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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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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자본주의 논쟁과 우노 코조 : 글로벌 맑스주의의 부활 가능성?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2. 6. 3. 23:19

일본 자본주의 논쟁과 우노 코조 : 글로벌 맑스주의의 부활 가능성?

- Gavin Walker. The Sublime Perversion of Capital: Marxist Theory and the Politics of History in Modern Japan. Duke University Press, 2016.

 

염동규

 

이 책의 저자인 개빈 워커는 일본 자본주의 논쟁의 경험과 여기 참여한 걸출한 맑스주의 이론가 우노 코조(宇野弘蔵)의 논의를 자본주의에 대한 보편적 이론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메이지 유신이란 과연 부르주아 혁명이었느냐 아니었느냐, 따라서 1920년대의 일본 사회란 자본주의 사회냐 봉건 사회냐를 두고 강좌파(講座派)와 노농파(労農派)로 나누어져 10년 이상 논쟁을 펼친 일본 자본주의 논쟁은 일본 사회과학의 형성에 매우 중요한 계기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정작 그 자체로 잘 다뤄지지는 않는 영역이다. 개빈 워커는 바로 이 논쟁과, 여기 개입했던 우노 코조의 입장(개빈에 의하면 우노는 강좌파도 노농파도 아닌, 말하자면 제3의 길을 만들었다)을 통해 오늘날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입각지를 만들어 놓는 셈이다. 이 책의 핵심 논변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겠다.

책의 전체적인 기획을 소개하는 1장 이후, 2장에서 저자는 일본 자본주의 논쟁을 간략하게 정리한다. 이 정리를 통해 저자는 코민테른의 1927, 1932년 테제와의 관련성 속에서 강좌파의 이론이 탄생했다는 점, 따라서 일본 자본주의 논쟁은 비단 일본이라는 어느 한 지역의 특수한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맑스주의의 자장 안에 있었고, 이는 곧 글로벌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개입의 일환이었다고 말한다. 3장부터 6장까지는 우노 코조의 자본주의 이론에 맞추어 칼 슈미트(특히 Nomos, Katechon에 대한 논의)나 미셸 푸코(특히 Biopolitics), 들뢰즈·과타리(특히 territorialization) 등의 이론을 끌어들여 자본주의의 작동, 전개에 대한 우노 코조의 입장을 명료히 하고 그것이 오늘날에도 정치적 함의를 갖는 이유에 관해 설명한다.

간단히 말해 우노 코조는 노동력의 상품화 ()가능성에 착안하여 자본의 무리(無理; nihil of reason)’론을 펼친다. 자본의 순환은 노동력의 상품화에 달려 있는데 자본의 원환(圓環)만으로는 노동력을 직접 상품화할 수 없다. 따라서 자본의 순환은 결국 자본 외부의 장치들’(국가 등)에 의존하여 노동력을 자본 순환의 내부로 접혀 들어오게만들어야 한다(‘접혀 들어온다(fold into)’는 말은 노동력을 자본 속으로 내부화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자본의 외부인 동시에 내부이기도 한 노동력의 역설적인 포섭 양상을 기술하기 위해 개빈이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어휘이기도 하다. , 자본의 내부와 외부의 분할에 대한 개빈의 설명은 이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에 관해선 5장을 참고하라). 절대 연속적일 수도 자연적일 수도 없는 이러한 과정은, 개빈에 따르면, ‘마치(as if)’ 연속적이고 자연적인 과정이었던 양, 즉 자본으로 접혀 들어오게 된노동력이 마치 처음부터 자본 순환의 내부에 존재했었던 양 은폐된다. 한편, 개빈에 따르면 우노 코조의 3층위 분석(자본의 순수 원리론, 단계론, 정세 분석) 체계 중, 위에서 설명된 자본의 순수 원리론은, 종종 비판되는 것과 달리 대단히 실천적인 것이었다고 한다. 노동력 상품화 불가능성에 대한 우노의 강조점 자체가 자본의 순수 도식이 언제나 자본 도식 외부의 다질적인 것들에 대한 ()가능한 내부화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음(이 지점이 개빈에게 있어서는 자본 도식이 이미 항상 역사에 의해 오염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지점이기도 하다)을 암시하고, 바로 이 ()가능한 내부화의 지점에 정치와 저항의 가능성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우노에 의해서 위와 같이 파악된 자본의 작동 방식이 맑스주의의 오랜 난점을 이론적으로 해결해주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소위 말하는 맑스주의의 영향력 있는 조류들이 유럽 이외 지역의 역사 발전을 서구 유럽을 원형으로 하는 단계 이론에 따라 파악하면서 유럽 바깥 지역을 후진성(backwardness)’으로 파악하거나(대체로 일본 강좌파는 이 논변을 따른다), 반대로 유럽 바깥의 자본주의 발전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자본주의의 로컬라이징을 충분히 설명해지 못했던 것과 달리, 우노 코조의 논의는 노동력 상품화 ()가능성, 자본 도식의 외부에 대한 역설적 포섭론 등을 통해 자본 도식으로 접혀 들어온다는 로컬라이징의 차원을 다룰 수 있음은 물론, 자본 순환의 시작도 끝도 없는 시간성을 다룰 수 있어(이런 점에서 볼 때 우노가 1장에서 강조하는 역사성의 시간이란 자본 순환의 운동 속에서 그 가능성이 계속 지워지는 시간인 동시에 지금 당장이라도 시작될 것만 같은 시간으로, 여러모로 벤야민이 말한 역사의 천사를 연상시킨다) 단계론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개빈은 우노 코조에 주목함으로써 지역학의 한계 또한 가로지르는 논의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책이 출간된 뒤 영어·일본어로 대략 8편 정도의 서평이 출간되었는데, 이 책의 이론적 밀도나 잘 다뤄지지 않는 일본 자본주의 논쟁에 관해 연구했다는 점에 주목한 고평도 많은 한편, 구체적인 역사적 실례들을 다루는 데 소홀하다는 지적도 공통적으로 제기되는 편이다(C.Hill(2018), V.Murthy(2018), 磯前順一(2020)).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이다. 200페이지 남짓한 분량의 책이지만, 사실상 논의의 핵심은 20페이지 정도로 얼마든지 요약이 가능할 정도이므로, 이러느니 차라리 자본의 도식이 어떻게 자신의 외부를 외부로서 재코드화·로컬라이징하는지를 역사적 사례들을 통해 조금이나마 보여주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사실 개빈 워커의 전체적인 문제 의식은 그가 positions:politics에 발표한 “The World of the Outside”(2020)을 살펴보는 정도로도 웬만큼 파악될 수 있다). 그러나 어쩌면 더욱 구체적인 탐문은 저자의 후속 작업이나 우리 자신의 기여를 통해 이뤄질 수도 있긴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