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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제브라피쉬의 무궁무진한 가능성 본문
제브라피쉬의 무궁무진한 가능성
-정확성과 효율성을 넘어 실험동물 복지의 현실적 대안으로 떠오르다
의학의 발전에 있어 동물실험은 결정적인 역할을 맡아왔지만, 동시에 필연적인 논란을 동반할 수밖에 없었다. 실험동물의 복지 문제가 제기되면서 불필요한 동물실험을 줄이고 동물실험을 대체할 기술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여러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단기간 내에 동물실험을 전면 폐지하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새로운 실험동물 모델로서 제브라피쉬(Zebrafish)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제브라피쉬는 인체와 유사한 유전적 구조를 지녔다는 점, 또 실험 비용과 시간을 대폭 절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동물실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많은 이들의 기대를 받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제브라피쉬 관련 최근 연구 동향을 살펴보고, 향후 동물실험의 전망을 알아보기 위해 고려대 안산병원 의생명연구센터 박해철 교수를 만나 물었다.
제브라피쉬와 인간의 동물학적 유사성
제브라피쉬는 열대에 서식하는 담수어의 일종이며, 포유강(哺乳綱)인 인간과는 다른 어강(魚綱)이지만 척추동물로서 인간 유전자의 80%를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인간과 제브라피쉬는 동물학적으로 어떠한 점에서 인간과 유사한지 물었다.
“제브라피쉬는 척추동물 모델로 사람의 유전자와 80% 이상의 염기서열 유사성(sequence homology)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전자는 단백질을 만드는 역할을 하고, 단백질은 우리 몸의 표현형을 만들기 때문에, 유전 정보가 유사하다는 것은 단백질의 구조와 그 기능도 유사하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제브라피쉬와 인간 사이의 단백질 유사성은 유전 정보의 유사성인 80%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아주 중요한 단백질인 신경펩타이드(neuropeptide)가 좋은 예가 될 수 있겠습니다. 신경펩타이드는 신경세포 말단에서 분비되는 펩타이드로 표적세포의 세포기능을 조절함으로써, 식욕‧생식‧수면 등의 본능적인 부분과 기억‧감정‧학습 등의 정신적인 부분을 포함한 각종 핵심적인 생리활동을 조절하는 기능을 합니다. 사람에게는 약 80여종의 신경펩타이드가 존재하는데, 제브라피쉬에서도 동일한 신경펩타이드가 모두 존재하며 기능적으로도 유사합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두 동물의 유사성이 굉장히 높은 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제브라피쉬는 각종 기관(organ)의 발생과정 및 구조에서도 높은 유사성을 가집니다. 동물에게 있어 가장 복잡하면서도 핵심적인 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뇌와 눈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중요 기관이 굉장히 유사합니다. 눈의 구조를 간단히 예로 들어 말씀드리면, 인간과 물고기의 눈은 둘 다 7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7개의 층은 제각기 다른 기능을 맡고 있는데, 인간과 제브라피쉬는 각 층의 기능적 구조까지도 전부 동일합니다. 이 기관의 조직을 슬라이스 표본으로 만들어서 전문가들에게 구분을 요청하는 실험을 한 사례도 있는데, 전문가들조차 구분에 실패했을 정도입니다. 이러한 기관의 유사성은 ‘질환모델’을 구축하고 형성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험동물 선정 기준과 제브라피쉬의 장점
2020년 기준 실험동물로는 여전히 설치류가 86.9%로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으며, 그다음이 6.3%의 어류, 5.1%의 조류 순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다양한 실험동물 중 연구 활동에서 실험동물을 선정하는 기준은 무엇이며, 특히 제브라피쉬는 실험동물로서 어떠한 장점이 있을까.
“실험동물을 선정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실험의 목적과 방법에 따라 기술적으로 구현 가능한 모델을 고르는 것입니다. 실험의 방법은 크게 배아조작(embryological manipulation), 형질전환동물(transgenesis), 유전자녹아웃(gene knock-out) 등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요. 배아조작은 배아에다가 DNA나 RNA를 직접 넣어 조작하는 기술, 동물의 형질전환은 인간의 유전자 같은 외부의 유전자를 넣는 기술, 마지막으로 유전자녹아웃은 유전자를 망가뜨리고 그것이 어떤 표현형으로 나타나는지를 분석하는 기술입니다. 이 세 가지 방법이 다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실험동물을 선정할 때의 이론적인 기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현실적인 기준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소모돼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의학이 촌급을 다투는 영역이면서도 언제나 최대한의 효율을 추구해야하는 영역인 만큼, 이론적인 기준만큼이나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기준이죠.
