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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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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면/문학의 향기

존재를 지속하기 : 상실에 대하여 2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2. 4. 5. 20:26

존재를 지속하기 : 상실에 대하여 2

-이유리, 손톱 그림자(-브로콜리 펀치-, 문학과지성사, 2021)

 

 

 

누군가의 죽음을 경험한 이후 지속되는 남겨진 자의 삶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 수 있을까? 이전 호에서는 편혜영의 리코더에서는 다수의 사망자 사이에서 구조된 두 인물을 중심으로 생존자의 삶으로서 사건화되는 죽음에 대해 다루었다. 리코더가 결코 이전과는 같을 수 없는 삶의 지속이라는 의미에서 죽음은 삶으로 옮겨온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면, 이유리의 손톱 그림자는 죽음 이후 망자와 산 자의 우연한 재회를 만들어냄으로써 통해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다른 방식의 접근을 시도한다.

삶의 대부분의 시간과 경험은 되돌이킬 수 없는 것이지만 그중에서도 상실(죽음)이라는 사건은 더 특수하다.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음을 가정하는 가능성의 세계에서 죽음만큼은 그 이후 어떤 번복도 불가능하다는, 즉 그 어떤 것을 행하더라도 재회는 허락되지 않는다는 100%의 절대성을 보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법칙을 토대로 하는 세계에서 누군가의 죽음 이후 그를 다시 만나는 종류의 상상은 기실 새로운 발상은 아니다. 꼭 한 번 다시 만나고 싶다는 염원은 사후 세계, 망자의 다른 존재로의 부활(또는 윤회), 귀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 등을 통해 인간의 삶에 뿌리 깊게 스며들어 있다.

그럼에도 이와 차별되는 소설적 상상력의 지점이 있다면 상실 이후의 재회를 구체적인 내용으로 재현한다는 것일 텐데, 이때 구체적 재현이란 바라마지 않은 불가능이 실현되었다는 낭만과 감동과는 다소간 거리가 있다. 적어도 이유리의 소설에서 죽음 이후 여전히 지속되는 세계의 모습은 삶의 지속에 따른 망각과 기억의 훼손을 목격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가령 단 한순간도 단 하나의 조각도 잊지 않겠노라 굳건하게 다짐했음에도 망자가 생전 좋아했던 것이 좀처럼 생각나지 않는 망연함을 마주하는 일이야말로 극적 재회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인 것이다. 망자가 느끼는 망연함도 이로부터 크게 멀지 않다. 망자는 자신의 죽음 이후에도 세계는 망하지 않으며, 생전 소중한 존재였던 이의 삶 또한 그런 식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처럼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회란 서로가 바라마지 않은 것임에도 정작 그것이 수행되는 순간 각자가 (-)존재하는 넘어설 수 없는 현실의 벽을 바라보는 일이다.

손톱 그림자는 버스 사고로 사망한 전 남자친구 용준이 수정의 신혼집에 찾아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용준은 죽은 상태로 그저 존재하다가 문득 수정을 떠올리고 이내 오직 수정 씨만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용준은 그런 그리움 끝에 아마도 수정의 옷 어딘가에 붙어 있을 자신의 손톱 조각에 자신을 훅 의탁했고 그렇게 들러붙게 되었는데 자신도 이 상태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모르겠다며 그들 앞에 나타난다. 그러나 수정의 남편 석기가 용준에게 돌아가주기를 요청하며 말하듯, 수정은 용준의 사망 이후 나름대로 단란한 삶을 꾸려가는 중이다. 이런 시점에서 용준과 수정은 과연 무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단 한 번이라도 다시 보기를 그렇게 바랐을 것이나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오후 반차를 낸 석기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수정과 용준은 김치찌개를 먹으며 용준의 죽음 이후에 관해 대화를 나눈다. 수정은 용준의 사고 직후 KTX가 아닌 버스 티켓을 끊어준 자기를 책망하며 울고 후회했다고, 그러다가 잊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고 잊으면 안 된다고도 생각했는데 잊었다고 고백한다. 마치 김치찌개를 끓이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용준이 배추김치의 어떤 부분을 좋아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아챘듯 말이다. 다만 그것은 한 번에 다 잊은 건 아니고, 조금씩진행되었다고 말하는데, 용준은 이에 내가 앞으로도 어딘가에 계속 존재한다면 말이지만, 나도 수정 씨처럼 수정 씨를 잊게 될 거라고 대답한다.

존재한다는 것은 망각에 통곡하는 일뿐인 걸까. 어느 시점 이후 다시는 경험할 수 없는 타인이라는 세계가 잊혀가는 것조차 모르다가 어떤 것을 떠올릴 수 없게 되었을 때 되돌이킬 수 없음은 그제서야 상기되며, 그런 돌아갈 수 없음으로 삶이 지속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수정이 용준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을 깨달으며, 또 용준 역시 그러하리란 말을 듣고 서글픔을 느꼈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존재한다는 것이 결국 망각에 이르는 것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존재한다는 것은 길고 천천히 지속되는 망각의 끝에서도 무언가가 있었다는 단 하나의 진실만큼은 잊지 않는 것이다. 수정이 잊어감이 진행되는 중에도 용준을 잊지 않았고, 용준 역시 비-존재에 가까워져 가는 순간에 자신이 계속 존재한다면 그러했으리라 말하면서도 수정을 찾아왔듯 말이다.

용준, 석기와 함께 찾아간 버스 추락 사고 지점에서 용준을 보내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수정은 자신의 뒤로 길고 검은 그림자가 늘어지다가 톡 끊어져 버리는 감각을 느낀다. 이제 수정의 삶에 혼령으로나마 용준이 나타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수정은 소중한 무엇의 죽음 이후에도 지속되는 삶의 영역으로 되돌아오고 그것은 그런 채로 지속될 것이나…… 그런 식의 존재하기란 비-존재가 사라진 만큼의 공허함을 비어 있음으로 남겨둔 채 그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