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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전기가오리의 새로운 시도, ‘철학을 둘러싼 격차’를 허물다 본문
-신우승, 전기가오리 기획‧운영자
Q : 전기가오리는 ‘문제 해결 집단’, ‘공부 공동체’ 등의 명칭을 자처하면서 번역‧출판‧공부모임‧장학사업과 같은 여러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습니다. 전기가오리 운영을 시작하시게 된 개인적인 배경과 이러한 기획의 필요성을 느끼시게 된 계기를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전기가오리는 혼자서는 도저히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하는 제 인간적 한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욕심이 많아 이것저것 들춰보기는 하지만 단 한 권도 마무리하지 못하는 일이 부지기수였죠. 책을 함께 읽을 사람을 찾았고, 그 분과 함께 칸트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 시발점이었습니다. 그때는 ‘전기가오리’라는 이름을 달고 공부 모임을 운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공부 모임이 몇 개로 늘어나고, 모임에 참여하시는 분들과 작업한 번역 원고가 쌓여 별수 없이 자가 출판을 하느라 ‘전기가오리’라는 이름을 달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개인적 한계가 시간상 앞서는 동기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동기의 핵심은 아닙니다. 두 곳의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면서, 또 대학원 밖에서 이런저런 세미나와 강독 모임에 참여하면서 느낀 환멸이 아주 컸습니다. 다음 세대의 연구자를 양성해야 하는 교수가 자신은 논문 지도에 관심이 없음을 당당하게 표명하고, 학생에게 인격적인 모욕을 아무 거리낌 없이 행하는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제도권에 있지 않은 학자들도 학생의 번역 원고를 갈취하는 등 별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 부조리가 존재하지 않는, 편안하게 공부만 할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번역의 측면에서도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컨대 철학 번역 원고의 거의 대부분이 ‘of’를 ‘-의’로 기계적으로 옮깁니다. ‘미의 분석학’ 같은 식이지요. 하지만 ‘미의 분석학’보다는 ‘미에 대한 분석학’이 이해하기 좋습니다. 이 외에도 ‘즉자 존재’나 ‘건전성’ 등 수십 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비판 없이 관습적으로 활용된 번역 원칙에 새로운 제안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이 제안을 자유롭게 하려면 출판사의 편집자이자 발행인이 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Q : 전기가오리의 출판물은 쉽게 접하기 힘든 서양철학의 최신 이론들을 소개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서양철 학의 논문들』 시리즈 같은 경우는 페미니즘‧예술론‧인식론‧의학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많은 이론들을 다루고 있는데요. 주제나 논문을 선정할 때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특별한 기준이 있는지, 가끔씩 다루고 싶은 주제가 달라 갈등이 생기지는 않는지, 전기가오리 운영진 내부의 회의 풍경이 궁금합니다.
A : 다양한 전공 영역의 여섯 분이 번역 내지 편집의 측면에서 늘 저를 도와주십니다만, 전기가오리에는 별도의 운영진이 없습니다. 운영자는 저 한 사람이고, 모든 결정은 제가 내립니다. 따라서 운영진 내부에서 갈등이 일어날 만한 지점은 없습니다. 출판할 주제와 텍스트, 출판 순서, 디자이너 선정 등은 모두 제가 결정하며 그 결정에 대해서는 제가 전적으로 책임을 집니다.
그러나 별다른 과정이 없다고 해서 기준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만 말씀을 드리자면 추상적인 주제보다는 구체적인 주제를 선호합니다. 이를테면 ‘주관과 객관의 동일성’보다는 ‘인종 형이상학’이나 ‘발화 행위’ 같은 것이 저는 더 재미있고, 이러한 현대적인 주제가 동시대의 철학의 주제에 보다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주제를 철학이라는 추상적인 방식으로 다루는 텍스트를 내놓아, 당대의 문제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을 후원자 분들께 만들어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운영진 사이의 갈등은 없지만 제 마음속에서는 항상 갈등이 일어납니다. 출판할 텍스트를 선정할 때, 제가 내고 싶은 것과 후원자 분들께서 받고 싶은 것이 늘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이죠. 일례로 저는 당분간 언어 철학에 주력하고 싶지만 후원자 분들께서는 페미니즘 철학도 궁금해 하실 것입니다. 텍스트의 난이도 측면에서도 언제나 갈등의 여지가 있습니다. 비전공자도 읽을 수 있는 텍스트와 전공자도 간신히 읽을 텍스트를 적절한 선에서 섞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출판과 교육 사이의 거리도 그 자체로 갈등 요인입니다. 전기가오리에서 출판하는 텍스트는 영미 분석 철학에 치우쳐 있습니다. 하지만 후원자 분들의 상당수가 들뢰즈나 푸코 같은 프랑스 현대 철학에 대한 서비스를 요구합니다. 출판은 영미 철학으로 좁히되 교육 서비스는 프랑스 철학을 포함하는 정도로 넓게 잡으려고 하는데 이것이 제 능력 안의 일인지 늘 고민이 됩니다.
Q: 다양한 ‘물질적 혜택’ 중에서도 가장 먼저 손이 가는 혜택은 역시 어려운 철학적 논제들을 일상적 예시와 함께 풀어
설명해주는 ‘설명 원고 읽고 가세요’인데요. 복잡한 문제들을 비전공자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전기가오리의 기본 방향과도 부합하고 특히 공을 들인다는 느낌입니다. 설명 원고를 집필하실 때 특히 고려하시는 지점이나 선생님만의 글쓰기 방법이 있나요?
