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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다시 한 번 진화한 민족주의, 그 실체를 파헤치고 극복 방안을 제시하다 본문

5면/저자와의 대화

다시 한 번 진화한 민족주의, 그 실체를 파헤치고 극복 방안을 제시하다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1. 11. 13. 22:15

임지현,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고통을 경쟁하는 지구적 기억 전쟁, 휴머니스트, 2021.

 

Q : 역사학자로서 기억의 역사라는 주제의식을 통해 꾸준하면서도 폭넓은 활동을 이어오셨습니다. 처음에 역사학을 전공하시게 된 배경은 무엇이며, 특히 기억민족주의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지시게 된 계기가 있다면 간략히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 제가 대학에 들어갔던 건 1977년도로 유신 독재가 정점에 이르렀을 때였고, 당연히 사회에 대해 이런저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속한 시대의 문제와 저 자신의 문제를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싶었고, 그러려면 막연하게 역사를 전공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죠. 당시 서강대학교에서는 길현모차하순이보형 선생이 서양사를 가르치셨는데, 그러다 보니 이 분들께서는 공통적으로 민족주의의 편협한 면에 굉장히 비판적인 관점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 분들 밑에서 많은 영향을 받다 보니, 저 역시 자연스럽게 민족주의를 삐딱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가지게 됐죠. 그리고 제가 유학을 가지 않았던 것도 중요한 배경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세대는 자기 시대의 문제와 대결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렇게 한국에 남아 공부를 하다 보니 민족주의의 문제점을 더 여실히 느꼈던 것 같습니다. 특히 80년대에 대학원을 다니면서 사회구성체 논쟁을 겪었고, 그 때 만들어진 민족주의를 어떻게 마르크스주의적인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박사논문으로까지 이어지게 됐죠.

그렇게 박사논문을 쓰다 보니 한국의 진보 진영이 마르크스-엥겔스와 민족주의를 이해하는 시각에 잘못된 지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지점들이 국사 패러다임을 통해 재생산된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먼저 해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민족주의적 역사학을 열심히 해체하는 와중에, 사실 사람들이 과거를 이해하는 수단은 역사책이라기보다는 영화라든가 TV드라마라든가 소설을 통한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걸 느꼈죠. 학문적인 의제라고 생각했던 국사 패러다임의 해체가 사실을 훨씬 더 넓은 맥락에서의 기억과 깊이 결부되어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기억 쪽으로 노선을 바꾸고, 민족화되고 영토화되고 그래서 최종적으로 국민화된 기억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Q : 이 책은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정교하게 다루고 있는 동시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기획의 일환이기도 합니다.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21세기 이전의 민족주의와 어떻게 대별되며, 어떠한 점에서 더욱 문제적인지를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한 선생님께서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수많은 예를 들고 계신데, 현시점에서 이를 보여주는 가장 적확한 예시를 하나만 들어주신다면 무엇일까요?

