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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양적 연구를 통해 문학의 현주소와 문단 권력의 실체를 밝히다 본문

3면/쟁점기획

양적 연구를 통해 문학의 현주소와 문단 권력의 실체를 밝히다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2. 10. 8. 18:20

문단 권력을 비판하던 목소리는 2000년대부터 있어 왔지만, 2015년 신경숙 표절 사태로 더욱 본격화됐다. 이 사태로 불거진 이른바 문학권력논쟁, 한 작가가 문단 내에서 작가로서의 자격과 지위를 얻는 과정과 방법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이다. 문학 권력의 실체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쪽에서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데에는 작가의 실제 문학적 역량보다 거대 출판사의 상업주의 전략과 정실주의(情實主義) 등과 같은 문학적인 이유가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문단 권력의 중심에 있는 창작과 비평, 문학과 사회, 문학동네3대 계간지와 그 출판사들은 이를 철저히 부정하고 있다. 지난 8, 3대 계간지에 신인문학상이 발표되었다. 소설평론 등 신인문학상 수상자들의 이력을 살펴보면 국어국문학과/문예창작학과 출신이 두드러진다. 이미 문단 내에 집단화되어 있는 특정 학과의 틀을 벗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이러한 문학 계간지와 문단 권력으로 구성된 문학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 문학의 사회적 구성 방식을 연구한 카이스트 전봉관 교수를 만났다.

 

 

밥그릇 싸움으로 전락한 문단의 현주소

이번 3면 쟁점 인터뷰의 기획은 문학 계간지의 서지 정보를 통해 문단이 특정한 사회적 조직화로 이어진다는 것을 밝힌 전봉관 교수의 연구(문예지를 매개로 한 한국 소설가들의 사회적 지형(현대소설연구, 2016))에 기반하여 이루어졌다. 먼저 전봉관 교수에게 어떤 계기로 이 연구 주제를 택하게 되었는지, 연구를 가능하게 했던 문제의식은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제가 이 연구에 착수했던 계기로는 사회적인 문제와 개인적인 필요가 동시에 작용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당시는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이 터진 2015년도였고, 특정 작가들을 둘러싼 문단 권력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지던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저 개인적으로도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의 석사과정생 한 명의 석사학위논문의 지도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저한테 이 문제의식을 제안해주었던 분이 이 연구의 공동저자이자 당시 석사과정생이었던 김병준 선생입니다. 그리고 그 때 데이터 사이언스를 활용해 문단 권력을 연구해보라고 조언하고, 그것을 지도해준 분이 이 연구의 교신저자인 이원재 선생이고요. 김병준 선생은 지금도 디지털 인문학과 데이터 사이언스를 통한 소셜 네트워크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는데, 이 연구가 그 출발점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로서도 두 분과 함께 이 연구를 진행했던 시간이 문단 권력에 대한 문제의식과 양적 연구방법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보람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연구에 참여했다고 해서, 문단 권력이 현대 사회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문단 권력 자체는 비판받아야 마땅하지만, 그 이유는 예전처럼 문학이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것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해야하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의 입지를 줄이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계간지가 나오면 설레는 기억으로 펼쳐보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에 영화나 드라마가 크게 성장함에 따라 문학이 가지고 있었던 시의성과 화제성은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그런데도 문단 권력은 문학의 입지를 지킬 생각은 하지 않고 그들만의 리그에서 한참 작아진 밥그릇을 가지고 싸움을 하고 있으니 쇠퇴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입니다. 실제로 현재 가장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할 수 있는 김영하 작가나 장강명 작가도 계간지와 문단 권력에 힘입어 만들어진 것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인기 방송사의 TV 프로그램에 고정 패널로 출연한 것이 훨씬 큰 영향을 미쳤죠. 창작뿐 아니라 독서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수의 작가들에게서 나온 소수의 문학 작품들만이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고, 현재 베스트셀러들은 대부분 문학 계열의 책들입니다. 따라서 현재의 문단 권력은 자체적인 쇄신의 필요성에 더해, 문학과 문단이라는 영역의 입지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기득권을 포기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하겠습니다.”

