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Women, Life, Freedom’을 위한 경계 없는 연대주의를 향하여 본문

3면/쟁점기획

‘Women, Life, Freedom’을 위한 경계 없는 연대주의를 향하여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2. 12. 12. 17:50

‘Women, Life, Freedom’을 위한 경계 없는 연대주의를 향하여

-이란 히잡법 반대 시위의 배경과 전개

지난 916, 테헤란을 방문한 쿠르드 출신 여성 마흐사 아미니는 복장이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에 검거체포되어 교육 센터에 보내졌고, 이내 원인불명의 혼수상태에 빠진 뒤 사망하였다. 이란 전역에서는 이번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이를 규탄하기 위한 대대적인 시위가 일어났으며, 더 나아가 체제 자체의 변화를 요구하면서 많은 이란 시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1979년 팔라비 왕조가 무너지고 신정(神政) 국가인 현재의 이슬람 공화국이 세워지면서 강력한 이슬람 근본주의를 관철하기 시작한 이란에서는 여권 신장 운동, 또는 체제 자체에 대한 저항의 움직임도 있었지만, 정부의 강경한 탄압에 의해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어내지 못한 채 매번 무마되었다. 이번 시위 역시 전에 없는 규모를 갖추고 이란 정부를 압박하고 있지만, 정부가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면서 불투명한 전망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본지에서는 이번 시위를 둘러싼 정치적종교적인 쟁점들을 짚어보고, 현 사태에 대한 종합적인 진단을 내리기 위해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의 구기연 교수를 만났다.

 

시위의 직접적인 원인과 전개 과정

마흐사 아미니를 사망에 이르게 한 배경에는 이란 고유의 히잡법과 도덕 경찰 등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이번 시위가 촉발된 구체적인 계기는 무엇이었으며, 이후 시위는 어떻게 진행되어왔는지 물었다.

이란에서는 9세 이상 모든 여성이 머리카락과 목을 가리는 히잡을 반드시 착용하도록 법으로 제정되어 있습니다. 1979, 이란 이슬람 혁명으로 독재 왕정을 무너뜨리며 수립된 공화국을 대내외적으로 선포하기 위해 가장 가시적이고 효과적인 수단으로서 여성에게 히잡을 쓰도록 한 것이죠. 처음에는 공무원이나 교사 등 특정 직업에 국한되었지만, 1983년에 히잡 착용이 전면 의무화되면서 이를 어길 시 벌금형이나 태형이 내려지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이란 사회에서 히잡을 비롯한 이슬람 도덕 규범을 일상적으로 따르도록 단속하는 것이 바로 도덕 경찰입니다. 아미니 역시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에게 체포되었죠. 그런데 조사를 받던 아미니가 갑자기 심장마비가 온 것처럼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졌고, 결국 며칠 뒤에 사망했습니다. 정부는 아미니가 원래 지병을 앓고 있어 심장마비로 돌연사했다고 보도했지만, 실제 사인을 둘러싸고 여러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아니미의 사망 경위에 대해 확실하게 밝혀진 건 없습니다만 설령 아미니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하더라도, 22살이었던 그녀의 죽음 자체가 수많은 여성을 내가 죽었을 수도 있다라는 분노와 공포에 휩싸이게 한 것이죠.

특히 닐루파 하메디라는 기자가 혼수상태에 빠진 딸 앞에서 울고 있는 아미니 부모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공유하자 이에 분개한 여성들이 거리로 뛰쳐나왔고, SNS에서 ‘#나는아미니다라는 해시태그 운동도 활발하게 전개되기 시작했습니다. 또 시신을 싣고 테헤란에서부터 아미니의 고향까지 이동하는 길에 수백만 명이 모여 그녀를 배웅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위가 확산되어 갔습니다. 시위대 역시 점차 성별과 세대를 아우르며 확대되었고, 그 목소리는 히잡 착용 의무 폐지뿐 아니라 정권 붕괴에 대한 요구로도 이어졌습니다. , 이번 시위는 한 여성의 죽음으로 촉발되었지만, 이는 40여 년 동안 경제·인권·자유를 둘러싼 사회 전반적인 문제들에 대한 불만이 쏟아져 나오면서 이란 정권에 대한 전방위적인 저항 시위로 번져가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구기연 교수 ⓒ  본인제공

 

시위의 전방위적 성격과 이란 정부의 강경 대응

이번 시위는 여성의 히잡 의무착용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여성 인권 운동인 동시에, 정부의 기조 전반을 규탄한다는 점에서 민주화 운동으로도 볼 수 있다. 이에 시위대는 그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반대로 이란 정부에서는 이를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지 물었다.