A : 고려대학교의 강만길 선생이 일제식민지시기의 역사를 연구하던 1970년대에는 조선의 민족해방운동가들의 기억이 식민지 시대 기억의 핵심이었죠? 그러나 지금은 일본군 위안부나 강제징용과 징병 등이 식민지 시대 기억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저는 이 변화야말로 21세기 이전의 영웅주의적 민족주의로부터 지금의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로 바뀌어 온 과정을 보여주는 적확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국제사회에 민족주의적인 정체성을 어필할 때, 한국의 민족 해방 투쟁이 얼마나 위대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더 이상 먹히지 않게 된 겁니다. 오히려 스스로 희생자였음을 밝히고, 고통의 기억을 피력하는 것이 훨씬 유의미해졌습니다. 민족 해방의 영웅들은 대개 무력의 수단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다른 민족의 입장에서는 논란과 이견의 여지가 있지만, 피해자에게는 당사자만이 가질 수 있는 도덕적 아우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로 피해자임을 자처하며 고통의 기억을 경쟁하고, 그로부터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강화하는 것이 바로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영웅주의적 민족주의보다 더 문제적일 수 있는 지점은 외부의 비판을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비판적인 자기 성찰을 수행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는 것입니다. 일단 강력한 당사자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외부의 입장에서는 비판은커녕 그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지게 됩니다. 내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테면 제가 책에 소개했던 요코 이야기의 경우, 분명 조선 사람들에게도 잘못이 있었을 수 있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성찰해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역사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마치 자기역사의 피해자성희생자성까지도 훼손해버리는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타자의 고통을 인정함으로써 나의 고통을 부정하는 게 돼버리는 거죠. 이렇듯 내외부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점점 더 편협해지고, 견고해지며, 강력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Q : 줄곧 강조해 오셨던 기억의 지구화’, ‘지구적 기억구성체’, ‘얽혀 있는 기억등이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더욱 복잡다단한 형태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렇듯 전 지구적으로 기억이 뒤섞이고 탈영토화탈민족화 되는 현상은 무엇을 의미하고, 어떻게 발생했으며, 이것이 희생자의식 그리고 민족주의와 어떠한 관련을 맺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A : 지금까지는 지구화(Globalization)’를 이야기할 때 대개 자본의 지구화나 혹은 노동력의 지구화라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20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의 지구화를 상상력의 지구화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기존의 국민 국가(Nation State)’의 시야나 관점을 벗어나서 다른 국가의 시야와 관점으로도 상상할 수 있게 되고, 또한 그들의 상상력을 전유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리고 상상력의 지구화는 기억의 지구화이기도 합니다. 예컨대 2000년도에 일본에서 새역사교과서가 나왔을 때, 동아시아 각국의 반응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왜곡의 수준만을 놓고 보자면, 1950년대나 1960년대의 일본 교과서들이 훨씬 더 심했었습니다. 이때만 해도 일본이 역사를 어떻게 상상하고 기억하는지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었던 거예요. 그런데 각종 언론 매체나 정보 매체 등이 지구화되면서, 이웃나라가 우리나라와 같이 겪었던 이 시기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느냐가 초미의 관심사가 됐습니다. 따라서 당시 일본의 새역사교과서가 갑자기 화두가 됐던 것은 일본의 민족적 기억이 더 나빠졌기 때문이 아니라, 기억에 대한 세계의 감수성이 더 예민해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기억의 지구화가 이루어지면서, 감수성도 예민해졌지만 한 편으로는 기억 경쟁의 장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각종 매체가 발달하면서, 공감이 쉬워진 것만큼이나 그 이상으로 경쟁 역시 쉬워졌습니다. 우리의 고통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민족의 희생을 기존보다 훨씬 더 강조함으로써 그것을 증명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 것입니다. 이로 인해 한 국가의 기억이 국경을 벗어나는 탈()영토화가 이루어지는 동시에, 기억의 민족주의적인 정체성은 더욱 강화되는 재()영토화도 함께 이루어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합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기억의 재영토화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더욱 견고하게 만듭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경쟁 상황은 타자의 고통을 인정하는 것을 나의 고통을 부정하는 것과 등치시키는 인식을 더욱더 강화키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기억 문화는 약자나 서발턴의 고통을 인정하고 공감하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발전해나가는 방식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피해자와 가해자를 나눠서 어느 한 쪽에 책임을 전가하려는 기억의 제로섬(zero-sum)게임으로 치닫습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게임의 끝에는 어떤 발전도 없을 것입니다.

Q : 지구적 기억공동체의 형성은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복잡하게 만드는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기억을 탈영토화 함으로써 오히려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희생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가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역사가를 포함한 제 영역의 역사 서술 주체들은 기억에 대해 어떠한 관점과 태도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할지에 대해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 기억의 지구화는 앞서 말씀드렸듯 기억 경쟁을 강화하는 부정적 측면도 있지만, 동시에 기억 문제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과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긍정적 측면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 기억의 지구화를 가능한 후자의 방향으로 이끌어나가는 것이 중요하겠죠. 이를 위해서 역사 서술 주체가 가져야 할 태도는 먼저 역지사지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가서 너희 민족의 조상들이 월남전에서 저지른 죄에 대해 사과하고 벌을 받아!”라고 말한다면 논리에 맞지 않겠죠. 그리고 진보적인 의식과 역사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사과는 할 수 있을지언정, 그렇게 되면 젊은 세대의 민족적인 일체감과 유대감은 더 강화될 겁니다. ‘같은 죄를 공유하는 것 또한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강화시키는 일부분입니다. 따라서 상대방의 기억을 비판할 때는 내가 또 다른 타자화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나의 비판이 또 그들을 결속시키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에 기여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봐야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기억을 반성할 때는 마이클 로스버그(Michael Rothberg)가 사용한 연루된 주체(Implicated Subject)’란 개념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만약 베트남 전쟁에서 자금을 대고 폭력에 관여했던 전범 기업이 있고 그 기업의 물건을 구매한다면, 우리는 폭력 범죄의 직접적인 가해자는 아니지만 연루가 되는 셈이죠. ‘우리 민족의 죄=나의 죄라는 등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나 스스로가 혹시 어떤 가해의 역사에 조금이라도 가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고민할 수 있다면, 분명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는 나아가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는 기억 작업에 있어 정체성(Identity)’정체화(Identification)’를 구분하고, 후자를 더 중요한 키워드로서 사유하는 태도 역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식민주의의 희생자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순간, 혹은 식민주의의 가해자라고 타인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순간 그것은 고정되어버립니다. 지금까지 역사 서술은 이렇듯 민족이나 인종 등 특정한 공동체집단이 어떤 뿌리를 가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식으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그보다는 식민지배가 끝난 지 70년도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왜 우리는 스스로를 희생자로 기억할 수밖에 없는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서 역사 서술 역시 이 공동체집단이 어떤 사건을 겪어 왔으며, 그로 인해 스스로를 어떤 식으로 정체화하고 싶어했는지, 그 집단적이고 공동체적인 욕망에 대한 분석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정체성의 정치를 고민하는 방식이며, 겉으로 드러난 기억의 이면에 감춰진 기억의 매커니즘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