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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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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면/저자와의 대화

‘자유’의 교차로에서 헤겔과 맑스를 보다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1. 12. 4. 00:16

 

자유의 교차로에서 헤겔과 맑스를 보다

 

 

한상원 역, 안드레아스 아른트 저, 역사와 자유의식 : 헤겔과 맑스의 자유의 변증법』, 에디투스, 2021.

 

 

 Q. 이 책의 저자 안드레아스 아른트는 25년간 국제헤겔학회의 대표를 역임했던 저명한 학자이지만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저자에 관한 간략한 소개와 이 저서를 번역하게 된 계기를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안드레아스 아른트는 제가 독일 베를린 훔볼트대학교에 재학하던 시절 박사학위 논문을 지도해주신 분이기도 합니다. 당시에 훔볼트대 신학부의 철학 담당 교수였고, 그전에는 베를린 자유대학교 철학과에서 초빙교수 생활을 오래 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오랫동안 국제헤겔학회 대표를 맡아왔기 때문에 독일이나 국내에서도 헤겔 권위자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사실 젊은 시절에는 좌파 맑시스트로서 활동과 연구를 해왔습니다. 제가 유학하던 당시에는 아른트가 베를린에 남아 있는 마지막 68세대 맑스주의 철학 교수였기 때문에, 그의 세미나에 들어가면 전 세계에서 헤겔과 맑스를 공부하기 위해 유학 온 학생들로 붐볐던 기억이 있습니다.

역사와 자유의식』은 저자가 은퇴 직전인 2015년 발표한 책인 만큼, 그의 성숙한 사유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맑스-레닌주의자로 출발했다면 이 저작에서는 헤겔의 관점에서 맑스를 재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헤겔과 맑스의 변증법적 사유를 결합해야 한다는 루카치식 문제의식을 견지하고 있지만, 루카치와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두 사람의 교차점을 조명합니다. 헤겔과 맑스의 변증법적 사유의 핵심은 계급의식의 발전과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 실현을 위한 역사적·사회적 조건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루카치를 포함한 전통적 맑스주의에서 당이나 계급과 같은 집합적 주체의 의식을 말하지만, 아른트는 개인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헤겔과 맑스의 사유를 봐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 책에서도 계급의식에서의 변증법과 그것을 통한 총체성의 실현과 같은 역사철학적 전망보다는 어떻게 헤겔과 맑스의 철학에서 근대적 자유를 제도화할 것인가에 관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른트는 루카치의 기념비적 저작 역사와 계급의식』과의 이론적 대결을 벌이면서 루카치 이후 태동한 서구 맑스주의라는 거대한 지성사적 흐름과 곳곳에서 충돌하게 됩니다. 저자는 무엇보다 루카치 이래 서구 맑스주의에 깊은 영향을 끼친 소외 개념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맑스 저작을 인간 본질의 소외 개념으로 읽으려는 시도는 어쩔 수 없이 낭만주의적 요소를 포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류에게 실현되어야 할 본래적 상태(‘인간 본질’)가 있다는 믿음은, 역사가 인간 본질을 되찾는 하나의 거대한 서사라는 인식으로 이어지고 인간 본질에 대한 낙관주의와 역사적 목적론을 낳기 때문이죠. 따라서 이 책의 제목 역사와 자유의식은 루카치의 이론적 작업과는 다른 길을 걷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헤겔과 맑스를 자유의 관점에서 연결하는 독특한 사유를 한국에 소개하고자 이 책을 번역하게 되었고, 또 아른트의 저작이 아직 국내에 번역된 바가 없기 때문에 그의 사유를 한국에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Q. 이 책은 헤겔의 자유 개념과 역사철학을 재독하고 그것이 어떻게 왜곡되어 이해되어왔는지 사상사적으로 예리하게 추적하고 있습니다. 헤겔 역사철학의 핵심이 소외의 극복이 아니라 자유의식에서의 진보에 있었지만, 청년 헤겔주의자들은 정신현상학』에서 차용한 소외 개념을 역사의 동력으로 사고하면서 헤겔로부터 멀어졌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인데요, 이에 관한 선생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A. 어려운 내용인데 잘 질문해주셨습니다. 아른트가 이 테제를 제출한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구 맑스주의 내부에서 벌어진 논쟁에 관해 먼저 살펴봐야 하는데요, 그 중심에는 맑스의 초기 저작인 경제학-철학 수고』가 놓여 있습니다. 청년기의 맑스가 1844년 파리에 체류하던 시기 작성한 이 원고는 말 그대로 수고(手稿), 즉 초고에 해당하는 글이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출간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원고가 1930년대 세상에 알려지고 책으로 출간되면서 다양한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때는 이미 맑스의 후기 저작과 레닌의 저작을 기초로 한 맑스-레닌주의적 해석이 정립된 이후였는데, 청년 맑스가 쓴 경제학-철학 수고』에는 소외론적 관점에서 역사와 공산주의를 설명하는 등 헤겔 철학적 사유가 깊이 배어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한편에선 청년 맑스의 소외론을 중심으로 그의 저작들을 재독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어납니다. 공식화된 구소련의 변증법적 유물론을 극복할 수 있는 맑스 본연의 실천적·휴머니즘적 요소를 여기서 찾으려고 한 것이죠. 이처럼 청년 맑스를 옹호하며 소외론을 중심으로 맑스의 휴머니즘을 조명하려 한 이들을 보통 인간주의(휴머니즘) 학파라고 부릅니다. 여기에 정면으로 대항한 것이 바로 알튀세르의 구조주의 학파인데요, 이들은 청년 맑스의 문제의식이 이후 인식론적 단절을 겪는다고 주장하며 인간주의 학파의 논리에 반박합니다. 독일 이데올로기』 이후의 저작, 특히 자본론』에 가면 인간 본질의 소외라는 개념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로 볼 때 소외론은 헤겔 철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청년기의 맑스에게서만 나타나는 이론적 방법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알튀세르주의자들이 맑스의 청년기 저작을 폄하하는 것에는 반대하지만, 그럼에도 서구 맑스주의 내부에서 벌어진 이 논쟁에서 저는 알튀세르의 손을 좀 더 들어주고 싶습니다.

