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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비혁명의 시대에 도래하지 않은 혁명을 (되)돌아보다 본문
김정한, 『비혁명의 시대: 1991년 5월 이후 사회운동과 정치철학』, 빨간소금, 2020
비혁명의 시대에 도래하지 않은 유산을 되돌아보다
Q : 학부에서는 철학을 전공하셨지만 이후로는 한국 현대사와 운동사에 초점을 맞춰 연구를 이어오고 계십니다. 특별히 정치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이 있으신지요. ‘사회운동과 정치철학의 마주침’이라고 책에서 소개된, 역사와 철학을 아우르는 연구 주제를 선택하시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A : 저는 1989년 철학과에 입학했는데 그 시기는 학생회가 한창 활성화되던 시기였습니다. 총학생회‧단대학생회‧과학생회의 체계가 만들어지고, 철학과에서도 선배들이 과학생회 내에 여러 공개 세미나를 열어서 모든 학생들이 어느 한 곳에는 참여할 수 있도록 하려고 상당히 의욕적으로 활동했어요. 저는 유물론 세미나와 한국 민중사 세미나에 참여했는데, 이 정도는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고 다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세미나에서 얼마간 풍월을 익힌 것이 나중에 공부하면서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대학원에서는 주로 마르크스주의 정치사상을 공부했지만, 석사논문 주제를 고민하다가 개인적으로 큰 충격적 경험이었던 ‘1991년 5월 투쟁(이하 5월 투쟁)’을 다뤄보고 싶었습니다. 1980년대 계급이나 민중을 중심에 두는 사회과학적 인식의 한계를 대중이라는 개념으로 풀어보고 싶었어요. 마침 대중, 다중, 군중 등에 관한 현대 정치철학의 논의가 활발했고 흥미로웠습니다. 그 연구 방향에서 박사논문을 ‘5‧18 광주항쟁(이하 광주항쟁)’에 관해 쓰게 되었고, 1980 대중 봉기의 민주주의라는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이런 작업을 계속하다 보니 현대 정치철학의 새로운 관점과 개념으로 한국 사회운동을 연구해서 기존의 분석과 인식을 넘어서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사회운동에 관한 자료들을 살펴보다 보면 정치철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도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그래서 ‘사회운동과 정치철학의 마주침’이라는 화두에는 양쪽이 긍정적인 효과를 주고받으면서 서로 변화해야 한다는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지금도 사실 철학 책을 볼 때 마음이 편하고 재미있는데, 비극적인 역사의 자료들을 계속 살펴봐야 하는 괴로움이 있습니다.
Q : 석사논문과 1998년에 출간된 저서 『대중과 폭력: 1991년 5월의 기억』에서부터 이 책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5월 투쟁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해 오셨습니다. 책을 아직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5월 투쟁이 구체적으로 어떤 투쟁이었으며, 어떻게 ‘1987년 6월 항쟁의 희극’을 ‘비극’으로 잇고 있는지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나아가 2008년과 2016년의 ‘촛불’을 모두 겪은 지금에도 여전히 5월 투쟁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A : 역사적으로 보면, 광주항쟁에서 시작된 1980년대 민중운동이 1991년 5월 투쟁 이후 쇠퇴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1980년대는 1980년부터 1991년까지 12년이라고 시기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 정점에 ‘1987년 6월 항쟁(이하 6월 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이 있는데, 그 이후부터 1991년까지 대략 4년 동안 아래로부터의 민주화와 위로부터의 탈민주화가 길항합니다. 5월 투쟁을 당시 ‘제2의 6월 항쟁’이라고 했던 것은 민주화의 역전을 막아내야 한다는 절박한 시대 인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절박함이 연속적인 분신으로 표출되었고요. 그런데 분신을 종용하는 배후세력이 있다는 음모론이 나오고 이를 근거로 검찰이 유서대필 사건을 조작하면서 결국 5월 투쟁은 패배하게 됩니다. 물론 그 패배에는 1980년대 운동문화에 내재해 있던 군사적, 위계적, 엘리트적, 남성중심적 한계들에 대한 대중들의 반감도 작용했습니다. 5월 투쟁의 패배는 극히 제한적인 정치적 민주화로 귀결하는데, 이 패배의 시점에서 보면 6월 항쟁이 민주화의 승리라는 관점은 지나치게 신화화되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6월 항쟁의 승리가 5월 투쟁의 패배로 이어진 것인데, 6월 항쟁은 그 주역이라는 이른바 386세대가 제도정치에서 입신양명할수록 그들과 함께 더욱 신화화되고 5월 투쟁은 사실상 잊혔지요.
