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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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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면/저자와의 대화

평화교육을 위한 발걸음: 시각자료를 통해 정동(情動)을 형성하다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2. 3. 7. 22:06

평화교육을 위한 발걸음: 시각자료를 통해 정동(情動)을 형성하다

강성현, 『작은 ‘한국전쟁’들: 평화를 위한 비주얼 히스토리』, 푸른역사, 2021

 

저자 제공

 

Q: ‘역사사회학자’로서 한국 근현대사 속 국가폭력에 관한 연구를 이어오셨습니다. 이러한 주제에 관심을 가지시게 된 계기는 무엇이며, 역사사회학의 관점이란 정통 역사·사회학과 어떤 차이를 지니는지 궁금합니다.

A: 사실 저는 제주도 출신이자 4·3사건의 유족입니다. 아무래도 가족사 차원의 배경이 있다 보니 석사학위 논문 주제로 4·3사건을 다루면서 조금 다른 시각을 지니게 되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이 사건 속 다양한 이야기들이 민중항쟁론과 폭동론이라는, 양극의 거대 서사 속에 갇혀있어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2000년대 초반에 학계와 시민사회에서 국가폭력이라는 프레임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여러 동료와 함께 본격적으로 국가폭력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사회학 전공이다 보니, 역사를 연구하면서 들었던 가장 큰 고민은 방법론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역사도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역사, 즉 구조를 함께 설명하기 위해서는 상황에 따라 방법론을 달리해야만 했습니다. 역사 속 엄청난 충격은 갑자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늘 여러 지층을 지니는데, 그 지층을 길어 올리는 역사적 계보를 구성해 나가면서 그 속의 연속과 단절에 주목했습니다. 박사학위 논문에서 다룬 보도연맹사건 역시 그 출발점을 보도연맹이 결성된 1945년이 아니라, 이를 가능케 했던 구조로서 1925년 일제의 사상통제 레짐(regime)이라는 맥락으로 설정했습니다. 프랑스 철학의 개념을 빌려오자면 한국전쟁이라는 사건을 역사로 만들어 가면서 그 속의 시간대와 ‘지속’을 바라본 것이죠. 이처럼 여러 주제를 사회사·문화사·젠더사 등 다양한 관점으로 보게 되었고, 방법론도 역사학·사회학, 실증주의·해석학을 넘나들며 연구를 진행해왔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이를 전제하고 국가폭력을 본 것은 아닙니다. 주제에 주목하다 보니 기존 엘리트 중심의 정치사나 사회학적 방법으로는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방법론을 구축해 나가면서 사회학과 역사학을 융합한 시각을 기르게 된 것입니다. 편의상 저는 그것을 ‘역사사회학’이라고 부르고 있고요.

 

Q: 이 책은 다양한 시각자료를 중심으로 한 ‘비주얼 히스토리(visual history)’로서 한국전쟁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비주얼 히스토리란 무엇이며, 특히 사진 자료가 지니는 사료적 의미는 무엇인지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사실 현실을 기록한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관심 있는 현실을 시각화해서 남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시각이 매우 선택적이고 그만큼 사각이 크게 발생하기 마련이죠. 문자 기록은 필요한 경우에만 하기 때문에 그 한계가 더욱 두드러지지만, 사진과 영상은 화면에 더 많은 것을 담아내어 지역성과 분산성이 강합니다. 비주얼 히스토리란 이러한 이미지를 부차적인 사료가 아닌 주인공으로 세워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고, 저는 그중에서 사진을 주요 사료로 삼아 연구해왔습니다.

