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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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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면/기자 칼럼

‘대의를 위한 폭력’은 아름답지 않다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2. 5. 5. 00:07

 

‘대의를 위한 폭력’은 아름답지 않다

최서윤 기자

 

 

  나는 어려서부터 영웅 영화를 싫어했다. ‘~맨’ ‘~우먼’이라는 우스꽝스러운 타이틀을 내거는 건 차치하더라도, 절대적인 선을 대변하는 캐릭터가 정의를 위해 싸운다는 서사에 대해 묘한 거부감을 느끼곤 했다. 특히 세상을 정복하고 인간들을 노예로 만들고자 하는 악당과 영웅이 펼치는 최후의 대결은 늘 웅장하다. 초능력과 무기로 서로 공격을 주고받으면서 차가 뒤집히고 건물이 무너지며 도시는 쑥대밭이 된다. 막판까지 아슬아슬한 싸움을 이어가던 영웅은 힘겹게 승리를 쟁취하고, 마침내 그는 세상을 구한다. 그런데 이런 장면을 볼 때면 영웅에 대한 경외가 느껴지기보다, ‘저 무너진 건물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일하던 사람들은 대체 무슨 죄일까’, ‘하루아침에 가족과 집을 모조리 잃은 평범한 시민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하는 생각만 머릿속에 맴돈다. 악당과 싸움으로써 ‘대의’를 표방하는 영웅의 서사 속 이들의 이야기는 주목받을 필요도 없다는 듯, 아니 존재하지도 않는 듯 화면에서 지워진다. 이처럼 ‘대의’를 위해 자행된 폭력과 피해를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듯한 묘사는, 한편으로는 비상식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와닿곤 한다.

  인류 역사상 모든 폭력에는 늘 그것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무력으로 남의 생활 터전을 빼앗고,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을 노예화하고 학살한 것은 ‘문명화’라는 예쁜 말로 포장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자유는 ‘근대화’와 ‘안보’, ‘단합’의 이름으로 번번이 묵살되었다. 그리고 문명과 안보의 대척점으로 설정되었던 ‘야만인’과 ‘빨갱이’들은 마치 인간 세계를 멸망시키러 온 악당처럼 그려졌다. 결국 ‘대의’는 역설적으로 인간의 절대적인 가치들을 억압하는 폭력에 대한 아름다운 수식어가 되었다. 

  수많은 사상자를 낳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결국 러시아를 우크라이나 ‘나치들’로부터 구하며 막강한 러시아를 만들겠다는 ‘대의’는, 소중한 이들을 잃고 고국을 떠나야 하는 우크라이나인들에게는 암울한 폭력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또 영문도 모르는 채 전투에 뛰어들어야만 했던 어떤 이들까지도 평생 안고 살아야 할 끔찍한 트라우마이기도 하다. 침공 초기, 울면서 홀로 국경을 건너던 우크라이나 아이의 모습이 우크라이나의 한 마을에서 항복한 러시아 군인에게 주민들이 따뜻한 음식과 ‘당신의 탓이 아니다’라는 위로를 건네주는 모습과 교차해서 떠오르는 것은 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폭력은 생존에 있어 최후의 순간에 어쩔 수 없이 택해야 할 마지막 수단일 뿐, 그 어떠한 수식어를 붙여도 아름다워질 수는 없다. 무찔러야 할 절대적인 악은 존재하지 않으며, 다른 이에 대한 폭력을 일방적으로 미화할 만큼 절대적인 ‘대의’는 더더욱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대의를 위한다는 명분은, 그 명분을 위해 희생된 이들에게는 또 다른 폭력으로 남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