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원본 없는 기획, 방대한 판타지를 새롭게 역사화하다 본문

5면/저자와의 대화

원본 없는 기획, 방대한 판타지를 새롭게 역사화하다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0. 10. 13. 12:08

오혜진 기획, 「원본 없는 판타지: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화사」, 후마니타스, 2020.

 

 

 

 

 

Q : 한국 문학사와 문화사에 관심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요? 최근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민음사, 2018)원본 없는 판타지」(후마니타스, 2020) 기획을 비롯해 페미니스트 시각의 문화연구를 주도하고 계신데, 그 배경이 궁금합니다.

 

A : 어릴 때부터 소설을 비롯한 책읽기를 좋아했습니다. 다만 탁월한 개인의 재능이라고만 여겨져 온 창작력 혹은 상상력이 역사적으로 구성된 것임을 이해했을 때 책읽기가 더욱 흥미로워졌어요. ‘시대의 명작을 단지 천재 작가의 예외적 산물이라고 설명하기보다는, 그런 상상력의 탄생 및 그에 대한 대중적 호응을 가능케 한 당대 담론과 시대적 분위기에 주목하면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죠. 그래서 저는 문학을 한국사회에 형성된 공통감각을 자원 삼아 형성된 대사회적 발언양식으로서 이해하고자 했고, 그러다보니 문학작품 자체뿐 아니라 그에 대한 담론을 역사화하는 분야인 문학사·문화사에 관심 갖게 됐습니다. 이는 제가 속한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의 학풍으로부터 영향 받은 것이기도 합니다. 문학을 문화의 일종으로 이해하는 관점이 그곳에서는 친숙했고요. 이런 접근이 기존 문학 연구 및 해석에 도전개입할 수 있게 만드는 역동적인 연구방법론이라는 점에 매료됐습니다.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과 「원본 없는 판타지」 기획에도 시대적 요구와 제도적 조건이 크게 작용했어요. 최근 대학이 장벽을 낮춰 시민사회와 함께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널리 공유됐고, 그런 취지에서 고안된 시민강좌 기획을 제가 맡게 됐습니다. 두 책의 바탕이 된 강좌들을 기획한 2018~2019년에는 문단 내 성폭력미투운동으로 한국 문화예술장이 떠들썩했어요. 페미니즘을 바탕으로 한국 문학 및 문화예술을 새롭게 이해해보려는 대중적 열망이 컸죠.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전공·세대·관심사가 각기 다른 연구자들의 강의와 글을 모았고, 이것들을 페미니즘 문학·문화 연구의 광범위한 지적 스펙트럼을 보여줄 수 있는 방식으로 재배치했습니다. 역으로, 이 작업을 통해 페미니즘 문화예술 연구·비평이란 무엇인지 질문해볼 수도 있었고요.

 

 

 

Q : 원본 없는 판타지」는 안정적통합적규범적인 언어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기존 문화사에서 이탈하고 초과하는 장면들을 드러내 재해석한다는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책 제목이 그 목적을 잘 압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원본(original)’환상(fantasy)’이라는 개념어를 중심으로 책 제목의 의미와 이 책의 기획에 대해 설명해주십시오.

 

A : 절묘한 제목이라는 칭찬도 많이 받았지만, 꽤 모호한 표현이기에 종종 오해를 사기도 합니다. 혹자는 이 책을 원본이 되지 못한 것들의 이야기혹은 새롭게 원본이 되고자 하는 것들의 이야기로 이해하는데요. 오히려 이 책은 뭔가를 원본으로 전제한 채 그것과의 위계관계를 만드는 방식으로만 다양한 역사적 장면들과 문화예술을 설명하는 방식, 그런 본질주의적 인식론에 도전하는 책입니다.