 주목할 점은 알튀세르가 소외론적 문제틀의 원인을 헤겔로 돌리고 있는 데 반해, 정작 헤겔 권위자인 아른트는 본질의 소외와 자기복귀라는 소외론적 도식이 헤겔의 역사관과 무관하다고 역설한다는 점입니다. 청년헤겔학파가 헤겔의 텍스트를 오인했으며, 청년기의 맑스 역시 그 오해 속에서 경제학-철학 수고』를 집필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입니다. 청년헤겔학파 이래 내려오는 좌파 헤겔주의자들의 전통적 시각을 뒤집는 꽤나 대담한 주장이죠. 앞서 말했다시피 아른트는 맑스가 헤겔철학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지만 두 사람의 접점을 소외가 아닌 자유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맑스의 자본론』과 함께 두고 읽어야 할 헤겔의 저서로는 변증법에 관한 내용을 다룬 논리학』이 아니라, 자유의 현존재로서 법과 국가공동체에서의 인륜성을 다룬 법철학』을 제안합니다. 결국 아른트는 인간주의 학파와 구조주의 학파 중 어느 한쪽의 입장을 택하는 대신, 자신의 고유한 관점으로 맑스의 성숙기 사유와 헤겔을 새롭게 잇는다고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Q. 법은 자유 개념만큼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라고 생각됩니다. 저자는 헤겔이 법을 자유의 제약이 아니라 자유의 현존·실현으로 보았으며, 이 관점이 맑스에게도 이어지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맑스는 본래 법학을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법에 관한 체계적인 저술을 남기지 않아 그의 법 이론을 연구하는 데 난점이 존재했던 만큼, 이와 같은 접근 방식은 맑스의 사유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법과 자유의 관계에 관한 두 사람의 사유에 관해 더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A. 맑스가 법학에서 지적 여정을 시작한 것이 사실이지만 초기에는 철학을 주로 공부했고 이후로는 정치경제학으로 옮겨갔기 때문에 법에 관해서는 체계적인 이론을 남긴 적이 없습니다. 맑스주의 내부에서도 법과 관련해서 상당히 많은 논쟁이 있었는데요, 가장 전통적인 관점은 법을 지배계급이 자신의 지배를 관철하기 위해 마련한 상부구조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맑스가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에서부터 그룬트리쎄』, 자본론』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근대적인 법과 인권 개념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근대적 권리가 소유권을 기반으로 하며, 그 기저에 깔린 자유와 평등 개념 또한 상품을 사고팔 수 있는 자유와 등가교환을 위한 가치의 동일성이라는 평등에 그친다고 의심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맑스는 계급투쟁에서 법이 차지하는 역할을 결코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자본론』에서 표준 노동일을 제정하는 문제를 다루는 부분이라든가, 이론적 글이 아닌 현장에서 발표한 연설문 등을 보면 피억압자의 권리가 어떻게 법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지 고민한 흔적이 많이 발견됩니다. 법이 지배자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활용되는 모습을 현실에서 많이 보게 되지만, 피억압자가 지배자에 대항하려면 법의 강제력과 보편성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적 조건이니까요. 이처럼 법이 가진 이중적 성격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딜레마는 맑스주의 내에서 쉽게 해소되기 어렵습니다. 