 

 

사라진 계간지의 특수성

문학 계간지는 1970~80년대 민중문학을 주창했던 창작과비평과 문학주의를 표방했던 문학과지성부터 1994년 창간된 문학동네까지 문학사적 흐름 속에서 이어져 왔다. 3대 계간지는 수많은 작가들과 지식인들의 담론장으로 기능했고, 지금까지도 문단의 중심에서 대표성을 가지고 있다. 현 시점에서 3대 계간지들의 특성은 어떻게 대별되는지, 각각의 계간지에서 등단/수상한 작가들의 작품은 어떤 경향을 띠는지 궁금하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현 시점에서 3대 계간지들의 특성은 뚜렷하게 대별되지 않습니다. 저희 연구는 94년도를 분석 기점으로 잡고 있는데, 2000년대 이후부터는 확연하게 획일화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저희는 이 연구에서 데이터 사이언스라는 양적 연구 방법론을 채택했기 때문에, 일부러 작가들의 작품은 제외하고 작가들의 출신성분에 따라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식으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대별해보면, 2000년대 이후 시점에서는 대부분 국어국문학과/문예창작학과/서울대-비국문과-남성의 극단적으로 편중된 네트워크 지도가 과거에 불문과독문과노문과 등 해외문학 전공자들이나 비전공자들도 빈번하게 문단에 등장한 것과는 대조적이죠. 물론 이러한 출신성분의 편중된 집단화 현상은 법조계나 학계 등 한국 사회 어느 곳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예술의 영역인 문학계가 이렇게 획일화되고 개성을 잃어간다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입니다. 그나마 문학동네가 대별되는 네트워크 분포를 보이고 있기는 합니다. 문학동네는 아예 순문학을 표방하여 나온 계간지인 만큼 활동 작가들이 비교적 독특한 구성성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이 역시 지나치게 순문학을 표방하다 보니 대중들의 관심을 거의 얻지 못해 문예지면 상에만 등장하거나, 그 색깔 자체가 점차 옅어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각 계간지에서 등단/수상하는 작가들의 분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는 특정 문예지를 이야기할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작가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 역시 기득권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어쨌든 당시에는 한 작가의 작품이 문예지의 특수성을 대변할 수 있을 정도로 뚜렷한 개성이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현재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컨대 저희 연구에서는 각 계간지의 작가들을 인정 작가주도 작가순혈 작가로 나누어 분석했습니다. 한 번이라도 출판사에서 해당 작가의 글을 다루면 인정 작가, 해당 출판사에서 글을 게재하고 단행본도 출판했으면 주도 작가, 해당 계간지에서 등단을 했고 현재까지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면 순혈 작가로 설정했습니다. 주도 작가와 순혈 작가는 출판사에서 이른바 밀어주는작가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3대 계간지에서 모두 주도 작가로 활동하는 작가들의 숫자가 훨씬 많아집니다.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작가의 순혈성이 줄어들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전처럼 계간지의 취향이 강하고 색깔이 확실했다면, 이렇게 작가들이 돌아가면서 글을 싣는 일은 불가능했을 거예요. 따라서 겉으로 드러나는 작가들의 특성과 면면을 보더라도 계간지의 특수성은 거의 사라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평가 권력의 폐단과 극복 방안으로서의 양적 연구

문단이라는 특수한 집단의 권력은 등단과 수상을 결정하는 교수작가평론가들의 이른바 평가 권력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수치화통계화되지 않는 문학의 특성상, 그 평가는 몇몇의 전문가에게 의존하게 되고 그 때문에 평가 권력은 강한 주관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주관적 평가 권력이 만들어낸 폐단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러한 평가 권력은 어떤 방식으로 비판하고 극복할 수 있을까.

편중된 평가자가 가진 위계나 권위 등의 문제는 이미 수차례에 걸쳐 문제제기가 됐던 내용이니 생략하고, 여기에서는 소설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개인적으로 느낀 폐단을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일은 계간지가 획일화되면서 문단이 원하는 작품의 스타일이 고정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서사성보다는 문체나 문장의 세련됨을 훨씬 더 중시하게 됐죠. 문제는 이게 출판사 측에서 어느 한 쪽을 취사선택해서 작가들에가 강요할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현대문학의 문단이 제대로 정립되던 시절의 소설가들이라고 할 수 있는 최인훈이청준김승옥 등의 작가들만 봐도, 유려한 미문을 구사하면서도 굉장히 강렬한 서사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독자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계간지 혹은 문예지를 펴 볼 수 있는 이유였죠.