이 두 가지 기준을 토대로 지금까지 실험동물로 활용했던 모델들의 장단점을 간단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먼저 개구리나 병아리와 같은 척추동물모델의 경우, 배아조작은 가능하지만 형질전환이나 녹아웃 기술을 적용하기가 힘들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에 사람의 질환연구에 한계가 있습니다. 설치류 척추동물모델의 경우에는 사람과 유사한 만큼 세 가지 기술을 모두 적용할 수 있고, 사람과 거의 동일하게 기관이 형성되기 때문에 현재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기관이 발생되기까지 너무나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모되기 때문에, 대량 연구를 진행하거나 기능을 빠르게 분석하는 데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죠. 마지막으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초파리와 같은 무척추동물모델의 경우, 세 가지 기술이 모두 활용이 가능하고, 발생까지 걸리는 시간이 다른 모델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짧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관의 형성과 구조가 사람과는 판이하게 다르고, 사람과 비교했을 때 아예 형성되지 않는 기관이 많아 사람의 질환을 연구하는 데는 한계가 명확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제브라피쉬는 이러한 실험동물 모델들의 단점이 하나도 없고, 장점은 그 이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척추동물로서 유전자와 단백질이 인간과 굉장히 유사하다는 점은 앞서 말씀드린 바 있죠. 이러한 유사성을 바탕으로 설치류에서 활용되는 모든 유전자 조작 기술이 적용 가능합니다. 심지어 포유류와 달리 체외에서 수정하고, 배아가 투명하기 때문에 유전자 조작과 관찰이 훨씬 더 용이합니다. 또한 배아에서 모든 기관이 발생하는 데 48시간밖에 걸리지 않기 때문에 비용과 시간 면에서는 설치류 모델과 비교가 안 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무척추동물 모델과는 달리 인간과 유사한 기관을 가지고 있고, 이에 따라 발생하는 질병도 굉장히 유사합니다. 이 때문에 뇌신경‧심장‧종양‧대사성‧피부‧면역 등 거의 모든 종류의 질환모델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실험동물로서 제브라피쉬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브라피쉬를 활용한 다양한 연구 분야와 확장 방향
현재 박 교수가 소속된 고려대학교 제브라피쉬 중개의학연구소는 지난 2018년에 설립된 이후 다양한 분과학문에서 연구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 연구소에서는 제브라피쉬를 활용하여 각 분야에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그밖에도 앞으로 제브라피쉬를 활용한 연구는 어떤 분야와 방향으로 확장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제브라피쉬를 비롯한 실험동물을 활용한 연구 분야는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사람을 포함한 척추동물의 발생과정을 연구하는 것인데, 동물 연구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겠죠. 제브라피쉬 역시 이 과정에서 발견돼서 1990년대 후반에 모델 동물로서 채택됐고,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연구가 이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질환의 모델링이 워낙 용이하다 보니, 2010년 이후부터는 자연스럽게 두 번째 분야라고 할 수 있는 실험동물을 통한 질환 연구에 초점이 맞춰지게 됐죠. 고려대학교 안산병원의 경우 총 17개의 진료과에서 27명의 연구의사가 39건의 주제로 연구지원을 받아 질병중개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제가 속한 그룹은 치매나 루게릭병과 같은 다양한 신경계 질환을 연구하고 있는데요. 루게릭병 같은 경우는 선천성 질환이라 연구에 난점이 많은데, 제브라피쉬의 경우 유전자와 신경계 기능 모두 인간과 매우 유사하고 배아 단계부터 유전자 조작이 가능하기 때문에 훨씬 더 쉽게 질환모델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분야는 신약개발 연구로, 제브라피쉬의 발견은 글로벌 바이오기업들의 신약개발 전략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기존의 전략은 암세포 등의 세포에 먼저 신약을 실험하고, 여기서 효과가 있으면 설치류 모델로 확인을 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문제는 확인 과정에서 99% 이상 독성이 발견된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되면 폐기할 수밖에 없고 시간과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죠. 제브라피쉬가 획기적인 점은 이 과정에서 세포를 활용한 첫 번째 단계를 아예 생략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질환에 대한 효과 실험과 독성에 대한 1차적 확인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죠. 제브라피쉬를 통한 신약개발연구는 이미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 저희가 힘써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도 합니다. 신약의 유효성‧독성‧약물성을 대신 평가해주는 공신력 있는 기관을 CRO(Contract Research Organization=임상시험수탁기관)라고 하는데, 예전에는 CRO에서 설치류나 대(大)동물을 활용한 평가만 수행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제브라피쉬를 활용하는 CRO가 세계적으로 크게 늘고 있는데, 국내에는 아직 없는 실정입니다.