 아른트는 법에 대한 헤겔의 사유를 맑스에 접목하면서 법에 적극적인 역할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헤겔은 법이 없는 곳에는 자유도 없다고 말할 정도로 법과 국가를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이를 자유의 실현과 동일시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전통적 맑스주의자들, 심지어 아른트의 제자 중 강한 맑스주의적 관점을 피력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의 견해에 반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통적 맑스주의는 법을 궁극적으로는 철폐되어야 하는 것으로 보고 더 나아가 국가 또한 사멸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이런 반응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죠. 이에 대해 아른트는 과연 맑스 본인이 국가 사멸론을 얘기한 적 있는지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아른트의 관점이 흥미롭지만, 헤겔에게 많이 치우쳐 있다는 사실까지 부정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더불어 헤겔이 지나치게 법을 긍정적으로 보면서 보수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점도 지적해두어야겠습니다. 하지만 전통적 맑스주의자들의 경우에도 국가의 개입을 일체 부정하면서 구체적 현실에서 멀어진 추상적인 대안을 제시하거나, 모든 법적 규제를 완화하려는 자유주의와 맞닿게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양비론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법이 가진 이중성을 인지하고 그 모순 속에서 현실이 운동해나간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맑스가 헤겔만큼이나 법에 대해 긍정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오늘날 발리바르가 말하는 시민권의 이론이나 데리다가 말하는 법의 힘을 사유할 수 있는 관점은 법의 양면성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는 점입니다. 이 책 또한 답을 제공한다기보다는 그런 논쟁을 촉발하는 계기로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상원 역자

 

 Q. 이 책을 번역하면서 가장 고심했던 부분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이 책의 번역을 통해 향후 어떤 이론적 기여를 기대하시는지도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이 책이 유독 헤겔과 맑스 철학의 다양한 구절을 인용하고 있고, 굉장히 고전적인 독일 관념론적 문체를 사용하고 있어서 사실 번역하는 데 굉장히 애를 먹었습니다. 독자들의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의역을 많이 했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어려운 책이라 생각하고, 또 번역 과정에서 여러 오류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책이 헤겔과 맑스 같은 고전적 사회이론들에 대한 이론적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제 경우에는 최근에 주로 현대 사회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지만 언제나 고전적 논의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전을 쉽게 폐기하기보다는 그로부터 오늘의 현실을 읽어낼 잠재력들을 끌어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죠. 헤겔이 말했듯 모든 이론은 사유 속에 파악된 그 시대인 것이고 모든 철학은 그 시대와의 대결이라면, 저희 또한 우리 시대의 사유를 통해 우리 시대와 대결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은솔 기자 eunsol15@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