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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전두환이 죽었다> 본문

7면/사설

<전두환이 죽었다>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1. 12. 4. 00:31

 

<전두환이 죽었다>

 

 그가 죽었다. 2021 11 23일 오전 8 45분경의 일이었다. 오묘하게도 뉴스 기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정의당의 심상정 대표가 개인 SNS에 올린 입장문을 통해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성찰 없는 죽음은 그조차 유죄”(심상정 페이스북 페이지, 2021.11.23.)일 테지만, 그는 사과 한마디 남기지 않고 홀로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했다. 죽기 직전의 그 노쇠한 얼굴은 익숙한 사진 속 얼굴과는 달랐고, (그럴 일은 없겠지만) 길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한들 알아보지 못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색이 짙어진 지 오래였기 때문일까, 그 사람의 죽음에 놀라기보다는 예상했던 일이라는 반응도 많았다. 장례식과 장지 문제로 떠들썩했던 노태우 씨의 사망보다도 조용히 지나가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처음 소식을 접하고 나서는 놀라기도 하고, ‘이렇게 쉽게 죽었구나하는 생각에 꽤 충격을 받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밤이 될 때쯤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혼자 방에 누워있는데 대학원신문에서 글이라도 한 편 써야 하지 않겠냐며 선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글쎄, 그렇지만 무슨 글을 써야 할까. 골똘히 생각해보아도 떠오르지 않았다.

 1980년의 사건은 피해자와 그 유족들은 물론, 1980년이라는 시대 혹은 광주라는 도시와 연이 닿지 않은 이들의 인생까지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누군가는 사건 당시 규탄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에 평생 부채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또 누군가는 스무 살의 첫 기억을 지하 강당에서 선배들이 보여준 흑백 영상이라고 회고한다. 그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5월마다 광주에 가지 않았을 테고, 옛 전남도청엔 총탄 흔적도 없었을 테고, 구묘역이나 신묘역이라는 말이 이토록 입에 붙지 않았을 것이다. 또 강풀의 <26>, 한강의소년이 온다』 , 드라마 <오월의 청춘>도 없었을 텐데 그렇다면 죽음에 대한 감각마저 지금과는 전혀 달랐을 듯싶다. 그러나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어도 어쩐지 실감도 나지 않고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좀처럼 알 수 없었다. 그 사람은 나에게 언제나 또렷한 악인일 뿐이었고, 그의 사망은 분노보다는 허망함을 느끼게 했다.

 11 23일은 또 한 사람이 죽은 날이기도 하다. 1980 5 21일 척추에 계엄군의 총을 맞은 후 하반신이 마비된 그는 몸이 너무 아프고 힘들다. 5·18에 대한 원한이나 서운함을 모두 잊고 가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THE FACT》, 2021.11.24.). 전두환의 장례식에서 기자가 5·18 피해자에 관해 묻자, 그의 비서관을 지냈던 박철언 씨는 전두환 대통령 내외분께서 희생과 유혈 사태에 괴로워하시고 속히 치유되기를 기도하고 비는 얘기를 듣고 또 곁에서 봤다고 답했다(《한겨레》, 2021.11.24.). 같은 날 보도된 두 발언을 들으며 생각했다. 그가 학살 명령을 내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면 추징금 문제도 진상규명 문제도 좀 더 수월하게 풀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가 끝까지 인간답지 않은 사람이라 다행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