  이처럼 사진에는 현장성과 사실적 객관성이 분명히 있지만, 이를 사료로 볼 때는 생산 맥락을 함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정 피사체를 중심으로 촬영하다 보니 사진 역시 사각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제 호기심은 사진 자체가 아니라 누가, 언제, 왜 이 사진을 찍었는가에서 출발했는데, 이를 추적해 나가다 보니 한국전쟁 당시 사진병 부대가 전장에 파견되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무기가 아닌 카메라를 들고 다니던 사진병들의 활동은 일반 전투부대의 전술작전이나 마찬가지였죠. 당시 활동 지침서를 보면 피사체에 따라 촬영 기법을 달리했는데, 이는 다시 말해 스토리텔링을 전제하고 만드는 문법이자 의미를 극대화하는 방법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사진이나 푸티지 필름(footage film) 등 일차 시각자료는 목적과 의도에 맞게 가공·검열을 거쳐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즉 시각자료는 구체적인 의도를 가지고 피사체를 담았고, 그만큼 시선을 제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동시에 시각자료에는 객관적이고 고정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편집에 담긴 의도, 그리고 의도치 않게 시청자로부터 불러일으키는 감정도 있습니다. 결국 사료라는 것은 보는 이의 해석을 통해 의미가 부여되고, 다른 자료와의 관계 속에서 교차해서 구성된 사실들을 바탕으로 이해됩니다. 따라서 역사에서 이미지는 단순히 텍스트를 재현하는 것을 넘어 감정을 전달하고 서사를 만드는 매개체이기도 합니다. 예컨대 경고와 공포의 의도를 담아 죽음을 시각화한 선전물이라고 할지라도, 관객은 유도되지 않은 분노, 수치심, 모욕감과 같은 감정들도 느끼곤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사료를 보는 이들의 해석인 것입니다. 즉 감정과 해석은 별개가 아니라 같이 가는 것이고, 이러한 맥락에서 정동(情動)을 유발하는 것, 즉 독자적 특성과 대중적 특성 지니는 것이 이미지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Q: 이 책은 1950~53년 전후 한반도 상황을 중점적으로 다루면서도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시공간적 영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책의 제목처럼 이러한 “작은 ‘한국전쟁’들”이란 복수성(複數性은) 어떤 의미를 지니며 이는 한국전쟁과 한국 현대사를 어떻게 그려내고 있을까요?

A: 한국전쟁을 얘기할 때 1950~53년뿐 아니라 그 이전과 이후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수많은 전선이 존재했음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당연한 상식이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은 여러 전선에 중첩된 한국전쟁‘들’을 이야기하는 데에 매우 좋은 소재입니다. 사진 속 피사체는 특정 위치를 점하고 있는데, 전쟁에서 그 위치라는 것은 ‘우리’와 ‘그들’로 매우 단순하게 부여됩니다. ‘우리’도, ‘그들’로도 간주되지 않은 수많은 이들을 주변화시키면서 말이죠. 이처럼 사진 속 민간인은 때로는 의심스러운 존재로, 때로는 원조나 구호 활동의 수혜자이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등 이미지의 시각·사각 속에서 그 양가적인 태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특히 한국에 대한 미군의 이미지 자료라는 점은, 그 의도가 근본적으로 승리와 힘의 전시에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즉 우월성을 드러내면서 여러 감정을 이끌어내려는 심리전(psychological warfare)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동시에 사상전(ideological warfare)의 측면도 있습니다. 일반적인 미국의 시각에서 사상전은 매우 파시즘적인 것으로 치부되곤 하는데, 한국전쟁에서는 그런 기술들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전제되고 사용되었습니다. 미군 사진병들뿐 아니라 한국적 맥락에서 다른 제국의 권력 기술에 노출되었던 사람들의 경험이 합쳐져서 한국전쟁의 전선에 나타난 것이죠. 결국 한국전쟁은 사상전과 심리전이 착종된 거대한 실험장이었고, 여기에서도 한국전쟁의 ‘복수성’이 나타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사회 변동론의 관점에서 보면 전쟁은 사회를 바꾸는 가장 중요한 기제 중 하나인데, 한국에서는 전쟁을 끝내지 못한 채 수많은 전선이 존재하고 여전히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현재 한국의 예외적 상태와 비상사태적 정치를 만든 것이죠. 

