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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못다한 질문의 답 본문
김연광 기자
비대면의 자리가 점점 대면으로 돌아가던 날이었다. 간만에 진행된 대면 회의 자료를 집에 두고 오는 대참사를 일으켜 집으로 뛰어갔다. 5m 앞에서도 헉헉 거리는 숨소리가 들렸는지 아파트 현관 앞에 중학생 쯤으로 보이는 학생이 고맙게도 문을 열어줬다. 가쁜 숨을 내려놓으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짧은 순간 학생이 말을 걸어왔다. “저기... 원래 사는 게 이렇게 힘든가요?”. 마음 같아선 뭐가 그렇게 힘든지 들어주고 싶었지만, 현실 속의 나는 그럴 여력이 없었기에 “가장 힘든 게 분명 있을 테니 그걸 먼저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라는 말을 건넨 채 자리를 떴다. 정신없는 하루를 마무리하자 학생의 질문이 계속 머리를 맴돌기 시작했다. 나 역시 저 때 참 힘든 일이 많았는데 하면서.
최근 본 미스코리아 출신 배우의 인터뷰가 꽤 인상적이었다. 건강하고 당당한 이미지가 매력적인 배우는 과거 대회에 출전할 때만 해도 검게 태닝을 하고 허벅지가 쫙 갈라지는 근육질 몸매를 보는 주변 시선이 곱지 않았다고 했다. 씩씩하게 걷지 말고 조신하게 걸어 달라는 지침에 자신의 당당함을 표출하며 살기엔 세상이 너무 척박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빠르게 바뀌어 개성을 표출하고도 편하게 살 수 있어 행복하다는 내용이었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고정된 남성상과 여성상에서 벗어나면 특이하다는 거에 그치지 않고 문제가 있거나 이상하다고 보는 시선들이 많았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시선의 범주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초등학교 때 반 친구가 ‘호모’가 뭔지 아냐 물어봤다. 뭐냐고 묻자 ‘너’라고 말하고 도망쳤다. 나는 축구를 좋아하지 않고 화초 가꾸는걸 좋아했으며 숫기도 없어 선생님이 발표를 시키면 일어나 아무 말도 못 하고 교과서만 뚫어지게 쳐다보는 아이였다. 이상적인 남성상과 거리가 멀다는 이유만으로 ‘호모’라는 단어는 나를 금방 휘감았다. 나는 그냥 이게 내 모습인데, 내가 뭘 어떻게 더 해야 할지 모르는 순간, 타인의 시선에 너무 많이 절어있던 탓인지 나의 성 지향성이 남들과 다른가 하는 고민까지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자 수없이 들었던 ‘여성스럽다’는 표현은 ‘섬세하다’는 표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싫고 스스로를 힘들게 하던 나의 모습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데까진 정말로 많은 시간과 수많은 고민 끝에 그럴 수 있었다.
유당불내증으로 우유를 못 먹는 학생에게 편식이 심하고 핑계를 댄다며 우유를 다 마실 때까지 학교에 남겨두는 시대는 지났다.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현시대는 틀린 게 아니라 다름을 인정해주는 사회, 개개인의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해주는 사회로 많이 변해왔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전보다 나아졌다는 것에 환호하는 한편 여전히 큰 틀에서는 깊은 탄식을 내뱉는다. 과연 이걸 단순히 개인의 고민으로 해결하고 마무리하는 게 맞을까 하며. 나에게 질문한 학생에 정확한 고민의 깊이는 모르겠지만 현재는 인생의 최종 종착지를 가기 위한 환승지일 뿐 이곳에 계속 머물지 않을 것이기에 너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건네고 싶다. 모두가 덜 힘들어할 수 있는 세상으로 먼저 변해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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