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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북촌과 서촌을 거닐며 한국 근대미술사를 재조명하다 본문
북촌과 서촌을 거닐며 한국 근대미술사를 재조명하다
황정수, 『경성의 화가들: 근대를 거닐다』, 푸른역사, 2022
Q: 그동안 한국 근대 미술에 관한 연구를 이어오셨습니다. 근대기에 관심을 가지시게 된 계기는 무엇이며,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사실 저는 한국 미술사의 모든 시기에 관심이 많지만, 특히 근대기에 관한 연구가 제한적이라고 느꼈습니다. 한국 근대 미술이 대부분 일본으로부터 들어왔기 때문에 그 이식 문화적 경향에 대한 비판과 배제가 오랫동안 이어져 온 것이죠. 그래서 근대 미술 없이는 한국 미술사가 일종의 ‘반쪽짜리 미술사’처럼 보였고, 그 여백을 채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작품과 작가를 정리하는 것만으로는 이 시대를 온전히 파악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당시 주요 예술가의 대다수가 서울에 살면서 영향을 주고받았던 것을 알게 되었고, 이 지역의 사람들을 연구하여 근대미술사의 역동성을 보고자 했습니다. 예술가가 살았던 동네를 찾아가서 그 사람의 흔적을 조사하고, 그 속에서 탄생한 작품과 시대적 의미를 생각해본 것이죠. 책 제목에서 근대를 ‘거닐다’라고 표현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실제 한국 근대 예술가들은 서양 여느 시대 못지않게 아주 놀라울 만한 노력을 했고, 우리나라 근대 미술이 꼭 어렵지만은 않다는 것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작가와 작품만 공부하면 미술사가 너무 어렵게 느껴지곤 하는데, 그 흔적들을 쫓아가 보면 비슷한 동네의 화가들이 일상적으로 교류했던 모습이 생각보다 쉽고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표지 그림에서 금강산을 화가들이 모여 사는 동네로 변형한 것도 이를 표현한 것이죠. 예컨대 기이했던 시인 이상 옆에는 한국의 첫 야수파 작가였던 꼽추 화가 구본웅이 있었고, 또 이상의 부인 변동림 여사는 우리나라 3대 화가 중 한 명인 김환기와 재혼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 미술사는 문학, 음악, 연극 등 다양한 예술 영역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의 중심이었던 경성에서 같이 어울리며 살았던 예술가들의 활동적이고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얼마든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도요.
Q: 『경성의 화가들』은 북촌과 서촌 지역에서 활동했던 화가들의 생애와 작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이 근대 미술의 중심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며, 북촌과 서촌 화가들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차이점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경복궁과 창덕궁이 위치한 북촌과 서촌은 조선시대의 유교적 사회 체제 속에서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따라서 이 지역의 양반들은 엄청난 재력을 바탕으로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패트런이 되었죠. 특히 북촌에는 궁중에서 일하는 이들이나 벌열 가문이 많이 살았기 때문에 궁중 미술과의 접점도 깊게 형성되었습니다. 서촌에는 겸재 정선이나 단원 김홍도를 비롯하여 대개 중인들이 거주했는데, 조선 후기에 상업이 발달하면서 광통교 부근에 서화 가게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유리한 조건이 형성되다 보니 이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점차 북촌과 서촌을 둘러싸는 미술문화 벨트가 형성되었습니다. 또 경복궁 영추문이 위치했던 서촌은 일제시기에도 궁궐과 소통하던 공간으로,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면서 경제적으로 부상한 지역이었습니다. 따라서 일본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돌아온 예술가들 역시 여기에 정착하게 되었죠.
