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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마녀들의 신곡(神曲), 그 지옥의 기록과 평화의 기획을 서사화하다 본문
마녀들의 신곡(神曲), 그 지옥의 기록과 평화의 기획을 서사화하다
김태우, 『냉전의 마녀들: 한국전쟁과 여성주의 평화운동』, 창비, 2021.
Q1 : 대학원에서 한국사학을 전공하신 이후로 꾸준히 전쟁 문제에 관심을 갖고 왕성한 집필 활동을 이어오고 계십니다. 어떤 배경에서 역사학을 전공하시게 됐는지, 그중에서도 특히 한국전쟁과 폭격 그리고 학살과 평화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1: 사학과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 배경에는 너무나 많은 이유들이 복합적・모순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에 다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간단히만 말씀드리면 성인이 돼서야 제대로 알게 된 제주 4‧3사건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된 정서적 충격과 저의 무지에 대한 부끄러움, 앎에 대한 열정, 독서와 글쓰기의 즐거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전쟁과 공중폭격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한 때는 1999년 코소보 전쟁 시기 나토(NATO)의 공중폭격에 관한 비판적 서적과 언론기사들을 접한 이후였죠. 미국과 서구 국가들의 소위 ‘인도주의적 개입’이 현지 민간인들에게 어떤 재앙을 안겨줄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게 된 후, 타리크 알리, 노엄 촘스키, 지오반니 아리기, 알렉스 캘리니코스 등의 서적들을 탐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 읽었던 책들은 저의 무지함을 일깨웠고, 세계를 바라보는 다른 관점들을 형성시켜 줬습니다.
Q2 : 이 책은 ‘국제민주여성연맹(이하 국제여맹)’이 작성한 조사보고서 『우리는 고발한다』를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국제여맹이 어떤 단체이며 이 보고서는 왜 당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외면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다시 말해 그들이 왜 ‘냉전의 마녀들’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여쭤보고 싶습니다.
A2: 사실상 이 책 전체의 내용이 이 질문에 대한 긴 답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국제여맹은 20세기 중반 세계 최대 규모의 여성단체였지만, 한국전쟁 이후 냉전 갈등의 심화 과정에서 공산주의 단체로 낙인찍히고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렸죠. 국제여맹은 1945년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국제여성대회를 계기로 수립된 국제여성단체였습니다. 당시 국제여성대회에는 40개국 850명의 여성들이 운집했는데, 현장에는 유럽 백인 여성들뿐만 아니라, 아시아‧아프리카‧남미 여성들 그리고 북미지역의 흑인여성들까지 참석하고 있었죠. 이는 기존 국제여성운동사에서 볼 수 없던 역사적 장면이었습니다.
국제여맹은 1951년 한국전쟁 관련 보고서를 발간하기 전까지만 해도 냉전적 갈등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고 광범하게 국제적 활동을 펼쳤던 유력 여성단체였습니다. 국제여맹은 1947년 유엔경제사회위원회 자문기관 지위까지 획득하여 유엔 내부에서도 활발한 국제교류활동을 펼쳤죠. 국제여맹 하위의 회원단체들 또한 냉전 진영과 무관하게 전 대륙에 걸쳐 광범하게 흩어져 있었습니다.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은 물론, 미군 점령 하의 일본과 독일에도 국제여맹 지부가 존재했죠. 이를테면 1947년경 미국에는 약 25만 명의 국제여맹 회원들이 존재했고, 덴마크에는 코펜하겐 한곳만 보아도 25개 하위 지부가 확인됩니다. 국제여맹의 핵심 리더들의 상당수 또한 스스로를 공산주의자로 규정하지 않는 여성들이었죠.
