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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포스트 콜로니얼 지성사와 그람시 – 도덕주의를 넘어 정치로? 본문
포스트 콜로니얼 지성사와 그람시 – 도덕주의를 넘어 정치로?
- Timothy Brennan, “Antonio Gramsci and Postcolonial Theory:
“Southernism”” Diaspora: A Journal of Transnational Studies 10, no. 2 (2001): 143-187.
염동규
문학평론가
이번 학기 <고전 읽기> 지면에서는 포스트 콜로니얼 이론에 관한 책과 논문을 다루려 한다. 이번 호에서 살펴볼 티모시 브레넌의 논문을 필두로, 4월 호에서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서문을, 5월호에서는 가야트리 스피박의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를, 마지막 6월 호에서는 최근 출간된 일본 맑스주의에 대한 Gavin Walker의 저작, The Sublime Perversion of Capital을 읽어보게 될 것이다. 연재 일정에는 약간의 변동이 있을 수 있지만, 이 기획을 통해 내가 의도하고자 하는 것은 포스트 콜로니얼 이론의 좌파적 전유라는 화두, 그리고 ‘이론(서구) vs. 사례들(나머지)’의 지구적 분업 체계에 대한 비판이다. 짧은 지면을 통한 논의이기는 하지만 독자들에게 약간의 영감이나마 줄 수 있길 바란다.
국내에 잘 알려진 저자는 아니지만, 티모시 브레넌의 “Antonio Gramsci and Postcolonial Theory(안토니오 그람시와 포스트 콜로니얼 이론)”은 포스트 콜로니얼 이론에 관심이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얼굴 없는 자들의 미학화 경향’을 상대화해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반드시 권할 만한 논문이다. 여기서 브레넌은 포스트 콜로니얼 이론이 그람시를 다소 왜곡된 방식으로 수용하고 신화화하는 과정에서 은폐되어버린 전간기(the interwar period) 맑스주의의 사유를 환기하는 한편, 그람시의 ‘진의’를 통해 오늘날의 포스트 콜로니얼 논의들에 대한 비판까지 수행하고 있다. 그람시의 사상은 어떻게 해서 포스트 콜로니얼 이론의 ‘수호 성인’이 되었는가? 그람시의 수고들을 보존하고 일정한 체계로 재배치하는 공산주의자들의 편집 노동 이후, 1970년대 무렵부터 유로코뮤니즘과 그에 이은 포스트 맑스주의의 부상, 인도에서의 서발턴 연구 흐름, 스튜어트 홀, 페리 엔더슨 등 영미권 논자들의 그람시 전유, 에르네스토 라클라우로 대표되는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수용 등을 이리저리 거쳤고, 그렇게 해서 ‘지금 우리에게 흔히 알려진 그람시’가 탄생했다. 이 복잡한 과정에서 그람시는 알튀세르에 의해 일정 부분 각색되기도 했고―그람시와 알튀세르는 보기에 따라 대단히 멀 수 있는데, 적어도 알튀세르가 원죄의 낙인을 찍어버렸던 변증법이나 그의 좌파 헤겔주의는 그람시에게 대단히 중요한 것이었다―하이데거 사상과 친연하게 결합될 수 있기라도 한 양(이런 통로를 알튀세르 식 그람시 전유가 어느 정도 열어주었다고 브레넌은 지적한다) 이해되기도 했다.
브레넌은 위와 같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 형성된 ‘오늘날의 그람시 이해’, 그리고 이것에 기반한 포스트 콜로니얼 연구를 열정적으로 비판한다. 우리에게 알려진 그람시는 대체로 교조주의적 맑스주의의 비판자이자 상부구조의 이론가이지만, 그에게 고유한 것으로 알려진 이 주장들은 그의 시대에도 꽤나 상식적인 것이었음을 고려하면 ‘옳은 그람시 vs. 틀린 맑스주의자들’이라는 구도는 도덕주의적일 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이라는 것이다. 한편, 그람시의 ‘서발턴’ 개념이 알튀세르, 하이데거와의 기묘한 결합을 통해 능동적인 역사 주체가 아닌 수동적인 미학적 대상처럼 되어버렸다는 주장도 브레넌의 중요한 문제 제기이다. 디페시 차크라바르티, 파르타 찻테르지 등의 논의에서 이러한 특징이 발견되는데, 브레넌은 서발턴을 미학적 대상으로 숭고화하는 이러한 작업들이 민족 공동체 내부의 분할들에 눈 감게 할 뿐만 아니라 서발턴의 위치를 극복하게 할 ‘정치’를 사고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브레넌은 위와 같은 문제적 과정을 그람시 지식인론의 중요한 두 축인 Southernism, Transformism과 결부하여 설명한다. 그람시 ‘지식인 계급’론의 핵심인 이 두 개념은 현대 사회의 지식인 계급이 자본주의/제국의 지배를 강화하는 기제를 설명하기 위한 그람시의 용어이다. 오늘날 포스트 콜로니얼 지식인의 사회적 조건이 이 두 개념으로 완벽히 설명된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포스트 콜로니얼 연구의 지식 사회학이 반식민지 운동을 약화하는 효과를 낳기는 한다고 브레넌은 본다. 그런 이유에서 그는 오늘날의 포스트 콜로니얼 연구가 갖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포스트 콜로니얼 연구의 맥락에 대한 지성사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서발턴을 이미 완결된 ‘저항적 현존(resistant presence)’으로 기술하는 서발턴 연구의 도덕주의화 경향에 대해 비판하면서, 브레넌은 그람시가 여기에 맞서 ‘정치’ 개념을 내세웠다고 말한다: “정치는 정치 행위자들을 더럽힐 수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파괴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정치 없이는 “난쟁이”들의 굴욕과 파괴된 가능성도 몰아내지지 않는다.” 절절히 공감하면서도, 좀 다른 맥락에서 궁금해지기도 한다: 도대체 ‘정치’라는 건 무엇일까? 정치라는 것이 낯선 생각으로 상대방을 화나게 만드는 것보다 좀 더 나아간 무엇이라면, 말과 삶을 다루는 인문학자들의 소임은 ‘다른 말’과 ‘다른 생각’을 도덕주의적으로 낙인찍는 진창과도 같은 소통 구조를 넘어 새로운 소통의 구조와 방식을 고안하는 일일 것이다. 어쩌면 바로 그랬을 때부터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인문학자들의 말이 덜 궁색해질 수 있겠다. 당장 자기부터가 갈등이 두려워 말을 조심하는 상황에서 정치가 중요하다는 말만 되풀이한다면 그건 사유의 빈곤을 넘어 지식의 소매상으로 전락해버린 ‘지식인’의 우스꽝스러운 자화상 이상도 이하도 아닐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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