는 작품을 보면, 고리키가 경험한 19~20세기의 성상화(이콘화) 제작 과정이 나오는데, 화가마다 배경, 옷 등을 담당해 그리는 부분이 분업화된 것으로 조사됩니다. 작업의 분업화가 필요할 정도로 성상화의 수요가 많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럽에서는 성상화 추방 운동이 있었지만, 러시아에서는 성상화 제작이 계속 이어져 성경과 성상화가 같은 의미로 쓰였는데요, 집집마다 성상화를 모셔두는 아름다운 구석이란 성소가 있을 정도입니다. 서민의 경우 비싼 그림을 구입하기 어렵다 보니 판화 형식의 성상화인 루복이 대량 생산되기도 했습니다. 대량 생산은 미술 발전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는데요, 누구나 쉽게 성상을 제작할 수 있게 되면서 각자의 개성을 반영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더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성상화가 만들어졌고, 제작자마다 더 선호하는 인물에 집중하는 등 성상화의 다채로운 발전이 이뤄졌습니다. 

 예술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풍부했다는 점도 중요한 요인 중 하나입니다. 1755, 모스크바국립대학이 설립되고 2년 후 바로 러시아 미술 아카데미가 세워집니다. 러시아가 예술 교육의 필요성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으며, 지원 또한 아끼지 않았다는 사실을 여기서 알 수 있죠. 러시아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예술적 재능을 보이는 아이들을 위해 국내외에서 충분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재능있는 화가의 경우, 1급 화가 자격증을 얻으면 평생 작품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생계를 보장하는 시스템도 갖춰져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후원자와 수집가들의 존재가 돋보입니다. 세계 4대 박물관으로 손꼽히는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예카테리나 여제 시절 작품 4,000여 점을 수집했습니다. 니콜라이 2세는 국립 러시아 미술관을 세워서 화가들이 작품을 구매하여 화가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고, 파벨 트레차코프는 40년간 자신이 모은 상당량의 수집품을 모스크바시에 기증했습니다. 기증받은 작품을 모아 미술관을 설립했고, 이후 국립 미술관으로 승격돼 러시아를 대표하는 미술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처럼 러시아에도 사바 마몬토프라는 유명한 후원자들이 대단한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후원자들은 자신의 영지에서 화가들이 머물며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꾸준히 지원하였고, 작품을 구매할 때 작가가 제시한 액수 이상을 지급하는 등 작가들의 지속적인 작품 창작을 위해 여러 방면으로 적극적인 도움을 제공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문화적 분위기는 미술계뿐만 아니라 당시 여러 문화계 인사들이 당대의 고민을 함께 짊어지고 갔다는 겁니다. 프랑스 살롱 문화와 비슷하게 화가, 소설가, 음악가 등 문화계 인사들이 자택과 같은 공간에 교류하면서 러시아가 어디로 나가야 하는가와 같은 고민을 공유하였고, 이런 고민을 각자의 글과 그림, 음악 등으로 소화해냈다는 거죠. 이런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러시아 문화·예술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스탈린 치하 러시아 미술: 경비와 거리 청소부의 시대

 러시아의 문화·예술에 대한 세계적 관심은 여전히 지대하지만, 19~20세기에 비해서는 현저히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이후 러시아 문화·예술이 이러한 양상을 보이게 된 구체적인 배경이 무엇일까. 문화·예술계 내부의 자체적인 이유와 그 이면의 사회·정치적 배경에 대해 물었다. 

 

 "러시아 예술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지대하다, 혹은 그렇지 않다는 평가는 유럽화된 시각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러시아는 계속해서 러시아만의 예술을 발전시켜 왔고 현재에도 계속 나가는 중입니다. 단지 그것이 수면으로 드러나는지 아닌지의 차이인 것 같아요.

