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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실체로서의 감정을 넘어, 감정의 수행성으로 근대와 문학을 관통하다 본문
이수형, 『감정을 수행하다: 근대의 감정생활』, 강, 2021.
Q : 박사논문을 비롯하여 주로 1960-70년대의 문학을 주로 연구하셨는데, 이번에는 ‘감정’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근대’ 초기의 문화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또한 특이하게도 책의 목차를 보면 일반 연구서와는 달리 부‧목‧장‧절의 구분이 없는데, 특별히 의도하신 형식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A : 저와 같은 시기에 1960-70년대 문학을 연구하셨던 분들이 현재는 대개 1980-90년대의 문학으로 시기를 옮겨 연구를 계속하고 계시고, 이렇듯 시계열적인 연속성과 인과성을 추적하는 것이 최근 연구 경향의 한 흐름인 듯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저는 시기를 거슬러 올라간 셈인데, 물론 이 선택에 있어서 방향 자체가 크게 중요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분들처럼 연구의 폭이나 깊이를 확장하거나, 제 연구에 어떤 변화를 주려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더 컸던 것 같아요. 다만 ‘현대문학’을 공부하다보니 ‘근대’ 혹은 ‘근대인’ 혹은 ‘근대문학’ 등의 주제에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고, 제 분야에서 다소 해묵인 의문인 것은 알지만 제 스스로 결론을 지어보고 싶어졌습니다. 또한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감정’이라는 키워드에 대한 의문이 제 안에 있는 가장 솔직한 질문이라는 생각도 했고요. 그래서 제가 공부했던 ‘현대’로 이어지는 근대는 무엇이었는지를 알기 위해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고, 그 중에서도 가장 본연적이고 솔직한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감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목‧장‧절의 구분이 없는 것과 더불어, 이 책이 조금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해주셨는데, 이는 제 나름대로 독자층을 고려하여 기획한 부분입니다. 도입부에 자연과학적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감정’이라는 키워드에 접근했는지를 소개한 것도 마찬가지이고요. 대개 박사학위까지 받은 ‘연구자’가 쓴 책은 ‘연구서’로 받아들여지고, 저 역시 그러한 책들을 몇 권 썼습니다. 이러한 연구서들은 물론 나름의 목적과 의의가 있지만, 아무래도 독자층이 같은 연구자들로 제한될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이번에는 비전공자도 읽을 수 있고, ‘현대문학’이나 ‘현대성’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게끔 쉽고 편하게 다가가 보자는 취지로 이 책을 기획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누가 봐도 목차에서부터 연구서라는 티가 나는 부‧목‧장‧절의 구분을 없애고, 연구서 특유의 학술적 체계를 강요하지 않고자 했습니다. 또한 쉽게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감정은 무엇인가’라는 보편적인 질문에서부터 시작하고, 그 질문을 둘러싼 여러 고민과 대답들을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문학적으로 편향된 시각이나 방법론만을 보여주지 않고자 했습니다. 모쪼록 연구자가 아닌 독자들에게도 흥미로운 시도였기를 바랄 뿐입니다.
Q : 이 책의 전반부에서는 헉슬리(Aldous Huxley)와 디킨스(Charles Dickens), 톨스토이(Leo Tolstoy) 등 ‘근대’의 거장들과 세계의 고전들을 넘나들면서, 감정이 어떻게 ‘근대’라는 키워드와 연결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근대’의 시기구분과 ‘근대적 주체’의 탄생에 있어 감정의 역할은 무엇이었는지 간략히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 지성사적인 차원에서 ‘근대’라는 시기를 구분 짓는 특징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는, 객관적인 세계에 대한 탐구와 함께 주관적인 세계에 대한 탐구가 동시에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전자가 ‘이성’이라는 차원에 근거해 수학적‧과학적 사실에 입각해 있다면, 반대로 후자는 ‘감성’이라는 차원에 근거해 ‘1인칭 주체’의 ‘내면’에 입각하죠. 문학사에서 흔히 ‘근대소설’의 효시라고 평가받는 이광수나 김동인의 문학작품들도, 서술자 ‘나’ 등의 기법을 활용함으로써 개인의 내면을 발견하고 표현했다는 것이 평가의 중요한 근거로 작용했습니다. 계속해서 존재해왔지만 당대에서야 발견되었던 개인의 내면이라는 영역은 여러 가지로 명명되었죠. 낭만주의에서는 이를 ‘개성’이나 ‘낭만성’이라고 했고, 미학이나 비평에서는 ‘영혼’ 혹은 ‘심연’이라고 불렀죠. 제가 이러한 것들을 ‘감정’이라고 뭉뚱그려서 부른 이유는,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학문적인 기반이 없는 독자들에게도 가장 직관적으로 가닿을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감정이라는 키워드의 명명보다 중요한 것은 겉으로는 이렇듯 이성과 과학적 진실을 추구하면서도, 안으로는 무한한 내면의 깊은 심연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과 자부심이 ‘근대적 주체’ 특유의 ‘잠재력’을 형성했다는 사실입니다. 예컨대 이광수의 『무정』에서 이형식이 우주와 천지가 창조되는 장면을 보는 것도, 단순히 이형식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이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가 가진 내면의 무한한 잠재력을 통해 가능해지죠. 