““Women, Life, Freedom”이라는 시위대의 구호처럼, 이들이 바라는 가장 중요한 것은 여성, 인권·생명, 그리고 자유입니다. 여성의 인권을 보장하지 않는 국가는 인간 전체에 대한 자유와 인권을 보장할 수 없으며, 이는 국가로서 가치가 없다는 것이죠. 히잡 문제로 시작된 이번 시위가 이란 사회에서 이토록 광범위한 지지를 받게 된 것도 이러한 의미에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사실 도덕 경찰의 단속 대상이 되는 것은 여성만이 아닙니다. 반바지나 민소매 등 이슬람 문화에 따르지 않는 복장을 한 남성, 혹은 도덕 경찰이 판단하기에 지나치게 친밀해 보이는 남녀 관계 역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당사자뿐 아니라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어, 매우 촘촘한 상호 감시 체제 속에서 사회적 규범을 일상적으로 강제하고 있죠. 따라서 히잡법과 도덕 경찰이 이란인들의 기본적인 자유를 침해한다는 근본적인 문제에 수많은 남성이 공감하며 시위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이른바 ‘MZ세대역시 자신들이 살아갈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결국 시위대가 요구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근본적인 자유와 권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란 정부는 시위대를 자치적이고 자생적인 세력으로 인정하지 않고 미국,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등 이란 내부 질서를 흔들고자 하는 외부 세력으로부터 조종당한 것이라며 늘 해왔던 주장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시위대를 국가 정권을 흔드는 반란 세력, 또는 폭동으로 규정하며 민간인에 대한 잔혹한 탄압을 이어가고 있죠. 아미니 사건을 보도했던 하메디는 테헤란의 악명 높은 정치범 수용소에 감금되었으며, 지금까지 약 15,000명이 체포, 3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 탄압에도 불구하고 시위대는 두 달이 넘도록 활기를 잃지 않고 있으며, 이란 시민들과 국제사회에서도 끊임없는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비타협적 히잡 정책과 이란 사회 내 여성 인권의 복합적인 현실

이란의 최고 종교 지도자인 하메네이(Ali Khamenei)와 라이시 대통령(Ebrahim Raisi)이 모두 근본적 강경파로 알려져 있는 만큼, 정부 수립부터 이어져 온 히잡 정책에 대한 태도는 당분간 변화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이란 정부가 히잡 의무착용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이를 통해 이란 사회에서 여성 인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란 사회에서 여성의 히잡 착용은 강력한 정치적 상징입니다. 따라서 정부는 히잡 규정을 의무가 아닌 자율로 완화하게 된다면, 사회 전반에 걸쳐 묵혀왔던 대중의 불만이 터져 나와 이슬람 신정체제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히잡 문제가 늘 대선에서 중요한 쟁점으로 언급된다는 것입니다. 선거 전에는 이슬람적 가치를 지키는 적정한 선 안에서만 히잡을 규제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기도 하지만, 정작 당선되고 나서는 돌변하곤 합니다. 정치와 종교를 합친 현재 이란의 신정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히잡이 매우 중요한 상징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에 이를 포기하는 것은 이슬람 국가라는 이란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입장인 것이죠. 이것이 이란 정부가 히잡 문제에 대해 비타협적 태도를 고수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히잡에 대한 비타협적인 태도를 여성 인권 자체에 대한 비타협적 태도와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히잡을 무조건 이슬람의 전근대성이나 여성 억압의 상징으로 이해하거나 이란 여성의 지위와 인권을 히잡만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이란 사회, 그리고 이슬람 전반에 대한 지나친 단순화이자 오해입니다. 이란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여러 문제에 당면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란에서는 근대화 시기 이후부터 풀뿌리 여성운동의 역사가 오랫동안 이어져 왔으며 타 이슬람 국가들보다 여성 교육 수준이나 사회 진출이 높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또한, 국제정치의 관점에서 볼 때 이란이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보니, 이란 내의 문제가 다른 중동·이슬람 국가들보다 근본적으로 심각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죠.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히잡 그 자체를 억압의 상징이라고 규정하며 이를 무조건 벗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을뿐더러, 시위대가 요구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수많은 이란인이 목숨을 걸고 외치고 있는 것은 바로 히잡을 쓸 수 있도록 하는 자율성, 선택할 수 있는 권리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슬람 교리에 대한 변혁적 해석의 시도로서 이슬람 페미니즘

그동안 여성 탄압의 종교적 근거로서 이슬람 근본주의가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근본주의에서 벗어나 이슬람 경전교리문화를 새롭게 해석하고자 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변혁적 시도가 앞으로 정권을 압박하는 무기가 될 수 있을지 물었다.

