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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없는 세상 너머의 평화를 꿈꾸다 본문
전쟁 없는 세상 너머의 평화를 꿈꾸다
이용석, 『평화는 처음이라』, 빨간소금, 2021.
Q : 평화운동단체인 ‘전쟁없는세상’에서 평화운동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처음에 병역 거부를 결심하신 계기는 무엇인지, 그 문제의식이 어떻게 평화운동으로 확장되었고, 이 책에 담기게 되었는지 간단하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 처음 병역거부를 결심했던 건 대학생 때였습니다. 사실 그 전까지는 병역거부라는 방법이 있다는 걸 인식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특별한 계기가 있다기 보다는 그걸 인식하면서 자연스럽게 결심하게 됐다는 말이 맞겠네요. 거부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선택해야 한다고 믿었고, 같은 병역거부자‧평화운동가‧활동가 동료들과 함께 ‘전쟁없는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에 병역거부 운동을 시작했을 때는 여론이 굉장히 안 좋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직접적인 평화운동의 메시지보다는 유화적이고 전략적인 구호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어요. 세상에는 60억 개의 양심이 있고 마땅히 군대를 가는 사람이나 안 가는 사람이나 그 양심은 헌법에 보장된 것처럼 존중받아야 한다는 식의, ‘인권’의 언어로 말입니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저희가 정말로 말하고 싶었던 건, 보편타당한 인권뿐만이 아니라 저희가 왜 군대를 거부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유와 명분이었어요. 운동을 하는 중에도 전쟁과 파병은 계속 이어졌고, 그러한 고민과 갈증은 점점 더 커져 갔습니다. 병역거부를 하는 게 나의 개인적 삶의 권리와 자유의 차원에서도 물론 중요한 문제지만,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전쟁을 반대하기 위해 필요한 방법론일 수 있다는 문제의식도 완전히 자리 잡았고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제 문제의식은 인권운동을 넘어 평화운동까지 확장됐고, 그런 결심이 ‘전쟁없는세상’을 만들도록 이끌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게 단체를 만들고 평화운동을 계속 해오면서 느꼈던 점은 보통 사람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평화나 평화운동의 개론서가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학술적이고 역사적으로 평화 개념에 대해 논한 책들은 당연히 많지만, 전문 연구자들 외에는 흥미를 끌기 어려운 내용이고, 평화에 대한 고민을 주로 현장에서 느껴온 저에게는 지나치게 어렵고 딱딱한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러던 차에 출판사에서 먼저 제안을 해주셨고, 감사하게도 이렇게 책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Q : ‘평화는 처음’이라는 책의 제목이 우선 눈에 띱니다. 물론 시리즈 전체의 제목이기도 합니다만, 사실 ‘평화’는 교과서나 언론 등에서 가장 많이 노출되는 익숙한 단어이고, 따라서 이 제목은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해 온 평화는 평화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모순어법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선생님께서 가장 탈피하고 싶었던 평화 개념에 대한 선입관 혹은 고정관념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A : 평화라고 하면 대개 아름다운 것을 떠올립니다.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이나, 아무 갈등이 없고 화목한 유토피아 같은 사회 같은 것들 말이죠. 단적으로 구글에 평화를 검색하면 비둘기 사진만 잔뜩 나옵니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결과로서의 평화’고, 이렇게 평화를 사유하는 것이야말로 평화에 작동하는 가장 큰 고정관념입니다. 이렇듯 평화를 결과로만 생각할 때, 오히려 그 결과에 대한 왜곡된 욕구와 집착은 끔찍한 참사를 불러일으킵니다. 미 대통령 부시(G. W. Bush)가 ‘평화’를 명분으로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던 것이나, 히틀러(A. Hitler)가 게르만 민족을 규합할 때 부르짖은 ‘평화’가 그러한 예라고 할 수 있겠죠. 또한 결과로서의 평화는 그 아름다워 보이는 겉면을 통해 평화로부터 소외된 계층을 이면에 감추기도 합니다. 평화의 사전적 정의의 어원이었던 ‘팍스 로마나(Pax Romana=로마의 평화)’는 로마 제국에 의해 탄압받았던 이(異)민족이나 노예들에게는 전혀 평화가 아니었을 테니까요. 이렇듯 결과로서의 평화는 결국 지배자들이 입으로만 떠드는 헤게모니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평화의 헤게모니를 선취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그렇다면 결국 그 평화는 공허를 넘어서 평화와 가장 반대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과정으로서의 평화’를 제안하고자 했습니다. 평화란 아름답고 갈등이 없는 결과적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아름답지 못한 상황을 드러내고 폭로하며, 건강한 방식으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정의로운 방식으로 그 갈등을 해소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평화가 무엇인지부터 치열하게 논의하고, 건강하게 갈등을 마주하기 위한 도구로서 평화의 개념을 고민할 수 있다면, 적어도 ‘평화’를 명분 삼아 자행되었던 그 끔찍한 참상을 반복하지는 않아도 될 것입니다.