정치철학적으로 보면, 5월 투쟁은 한편으로 대중들의 집단적인 정치적 행위가 어떻게 출현하고 소멸하는지에 관해, 다른 한편으로 대중들의 폭력이 지배자들만이 아니라 대중들 자신에게도 공포를 불러일으킬 때 어떻게 정치적 힘을 보존하고 확대할 수 있는지에 관해 고민하게 했습니다. 이는 수많은 대중들이 거리의 정치를 전개할 때 항상 논쟁점이 되지요. 2000년대 이후에는 대중들의 운동 방식이 촛불이라는 형태로 변화하는데, 여기서도 어떻게 촛불이 켜지거나 꺼지는가, 또는 대항폭력이나 비폭력, 반(反)폭력 가운데 어떤 실천이 적합한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대중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때 마찬가지겠지요. 물론 대중들의 운동이나 봉기가 새로운 질문을 던질 때 미리 적어놓을 정답은 없겠지만, 실패를 복기하면서 더 나은 방향을 사유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Q : 이 책은 포스트 담론의 정치철학을 통해 한국의 민주화 운동사와 민주주의를 재독하고 있습니다. 특히 ‘프롤로그’의 제목인 “도래하지 않은 혁명의 유산들”이 그러한 의도를 잘 보여준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선생님께서는 포스트마르크스주의를 통해 한국의 사회운동을 어떻게 설명하고자 하신 것인지, 이 제목을 통해 그 의도를 간략히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 ‘도래하지 않은’이라는 표현은 데리다의 ‘도래할 민주주의’에서 차용했어요. 민주주의가 ‘도래할 것’이라는 말은 사실은 민주주의가 도래하지 않았다는 뜻이겠지요. 정의에 대한 요구는 바로 지금 현재의 긴급한 문제이고 그에 대해 응답할 윤리적 책임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민주주의가 이미 실현되었다는 주장도, 미래에 언젠가 완전한 민주주의가 실현될 것이라는 약속도 비판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아니라 혁명이라고 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해봤어요. ‘도래하지 않은 혁명’, 즉 5월 투쟁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통해서 ‘도래할 혁명’을 사유해보고 싶었고, 그 ‘유산’이 현재의 어떤 과제로 남아 있는지를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5월 투쟁이나 광주항쟁과 같은 대중 봉기를 ‘이데올로기 비판’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해보려 했습니다. 대중들의 운동이나 봉기는 더 이상 고전마르크스주의의 정치경제학만이 아니라 포스트마르크스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차원의 고민이 합쳐졌을 때 더 적합하게 이해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죠. 알튀세르가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이데올로기 개념을 혁신했고, 지젝과 같은 슬로베니아 학파의 이론적 정신분석학에서 욕망이나 환상 등의 개념으로 이데올로기론을 발전시켰는데, 이런 이론적 자원들을 통해 사회운동을 설명해보려 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이데올로기라는 용어 자체가 수없이 오염된 언어이기 때문에 저의 설명이 어느 정도 유효한 측면이 있으면서도 다소 복잡해지는 한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더 간결하게 소통할 수 있는 개념이 없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Q : 5월 투쟁 이후 도래한 ‘비(非)혁명의 시대’, 즉 대중 운동의 우발성과 폭발력을 제대로 담아낼 수 없는 이 시대의 기저에는 “마르크스주의의 위기”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듯합니다.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의 세계사적인 의미와 한국사적인 의미를 각각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또한 이를 극복하는 것이 한국의 기존 대중 운동을 변화시키는 데 있어 왜 중요한지 궁금합니다.
A : 비혁명의 시대는 혁명적이지 않은 시대이면서 혁명을 하지 못한 시대이기도 한데, 또한 혁명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기도 한 것 같아요. 마르크스주의는 혁명이 무엇인지, 어떻게 자본주의를 변혁하고 해방을 성취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좌표를 제공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는 그와 같은 좌표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표현하는 용어입니다. 1989~91년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세계사적인 마르크스주의의 위기가 폭발했다면, 5월 투쟁의 실패는 광주항쟁 이후 한국사회에 재도입된 마르크스주의가 위기에 처하는 대내적 계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마르크스주의적 조직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정당과 노동조합은 대중들의 운동을 이끌지도 뒷받침하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유럽의 ‘68혁명’에서 이미 드러났던 것처럼 말이죠.
최근의 ‘촛불’이 보여주듯이, 대중들은 정당이나 노동조합의 외부에서 운동에 참여하고 있고, 제도정치와 거리의 정치 사이의 간격은 더욱 넓어져 있습니다. 대중들의 운동을 대표하고 대중들의 정치적 역량을 확장할 수 있는 새로운 조직 형태는 발견되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눈앞에 들이닥친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라고 이해하는데, 그중 가장 부정적인 효과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의 상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참혹한 사건들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계속 촛불을 들고 그로 인해 정치적 대표자들이 바뀌고 있지만 우리는 또 다시 실망하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혁명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해방의 정치와 변혁의 정치는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독자분들께 다시금 제기하고 함께 사유해보고 싶습니다.
Q : ‘에필로그’에서는 19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까지의 운동 주체들이 “애도에 실패한 멜랑콜리 주체”로 명명되고, 이제는 그들의 “열사 문화”를 넘어 “진정한 애도의 정치”를 수행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되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진정한 애도’는 정신분석학에서 설명하는 ‘애도’를 어떻게 보완‧극복하고 있는지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 사실 애초에는 애도보다 멜랑콜리가 더 ‘혁명적’이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멜랑콜리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을 것 같아요. 그런데 1980년대 열사들의 유서를 조금씩 읽다 보니 두 가지 상태가 혼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진리와 정의의 길을 가야 한다는 의지가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자책과 미움이 있었습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애도와 구별되는 멜랑콜리의 핵심적인 특징이 자애심의 추락, 자기 비난과 자책을 동반하는 자존감의 저하에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멜랑콜리 주체에서 벗어나 애도의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애도의 정치는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함께 슬퍼하고 함께 울어주는 ‘애도의 연대’가 있어야 합니다. 이는 죽은 타자뿐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타자를 함께 존중하면서 서로 정의로운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연대가 함께할 때만이 멜랑콜리 주체를 재생산하는, 끊임없이 애도에 실패하는 기존의 열사 중심의 운동문화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랑시에르가 얘기했던 ‘감성혁명’도 이러한 연대 속에서 가능할 것이라고, 저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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