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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군함조는 사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새가 아니다. 본문
군함조는 사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새가 아니다.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석사과정 이수빈
파도에 휩쓸려 해안가로 쏟아지는 모래처럼 준비한 대학. 집안의 모든 것이 나를 향해 지르는 잔소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차음(遮音)이 될 정도로 떨어진 지역으로 원서를 쓰고. 겨우 합격한 대학은. 그놈의 인-서울은 못하고, 아웃-서울에 위치한 모 대학의 캠퍼스로 입학했다. 그래도 대학에 들어가면 숨 좀 쉴 수 있지 않을까? 빛나는 청춘의 자유가 앞에 있지 않을까?
발정기 수컷 군함조처럼 잔뜩 부푼 가슴으로 입학했던 대학. 기대는 군함조의 속력만큼이나 빠르게 낙하했다. 군함조는 시속 400km로 세상에서 가장 빠른 새다. 내가 선택한 불행에 스스로를 벌하듯 기숙사 침대에 가둔 채. 창밖 떨어지는 잎새를 보며 눈물을 줄줄. 떡볶이를 먹다 늘어난 치즈를 보고도 울었다. 잠깐씩 태양 아래에 나서는 수업에 출석만은 열심히 했다.
신입생 요람에 잉크도 마르기 전, 더 이상 신입생이 아니게 된 내게, 취업과 함께 불안도 함께 찾아왔다. 무서워서 베트남으로 도망쳤다. 도피로 시작한 교환학생. 무엇 하나 잘하는 것도 확실한 것 없는. 늘 어정쩡한 나라서 생긴 또 다른 불안은 쌀국수와 함께 꿀떡꿀떡 넘어왔다. 돌아와서도 여전히 답이 안 보이는 미래가 무서웠고 진로탐색이라는 떼깔 좋은 제목을 붙여 휴학을 결정했다. 도피의 당연한 결말이다.
묻어둔 꿈의 일을 찾아 나섰다. 처음에는 미술관 전시장의 지킴이. 그다음은 아트 페어의 코디네이터로 휴학 기간을 채웠다. 운 좋게 경험했던 미술 관련 일들. 전공도 경험도 없이 시작했기에 늘 자신 없었고 그래서 그저 또 열심히 하기만 했다. 휴학을 마친 뒤, 나는 잃어버린 꿈을 되찾았노라며 그렇게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 대학교 졸업장을 쥐기도 전에 대학원 합격장을 받은 나는 여전히 불안의 평형대 위에서 발가락을 꽉 오므리고 서있다.
조명이 켜지며,
예비 대학원생 L : (조그맣고 부끄러운 목소리로) 대학원을 가려는 이유 첫째,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고 싶어!
예비 대학원생 L : 둘째, 취업 미루기! 셋째, 학교라는 사회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믿음직스러운 소속감!!!
새끼 손가락으로 사알짝 찍어 먹어봤던 경험에서 대부분의 현직자 분들은 대학원 이상의 학력을 가지고 계셨고, 이는 곧 자연스레 취업의 기본 자격이다. 대학원이 기본이라니.
예비 대학원생 L : YEET! (십자말 풀이판이 날아간다.)
새로운 학번도 받았으면서, 시소 한쪽에는 자기 합리화, 다른 한쪽에는 확신이 타고 있다. 그 밑에는 흉터 진 붉은 가슴의 군함조가 다시 살금 부풀어 오르려 하는 가슴을 시소 밑에 잘 포개어 눕는다. 시소 양쪽을 오가며 엉덩방아를 쾅쾅 찧는다. 결정을 내릴 만큼 충분한 경험이었는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맞는지? 물음에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하는 나는 유튜브도 찾아보고, 주위에도 물어본다. 많은 사람들이 대학원을 가는 건 미친 짓이라고, 혹은 아직 겪지도 않은 일에 동정과 위로를 받기도 한다. 게다가 돈도 못 버는 예-술을 하고 싶다니. 값없이 얻은 청춘으로 값을 치르고 있는데, 앞으로 치러야 할 값은 점점 더 높아지는 것을 체감한다. 불안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함께다.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불안한 마음은 어디에서 태어나 나에게까지 온 건지. 나도 모르는 새에 피어나 나에게 큰 상처로 자라도. 그건 아마 (대학원을 가려는) 나의 잘못은 아닐까? 아니, 그냥 이런 내가 잘못인 건 아닐까? 나는 떡볶이를 좋아한다. 그래서,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이야기한다. 대학원 졸업하고 떡볶이 가게를 열자고, 가게의 이름은 <OO석사 떡볶이>로 하고. 영업허가증 옆에 석사 졸업장도 꼭 걸자고. 치즈도 듬뿍 넣어주어야지. 이렇게 우스갯소리를 하며 불안을 좀 눌러본다. 고고(呱呱)의 고집은 주사와 엉덩이를 맞고도 떨쳐내지 못한 모양이다.
군함조는 바닷새이지만 깃털에 방수 기능이 없다. 그래서, 물에 닿으면 깃털이 물기를 머금고 무거워져서 다시 날아오르지 못하고 익사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정확히 따지자면, 군함조는 사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새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군함조의 비행은 다른 새들과는 분명히 다르다. 몇 달 동안 땅을 한 번도 딛지 않고 비행할 수 있고, 다른 새들과 달리 거친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고 한다. 군함조는 거친 구름 속의 불안정한 기류를 타고 초속 4m의 속도로 상승할 수 있다.
나는 안다. 아마, 나는 또 열심히 할 것이다. 고집을 부리고, 불안에 덜덜 떨고, 엉엉 울면서. 약한 폐와 기관지로 열심히 숨을 들이마시고 달릴 것이다. 가장 빠르지도 않고, 깃털에 방수도 되지 않지만 구름 속을 넘나들며, 넓은 바다 위를 오래오래 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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