 

이를테면, 이 책에서 제가 다룬 하이틴로맨스(할리퀸)’ 장르는 1980년대에 10대 여성들에게 널리 읽혔지만, 오랫동안 순문학과 대비돼 사이비문학혹은 ()문학이라는 낙인을 감당해왔어요. 이 장르는 기존 성별 권력관계를 재현하는 이성애로맨스라는 이유로 체제순응적·현실도피적이라는 비난을 받았고, 페미니스트 연구자들에게도 외면당했습니다. 그런데 드넓은 서사시장에 존재하는 다양한 텍스트들을 오직 순문학계에서 통용되는 문학성을 바탕으로 설명하는 방식은 지루합니다. 이성애로맨스 서사는 가부장제가 규정한 성역할과 성별 권력관계를 반복재생산할 뿐이며, 이것이 곧 하이틴로맨스를 즐겨 읽는 독자들의 욕망이라고 단정하는 해석 또한 의심스럽고요. 이런 해석은 순문학과의 위계화된 관계를 안중에 두지 않은 채, 하이틴로맨스를 열정적으로 읽고 쓴 작가와 독자들 고유의 문화적 실천과 그 동력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하지 못합니다.

 

당시 한국에서 발간된 하이틴로맨스는 캐나다나 일본 등지에서 발간된 책들을 축약·번역한 것이지만, 원저자의 이름과 약력은 날조되기 일쑤였고 서사의 줄거리조차 마음대로 변형했습니다. 원작의 권위와 아우라는 애초에 한국 하이틴로맨스 독자들의 관심사가 아니었어요. 한국에서 발간된 하이틴로맨스 시리즈는 1980년대 출판시장의 검열과 청소년 교육 및 독서에 대한 당대 담론을 반영하며 로컬화했습니다. 게다가 그건 현실의 성역할을 답습하는 이성애로맨스이기 전에, 우선 성애에 대한 10대 여성들의 억압된 욕망을 적극적으로 소환하는 드문 장르였습니다. 여성도 성애적인 것을 향유하는 주체라는 점은 당대의 규범적인 성담론이 결코 말하지 않는 사실이었죠. 당대 한국 10대 여성들은 하이틴로맨스의 천편일률적인 이성애서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자신의 억압된 욕망을 새롭게 발견·발명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장르에 몰두한 겁니다. ‘하이틴로맨스라는 판타지의 형식과 이를 향유하는 이들의 판타지를 설명하기에는 아류문학이라거나 부르주아적 성별 권력관계 답습이라는 단조로운 해석은 역부족이죠.

 

이처럼 원본 없는 판타지」는 원본을 상정해 그것의 권위를 강화하는 방식의 해석에 저항하고 도전합니다. 페미니즘의 비전은 단지 가부장제의 허점 및 병폐를 보완하거나 남성 중심 체제에 반대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기존 가부장적 세계와 분리된 무풍지대혹은 새로운 원본이 되기를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시도는 페미니즘을 비역사적이고 돌출적인 것으로 묘사할 공산이 큽니다. 원본 없는 판타지」는 당대 담론과의 대화 속에서 형성된 해방의 기획으로서 페미니즘의 언어와 문화실천을 탐구합니다.

 

 

 

Q : ‘원본 없는 판타지의 기획은 페미니즘이 또 다른 억압단순화의 언어로서 작동하는 상황을 경계하는데, 그 경계 역시 페미니즘 관점을 바탕으로 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매체와 장르, 방대한 자료를 어떤 원본도 상정하지 않은 채자유롭게 해석하려는 시도는 왜 페미니즘과 결부될 수밖에 없을까요? 그것을 가능케 하는 페미니즘의 본질적 속성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A : 현재 서로 다른 수많은 입장들이 페미니즘이라는 기호를 공유하며 경합하고 있죠. 그런데 이 과정에서 페미니즘은 그저 각자의 정당성을 추인받기 위한 방패 혹은 혼란한 현실을 질서화하기 위한 매뉴얼로 간주된다는 인상을 받아요. 하지만 페미니즘 문화비평은 여성혐오적인 작품은 삭제돼야 한다라는 식의 단죄와 처벌을 말하기 전에, 무엇이 여성혐오인지를 첨예하게 물어야 하고, ‘여성혐오가 더 이상 새로운 미학적·정치적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것을 설득해야 합니다. ‘작품을 눈앞에서 삭제하는 건 효과적인 설득방식이 아닐 경우가 많죠.

