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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나를 배반하기 위한, 스물여덟 번의 무관심 연습 본문
5면 상단 <저자와의 대화>
심아진, 『무관심 연습』, 나무옆의자, 2020
나를 배반하기 위한, 스물여덟 번의 무관심 연습
Q : 1999년부터 꾸준히 창작활동을 해오셨는데, 소설을 쓰게 된 배경이나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한국에서 전업 소설가로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으셨을 텐데, 특별히 힘들고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 소설을 쓰게 된 특별한 계기는 없었습니다. 그냥 어렸을 때부터 소설을 좋아했고 10살 때부터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으니까요. 다만 소설을 ‘꾸준히’ 써 온 배경을 물으신다면, 소설가 스턴(Laurence Sterne)의 말처럼 “나만의 목마”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저한테는 소설을 쓰는 게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었지만, 말씀하신대로 한국에서 전업 소설가로 살아가는 것은 결코 녹록치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더욱 쓰는 일을 멈출 수 없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저에게 소설을 쓰면서 힘든 일이란 쓰는 일 자체가 아니라 늘 소설을 발표할 지면이나 책을 내줄 출판사를 찾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국어국문학과도 아니었고, 남편을 따라 외국에 오래 나가있다 보니 문단과의 거리가 다른 소설가들보다 훨씬 멀었거든요. 그래서 1999년에 등단을 했는데도, 그 다음에는 어떻게 작가로서의 활동을 이어나가야할지가 정말 막막했습니다. 쓰기는 계속 써서 원고는 많이 쌓여있는데, 그걸 어디다 싣고 어떻게 독자들에게 공개해야 할지 몰랐던 거죠. 이번 책을 내는 데도 출판사를 찾는 일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겨우 한 곳을 찾아서 작업까지 끝내놨는데, 코로나 때문에 급작스럽게 출판사 사정이 어려워져서 출판을 못하게 됐거든요. 다행히 ‘나무옆의자’에서 출판을 맡아주었고, 이렇게 무사히 책이 나오게 돼서 기쁩니다.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고대 대학원 신문사에 글을 연재할 수 있게 된 것도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Q : 이번 소설집 『무관심 연습』은 ‘짧은 소설’ 혹은 ‘미니픽션’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장르/형식만이 가지는 특징이나 장단점이 있다면 어떤 것일지 간략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 책에 실린 여러 작품 중에서도 특별히 미니픽션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 있다면 함께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A : 지금은 한국에서도 미니픽션이 많이 창작되지만, 아직은 일반적인 리얼리즘 단편을 단순하게 압축한 정도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원류라고 할 수 있는 유럽의 미니픽션은 장르와 형식의 경계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을 추구해요. 시나 에세이라고 하기 힘들고 심지어 소설이라고도 보기 힘든, 그러한 모든 종류의 형식을 허용하고, 분량에 있어서도 A4 반 페이지에서 서너 페이지까지 인정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헴펠(Amy Hempel)의 짧은 소설인데요. 헴펠의 미니픽션에는 서사라고 할 만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다만 그만큼 넓은 상상의 공간을 독자들에게 제공하죠. 저는 이게 미니픽션뿐만이 아니라 소설의 아주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이 책에 실린 작품 「감자와 나」의 경우 ‘감자를 요리한다’는 단순한 내용밖에 들어있지 않지만, 이 내용만 가지고 주인공의 인생 전반을 독자들이 마음껏 상상해볼 수 있도록 장치해보려고 했습니다.
