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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친일/반일의 프레임을 넘어 근대 언론의 서사를 구축하다 본문
-장신, 『조선·동아일보의 탄생: 언론에서 기업으로』, 역사비평사, 2021.
Q : 본서의 서문은 일반적인 서론과 달리 책이 완성되기까지의 노정을 후일담처럼 기록한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선생님께서 이 주제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 오신 흔적이 더욱 잘 드러나는 것 같은데요. 처음에 어떤 계기로 역사를 전공하시게 됐는지, 그 중에서도 특히 일제식민지시기 언론사(言論史)에 주목하시게 된 배경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 먼저 어렸을 때부터 역사에 관심을 가졌던 가장 큰 원인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였던 것 같습니다. 유물과 보물을 찾아 떠나는 존스 박사의 모험에 몰입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고학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당시 진학 지도를 해주는 선생님들도 이 분야로는 잘 모르시다 보니 일단 사학과를 추천받아 가게 됐었죠. 그런데 마침 제가 입학했을 즈음에 연세대에 고고학 전공이 없어졌고, 기대와는 다른 학부 수업에 많이 실망했습니다. 그러다가 3학년이 돼서야 지금은 작고하신 故 김용섭 선생님의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그때 큰 충격을 받고 근대사의 중요성을 알게 됐습니다. 특히 사회주의운동사에 큰 매력을 느끼면서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게 됐죠.
언론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석사논문을 준비하던 때였습니다. 저는 치안유지법 등 일제의 사상통제 정책에 대해 석사논문을 썼는데, 그에 대응하는 반작용으로서의 운동의 흐름 또한 함께 다뤄야 했기 때문에 많은 양의 신문 자료를 볼 수밖에 없었죠. 온갖 소설 작품부터 국제면 사설까지 가리지 않고 읽다 보니, 이러한 ‘근대 언론’이 형성됨에 있어 단순히 ‘우파-민족주의 언론/좌파-사회주의 언론’ 등처럼 겉으로만 보이는 프레임이 아닌 실제 사람들의 움직임이 궁금해졌습니다. 당시만 해도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그런 만큼 제 논문에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을 보고 더 자신감을 가지고 열중하게 된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여전히 사상통제 정책을 주로 연구하는 연구자지만, 언론사 역시 반드시 함께 다뤄야할 분야라고 생각해 앞으로도 주력하고 싶습니다.
Q : 신문 자료는 물론이거니와, 그 맥락을 구성하는 사보나 개인기록 등의 다양하고 방대한 언론 관련 사료를 함께 다루셨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모두를 종합하여 각 장을 하나의 완결된 플롯처럼 서사적으로 전달해주고 계신데요. 이러한 종류의 사료를 독해하고 그것을 재구성하는 데에 특별한 방법론이나 목적의식이 있으셨다면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A : 특별한 방법론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굳이 차이라고 한다면 저는 언론사 논문을 쓸 때 여유를 많이 가지려고 하고 실제로도 제출 기한이 넉넉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 분야의 특성상 어차피 핵심 자료가 없으면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에 무작정 새로운 자료가 나오기를 기다려야 할 때가 많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니 기존 자료를 반복적으로 읽고 전체 맥락에서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넉넉하게 주어지는 편입니다. 또한 제가 사상통제 정책을 전공했다 보니 총독부의 언론 통제 자료를 많이 봤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언론 자료도 엄연한 사료이니만큼 그것을 둘러싼 다양한 자료군(群)을 확보할 수 있으면 보는 눈이 어느 정도 달라지니까요. 특히 식민지시기 총독부와 같이 통제하는 입장의 자료를 읽어두는 것 종합적인 구상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또한 말씀해주신 것처럼 역사적 글쓰기 자체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선배 연구자 중에 성균관대 임경석 선생님이 계신데, 역사를 전공하면서도 고유한 문체를 확립한 분이세요. 이처럼 저도 저만의 문체를 확립하여 기왕이면 좀 더 흥미롭게, 보다 읽기 쉬운 형태로 역사를 전달하고 싶다는 욕심이 언제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자료를 보면서도, 이 자료는 추리하는 방식으로 엮으면 재미가 있고, 저 자료는 논지 전개에 앞서 던져 놓으면 흥미를 유발할 수 있겠구나 하는 식으로 분류하거나 분석하려고 합니다. 제 의견이나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여러 2차 사료와 섞어 ‘뒷담화’처럼 배치하기도 하고요. 이렇게 글을 쓰다 보면 저 스스로도 재미가 붙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지금까지 지치지 않고 언론사 연구를 계속하는 원동력인 듯합니다.