그러나 1951년 미국의 전쟁수행방식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한 국제여맹 보고서가 발표된 직후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보고서는 북한지역에서 발생한 광범한 공중폭격 피해, 집단학살, 성폭력 등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었죠. 미국 정부는 당황했지만, 이내 미국 내의 보수적 여성단체들로 하여금 국제여맹을 친소련 공산주의 여성단체로 강력하게 비난하도록 배후에서 사주함으로써 보고서의 주장을 무력화시켰습니다. 유엔은 국제여맹의 유엔 내 지위를 완전히 박탈해 버렸죠. 영국 조사위원 모니카 팰튼을 비롯한 일부 조사위원들은 자신의 조국으로 돌아간 후 해직, 압송, 구속, 망명 등의 수난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2차대전 직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었던 국제여성단체는 급속히 위축되기 시작했고, 이들의 한국전쟁 보고서는 어느 친소적 공산주의 여성단체의 정치선전물로 폄하되면서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Q3 : 「1장」에 돌입하면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마치 소설과 같은 도입부와 전개였습니다. 이렇듯 독특한 형식이 ‘한국전쟁기에 북한을 방문했던 외국 여성들’의 목소리와 어떻게 공명하고 있으며, 연구서의 차원에서는 어떠한 효용성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3: 제가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가장 중요한 내용 중 하나는 국제여맹 한국전쟁 조사위원회 내부 구성원들의 정치・사회・문화적 ‘다양성’이었습니다. 특히 저는 조사위원 개개인의 다채로운 성장과정과 주요 이력들을 새롭게 발굴해 가면서, 그리고 그 조사위원들의 한국전쟁 관련 개인기록들을 읽어나가면서 이들이 단순한 ‘소련의 꼭두각시’가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를테면 영국 조사위원 팰턴은 집권 여당의 대표적 여성 리더로서, 영국 최초의 뉴타운인 스티버니지 개발사업을 총지휘 할 정도로 뛰어난 수완과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네덜란드 조사위원 헤일리허르스는 인도네시아 민족해방운동 지도자인 수니토와 결혼한 엘리트 여성 변호사였죠. 그리고 쿠바 조사위원 깐델라리아 로드리게스는 부르주아 거상의 딸로 태어나 20대 초반에 변호사가 된 엘리트 여성으로서, 23세의 어린 나이에 북한행을 감행했습니다. 이렇듯 그들 개개인의 삶은 특정 국가나 조직의 ‘꼭두각시’ 역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죠. 이 여성들을 한데 묶어 ‘소련의 꼭두각시’로 폄하했다는 사실 자체가 저한테는 충격으로 다가올 정도였습니다.
이 여성들은 응당 한국전쟁 조사의 준비와 실행 과정에서 계속 충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신 강한 엘리트 여성들의 모임에서 ‘갈등’은 필연이었습니다. 저는 제 책의 마지막 챕터에서 제시한 영국 조사위원 팰턴과 소련 조사위원 옵샨니코바의 대화에서 매우 큰 인상을 받았습니다. 두 여성은 조사 과정 내내 상대가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고 토로하면서 크게 웃었습니다. 조사위원회 내부에 팽팽하게 흘렀던 긴장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화라고 할 수 있겠죠. 저는 이 같은 조사위원회 내부의 다양성을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서술방식이 마치 소설과도 같은 글쓰기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여성들 사이의 미묘한 감정의 교류와 변화를 섬세하게 보여주기 위한, 그리고 여행 과정에서 표출된 조사위원 개개인의 내적 변화를 보다 유려하게 제시하기 위한 문학적 서술방식은 매우 유용했습니다. 더불어 저는 조사위원들의 여정 자체를 마치 기행문이나 소설처럼 자연스럽게 노출하는 방식을 통해, 독자들이 저도 모르게 이들의 시선과 감정 속에서 북한의 현실을 볼 수 있길 소망했습니다. 독서를 통해 그런 감정과 감각을 조금이라도 공유했다면, 또 그를 통해 ‘평화’의 감성을 내적으로 싹틔울 수 있었다면, 저로서는 나름 성공적인 글쓰기 전략이었다고 자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4 : 대표저서인 『폭격: 미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이 “하늘에서 본 한국전쟁의 이야기”라면, 후속작인 이 책은 “지옥으로 변해버린 지상 위 인간의 삶에 대한 핍진한 서사”라고 언급하셨습니다. 이 책에 담긴, 그들이 목격했던 지옥의 장면을 짤막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4 : 이 여성들은 북한에서 너무나도 끔찍한 장면들을 많이 보았고, 인터뷰 과정에서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잔혹한 집단학살과 성폭력 사건들에 대해 전해 들었습니다. 