또한 저는 형식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인데, 형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사이즈’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이든 영화든 연극이든, 서사 문학의 바탕이 되는 것은 아무래도 이야기이고, 이야기라는 것은 무한대잖아요. 장편 혹은 단편이라는 사이즈가 맞는 이야기가 있다면, 미니픽션이라는 사이즈가 맞는 이야기도 있는 것이죠. 그리고 장편의 사이즈가 맞는 이야기를 미니픽션으로 압축해놨을 때에 발생하는 형식적 재미도 분명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를테면 이 책에 실린 「혁명」은 ‘혁명’이라는 거대한 서사로만 다뤄야만 할 것 같은 소재를 미니픽션이라는 아주 작은 그릇에 압축해서 담아 본 작품이에요. 이렇듯 이야기에 적합한 작품의 사이즈와 형식을 궁리하고, 미니픽션에 있어 다양한 사이즈의 소재를 실험한 것은 이번 소설집 『무관심 연습』을 통해 해볼 수 있었던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Q : 책의 제목 ‘무관심 연습’을 비롯하여 모두 다섯 글자로 이루어진 각 챕터의 제목들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작가의 말」에서 “나를 배반하는 혁명을 위해 무관심을 연습한다”는 언급을 해주셨는데, 선생님의 창작 취지와 함께 이런 제목들이 그 취지와 어떤 의미로 엮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A : 문학을 한다는 게 결국엔 어쩔 수 없이 ‘나’ 혹은 ‘우리’만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일인 것 같아요. 이해의 지평을 넓혀나갈 때, 내가 가진 기준이나 관점을 하나도 버리지 않으면 결국 자기에게 갇히고 편향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런데 문학을 하면 온갖 인간 군상을 다 보게 되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가 가지고 있는 틀을 깨고, 과거의 나를 배반하고, 나에게 무관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책의 제목을 ‘무관심 연습’으로 정했고, 이는 곧 ‘문학 하는 일’ 혹은 ‘소설 쓰는 일’과 동의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각 챕터의 제목들도 비슷한 맥락에 놓여 있어요. 먼저 1부 ‘모르는 만남’은 자아와의 만남을 표현한 것입니다. 누구나 내가 나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나야말로 가장 낯선 타인이죠. 그래서 자아와의 만남, 대면, 마주침 같은 것들에 ‘모르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보고 싶었습니다. 다음으로 2부 ‘쉬운 어긋남’은 부부와 연인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깨지려면 가장 쉽게 깨질 수 있지만, 동시에 가장 쉽게 생각하게 되는 관계가 바로 이런 1:1의 관계라고 생각했고, 「징후」와 같은 작품에 이러한 경고를 담고자 했습니다. 3부 ‘따가운 얽힘’ 같은 경우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게 누군가에게는 가장 가깝고 의지가 되는 관계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가장 불편한 관계일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도 계속해서 얽힐 수밖에 없는 사이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런 제목을 통해 ‘따듯한 가족’이라는 일반적인 명제가 내포하는 정상성을 깨고 능동형이 아니라 피동형으로서의 ‘얽힘’에 대해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4부 ‘희미한 열림’은 「낙차」와 같은, 이웃에 관한 이야기들을 엮었습니다. 이웃은 가족이나 연인과는 달리 나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그래서 언제나 희미하게 열려 있는 존재들입니다. 멀어져 닫히면 완전히 단절되지만 조금만 마음을 열면 어느새 들어와 나의 일부가 돼 있는 존재가 이웃이고, 그런 관계도 있다는 걸 제시해보고 싶었어요. 마지막으로 5부 ‘얕은 던져짐’은 인간의 존재 방식에 대해 돌아보는 것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기생충이나 도깨비와 개 등 다양한 존재를 통해서 인간을 되돌아보고, ‘나’라는 인간 존재 역시 이 세상에 던져졌을 뿐이라는 식의 타자화를 시도해보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각 작품과 챕터, 책의 제목은 ‘나’ 혹은 ‘우리’에 대한 무관심을 연습한다는 주제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데요. 사실 처음부터 이런 주제를 생각하고 소설을 쓴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책에는 십 년 넘게 써 온 작품들이 골고루 들어가 있거든요. 다만 ‘무관심 연습’은 문학을 해 온 이래로 늘 가지고 있었던 저의 문제의식이자 무의식이었고,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작품에 반영된 것은 아닐까 합니다.