A : 무언가를 설명할 때는 압축이 아니라 수렴과 발췌가 설명의 기반이어야 합니다. 특정 텍스트에서 중요한 지점을 하나하나 다 설명하면, 듣는 사람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게 되죠. 따라서 설명 원고를 쓸 때든, 텍스트를 구두로 설명할 때든, 제대로 전달되었으면 하는 지점을 딱 하나만 잡고 그 외의 모든 요소가 그 지점으로 수렴되도록 합니다. 수렴되지 않는 정보는 아무리 아깝더라도 과감하게 버립니다.
저는 제 설명에서 철학자의 이름, 개념, 이론이 전면에 등장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철학자가 다루거나 제기한 문제, 이론이 등장하게 된 배경, 개념이 행하는 기능을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예컨대 “칸트는 A를 주장했고, 헤겔은 B를 주장했다”가 아니라 “C라는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어떠한 맥락에서 등장했고, C에는 어떠한 의의가 있다. 그 문제를 대하는 방식에는 A도 있고 그 반대인 B도 있을 법하다. 여러분이 익히 아시는 칸트와 헤겔이 각기 그 입장에 해당한다”라는 형태의 설명이 되도록 재구성합니다.
철학자의 주장이나 텍스트의 논제가 아니라 거기 담겨 있는 문제를 이해하게 하는 것이 모든 설명의 핵심입니다. 연구자의 주장을 이해하려면 그가 다루는 문제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설명 방식을 준비하는 것은 설명을 행하는 사람에게도 큰 도움이 됩니다.
Q : 매달 높은 퀄리티의 물질적 혜택을 준비하고, 공부모임을 주최하는 데는 상당한 운영상의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올해는 코로나 문제까지 겹쳐 모두에게 쉽지 않은 시기였는데요. 전기가오리를 운영함에 있어 애로사항이나 고민거리가 있다면 공유해주시면 좋겠습니다.
A : 질문에서 언급해주신 운영상의 어려움은 경제적인 측면에 대한 것 같습니다만, 놀랍게도 전기가오리는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어려움은 용케 피해가고 있습니다. 2020년에도 꾸준히 성장하여 그 성장을 바탕으로 다양한 사업을 기획 및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적 측면 외에도 운영상의 어려움이 발생할 여지는 여럿입니다. 우선 매달 4–5개의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전기가오리의 물질적 혜택은 보통 5종 세트인데, 그 세트를 매달 만들어내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닙니다. 특히 일을 적절히 분배하고, 디자이너를 새로 찾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품을 구상하는 일에서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후원자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에도 이중적 측면이 있습니다. 일이 빠르게 처리되고 서로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등의 장점도 있지만, 부정적인 피드백도 즉각 오는 것은 큰 단점입니다. 저는 그렇게 멘탈이 강한 사람이 못 되거든요.
예정되었던 프로그램을 집행하지 못하는 것도 고민입니다. 전기가오리에서 가장 중요한 사업 중 하나는 〈설명 배달 왔습니다〉입니다. 제가 전국을 다니면서 후원자 분들께 철학의 문제를 설명하는 프로그램인데, 이것을 2020년에는 단 한 차례도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서비스를 계획만 하고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것도 유감입니다. 이러한 활동들이 전기가오리를 단순한 출판사가 아니라 문제 해결 집단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에 더욱 아쉬움이 큽니다.
Q : 2020년 현재 시점에서 ‘철학 격차’를 해소한다는 전기가오리의 목적은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최근 지역이나 직업에 따른 교육격차‧학력격차 문제가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기는 하지만, 돈벌이가 되지 못하는 철학은 여전히 모두가 누려야 하는 복지의 영역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리고 어떻게 철학 격차가 해소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 전기가오리가 나아갈 방향성은 무엇인지 마지막으로 후원자들과 본지의 독자들에게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 ‘철학 격차’라는 표현보다는 ‘철학을 둘러싼 격차’라는 표현을 쓰고 싶습니다. 전기가오리의 활동은 단순히 철학 지식을 널리 퍼뜨리는 데 있지 않습니다. 누구나 철학 공부를 하고 싶도록 유도하고, 그때 철학 공부에 쉽게 다가가지 못하게 하는 지점들을 선명하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돈이 없어서, 서울에 살지 않아서, 고졸이라서, 장애인이라서, 성 소수자라서… 다양한 이유에서 우리의 철학 공부는 불평등에 갇혀 있습니다. 그래서 지식의 평등 자체를 추구하기 보다는, 그 평등을 추구하는 가운데 방해가 되는 것을 선명하게 만들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현대 한국어로 텍스트를 번역하고, 출판된 텍스트에 대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며, 그 가운데 선생과 학생은 교육에서 맡은 역할이 다를 뿐 인격이 차등적이지 않음을 강조하고, 철학의 추상성을 모호함으로 착각하지 않도록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출판물의 수준을 계속 끌어올려 디자인의 측면에서도 과감한 시도를 아끼지 않으려고 합니다.
■ 인터뷰 정리: 이영서 기자 youngseo5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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