Q : 친일/반일이라는 철저한 이분법을 통해 일제식민지시기 언론을 해석하는 기존의 관점을 탈피하는 것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문제의식이자 지향점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민족주의적인 시각을 차치하고서라도, 기존의 연구사에서 이 관점이 지금껏 유효했었던 이유는 무엇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이 관점이 왜 극복되어야 하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A : 지금까지 친일/반일의 이분법이 유효했었던 것은 이러한 관점을 빌린 실제로 연구가 탄탄할뿐더러, 연구자 입장에서는 연구하기가 편하기 때문일 겁니다. 일제식민지시기는 어느 때보다 복합적이고 기형적인 시대였고, 언론이 시대의 직접적 산물이니만큼 이를 분석하는 데 있어 확실한 관점을 견지하기가 힘듭니다. 그런데 친일/반일의 이분법은 그 욕망과 대결 구도를 아주 쉽게 설명할 수 있죠. 그러나 저는 역사에서 개개인을 지워버리고 결론을 쉽고 빠르게 지어버리는 이런 방식의 역사가 그다지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살아온 궤적은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단순화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같은 민족주의 우파로서 함께 동아일보를 이끌었던 김성수와 송진우의 욕망이 분명히 달랐고, 실제로 두 사람이 다른 길을 걸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일장기 말소 사건’과 같이 수많은 우연들도 이러한 역사에 끊임없이 개입합니다. 이 사건은 의도적인 반일 운동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미나미 총독 입장에서는 ‘울고 싶은데 뺨 때려주는 격’의 절호의 찬스였고 위기에 놓여 있던 신문사 입장에서는 ‘성냥개비로 고루누각을 태워버린’ 뼈아픈 실책이었습니다.
친일/반일의 이분법은 이렇듯 서로 다른 욕망과 우연들을 역사로 포섭하기가 힘들고, 풍부하면서도 굴곡졌던 실제를 매끄럽고 단순하기만 한 역사로 만들 위험이 큽니다. 저는 이 프레임을 완벽히 깨려 하는 것도 아니고 깰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당대의 욕망을 해석할 여지를 많이 남겨 두는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하고 싶었고, 그것이 바로 일본제국주의-식민지조선과는 또 다른 ‘기업’으로서의 욕망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1920년대 창간 당시에는 조선일보가 동아일보를 어떻게 모방했고, 어째서 1930년대에 미나미 총독의 취임과 함께 언론에 위기가 찾아왔으며, 1937년 이후의 전쟁 특수가 두 신문사를 부활시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친일/반일보다는 훨씬 풍부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글 중간 중간에 경영진이나 일본 총독에서 기자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행적을 끼워 넣은 것도 비슷한 의도였습니다. 끊임없이 이합집산 하지만 결코 하나로 묶이지 않고 끊임없이 이탈하는 개인들의 욕망·생계·변모 등을 바라볼 때, 단순히 ‘식민지 언론’일 수만은 없었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실체가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Q : 말씀해주셨듯이 조선·동아일보가 탄생한 배경에는 당대의 거역할 수 없는 자본주의적 흐름이 놓여있었습니다. 책의 부제처럼 두 신문사가 “언론에서 기업으로” 변모해 간 것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렇다면 일제의 독점자본주의 체제가 만들어낸 조선 언론만의 식민지적 특수성은 무엇일까요?