Q : 미니픽션을 다루고 있다 보니 일반적인 단편집과는 달리 한 소설집에 총 28편이나 되는 작품이 실려 있습니다. 그래서 소재가 굉장히 다채로운 것이 눈길을 끕니다. 이런 소재들은 주로 어떻게 찾으시는지, 또 어떤 과정을 거쳐 창작으로 이어지는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 사실 저는 적극적으로 소재를 취재하는 일은 좀 꺼리는 편입니다. 테오필 고티에(Theophile Gautier)의 소설 『모팽 양(Mlle de Maupin)』의 서문에 보면 “진실로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쓸모가 없는 것들뿐이다.”라는 구절이 나와요. 물론 먹고 살만한 작가의 오만한 선언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문학 창작의 태도나 자세에 있어서만큼은 어느 정도 유효한 부분이 있다고 믿습니다. 현실을 잘 표현하고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취재를 통해 소재를 긁어모으는 방식은 저한테는 문학의 방식은 아니에요. 그런 건 뉴스나 다큐멘터리 등 보도의 영역이죠.
문학은 오히려 일상에 산재해 있지만 드러나지 않는 것들에 대해 끝없이 사유하고 상상함으로써 그것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따로 취재 여행을 떠나거나 취재 노트를 만들기 보다는 평소에 접하는 뉴스나 방송, 영화나 만화, 음악 등 모든 일상의 영역에서 수시로 발생하는 자유로운 상상과 쓸데없는 사유를 멈추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소재를 따로 모으기보다는 주변에 있는 것들을 소재로 만드는 것, 이게 저한테 적합한 소재 생산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렇게 취재가 아닌 방식으로 만들어진 소재들도 ‘검증’은 해야 되겠죠. 명확한 사실을 왜곡하거나 간과해서는 안 되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이 정도의 원칙만을 제외한다면, 일상에서 만나는 다양한 소재들에 스스로 매몰되는 것에는 어떠한 제한도 두지 않으려고 해요.
Q : 각 작품의 끝에는 ‘흐르는 말’이라는 이름으로 짧은 문구가 삽입돼 있습니다. 짧은 소설을 더 짧은 말로 집약하는, 그야말로 ‘촌철살인’이라는 느낌을 주는 문구들인데요. 길지 않은 분량이 주는 긴 여운을 더 연장하는 동시에 주제에 대해서도 더 깊게 생각해보게 만드는 기능을 하는 듯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떠한 의도로 이 문구를 삽입하셨는지, 그런 맥락에서 ‘흐르는 말’이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A : 솔직히 말씀드리면 ‘흐르는 말’이 만들어지게 된 이유는 첫 번째 출판사의 영향이 컸어요. 짧다 보니 대중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지적을 많이 들었고, 좀 더 쉬운 방향으로 고쳐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작품에 손을 대기는 너무 싫었죠.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저에게 문학은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내는 게 아니라 독자가 상상할 수 있는 여백을 남겨두는 것인데, 여기서 더 쉬운 말로 바꾸면 독자들로부터 그 여백을 다 뺏어버리는 꼴이 될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간단한 ‘작가의 말’을 덧붙이는 것으로 타협을 봤습니다. 근데 또 그렇게 작가의 말을 써놓고 보니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의 “저자의 죽음”이라는 말이 떠오르면서 ‘작가’라는 단어가 너무 무겁고 부담스럽게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고민 끝에, 들어도 좋지만 흘려도 좋다는 생각으로 ‘흐르는 말’이라는 이름을 정했습니다. 그렇게 작업을 마쳐놓고 보니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독특한 자극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중간에 출판사는 바뀌었지만 그대로 진행하게 됐습니다. 독자분들께서도 이 흐르는 글을 미니픽션을 한 번 더 압축하는 또 하나의 미니픽션처럼, 생각할 수 있는 다른 여백으로 받아들여주셨으면 좋겠어요.
■ 이영서 기자 youngseo5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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