그에 비해 현재 계간지에서 발표되는 작품들의 인상을 총평하자면, 모든 작가가 멀미가 날 정도로 현란한 문장을 쓰는 것만이 목표인 것처럼 보입니다. 이를 위해 누구도 쉽게 공감하지 못할 자의식을 일부러 더 과잉되게 만들고,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리얼리티와 담론은 쉽게 무시해버리죠. 그러니 대중들로부터도 외면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와 친한 한 소설가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소수의 문단 권력이 자기 입맛에 맞는 소설만 찾다 보니, 아무 맛도 없는 음식만을 자꾸 생산해가는 구조가 되어버렸다고 비판하더군요. 표현은 과격할지라도 소설을 좋아하는 현역 소설가의 말에 저 역시 크게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다시 한 번 말씀드리고 싶은 사실은, 평가 권력의 가장 큰 문제는 더 이상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기득권과 적폐의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안 그래도 힘든 문학계를 스스로 더 망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평가 권력은 그 자체가 주관성에 근거하기 때문에, 드러나는 방식도 객관적이지 않아 비판하기가 어렵습니다. 사실 이 분야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은 문단 권력에 대해 다 알 만큼 알고 있어요. 예컨대 한 주요 계간지의 편집위원들은 여전히 일주일에 한 번씩 모임을 가지고, 항상 가족과 같은 인맥을 형성하고 있는데 관계자들은 모르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를 비판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돈독한 동료들끼리의 관계성이라고 설명하면 이야기가 더 진척될 수 없어요. 그래서 저는 문단 지형에 대한 양적 연구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적인 관계에서 나오는 추상적인 형태의 특권이나 독점을 수치화통계화하는 것이 데이터 사이언스이기 때문입니다. 저희 연구의 교신 저자였던 이원재 선생은 표와 수치적 근거를 통해 한국 문단의 정실성이 한국에서 가장 단단한 카르텔이라고 할 수 있는 법조계만큼이나 강한 정실성이라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이런 양적 방식으로 주관적 평가 권력에 양적 통계를 보여줄 수 있다면, 평가 권력을 당연시하는 독자들의 인식과 더불어 문단 권력의 형태도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단 바깥이라는 상상력

문학 자체가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문단 권력 역시 축소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2018년 문단 미투 운동, 2020년 이상문학상 수상거부 사태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여전히 제도권 내에서 등단을 꿈꾸는 소설가시인비평가 지망생들은 계간지와 문단 권력의 횡포에 노출되어 있다. 이들이 문단 권력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언이 필요할지, 마지막으로 전봉관 교수에게 물었다.

소설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앞선 답변에 이어 말씀드리자면, 일단 현 문단이 장악하고 있는 제도권을 벗어날 수 있는 상상력을 길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현재 문학을 공부하고 글을 쓰는 분들이 서사를 풀어갈 수 있는 능력 자체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문단 권력이 요구하는 없는 자의식을 공부하고 만들어내려고 하는 데 너무 많은 노력을 쓰는 것 같아요. 최근 있었던 영화와 드라마, 웹툰과 웹소설 등의 약진을 보면 새로운 서사를 발견하고 만들어내는 저력은 괄목할 만합니다. 그리고 대중들이 좋아하는 것은 <오징어게임>(2021, NETFLIX)이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2022, ENA)와 같은 강렬한 서사성입니다. 물론 이런 드라마의 대사들에 서툴고 유치한 부분이 있는 것도 맞아요. 하지만 원래 문학을 공부하고 글을 썼던 사람들이 서사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고, 본래의 재능을 이러한 분야에 쏟을 수 있따면 훌륭한 보완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문학의 몰락이라는 것은 비단 한국과 한국 문단에서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형국에서 문학을 지키기 위해 제도권 내의 작가나 지망생들이 순문학을 고집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현상입니다. 다만 읽히지 않는 문학은 많은 의미를 상실합니다. 문학을 지키고 읽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제도권이 요구하는 것을 벗어나서 제도권 바깥의 여러 컨텐츠에 눈을 돌리고 그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