  그리고 한국전쟁의 시공간적 배경은 1950년 이전으로도 거슬러 올라가는데, 일본군·만주군에서 경험했던 아시아태평양 전쟁과 그들이 민간인을 대했던 방식을 제외하고는 한국전쟁을 논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이 책에서는 시간의 폭을 확장하고 지속의 개념을 담아 장기적으로, 그러나 동시에 사건사적(eventual)으로도 한국전쟁을 바라보고자 했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작은’ ‘한국전쟁’ ‘들’”이라고 표현해야겠죠.

 

Q: 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은 평화교육의 관점에서 한국전쟁사를 다시 쓰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와 그에 대한 ‘기념’을 학습해온 세대가 공존하는 현재, 한국전쟁사 쓰기와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마지막으로 여쭤보고 싶습니다.

A: 한국전쟁사 쓰기의 과제는 크게 공공역사와 평화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공공역사란 좁은 의미로는 전문가들이 아닌 대중이 쓰는 역사입니다. 역사에 관한 관심과 전문적 역량을 갖춘 이들이 늘면서 학계와 대중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고, 전문 역사학자들은 다양한 역사 체험의 주체들과 협력하고 그 속에서 경쟁과 갈등을 겪기도 하죠. 결국 모두가 다 역사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자 역사를 해석하는 주체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국가폭력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이 앞으로 그 역사를 말하고 공유해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고등학생들한테는 ‘광주사건’이 임진왜란과 다를 바 없는 옛날이야기로 느껴지기도 한다는데, 이는 우리가 포스트 피해자, 포스트 생존자 시대 혹은 포스트 기억의 문제에 당면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좁은 의미의 공공역사를 넘어 전쟁사를 평화사로 써가는 맥락에서 공공역사를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평화교육 역시 영웅 서사의 폐허와 폐해를 드러내면서 영웅적이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 그 핵심입니다. 저 역시 이미지를 활용할 때 어떤 키워드로 접근하면 더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늘 안고 삽니다. 예컨대 죽음을 시각화한다는 것은 어떤 이들에게는 유독 더 힘들게 다가옵니다. 평화를 위한다는 의도와는 무관하게 상대적으로 약자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선정적인 부분을 매우 억압적으로 인지하고 감각하기도 하죠. 그렇다고 해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는 없으니, 이 책을 쓸 때는 죽음을 여러 번 언급하면서도 학살을 전면화하고 시각화하는 사진들을 뺐습니다. 물론 이것도 하나의 방식일 뿐, 궁극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평화라는 맥락이나 의도를 넘어 그런 감정을 넘쳐 흐르게 만드는 방법에 대한 고민은 현재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전에 유해를 발굴할 때 발밑에 부석부석 나던 소리가 유골이 부서지는 소리라는 것을 깨달은 이후로 제 무릎에 느껴졌던 감각은 오랫동안 매우 생생하게 남아있었습니다. 유족으로서, 또 일반 시민으로서 유해는 극현실이자 트라우마입니다. 연구자로서 이는 상징적으로 기호화된 대상이 되고요. 이 양가적인 느낌은 스스로 그 경험을 상징화하고 언어로 포획하면서 목격자 증언이 되었고, 또 연구자로서의 언어로 정리되면서 비로소 저는 더 이상 악몽에 시달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즉 유해라는 건 다양한 감각들을 불러일으키고, 이를 의미화하고 넘어서는 과정에서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전시한다고 한다면 시각·청각·촉각·후각의 감각을 전달할 때, 또 이를 의미화한 해석을 함께 전할 때 관객은 이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출발점이자 종착점일 것입니다. 언어로 상징화하거나 어떤 도상을 만들어내는 방식만이 아니라 전쟁을 넘어서는 다양한 감각들, 즉 공감을 만들어 가는 것이죠. 정동은 종종 부대낌으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단순히 의미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같은 곳에서 같은 걸 바라보면서 남이 느낀 걸 내가, 내가 느낀 걸 남이 함께 공유하는 짜릿함, 즉 부대낌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 인터뷰·정리: 최서윤 기자 jensyc@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