 19세기 말에 굉장히 사실주의적 화풍인 이동전람회파가 큰 관심을 받았고, 그 이후에는 1920년대 아방가르드 예술로 세계 예술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스탈린 집권 이후 모든 문화·예술 정책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공식 경향으로 수렴되면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표방하지 않는 예술가들에 대한 모든 지원을 중단합니다. 더 이상 작품 활동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던 예술가들이 대거 경비원과 거리 청소부 일을 하게 됩니다. 심지어 1937~38년의 대대적인 숙청 시기,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표방하지 않는 예술가들은 시베리아 수용소에 가거나 삶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흐루쇼프 시대가 돼서야 비공식 화가 단체들이 표면 위로 드러나게 됩니다. 1967년 리아노조보 그룹이 기습적으로 12인 전시회를 열면서 주목을 받았고, 1974년에는 불도저 전시회라 불린 기습 전시회가 모스크바 거리에서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경찰이 기습 전시회를 불도저로 밀어버려 러시아 현대 미술사에서 엄청난 사건으로 남았습니다. 이처럼 정부의 대대적 탄압을 받던 시기가 있었지만 모더니즘, 개념주의, 아방가르드 등 여러 가지 경향들을 펼쳤던 화가들은 작업을 결코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현대 러시아 미술이 또다시 주목을 받고 경매에서도 비싼 값에 팔리고 이런 것들이 되지 않았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그러다가 80년대 말 고르바초프에 의해 페레스트로이카가 선포되면서 다시 자유롭게 전시와 작품 활동이 가능해졌습니다. 유럽적 시각으로 보면 러시아가 1930년대 이후부터 80년대 초까지는 거의 암흑시대처럼 사실주의적 경향을 띤 사회주의 리얼리즘적 작품들만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내막을 보면, 어두운 시대에도 러시아 예술가들의 끈질긴 노력이 이어졌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

 

 

콜라이 야로센코 <어디나 삶>

 

 

현대 러시아 미술의 동향

 러시아 문화·예술에 관한 소개가 주로 19~20세기에 활동했던 거장들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만큼, 러시아 문화·예술의 현재 동향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최근 러시아 문화·예술 영역에서 주목할 만한 작가 혹은 작품에 있는지 소개를 부탁했다. 

 

 "최근에는 유럽이나 일본 등에서 개인 컬렉터들이 러시아의 유명 화가를 지원하고 작품을 수집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유학 시절 우연히 컬렉터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컬렉터들의 경우 화실에 직접 찾아가 화가의 작업 과정과 다음 작품의 구상까지 함께 공유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더라고요. 현장에서 작품을 구매하는 문화도 발달해 있는 것 같아요. 많은 러시아의 신진 작가들이 미국이나 프랑스 등 해외에서 공부하며 전시도 활발히 열기 때문에, 작품의 낙찰가도 천에서 억 단위까지 꽤 고액에 거래되는 추세입니다. 

 제가 주목하는 현대 작가는 1975년 불도저 전시회를 조직했던 오스카 라빈과 이 전시회에 참여했던 블라디미르 네무힌, 러시아 아방가르드 운동을 자극한 여류 화가인 올가 불가코바, 러시아 개념주의 창시자로 불리는 빅토르 피보바로프, 구소련의 예술 정책을 비판한 설치미술가 밀리아 카바코프, 소더비 경매에서 고가로 낙찰이 되면서 알려진 그리고리 브루스킨입니다. 

 한편, 현대 러시아 미술의 상징 주라프 체레첼리는 모스크바 강변 표트르 대제 동상을 제작하는 등 기념비 예술의 대표자로 꼽힙니다. 생존 화가로서는 이례적으로 자신의 미술관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저명한 위치에 있습니다만, 정부와 긴밀한 연결이 추측되어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결국, 지금 당장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을 넘어 다음 세대에게도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데요, 앞서 언급한 작가들이 이후에도 계속 좋은 가치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 김연광 기자 dusrhkd99@korea.ac.kr

■ 황지원 기자 h950301@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