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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다시 읽는 사회구성체 논쟁과 그 의의 본문
다시 읽는 사회구성체 논쟁과 그 의의
- 이진경,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 방법론』, 그린비, 2008. (초판 : 1986)
염동규
문학평론가
1980년대 사구체 논쟁의 전설적인 저작,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 방법론』(이하 『사사방』이 위치한 역사적 맥락은 간단히 다음과 같이 기술해볼 수 있다. 1980년대엔 70년대부터 공유되어왔던 삼민(민중, 민족, 민주)의 이념을 한국 사회의 구조 분석과 결합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졌다. 단지 전복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후에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상이 있어야 독재 권력에 맞선 투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의 소산이었다. 이러한 요구는 1984~1986년에 걸쳐 학생운동권의 MC-MT논쟁 및 CNP논쟁으로, 학계에서의 창비 논쟁과 산사연 논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논쟁들은 결국 민족 모순과 계급 모순을 함께 사고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합의 아래에서 이루어졌지만, 두 모순을 일관적으로 사고하게 해주는 원칙에 관한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논쟁은 쳇바퀴만 돌고 있었다. 바로 이때, 이 책이 등판한다.
“논쟁의 철학적 기반 및 방법적 원칙”과 “사적 유물론의 원칙과 주요개념”을 명확히 하겠다는 목표 아래 이진경은 2장에서 계급성, 객관성, 총체성, 특수성의 기초 범주를 제시한다. 3장에서는 이러한 정의들을 구체화하면서 식민지반봉건사회론자들(가지무라 히데키, 장시원 등)이나 알튀세르-발리바르에게서 영향받은 구조주의자들(윤소영, 이병천, 민정우 등), 그리고 흔히 ‘정통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사구체론을 촉발했다고 알려진 박현채를 비판한다. 4장에서는 앞장들에서 거론된 원칙에 따라 맑스주의 경제학 개념들을 명확하게 정의하려는 시도와 더불어 한국 사회 성격에 대한 이진경 본인의 관점이 개진된다. 이러한 『사사방』의 기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별적인 사회와 보편적 법칙 ‘사이’의 변증법적 매개 범주로서의 특수성 개념이다. 이 두 가지 강조점은 당시에 빈번히 제기되었던 주장, 즉 “한국사회만이 지닌 ‘특수성’을 무시하고 교조주의적으로 서구의 ‘보편’적 발전 경로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이었다. 이진경은, 모든 사회에는 저마다의 차이가 있다는 주장에 함몰되는 것은 곧 보편성을 파기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논리적 파탄이라고 보면서, 개별적 계기들이 자본주의라는 보편성으로 수렴되어 가는 변증법적 운동을 포착하는 개념으로서 특수성 개념을 정립했다. 이를 통해 개별적 차이들을 사상(捨象)하지 않고도 보편으로 향해 가는 한국 사회의 과정을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사방』이 제기하는 내용 이외에도 관심을 끄는 것은 알튀세르에 대한 이진경의 도저한 혐오이다. 그의 이후 행보를 떠올린다면, 알튀세르 류의 논의들을 “객관적 실재의 변화에 대한 성실한 검토에 근거하지 않은 채, 개념 및 이론만을 고집”하는 것이라고 꼬집는 대목이나, 『『자본』을 읽자』에서 개진된 알튀세르의 이른바 ‘징후적 독해’에 대한 비아냥은 당황스럽게 읽힌다. 그런 점에서 PD(People’s Democracy)의 형성사에도 흥미로운 점이 많겠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또 한 가지 관심을 끄는 일은, 이진경이 비판하는 여러 논자의 당대 한국 사회에 대한 관념이었다. 이 책에 비판적으로 인용된 대목들로 미루어 보면, 많은 논자가 서구의 자본주의 경험을 ‘정상적이고 덜 야만적인’ 발전인 양 이해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제국주의의 수탈과 압제에 시달려온 우리의 상황은 서양과 다르다!’를 한껏 강조하는 이러한 논의들로부터 어쩌면 ‘식민지 트라우마에 의한 맑스주의의 굴절’이라는 논점도 끌어내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최근 꽤나 높아지고 있는 듯한 80년대에 대한 관심이 사구체론을 시야에 두지 않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곤 한다. 심지어 영미권의 민중운동사 논의의 큰 산이라고 할 수 있는 『민중 만들기』(이남희, 2015)는 “이 논쟁의 현학성, 분열성, 소모성은 그 공로를 상쇄하고도 남았다”는 혹평을 남기고 있다. 어느 운동이나 그렇듯이 80년대 민중 운동은 감동만큼이나 무수한 상처들을 남겼고, 그 상처들의 핵심에 지식인들이 만들어낸 권위주의적이고 남성중심적인 판타지들이 놓여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런 혹평은 수긍할 만한 점이 있다. 그렇지만 80년대를 넘어, 못해도 90년대 초반까지 한국 지성계를 휩쓸었던 사회구성체 논쟁이 이렇게 회피되거나 단죄되는 건 연구사적으로도 손해일 테지만,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라는 과제를 위한 유용한 자원을 상실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하여 시사적인 것은 최근에 『사사방』과 관련해 비판사회학회에서 열린 콜로키움에서 사회자를 맡은 심보선의 다음과 같은 언급이다. 즉, “위험사회, 피로사회, 단절사회 등등 온갖 사회론이 범람하는” 가운데서도 어째서인지 “국가와 계급에 대한 문제의식이 결여”되어 있는 것 같다는 점에서 “사회구성체론은 자본주의든 신자유주의든 이러한 현실의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데 유효한 ‘문제틀’이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는 것이다. 심보선의 이러한 지적에 동의할 수 있다면,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사회구성체론을 참고해볼 때인지도 모른다. 이를 위해선 무수히 많이 제기되었던 논의들을 단지 정리해보는 것이 아니라, 이 논의들에서 제기되었던 논점들을 현재적인 관심 속에서 재배치하고 저항의 자원으로 활용해보는 그런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11월호 고전읽기의 제목을 <‘인간 본질’ 개념을 통해 본 맑스 저작의 이해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게 될까>로 정정합니다. 혼란을 일으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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