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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여자들이 죽고 싶어 했다” 본문

7면/사설

“여자들이 죽고 싶어 했다”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1. 11. 13. 22:18

내가 다마사스트라라는 경전을 읽으면서 정말로 읽고 있었던 것이 바로 그 미소라는 텍스트였다.”

- 가야트리 스피박, 응답,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스피박의 유명한 에세이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는 우리의 기대와 달리 서발턴은 말할 수 없다는 다소 비관적인 결론으로 끝난다. 서발턴은 말할 수 없으니 그들에게 주목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이 글이 쓰인 것은 물론 아니다. 오히려 서발턴이 말할 수 있다고 손쉽게 믿으며 그들이 처해 있는 겹겹의 억압적 조건을 무시하는 태도, 그리고 지식인의 해독을 곧바로 서발턴의 말하기와 동일시하는 성급한 접근방식을 경계하기 위한 글이라고 보는 것이 적합하다. 에세이를 발표하고 약 10년이 지난 후 스피박이 그 결론은 낙담과 절망으로 인한 선언이었으며, 실천적 측면에서도 결코 권장할 만한 주장이 아니라고 회고하면서도 결코 자신의 말을 철회하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스피박은 서발턴의 말하기가 지식인들에 의해 오해되거나 전유되는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고 있지만, 그중 인도의 과부 희생 관습인 사티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사티는 죽은 남편을 애도하기 위해 남편의 시신을 태운 장작더미에 스스로 오르는 힌두 과부의 자기-화살(火殺) 제의로, 인도 경전에서 유래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영국이 인도를 식민 지배하기 시작한 초기에 사티를 폐지했기 때문에 황인종 남자에게서 황인종 여자를 구해 준 백인종 남자의 전형으로 꼽히는 관습이기도 하다. 그런데 스피박은 사티 폐지가 의심의 여지 없는 ()’이었다고 인정하는 한편, 그 과정이 여성의 주체 형성에 개입했는가에 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고수한다. 더 나아가 제1세계 여성들이 외치는 국제적 페미니즘조차 시대의 흐름에 맞춰 재코드화된 문명화 사명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고 통렬히 비판한다.

사실 스피박은 어떤 한 장면을 염두에 두며 이와 같은 지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를 끊임없이 사로잡는 그 장면은, 사티가 금지된 지 수십 년이 지났을 1986년에 일어난 한 여성의 사티 자살과 그런 딸을 미소 지으며 바라보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딸의 죽음에 슬픔 대신 미소로 화답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그녀가 경전의 가르침을 얼마만큼 깊숙이 내재화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가르침에 억지로 체념하고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기꺼이 그 가르침에 따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스피박이 전하는 이 일화는, 여자들이 자발적으로 택한 죽음이라며 사티를 정당화하는 토착주의적 발언의 근거로 활용되기에 매우 적합한 사례이다. 그와 같은 위험을 무릅써서라도 스피박은, ‘여자들을 구해야 한다는 제1세계의 논리와 이에 대항하는 여자들이 죽고 싶어 했다는 인도의 토착주의적 논리 사이에서 우리는 과연 여성의 말을 듣고 있는지 끊임없이 묻는 것이다. 여성 억압적인 제의를 기꺼워하는 인물을 비판하고 거리를 두는 대신 그녀의 미소를 이해해보려는 스피박의 시도는 하나의 결단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