이와 더불어 주력해야 할 네 번째 분야가 각종 생활화학제품 및 환경독성 물질의 생체독성을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저도 현재 환경부에서 생활화학제품 평가 과제를 수행하고 있는데, 생활화학제품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이 1만 6천여 종이 넘습니다. 그런데 이 수많은 화학물질 중 독성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진 경우가 거의 없어요. 신약개발 분야에서도 살펴봤듯이 독성을 제대로 확인하려면 지금까지는 설치류 모델을 활용해야 했는데, 이 많은 화학물질을 다 확인하기에 설치류 모델은 비용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간과 비용 문제 때문에 이러한 독성 연구를 게을리 할 수는 없습니다. 화장품의 경우 얼굴에 바르는 물질이기 때문에 시력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가습기 살균제 사건 때처럼 인명 사고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죠. 안 할 수도 없고, 하자니 비용과 시간이 가장 큰 걸림돌인 이 네 번째 분야야말로 제브라피쉬가 가장 크게 활약할 수 있는 영역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실험동물 복지와 3R 원칙의 가장 현실적인 모델
동물실험 관련 논쟁의 핵심은 실험동물의 복지 문제이다. 최근에는 위령제나 실험동물을 위한 복지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점차 ‘3R 원칙’에 따라 실험동물에게 가해지는 고통을 최소화하고 효율적으로 연구를 진행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처럼 동물실험을 진행할 때 준수해야 하는 원칙인 ‘3R’은 무엇이며, 제브라피쉬는 이와 관련하여 향후 어떠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마지막으로 박 교수에게 물었다.
“동물실험에 대한 윤리적 문제제기와 실험동물의 복지에 대한 고민은 지속적으로 이뤄져 왔습니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연간 4백만 마리의 동물이, 전 세계적으로는 연간 5억 마리의 동물이 실험에 사용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영국의 동물실험반대협회에서 4월 24일을 실험동물의 날로 제정하고, 동물실험의 반대행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고려대학교 병원에서도 4월 24일에 수혼제(獸魂祭)라고 하는 실험동물 위령제를 실시하고 있죠. 3R 원칙 역시 이러한 흐름과 고민에서 나온 원칙입니다. 3R의 골자를 말씀드리자면, 동물실험을 최대한 비동물실험으로 대체할 것(Replacement), 사용동물의 수를 축소할 것(Reduction), 실험을 진행할 때 고통을 최소화할 것(Refinement)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말씀드리면 의학에서, 특히 신약개발 분야에서 동물실험의 전면적인 금지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물론 스위스에서는 신약개발에 실험동물을 활용하는 것을 금지하자는 법안이 제출된 적도 있지만, 통과되지 못했고 아직까지 보류되어 있는 것이 의학계의 현실을 방증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3R 원칙을 지키는 것은 의사로서 누구나 동의할 아주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동물실험을 전면 금지할 수 없는 현재의 상황에서, 제브라피쉬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기준에 대한 논의 역시 더 이뤄져야 하겠습니다만, 동물실험에 대한 규제는 대동물일수록 더욱 강해집니다. 그런데 제브라피쉬는 척추동물이기는 하지만 포유류도 아니고, 대동물도 아니기 때문에 규제가 거의 없는 편입니다. 화장품의 경우 신약개발보다도 훨씬 민감해서 2013년을 기준으로 화장품의 완제품과 원료를 막론하고 모든 동물실험이 금지되었는데요. 그러나 앞서 말씀드렸듯이 화장품에 대한 독성 실험은 반드시 이뤄져야 하고, 실제로 독성에 대한 안정성을 허가받지 않으면 제품을 출시할 수가 없어요. 이런 딜레마가 있다 보니 국가에서도 각 기업에 독성 실험을 일임하고, 정작 실험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모순이 발생하는 겁니다. 제브라피쉬는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화장품 실험의 규제에도 대부분 해당되지 않았고, 물고기의 시각독성평가(C-OMR)을 활용하여 화장품의 주요 독성에 대한 실험도 이미 상당히 진행되었습니다. 물론 제브라피쉬가 3R 원칙의 가장 이상적인 모델일 수는 없겠지만, 분명 보다 나은 기술이 개발되기까지 가장 현실적인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이영서 기자 youngseo516@naver.com
■ 최서윤 기자 jensyc@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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