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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수요시위 30년, 과거를 끌어안고 미래로 나아가다 본문
수요시위 30년, 과거를 끌어안고 미래로 나아가다
기획의 변 : 1992년 1월 8일부터 쉼 없이 달려온 ‘수요시위’가 지난 2022년 1월 8일 30주년을 맞이했다. 대내외적으로 잡음이 없지 않았지만, 수요시위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는 진심과 피해자들의 정당성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이에 본지에서는 수요시위의 의미와 의의를 기리기 위해 수요 시위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정의기억연대’ 이나영 이사장을 인터뷰했다. 또한 수요시위가 걸어온 자취를 돌아보기 위해, 과거 ‘평화나비 네트워크’에서 활동했던 박상화 원우에게 정리를 부탁하였다.
일본군성노예제 문제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이행,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회복 등을 요구해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이하 수요시위)가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했다. 1992년 1월 8일 처음 시작된 이후 수요시위는 매주 수요일 정오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정기 행사로 발전했으며, 첫 시위에서는 불과 10여 명에 그쳤던 참가자가 2011년 천 번째 시위를 기준으로 2, 3천여 명에 달하는 등 시민들의 관심도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이제 수요시위는 운동의 차원을 넘어 피해자와 시민들이 연대하는 교육의 장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본지에서는 수요시위 30주년을 기념하여 수요시위의 의미와 의의를 돌아보기 위해, 기자들이 직접 수요시위 현장을 찾아가 취재하고, 더불어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 이나영 이사장(現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오늘의 수요시위 현장
몹시 추웠던 2월 16일, 기자들이 찾은 수요시위 현장의 풍경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먼저 코로나 시국인 만큼 시위 현장에도 QR체크인을 할 수 있는 장비와 방역 지침 등이 눈에 띄었고, 시위 구역을 제한하는 바리케이트와 경찰인력도 예전보다 늘어난 모습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두드러진 변화는 장소였다. 가장 먼저 눈에 띄어야 할 ‘평화의소녀상’이 보이지 않았다. 일부 우익-보수단체의 의도적인 집회 신고로 인해, 본래 시위 장소였던 주한일본대사관 앞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수요시위와 같은 시각, 평화의소녀상 앞에서는 수요시위 반대집회가 벌어지고 있었다. 수요시위의 진행을 방해하기 위한 음악이 커다란 음량으로 반복 재생되었고, 그 때문인지 수요시위의 현장에도 이전과는 다른 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수요시위의 담당자이자 정의연의 연대운동국장인 활동가 ‘행’은 이러한 수요시위의 체감되는 변화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원래 수요시위는 연령과 성별을 불문하고 ‘평화’를 외칠 수 있는 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아픈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언제나 밝고 즐거운 분위기로 진행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수요시위 반대 집회가 시작되고 나서부터는 도저히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피해자들에 대한 모욕과 활동가‧참여자들에 대한 공격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애써 무시하고는 있지만 저희도 사람인지라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없고, 아무래도 예전보다는 전투적인 분위기가 형성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정의연 연대운동국장 활동가 행)
물론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었다. 발언자들의 힘찬 목소리와 그것을 지켜보는 참가자들의 눈빛이었다. 먼저 대선후보들에게 보낸 정책 질의서에 대한 답변 결과를 정의연 측에서 발표했다. 이나영 이사장은 수차례에 걸친 질의에도 불구하고 ‘국민의당’과 ‘국민의힘’ 측에서는 어떠한 답변도 없었음을 밝히며,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조금도 없음을 크게 비판했다. 다음으로는 두레방 김은진 원장과 한국성폭력상담소 하윤 인턴, 그리고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대학생 SNS 기자단 김시온 기자의 발언이 이어졌다. 발언자들은 모두 수요시위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의 뜻을 밝혔고,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가 단순히 과거의 피해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강조하며 이를 연대의 힘으로 돌파해야 함을 역설했다. 이어서 수요시위 참가자들이 직접 발언하는 ‘참가자들의 한마디: 대선 후보들에게 바란다’가 진행되었다.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배상금이 아니라 진심 어린 사과를 받을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발언한 고등학생 참가자의 목소리는, 수많은 사람들 앞이라 가늘게 떨리는 와중에도 확신에 차 있었다.
