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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인간 본질’ 개념을 통해 본 맑스 저작의 이해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게 될까 본문
‘인간 본질’ 개념을 통해 본 맑스 저작의 이해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게 될까
- 죄르지 마르쿠스 저, 정창조 역, <마르크스는 인간을 어떻게 보았는가?>, 두번째테제, 2020.
염동규
이 서평을 네 글자로 요약한다면 이렇다: ‘책을 사라.’ 또, 독자들에게는 먼저 일러두고 싶은 것도 있다. 늘 그렇듯 이번 서평에서도 대상 도서의 논의를 요약해보긴 하겠지만, 치밀하게 변증법적인 이 저작의 특성상, “모든 것을 다 말하지 않고서는 한 가지도 말할 수 없으며 새로운 생각이 하나 나타날 때마다 전체계를 다시 개괄해야 하는”(제임슨) 난감함이 있음을 고려해주길 바란다.
서론의 언급대로, 이 책은 ‘인간 본질’이라는 개념을 맑스의 전 저작을 관통하는 것으로 본다. 그럼으로써 맑스에 대한 두 가지 상이한 이해―인간주의적 맑스 해석과 이론적 반인간주의로 대표되는 알튀세르적 해석―를 ‘변증법적으로’ 통일한다. 마르쿠스는 인간 본질에 대한 여러 가지 가능한 서술들을 통일시키는 키워드가 바로 ‘노동’이라고 지적하며 1장을 연다. 여기서 ‘노동’이라는 말은 철학적인 방식으로 정의된 개념으로, 동물과 비교할 때 인간은 ‘노동’을 할 줄 안다는 점에 착안하는데, 중요한 것은 ‘노동’이 ‘매개’와 관련된다는 점이다. 동물은 언제나 둘까지만 즉, 자기 자신과, 자신의 생물학적 욕구에 대응하는 자연 대상까지만 셀 수 있다. 물론 동물도 ‘생산’을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직접적인 생물학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만 그렇게 하므로, 동물의 생산은 ‘소비’에 결박된다. 반면에, 인간은 셋을 셀 줄 안다. 자신과 자신의 대상뿐만 아니라 제3의 계기―이것은 자신과, 자신이 지각하는 사물 자체 ‘사이’의 노동 도구를 의미할 수도 있고 자신과, 자신의 직접적 대상 너머의 목표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노동의 결과로 객관화된 세계(사회, 역사)를 의미할 수도 있다―를 셀 줄 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의 계기로부터 마르쿠스는 맑스의 ‘인간’이 보편적으로 생산할 줄 아는, 자기 ‘종’의 한계를 매개적으로 갱신할 줄 아는 ‘유적 존재’임을 지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노동’은 맑스가 말한 ‘인간 본질’ 개념의 핵심 계기가 된다.
2장은 인간 본질을 이루는 또 다른 계기인 ‘사회-이룸’과 ‘의식의 발전’에 대해 논의한다. (이 서평에서 사회성(社會性), 의식성(意識性)과 같은 친숙한 조어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이 두 계기가 모든 인간에게 ‘속성’으로서 분유(分有)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으로부터 전개되는 장대한 변증법적 과정의 일 계기로서 이해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마르쿠스는 ‘사회-이룸’과 관련하여 교육 및 인간 환경(이전 인류의 노동이 객관화된 결과로서의 인간 환경)의 ‘상속에 대한 책임’에 관한 논점, 인간 사회에 전제된 생산관계 개념과 계급화의 문제 등을 거론하고, ‘의식의 발전’과 관련해서는 그것이 어떻게 철학적 개념으로서의 ‘노동’으로부터 도출되는지를 설명하면서 의식이 계속된 변화와 발전의 과정에 놓여 있음을 지적한다.
한편 3장에서는 지금까지 이야기한 인간 본질의 세 가지 핵심 계기를 ‘본성’과 ‘본질’의 불일치라는 소외 이론의 관점에서 다룬다. 모든 인간의 개별적 특성들 중에서 공통된, 영속적인 부분만 추려낸 것을 ‘인간 본질’이라고 오해하는 논의들에 맞서, 마르쿠스는 그러한 공통적, 영속적 측면은 인간 ‘본성’이라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마르쿠스가 보기에 이러한 ‘본성’은 맑스에게서 거부되지는 않았을지언정, “인간과 인간 역사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것으로 고려[되]지 않았다.” 맑스에게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인간 본질을 구성하는 핵심 계기인 ‘노동’, ‘사회-이룸’, ‘의식의 발전’이 지금까지의 역사 과정, 특히 자본주의 아래에서는 ‘소외’된 상태로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자본주의하에서 이 계기들은 1, 2장에서 살펴봤던 ‘보편화하는 인간’의 핵심 계기로서의 성격을 상실한 채, 각각의 개인에게서 소외된 상태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소외의 과정, 바로 그 ‘안’에서 소외를 극복할 가능성이 배태되는데, 이런 과정을 거쳐 인간의 ‘본성’이 비로소 ‘인간 본질’과 일치하는 세상을 마주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 맑스의 전망이었다고 마르쿠스는 설명한다. 이러한 설명은 목적론적이지만, 속류적인 것은 아니다. 결국 역사적 미래란 우리에게 상속된 모든 조건에 대한 우리 자신의 주체적 전유, 본성과 본질의 일치를 위한, 인간의 보편화와 자유를 향한 투쟁에 의해서만 우리 앞에 바투 다가오든지 말든지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맑스주의로부터 진지한 영감을 받으려는 연구자 중, 경제학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자기 자신의 맑스 이해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가져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도대체 경제학을 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맑스를 제대로 공부할 수 있겠으며, 맑스주의를 자기 사유의 주요한 참조점으로 삼을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 말이다. 지난 두 차례의 서평에서 말했듯, 나는 맑스주의를 공부하는 누구라도 ‘정치경제학’을 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소위 ‘인문학’으로부터 출발하여 맑스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역할이 있다고도 말하겠다. 동시대의 정치경제학적 논의들과 교류하면서도 맑스가 가진 장엄한 역사철학적 사유에 주목함으로써 우리는 ‘자본주의 이후’를 상상하는 대안적 서사를 구축하는 데 기여해볼 수 있을 것이다. 단언하는데, 죄르지 마르쿠스의 이 저작은 그러한 작업에 있어 가장 먼저 참고되어야 할 저작들 가운데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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