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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면/사설

다시 한번, 버스를 타자!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2. 4. 5. 20:27

다시 한번, 버스를 타자!

 

이준석 대표의 장애인 이동권 관련 망발이 연일 화제다. 325일 하루에만 4개의 포스팅을 올리고 이후로도 매일 꾸준히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폄훼하는 발언을 지속하고 있다. 덕분에 장애인이동권 시위 또한 대대적인 관심을 받으며 투쟁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으니, 이러한 판을 깔아준 이준석 대표 또한 역행보살(逆行菩薩)’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어 보인다. 그의 발언들은 하나같이 소수자 집단을 시민에서 분리한 후 그들의 권리 투쟁을 시민과의 대립으로 비화하는 혐오와 배제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데, 그 대표적 예시는 다음과 같다. : “장애인의 일상적인 생활을 위한 이동권 투쟁이 수백만 서울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합니다.” (이준석 325일자 페이스북 게시물)

볼모라는 다분히 선정적이고 선동적인 키워드의 전략적 활용은 몇 년 후 사회 교과서에 나쁜 정치의 예시로 소개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누군가의 일상적인 생활을 위한투쟁이 어떻게 부조리할 수 있다는 것인지, 그가 자신의 문장 자체가 하나의 큰 모순이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평시에 비장애인 승객들에게도 출입문 취급시간에 따라 탑승제한을 하는 만큼, 장애인 승객에게 정차 후 일정 시간이 지난 뒤 출입문 취급을 위해 탑승제한을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각 개인이 처한 상이한 조건과 환경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낸다. 본인도 이 문장의 비논리성을 알면서 결국 쓰고야 만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실제로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끼치고 있다. 그러나 시위나 파업의 본질은 기본적으로 특정 집단에 부당하게 집중되어있는 불편함을 시민 전체와 공유하면서, 불편함을 생산해내는 조건을 최대한 빨리 시정하도록 정부 혹은 기업에게 함께 압박을 가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불편함을 끼침으로써 그것을 비당사자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시위와 파업의 목적이다. 비장애인은 지하철로 15분 만에 갈 수 있는 경복궁역에서 혜화역까지의 거리를 장애인들은 몇 시간을 소모하여야 도착할 수 있을까? 그리고 가족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장애인 시민이 전국 곳곳에 얼마나 많을까. 비장애인들은 이동권 투쟁을 맞닥트려서야 잠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 대표가 정말 모두에게 동일한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믿는다면, 장애인 투쟁을 비난하는 대신 비장애인과의 교통 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함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다.

이 말을 듣는다면 이 대표는 십중팔구 이렇게 답할 것이다. 서울시 지하철의 엘리베이터 설치율이 이미 93%인데 왜 아직도 서울 시민들의 출퇴근을 볼모로잡는 부조리한 투쟁을 지속하느냐고. 20년 이상 이어온 투쟁의 성과를 손쉽게 정치권의 시혜적 결단으로 탈바꿈하고, 그러한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낸 이들을 한낱 떼쓰는집단으로 격하시키는 그의 정치 감각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은 문재인 정부 하의 박원순 시정임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이동권 향상을 위해 노력해왔고, 더 노력할국민의힘과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항의하느냐는 말은 또 어떠한가. 혐의를 민주당에게 돌리는 정치공학적 태도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가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기본권을 획득하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라, 계약을 어긴 자에 대한 정치적 복수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소용없는 일이란 것을 알면서도 그에게 2002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장애인 이동권 투쟁 보고서 - 버스를 타자!>를 한번 볼 것을 권하고 싶다. 그의 공감 능력으로는 영화를 보더라도 느낄 수 있는 바가 많지 않겠지만 그래도 아예 모르는 것보다야 낫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제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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