이 잠재력은 과거에는 종교적 신비주의나 낭만주의적 개성 같은 것과 연결되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민주주의 등과 연결되어 인간 해방의 가능성 같은 것을 열어주었지만, 그 가능성은 당대에나 지금이나 무궁무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근대’ 혹은 ‘근대적 주체’의 특수성은 객관적 세계에 대한 과학적 호기심만큼이나 커다란 관심을 스스로의 내면에 기울였다는 사실, 그를 통해 외부 세계의 우주만큼이나 무한한 공간과 가능성이 내부 세계에도 있었음을 발견했다는 사실에 기반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Q :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이 책은 감정이 “선재하는(pre-existent)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수행되는 것”을 증명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수행성(performativity)이라는 개념이 여러 분야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현재, ‘감정을 수행한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이며 ‘수행되는 것’으로서 감정을 바라보는 것의 연구사적 의의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 ‘수행성’이라는 개념은 제가 박사논문을 집필할 당시 이청준 연구에서도 활용했던 개념으로, 학계에서도 현재진행형으로 활발하게 논의되고 개념이기도 합니다. 그런 만큼 수행성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라고 딱 잘라 말씀드릴 수는 없겠죠. 다만 수행성의 가장 큰 의의는 이성을 통해 어떤 실체를 의미화하려는 모든 이론적인 기획의 한계를 드러내고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푸코(Michel Foucault)의 권력에 대한 ‘담론’ 연구나 데리다(Jacques Derrida)의 의미의 ‘탈구축’ 작업은 모두 수행적인 연구에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감정을 수행되는 것으로 본다는 것 또한, 감정을 어떤 실체로서 증명하고 의미화하고 고정하는 것에 대한 모든 반발이나 도전을 포함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수행적 연구가 시도되기 전까지 감정은 실체나 가치의 결정체로서 많이 이해돼 왔습니다. 학자들은 어떤 ‘보물찾기’를 하는 것처럼 진정한 감정은 무엇인지 혹은 감정의 진정성은 어떻게 입증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연구했고, 대중들도 ‘네 감정에 솔직해져라’라는 취지의 TV프로그램이나 자기계발서적에 열광했습니다. 이러한 이해에는 감정은 늘 억압되어 왔고, 감정이라는 실체가 곧 자기자신이며, 그렇기에 실체로서의 감정을 되찾는 것은 진짜 자기를 되찾는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언제나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SNS를 보고 있으며, 이러한 감정의 표출을 통해 자기를 발견하고 정의하려는 노력들이 여기저기서 굉장히 잘 드러나죠.
문제는 이러한 이해나 전제는 지나치게 일방적일뿐더러, 감상주의나 감정의 상품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감정이 고정된 실체가 되고 그 실체가 곧 개인이 되면, 감정의 여부를 통해 사람을 판단할 수 있게 됩니다.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 뭐든지 용서되고, 어떤 감정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죄가 될 수 있죠. 이런 현상은 감정을 가장하거나 사고 팔 수 있는 도구나 물건처럼 만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저는 감정을 고정된 것이 아닌, 개인에 의해 수행되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개념으로 보고 이 과정을 존중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이 책에서 그러한 기획을 하게 된 것입니다.
Q : 이 책의 대장정은 ‘근대소설의 효시’라는 평가를 받는 『무정』으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저자인 이광수가 단순한 계몽주의자를 넘어 ‘지(知)‧정(情)‧의(意)론’의 주창자로서, 특히 ‘정’을 특히 문학의 특질로서 강조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더욱 흥미로운 마무리가 아닐 수 없는데요. 세계문학의 보편성을 넘어, ‘한국근대문학’의 특수성을 논할 때 감정만이 드러낼 수 있는 지점은 무엇일지에 대해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 이 책의 마무리로 『무정』을 선택한 것은 『무정』의 주인공인 이형식만큼 감정에 관해 상상하고 표현하고, 그를 통해 스스로 알지 못했던 자기를 발견하고 탐구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인물이 한국문학사상 다시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형식은 제가 보기에 한국문학사상 최초이자 최고로 충실하게 ‘감정을 수행하는 인물’인 셈이죠. 또한 너무나도 유명한 『무정』의 마지막 장면, ‘삼랑진 수해 현장’에서의 장면도 제 논의에 굉장히 잘 부합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장면은 수행성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켰던 존 오스틴(John Austin)이 설명했던, 감정을 산출하고 강화하는 ‘수행적 발화’를 정확히 보여주는 부분이자, 이광수 본인이 주장한 ‘정육론’을 구현한 모델이기도 하거든요. 따라서 감정의 수행성이라는 관점에서 저는 『무정』이 독보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지점이 더욱 흥미로웠던 이유는, 이토록 훌륭한 감정의 수행이 ‘최초의 현대소설’이라고 불리는 『무정』에서 끝나버린다는 것입니다.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발전하고 쇠퇴하는 어떤 흐름이라면, 서서히 태동하기 시작해서 전성기를 누렸다가 서서히 소멸하는 종 모양의 그래프를 이뤄야하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무정』은 정점을 찍고 바로 사라져버렸죠. 당대부터 모든 작가들과 지식인들이 최고의 소설이라고 평가했음에도, 아무도 『무정』의 장르나 감정 수행의 의지를 이어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러한 『무정』 이후의 단절이 역설적으로 한국 문학의 식민지적 특수성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무정』에서 수행된 감정의 형상은 왜 다른 방식으로 또다시 시도되지 못했을까요. 이는 시대의 물리적 억압 때문일 수도 있고, 『무정』이 당대 지성들의 무의식에 끼친 영향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어쨌든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해명하는 것은 추후의 과제로 남겨두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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