 

페미니즘은 단지 정의(定義)를 선취해 그에 따라 현실을 규율화질서화하는 정치학은 아닙니다. 그건 오히려 페미니즘 비평의 장을 폐색시킬 가능성이 큽니다. 페미니즘은 누가 약자·소수자인지를 선별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소수자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소수자의 언어와 존재론을 어떻게 정치화할 수 있을지를 탐구합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비단 페미니즘뿐 아니라 노동·장애·인종·지역적 소수자성을 사유하는 다양한 분야에서 공유되고 있습니다. 이런 정치적 기획들의 공통된 문제의식은 정상()’에 대한 감각을 바탕으로 형성된 본질주의를 심문하고 그것에 저항하는 것입니다.

 

또한, 가부장제를 비롯한 지배질서가 분할통치 전략의 일종으로서 소수자의 범주와 자격을 끊임없이 재단하고 규율하려 할 때, 페미니즘을 비롯한 소수자의 정치학은 일관되게 연대환대의 전략을 구사해왔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오히려 혐오와 적대를 정당화하려는 주장조차 페미니즘을 내세우며 등장하고 있죠. 그런 주장은 결국 남성과 여성, 시스젠더와 트랜스젠더, 호모와 헤테로, 시민과 난민의 경계를 공고히 하는 등 기존 지배질서를 강화함으로써 이 세계의 다채로운 존재들을 손쉽게 관리 가능한 것으로 만들려는 통치전략과 공모합니다. 과연 무엇이 이 세계의 억압적 질서를 바꾸는 데에 가장 효과적이고 발본적인(radical) 전략일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 서문에 따르면, 이 책은 기어코 역사화를 거부하는 것들을 역사화하려는 모순적인 의지와 실천의 산물이라고 서술돼 있습니다. 이때의 역사화는 남성 엘리트 중심의 기존 역사에 포함되기를 바라거나, 그런 역사관을 답습하려는 것은 아닐 텐데요. 그렇다면 페미니즘 문학문화 연구에서 역사화란 어떤 의미인지요.

 

A : 현재 역사화라는 말은 다양한 맥락에서 쓰이고 있죠. 특히 소수자 정치학에서 역사화는 가시화와 비슷한 의미로 쓰이는 듯합니다. 남성 중심의 역사서술 방식에 의해 오랫동안 배제·누락돼온 여성과 소수자들의 역사를 제대로 드러내고, 그 정당한 역사적·정치적 지분을 확보하자는 기획이죠. 이런 시도는 물론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다만 그것이 소수자의 존재를 역사화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존재하며 역사에 개입하는 것이 소수자들의 존재론적 특이성이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조선시대에 여성은 글 한 줄 배우려 해도 자신의 성적·계급적 신분을 숨기고 남장을 해야 했죠. 그런 상황에서 글을 배운 최초의 여성’, ‘최초의 여성작가같은 방식으로 특정 여성에게 역사적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요? 좋은 의도라고 해도 그건 여성들의 역사적 존재방식과는 불화합니다. 더구나 최초주의를 중심으로 서술되는 선형적인 역사 서술방식은 이미 중심과 주변을 위계화하는 가부장제적인 아이디어와 상통합니다.

 

다른 예를 들어보죠. 1937년 「매일신보」에는 한 여성이 본명을 숨긴 채 기미꼬라는 이름의 여급으로 활약하며 사회주의 조직에 자금을 대고 동지들을 규합한 사실이 보도됩니다. 그가 홍순옥이라는 본명을 가진 19세 여성이라는 점도 밝혀지죠. 그렇다면 우리는 여성-혁명가도-있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한 사례가 추가된 것에 기뻐해야 할까요? 하지만 이 여성의 신분과 활약상이 밝혀진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의 기획이 실패하고 그가 검거됐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가 하고자 한 일이 성공했다면, 그는 끝내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겠죠. 요컨대, 이 여성은 역사에 기입되지 않는 방식으로 역사에 개입하려 한 겁니다. 역사에 기입될 수 없었거나 역사에 기입되기를 거부한 존재들. 그 존재론적 특이성(singularity)을 보존할 수 있는 역사화 방식을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인터뷰 및 정리 : 이영서 기자 youngseo92@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