A : 이 질문은 사실 저도 명확하게 답을 내리지 못했고, 지금까지도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배후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식민지 조선의 상업화를 다른 상업화와 같은 수준에서 볼 수 있냐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또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 주요 신문사들의 경제적인 사정도 각기 달랐어요. 다만 자본주의의 전체적인 흐름과 상업화·기업화를 통해 그것을 쫓아가려는 신문들의 움직임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대주주들이 경영진을 장악하는 주식회사 형태로 신문사를 운영하거나, 지면을 늘려서라도 광고 경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것이 그러한 움직임의 예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판매 부수가 경영과 보도지침에 굉장히 큰 역할을 미쳤고요.
식민지의 특수성도 바로 이렇게 자본주의적 흐름을 쫓아가려는 상업화의 노력에서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식민지라는 상황만 고려하면 총독부의 검열과 그들의 입맛만 신경 쓰면 되겠죠. 그러나 언론은 지식인들의 열정과 참여만 있으면 굴러가는 조직이 아니라 이미 자본에 의해 굴러가는 기업이었기 때문에 신문이 잘 팔려야만 했고, 그러자면 당연히 실질적으로 신문을 팔아주는 조선인 구독자들의 눈치도 볼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이렇게 총독부와 구독자들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려면 ‘조선’이라는 ‘브랜드’를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사안이었습니다. 구독자들을 위해서는 조선의 특수성과 민족성을 강조하고 때로는 통쾌하게 비판도 한 마디 할 수 있어야겠지만, 그렇다고 총독부를 지나치게 자극해서는 안 되겠죠. 이렇게 기업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이중으로 눈치를 보면서도, 나름의 정치적 지향을 선택하고 내비춰야만 했다는 것이 식민지적 특수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Q : 많은 비판을 받으면서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언론’이라는 최전선에서 시대의 도전에 나름대로 응전하고 고투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적해주신 바처럼 당사자인 조선일보사와 동아일보사조차 자기 역사를 제대로 마주하려 하지 않는 듯합니다. 이러한 역사에서 지금의 언론이 배워야할 것은 무엇이며 반성해야할 것은 무엇일지,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 한 가지 예를 들어 말씀드리면, 동아일보는 민족주의 언론의 거두로서의 김성수를 지나치게 신격화하고 미화해 왔습니다. 언론의 역할이라는 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비판함으로써 새로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인데, 이렇게 스스로 선별적으로 유리한 역사만 남기려고 한다면 당연히 비판의 칼날은 무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유리한 역사를 남기고 기억하더라도 그것을 통해 현재를 담금질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해야 되는데, 해방 이후 보수 언론을 자처하면서 먼저 조선일보와의 동지의식을 굳건히 한 것도 문제였습니다. 식민지시기 민족 언론 중 단연 동아일보가 으뜸이었고 오히려 조선일보가 판매 전략의 일환으로 동아일보를 모방했었는데, 이러한 역사적 이점은 사라지고 현재는 도리어 동아일보가 조선일보를 쫓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현재의 조선일보·동아일보·중앙일보 신문사의 사주가 경영진이나 편집국과 전혀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이렇듯 자본에 의한 철저한 수직구조에서는 잡음이 나오기가 힘들고, 잡음이 나오지 않으면 신문사는 쇄신되기가 힘듭니다. 1924년에 있었던 기자들에 의한 동아일보의 내부 개혁운동이 좋은 예시입니다. 시대적 변화와 사명에 힘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개혁은 편집국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었던 경영진에 의해 실패로 돌아갔죠. 지금이라도 신문사들이 기존의 이미지를 벗고 새로운 신문으로 거듭나고 싶다면 이런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스스로 균열을 낼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 인터뷰·정리 : 이영서 기자 youngseo5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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