수요시위 30년 역사의 원동력과 의의
2월 16일에 진행된 수요시위는 1,531번째 정기 수요시위였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주 수요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시위를 진행하는 것이 순탄할 리 없었다. 외부에서는 반대 세력의 방해와 여론 공작이 지속적으로 행해졌고, 수요시위 참여자들이나 정의연 내부에서도 충돌이나 잡음이 없지 않았다. 사소하게는 야외에서 진행되는 시위의 특성상 혹한이나 폭염, 우천이나 폭설 등의 날씨 변수도 인원이 모이는 데 많은 애로를 발생시켰을 것이다. 그럼에도 수요시위는 꿋꿋이 1,531회라는 숫자를 쌓아올렸다. 30주년을 맞이한 소감과 함께, 그 원동력은 무엇이었을지 이나영 이사장에게 물었다.
“가장 처음으로 드는 생각은 ‘그래도 슬프다’는 겁니다. 피해 생존자들이 건강하실 때는 3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매주 나와서 함께 정의와 진리를 외쳤는데, 차츰 한 분씩 돌아가시고 한 분씩 쇠약해지시면서 오늘처럼 추운 날은 함께 하지 못 하게 됐어요. 그래서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이 시위가 지속됐는데도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 시위가 지속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먼저 슬픈 감정이 들게 합니다. 두 번째로 드는 생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랑스럽다’는 거예요. 온갖 고난을 헤치면서 이 자리를 지켜낸 모두의 용기가 진심으로 자랑스럽습니다.
이 문제를 만약 일본에 대한 단순한 적대감이나 울분을 통해서만 풀어가려고 했다면, 마찬가지로 일본에 보복하거나 어떤 대가를 받아내기 위해서 움직였다면 여기까지 못 왔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부정적 감정은 시작의 계기가 될 수는 있겠지만 어떤 행동이나 운동을 지속하게 만들기는 어렵거든요. 저는 지금까지 수요시위가 계속될 수 있었던 것은, 이 문제가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 그리고 시기의 문제가 아닌, 지금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사회 부정의와 연결되어있다고 생각하고 연대의 힘을 아끼지 않았던 시민들 덕분이라고 믿습니다. 어느 한 쪽을 공격하고 적대감을 유발하며 분열시키려는 태도가 아니라, 차별받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경험에 대해 공감하고 같이 해결책을 고민하려는 마음, 그 연대의 마음이야말로 수요시위를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인 셈이죠.”
지난 30년 동안 수요시위는 단순히 진상규명과 책임이행 등 문제해결을 요구하는 것에서 나아가, 다양한 국내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시위를 이어가며 세계 약 23개국에서도 참여를 도모하는 등 일본군성노예제 문제를 둘러싸고 국내외 시민들의 적극적인 연대를 이끌어 왔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의 예측처럼 ‘초(超)국가적‧초계급적 연대’의 가능성이 열린 2022년의 현대사회에서, 수요시위가 갖는 의의는 무엇일까.
“저는 현재 정의연의 이사장이지만, 원래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운동을 연구했던 사회학 연구자이기도 합니다. 수요시위의 의의는 미국에서 공부하다가 한국에 돌아와 제가 수요시위에 처음 왔을 때 느꼈던 감동 그 자체일 거예요.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 속 작은 공간에 모여서 이야기를 하지만, 그 이야기가 계속해서 공명(共鳴)되고, 그러면서 전 세계를 흔들고 실제로 국제사회의 인권규범을 바꾸고 전시성폭력에 대한 기본 원칙을 세우는 데까지 나아갔습니다. 그만큼 할머니들과 수요시위가 불러일으킨 문제의식과 관점의 파급력이 대단했다는 방증이겠습니다. 피해자들이 있는 국가의 단체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나라에서도 자신들이 겪은 여러 경험들을 이 사건과 연결해서 사고할 수 있게 되고, 공감과 연대의 힘이 집단과 국가를 뛰어넘을 수 있게 된 거죠. 일본에서도 굉장히 많은 단체와 시민들이 연대와 지지의 목소리를 수요시위에 보냈고, 오늘도 몇 분이 와 계십니다. 이렇게 국가와 민족을 초월해서 전 세계 어느 곳이든 누군가로부터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이, 저는 수요시위의 가장 큰 의의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실제로 그 힘과 목소리에 감동해서 이 연구에 착수하게 되었고, 결국 정의연의 이사장까지 맡게 된 셈이니까요.”
당면한 어려움과 앞으로의 지향점
인권이라는 보편적 정당성과 전 세계적 연대의 가능성을 통해 지난 30년 동안 투쟁을 포기하지 않고, 이제는 어엿한 역사가 된 수요시위이지만 당면한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윤미향 前 의원의 정치적 문제 이후로 반대 집회의 목소리는 점차 도를 지나치는 수준으로 변했고,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이전보다 시위의 규모가 제한되고 자율성이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이나영 이사장은 수요시위가 당면해 있는 어려움에 대해 어떻게 분석하고 있을까.