이들은 집단학살 장소로 주장된 곳에 매장된 다수의 시신들까지 직접 확인했죠. 그러나 북한지역 조사가 끝나갈 무렵, 여성들의 뇌리에 남은 가장 인상적인 전쟁의 광경은 드넓은 잿더미로 변화된 도시와 농촌의 풍경이었습니다. 조사위원들은 1950년 11월 이후 북한지역에서 전개된 미공군의 초토화작전 수행 직후에 북한지역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미공군은 북한지역의 작은 마을들까지 공식적인 ‘군사목표(military target)’로 간주하면서 모조리 불태워 없애버렸습니다. 조사위원들은 불과 수일 만에 “거의 중단 없는 폐허의 연속”에 익숙해지고 말았죠. 조사위원들이 이동하는 모든 도시와 농촌에서 폭격과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여성과 아이들을 끊임없이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조사위원들은 증거를 조작해 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거의 모든 인공적 시설의 파괴 양상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Q5 : 지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냉전은 결국 그들을 ‘마녀’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서 알 수 있듯, 전쟁은 여전히 또 다른 명분으로 수많은 약자들, 특히 여성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며 그들을 ‘사냥’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이 땅에 남아있는 수많은 ‘마녀들’을 위하여, 국제여맹의 노력이 앞으로 어떠한 연대와 평화의 기획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5 : 책을 출간한 후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여성단체들로부터 강연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정말 황송하고 또 감사하게도 많은 여성들로부터 “부끄럽다”거나 “고맙다”는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냉전기 국제정치적 갈등을 뛰어넘어, 전쟁으로 고통 받는 한국여성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하고자 했던 외국인 여성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사실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고, 그 같은 역사를 70년이 지난 지금이라도 알 수 있게 해주어 고맙다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같은 반응들 속에서 꽤나 큰 희망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여성평화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여러 청중들의 반응은 기존에 몰랐던 새로운 역사적 지식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오는 단순한 지적 만족을 넘어서는 것 같았습니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실천의 이정표 같은 것을 발견한 느낌이랄까요. 여성들의 눈에서는 지적 충만감이 아니라, 미래의 실천에 대한 흥분과 결의 같은 것이 느껴졌죠. 한반도 여성평화운동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자신감의 고양이 느껴졌습니다.
매년 6월 25일이 되면 다수의 언론들은 어김없이 새로운 ‘남성전쟁영웅’을 발굴해 냅니다. 그 자체가 너무 신기할 정도죠. -냉전의 마녀들-은 이렇듯 넘쳐나는 남성전쟁영웅의 바다에서 오랫동안 무시・억압된 여러 ‘여성평화영웅’들의 존재를 생생하게 부활시켰습니다. 이 여성평화영웅들은 결코 약소국의 불우한 여성들에 대한 동정심만 앞세우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모순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그들은 매우 헌신적이고 ‘투쟁적인 평화의 사도’들이었습니다. 전쟁의 폭력성에 대해 강력히 비판한 이 여성평화영웅들의 주장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여전히 ‘종전선언’의 중요성을 외치고 있는 한반도는 물론, 아주 기초적인 여성의 권리를 지켜내기 위해 자기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70년 전 냉전의 경계를 과감히 허물면서 여성평화연대를 시도했던 국제여맹 조사위원들과 마찬가지로, 21세기 국제정치와 남성들이 만든 폭력적 경계를 넘기 위한 새로운 여성평화영웅들의 평화적 시도는 중단 없이 계속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인터뷰·정리 : 이영서 기자 youngseo5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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