한편, 1920년대부터 개최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한국인 최초로 심사위원으로 발탁되었던 이당 김은호와 청전 이상범은 당시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들이었습니다. 이당은 북종화, 즉 채색화 쪽의 명인으로 북촌 창덕궁 앞 권농동에 거주했습니다. 반면 청전은 산수화를 중심으로 한 남종화의 명인으로, 서촌 옥인동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후 각각 제자들이 주변으로 몰려들게 되면서 북촌 지역은 북종화 계열, 서촌은 남종화 계열이 발달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예술가들은 기본적으로 북촌과 서촌을 자주 왕래했기 때문에 이를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북촌과 서촌은 조선시대 때부터 화가들이 왕성하게 활동했던 지역이었고, 근대기에 들어서도 많은 기회가 있던 곳으로서 한국 근대 미술문화의 중심이 되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Q: 한국 근대 미술은 특히 일본으로부터 다양한 문화·예술적인 영향을 받아 새로운 형태로 발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영향은 한국 미술에 어떻게 반영되었으며, 그 속에서 한국 근대 미술의 특징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한국 근대 미술이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라고 하는 것은 상당히 소극적인 언어일 수 있습니다. 근대기 전까지는 민간인을 위한 미술학교나 교육 단체도, 서양화라는 개념도 없었거든요. 당시 미술 교육의 길은 중등학교에서 일본인 미술 교사에게 배우거나, 일본 화가들이 한국에서 운영하던 화숙에서 배운 뒤 일본으로 유학 가는 것뿐이었습니다.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 춘곡 고희동을 비롯하여 김환기, 이중섭 등 유명한 작가들은 전부 일본 유학파였습니다. 또 서양화의 영향을 받은 일본의 ‘신남화’는 수채화와 비슷한 매우 감각적인 미술로, 당시 한국의 동양화가들을 매료시켰습니다. 청전 이상범, 소정 변관식, 의재 허백련 등 동양화가들 역시 일본 유학을 통해 신남화를 배웠고 이후 한국 동양화의 큰 줄기를 차지했죠. 그 외에도 동양화, 즉 서화만이 존재했던 한국 미술은 일본 유학파를 중심으로 근대 만화, 조각 등 다양한 장르가 흥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초기 일본에서 유입된 인상파나 야수파 등의 경향이 계속해서 한국 미술의 주류를 이룰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일본 미술을 그대로 답습한 것은 아닙니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인들이 주로 유럽에서 인상파 미술을 배우고, 이를 다시 일본에 전파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미술이 발전했습니다. 서구 인상파의 영향을 받아 빛의 변화에 따른 사물의 변화를 중점적으로 그리면서도, 서구 작가들에 비해 매우 부드러운 붓 기술이나 일본 그림 특유의 섬세함을 더하는 등 상당히 신선한 그림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리고 이 미술을 한국 사람들이 배워오게 되었는데, 당시 한국 미술은 전통적인 동양화에 기반했기 때문에 또 다른 형식의 미술로 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점차 근대 미술이 자리 잡으면서 새로운 한국적인 분위기와 형태의 서양화가 발전했죠. 그러면서 김환기와 같은 작가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또 유학파가 주류를 이루는 현실에 반항하여 새로운 한국적인 미술을 지향한 박수근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점차 해방 이후 현대 미술이 형성되었고, 여기에 또 미군정과 미국·서구 유럽의 영향이 유입되면서 현대 미술로 이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Q: 일각에서는 한국 근대 미술의 이식적 성격에 대해 그 독창성과 역사성을 비판하거나, ‘친일-반일’의 시각에서 작가를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향후 한국 근대미술사 연구는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어떤 이들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쳐 노력했던 독립지사들과 예술가의 삶을 동일시해서 바라보곤 하지만, 이는 조금은 가혹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조선의 식민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이들과 식민지에서 태어나 예술 세계를 구축해갔던 이들에게 동등한 ‘친일’의 프레임을 씌울 만큼 단순한 문제는 아닙니다.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 때 삽화를 몇 번 그려 극단적인 친일주의자로 몰린 화가 중에는 우리 미술사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던 이들도 있죠. 그러나 친일행위에만 초점을 두고 이들의 작품세계를 배제하게 된다면 우리 근대미술사는 너무나도 빈약해집니다. 우리나라 3대 미술 작가로 꼽히는 이중섭, 김환기, 박수근의 작품 중 1945년 이전 작품들을 합치면 10여 점밖에 안 되는 수준이죠.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본다면 한국 근대미술사는 소위 말해 ‘자랑스러운’ 역사는 아닙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초기 근대 미술은 식민지 정책과 함께 거의 전적으로 일본에서 유입되었죠. 그러나 이는 한편으로는 예술가들에게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또 예술과 미학을 겸비한 전근대기의 총체적인 지식인 상이 일제시기에도 이어지다 보니 정치사와도 접점이 많습니다. 예컨대 이완용은 서예에 능했고, 한국 최초의 근대적 미술 조직인 서화미술회의 핵심 후원자 중 한 명이었죠. 이처럼 일본의 흔적을 일방적으로 지워버린다면 우리 근현대사, 또 근대미술사의 연결고리 역시 가려지게 됩니다.