Q : 이 책은 평화의 개념과 평화주의적인 관점을 소개하는 ‘평화설명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전쟁의 원인과 요소를 면밀히 분석하는 ‘전쟁설명서’이기도 합니다. 평화를 정의하기 위해 왜 전쟁에 대해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한지, 그리고 전쟁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는 무엇이며 그러한 오해가 어떻게 세계를 전쟁으로 이끄는지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 활동을 하거나 책을 쓸 때, 결과로서의 아름다운 평화만큼이나 탈피하고자 했던 것이 ‘큰 의미의 평화’였습니다. 그런 평화가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바로 그럴 때 평화의 의미가 공허해지고 악용될 수 있게 되니까요. 또한 평화운동을 기획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보다 좁고 예리하게 특정한 지점을 포착해야만 한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평화의 가장 큰 적은 전쟁이고, 마땅히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이나 구조를 정확하게 알아야만 하죠. 물론 이 문제는 굉장히 복잡하기 때문에 책에서 다 짚을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제일 중요한 지점은 전쟁은 결코 자연발생적이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전쟁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일으키는 건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목적은 당연히 ‘돈’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전쟁으로 누가 돈을 벌게 되는지가 핵심이겠죠. 그리고 이들의 결정은 어떤 방식으로 수용되거나 혹은 묵인되는지, 그 결정이 어떻게 지속되는지 등을 알면 전쟁의 구조와 원인이 어렴풋이나마 보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전쟁에 대한 오해들은 사실상 전쟁이 이렇게 ‘수용’, ‘묵인’, ‘지속’되는 구조에 기여합니다. 물론 이러한 오해들 중에는 “모두를 위해 소수가 희생되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절대악을 몰아내기 위한 불가피한 전쟁도 있다” 등 현실론적인 주장들은 여전히 반박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다만 제가 지적하고 싶었던 것은, 그러한 오해 이상으로 우리는 일상 속에서 전쟁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러한 무의식은 어떻게든 전쟁을 피해보려는 노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결국에는 전쟁을 묵인하는 씨앗이 되고 맙니다. 물론 제 논지는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제쳐두고 전쟁을 묵인하고 전쟁으로부터 눈을 돌리는 사람들을 탓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저희가 묵인하고 용인하지 않았더라면 전쟁을 막을 수도 있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죠. 책임이 있다는 건 그만큼의 힘도 있다는 뜻입니다. 전쟁에 대한 오해를 극복하고, 전쟁을 명확히 알고, 그것을 묵인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면 저희들은 충분히 전쟁을 막을 수 있습니다.
Q : 선생님께서는 이 책이 “많은 사람들을 평화운동에 초대하는 초대장”이라고 적어주고 계십니다. 그러나 목적과 상대방이 뚜렷한 일반적인 사회운동과는 달리 ‘평화운동’은 너무 모호하고 범박한 개념으로 느껴지는 것도 사실인데요. 책을 아직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평화운동의 목적과 구체적인 활동에는 무엇이 있는지, 개인으로서 어떻게 그 평화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지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A : 평화운동이 앞서 말씀드린 고정관념들로 인해 일견 범박하고 모호하게 비춰질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저와 ‘전쟁없는세상’은 평화운동에 있어 명확하고 구체적인 목적과 상대방을 가지고 있습니다. 목적은 전쟁을 막는 것이고, 그에 따라 평화운동의 대적은 상대방은 전쟁을 통해 돈을 버는 전쟁의 이해관계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개인이 일상에서 평화운동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전쟁에 기여할 수 있는 일체의 일상 행위를 가능한 한 거부하고, 전쟁의 이해관계자들에게 이익이 돌아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주지하다시피 현대의 전쟁은 총력전의 형태로 일어납니다. 총력전은 아주 광범위한 사람들의 일상에 무분별하게 파고 들어, 어떤 방식으로든 그들을 전쟁에 동원합니다. 전투만 군인이 할 뿐이죠. 이는 다시 말해 모든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전쟁에 기여하고 있으며, 누구든지 그 기여를 중지하면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컨대 민간인 폭격에 사용된 전투기의 수리를 거부한 엔지니어라든가,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전쟁을 미화하는 커리큘럼을 거부한 덴마크와 핀란드의 교사들이라든가, 무기박람회 당시 VIP 만찬장에서 음식 만들기를 거부한 요리사들은 모두 각자의 일상에서 반전운동과 평화운동을 실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내 삶에 어떻게든 연관되어 있는 전쟁의 고리들을 찾고, 그것을 끊어내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평화운동의 첫걸음이고 가장 중요한 걸음이 될 수 있겠습니다.
Q : 요한 갈통(Johan Galtung)은 ‘반전(反戰)’과 일맥상통하는 ‘소극적 평화’와 더불어, ‘적극적 평화’도 함께 생각해야함을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비롯하여 아직까지 전쟁이 끊이지 않는 이 세상은, 적극적 평화는커녕 소극적 평화조차 묘연하다고 말해주고 있는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소극적 평화와 함께 상상해야 할 적극적 평화는 무엇인지, 그 방법은 무엇이 될 수 있을지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 적극적 평화의 기본적인 정의는 ‘물리적 폭력’뿐만이 아니라 ‘구조적 폭력’도 없는 상태로,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정치 체제나 구조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젠더 등에 대한 고민도 같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실 이에 대한 저와 ‘전쟁없는세상’을 비롯해서 모든 사회운동이 취약한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회운동이라는 게 원래 부정의‧부조리‧구체제 등에 맞서 그것을 ‘NO’라고 외치는 것이고, 사실 이러한 소극적인 방법론은 지금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발전해왔고 이제는 어느 정도 잘 정립이 됐어요. 그러나 정말 어렵고도 중요한 것은 어떤 체제와 이상이 ‘YES’인지를 적극적으로 결정하는 일입니다. 미래에 대한 대안을 치열하게 고민‧상상하고 정립하지 않으면 아무리 잘못된 걸 바로 잡아도 다시 잘못된 것으로 돌아가 버리니까요. 이번에 아프간에서 일어난 탈레반의 재집권도 무력을 통한 평화가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일시적으로 소극적 평화만을 획득했을 경우에는 결국에는 또 다시 평화롭지 못한 상태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걸 너무나 잘 보여줬습니다. 물론 구체적 방법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우선 거시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를 단계적인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소극적 평화가 문제고 적극적 평화는 그 다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다양한 목소리와 각각의 평화를 표현하고 함께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현재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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