“반대 집회의 공세가 거세진 것과 코로나 시국은 실제로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물론 반대 집회의 씨앗은 이명박‧박근혜 정권기의 ‘역사국정교과서’ 논란 때 이미 뿌려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때 뉴라이트가 성장하면서 지금은 아예 일본 정부의 지원까지 받는 극우 세력이 만들어진 것이니까요. 그런데 원래는 이 세력이 광화문 광장에서 일장기나 성조기를 흔들면서 차별금지법을 비롯한 개혁적 변화를 반대하는 세력이었는데,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광장이 닫히면서 발화할 공간을 잃어버리게 된 겁니다. 그래서 이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그 연대를 확장하기 위해 수요시위의 현장을 ‘타겟팅’하기 시작한 게 정확히 코로나 시국이 시작된 2년 전쯤입니다. 언론에 보도가 잘 되지 않아서 그렇지, 윤미향 전 의원의 문제가 있기 전부터 수요시위는 이들의 표적이었어요. 그런 와중에 윤미향 전 의원의 사건이 좋은 빌미가 된 것이죠. 당장 오늘도 반대 집회가 진행되고 있지만, 저는 시민들이 이에 대해 공격적인 정서나 복수심을 가지고 행동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이들의 논리가 무엇이고, 그 논리를 실천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이해하고 그 움직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각에서는 수요시위와 관련하여 피해자들이 고령이라는 점에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물론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가 이제는 사과와 배상의 차원을 넘어, 기억과 인권 그리고 평화의 차원까지 확장된 지금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수요시위의 정신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피해 생존자들이 얼마 남지 않은 안타까운 상황에서, 수요시위가 지향할 앞으로의 방향성은 무엇인지 물었다.
“앞서 당면한 어려움으로 반대 세력의 움직임을 말씀드렸지만 그건 물리적인 어려움이고, 사실 저희들에게 심정적으로 가장 어려운 점은 이미 너무나 많은 할머니들이 하늘나라로 떠나셨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게 수요시위의 위기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우리에게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게 아니라, 일본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피해자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건네고 용서를 구하며, 과거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반성하는 국가로 남을 수 있는 기회는 지금뿐입니다. 일본은 그 마지막 기회를 놓치려 하고 있고, 저는 그 점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할머니들께서 다 돌아가시면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말이죠. 그러나 동시에 수요시위의 참여하고 지지를 보내주는 수많은 시민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할머니들께서 돌아가셨다고 해서 수요시위라는 장이 없어져서는 안 된다고요. 오늘 발언들만 해도 일본군 성노예 문제, 기지촌 여성 인권 문제, 현대의 여성들이 직접 체감하는 성폭력 문제들에 대한 여러 의식들이 쏟아지면서 서로 공명했습니다. 저는 그래서 수요시위는 투쟁의 현장인 동시에 상호교육의 장이라고 생각해요. 현재 정의연에서 문제의 해결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미래세대에게 이 문제를 통해 인권과 평화에 대해 교육하는 것이고, 최근 성공회대랑 협약을 맺어서 최초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만을 다루는 교양 수업이 열리게 됐습니다. 이렇게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그러한 고민을 안고 더 나은 미래로 전진하려는 교육의 외연이 확장될수록, 수요시위처럼 상징적이고 역사적인 교육의 장이 지속되는 것은 정말 큰 힘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1,531번째 수요시위는 여느 때처럼 닫는노래 ‘바위처럼’에 맞춘 활동가들의 몸짓으로 끝이 났다. 30여 년 동안 천오백 번이 넘는 시위를 거치며 수요시위의 겉모습은 많이 변화했을 것이다. 반대 집회의 요란한 목소리는 도통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평화의소녀상은 이제 더 이상 쉽사리 수요시위를 방문하지 못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악화된 건강으로 인해 유달리 추웠던 이번 수요시위에는 단 한 분의 피해 생존자도 참석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러가도 결코 변할 수 없고 사라질 수 없는 것이 있다. 할머니들의 피해 사실이 결코 사라지지 않듯이, 수요시위 역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 절망에 굴하지 않고, 시련 속에 자신을 깨우쳐가며’라는 바위처럼의 노랫말을, 매주 수요일마다 우직하게 실천하면서.
■ 이영서 기자 youngseo516@naver.com
■ 최서윤 기자 jensyc@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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