결국, 예술에서 독자성만을 절대적인 선으로 간주하는 것은 오히려 미술사에 대한 이해를 방해합니다. 해방 후에도 김환기, 이규상, 유영국 등 추상화가들에 의해 현대적인 미술이 유입되기는 했지만, 일반적으로 현대 미술이라고 하는 새로운 세계는 또 서구와 미국의 영향을 상당히 받으면서 1970년대에야 확립됩니다. 이처럼 한국 미술은 외국의 영향과 우리의 자생적인 예술적 풍토가 만나 혼성되어서 이루어진 것이고, 그 혼성성을 꼭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직은 대개 작가의 국내 활동에만 주목하고 일본에서 경험했던 교육과 교류 등은 연구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유학 이후 국내 활동만 보며 작가의 천재성 혹은 반민족성을 판단하기보다, 그들의 터전을 공부하고 이해함으로써 이 시기의 미술사를 재조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면서도 각 개인의 삶과 작품에 대한 의미를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한국 근대 미술에서 꼭 주목해야 할 작가가 있다면 그 작가와 작품이 한국 근대 미술에서 지니는 의의는 무엇인지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개인적으로 독자들이 관심 가져주셨으면 하는 화가들은 분단 이후 북쪽으로 넘어가면서 잊힌 이들입니다. 예컨대 서촌에서 유명했던 이여성, 이쾌대 형제가 있죠. 이쾌대는 최근 이중섭이나 박수근, 김환기만큼이나 조명을 받고 있는데, 특히 <군상> 시리즈는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를 받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작품 속에는 당시 어려운 현실 속에서 고뇌하는 여러 인간의 모습이 등장하는데, 서양에는 미켈란젤로가 있다면 <군상>도 그에 못지않게 그림 속 인체의 모습이 여러 감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또 북촌으로 따지면 최재덕과 길진섭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기억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들은 남한 3대 작가에 버금갈 정도로 뛰어난 미술 세계를 가졌습니다. 작가 개인의 삶도 매우 극적이었고요. 동양화에는 북촌의 일관 이석호, 서촌의 청계 정종여도 있는데 이들은 남한뿐 아니라 이후 월북해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이어갔습니다. 이처럼 월북 작가들을 조명하고 전시함으로써 우리의 근대 미술이 매우 다채로웠고, 또 그렇게 부끄럽지 않은 근대였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남쪽에 있으면서도 뛰어난 작품 세계에도 불구하고 크게 조명을 받지 못한 작가들도 많습니다. 이 책에서 소개한 작가들 역시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이들 중 절반에 그치는 수준입니다. 보통 근대 미술이라고 한다면 구본웅, 이중섭을 먼저 떠올리곤 하지만, 그리고 그들과 함께 서촌과 북촌을 중심으로 한국 근대미술사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던 수많은 화가가 있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인터뷰·정리: 최서윤 기자 jensyc@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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