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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그대의 죄는 심판되었다 본문
그대의 죄는 심판되었다
최서윤 기자
한국 현대사를 전공한다고 이야기하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이 누구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사람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이유를 대며 박정희, 김대중을 꼽은 뒤 자신의 편을 들어주리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대답은 한결같이 “없다”였다. 항상 그래왔고, 큰 이변이 생기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대통령은 정치인이다. 민주주의 국가를 대표하는 권한을 몇 년간 위임받은 사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선거 때마다, 또는 공식 석상에서 이제는 거의 기계적으로 느껴지는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의 수식어를, 우리가 그들에게 진심으로 돌려줄 필요는 없다. 물론 민주주의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탓에, 근대화와 권력의 추악한 민낯을 드러냈던 정치인이 여전히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절대적인 영웅처럼 거론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결국 대통령은 지난 행적을 평가하면서 긍정적인 면모는 배우고, 부정적인 면모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학습과 기억의 대상일 뿐이다. 그런데 향후 5년간 대한민국의 권한을 위임받을지도 모르는 누군가가, ‘그’가 여러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걸 보면, 이러한 학습과 기억은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더욱 실감나는 요즘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그’의 공과를 묻는 질문에 빈소를 찾은 많은 이들은 ‘역사가 대답해주고 역사가 심판할 것’이라고 답변하고 있다.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다고 역사씩이나 거론되는 건지, 나만 모르는 무언가가 있나보다. 생각해보면 ‘역사가 심판할 것이다’는 말은 참으로 웅장한 힘을 지닌다. 이는 어떤 국가가, 어떤 집단과 개인이 보였던 사고와 행동을 단편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되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먼 훗날 이 시점을 되돌아보았을 때 비로소 그 의미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래, ‘그’에게 적용하기에는, 너무나도 심오한 말이다.
‘그’에 대한 심판은 이미 내려졌다. 비단 군형법상 반란 및 내란죄, 그리고 2205억 원의 추징금만이 아니다. 보호받아야 할 국가로부터 내쳐지고 그 목소리마저 묵살당하던 이들이 지닌 흉터는 우리의 과거이자 그들의 현실이다. 그리고 그들이 내는 가슴 아픈 목소리 하나하나가, ‘그’를 심판할 대상은 역사가 아니라 현재임을 말하고 있다.
인류애의 차원에서 ‘그’의 죽음을 애도할 수야 있겠지만, 사실 별다른 감흥은 없다. 진심으로 아끼던 누군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것도, 친근하게 여겼던 대상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어쩌면 책임을 회피하고 지난날의 과오를 외면했던 ‘그’는 살아있어도 이미 나에게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결코 존경의 대상도, 역사의 심판을 받을 대상으로도 남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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