사실 중동 이슬람권에서 페미니즘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코란을 여성학적 관점에서 해석하고자 하는 시도는 오랫동안 이어져 왔습니다. 이슬람 자체보다는 이슬람을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활용하고자 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죠. 그 역사를 간단하게 살펴보면,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이슬람 개혁주의적인 시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는 점차 민족주의, 마르크스주의, 서구 페미니즘과 토착 페미니즘 등과 만나 여러 노선과 단계를 거쳐 갔습니다. 그런데 이란 이슬람 혁명으로 이슬람 근본주의가 강해지면서 이후 이슬람이라는 구조 속에서 여성의 권리를 재인식하고 재정적 권한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죠. 이어서 1980년대에 등장한 이슬람 페미니즘은 이슬람 자체를 여성 억압의 근원으로 보는 서구식 페미니즘과 달리 이슬람 경전에 대한 여성주의적 해석을 통해 이슬람 사회의 젠더 이슈를 비판적으로 재조명하고자 하는, 이슬람 시각의 여성주의로서 등장했습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히잡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이슬람 페미니즘에서는 히잡을 쓰는 여성들을 이슬람적 정체성을 가지는 행위자로 바라보곤 합니다. , 히잡의 종교적 의미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남성 중심적인 국가 체제하의 강제적인 히잡 정책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는 등 이를 다각적으로 접근하고자 하는 것이죠. , 이슬람 페미니즘은 이슬람 전통주의와 가치에 근거하여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정체성을 보호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이슬람 내에서 오랜 기간 발전해온 자성적인 노력과 새로운 해석은 결국 정권을 압박하고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위의 전망과 국제적 연대의 필요성

일각에서는 시위대가 뚜렷한 구심점이나 지도층을 확보하지 못해 쉽게 와해되거나, 이란 정부가 주변국의 국경 도발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에 이번 시위의 의의는 무엇이며, 전망은 어떠한지 물었다.

혁명으로 독재적인 왕을 몰아낸 이란이었지만, 이내 신의 이름으로 독재가 다시 이어졌습니다. 이런 역사적 경험을 가진 이란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한 명의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보다, 오히려 이번 시위에서처럼 느슨하고 자발적인 연대일 것입니다. 또한, 지금 명확하게 드러난 지도자는 없지만, 이란 사회 내에서 다양한 집단을 아우르는 비밀 연락망이 충분히 형성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온전히 자발적인 참여로 계층·젠더·민족을 아우르며 이란 역사상 최대 규모로 진행되고 있는 이번 시위는, 근본적인 자유와 인권 문제를 둘러싸고 이란 정부에 위기감을 느끼게 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지닙니다.

지금 이란 정권은 민중의 분노와 저항을 의식하고 유화정책을 실시하거나, 무자비한 탄압을 이어나가는 두 가지 선택지 앞에 놓여있습니다. 겉으로는 강경 대응을 이어갈지라도, 민중의 목소리를 억누를 수만은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유화정책을 펼쳐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물론, 아직까지 이란 정부는 단호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는 등 위기감이 조성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소문의 배경에는 이란인 디아스포라를 중심으로 한 뉴미디어의 확산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번 시위를 국제사회에 공론화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매체인 이란 인터내셔널(Iran International)’이 사우디 원조를 받는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이란 정부는 이를 사우디의 간섭 전략이라며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우디 침공은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적어 보이지만, 적어도 주변 국가들로부터 이란 내부 문제에 더는 간섭하지 말라는 경고 조치라고 볼 수 있죠.

그런데 역으로 생각하면 이번 시위의 중요한 특징이자 우리의 역할이 바로 이와 같은 경계 없는 연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란 인터내셔널과 같은 이란인 디아스포라 매체를 통해 시위 현장이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연대의 장이 국경을 넘어 확대되고 있습니다. 지난 9월에는 서울 테헤란로에 이란인 100여 명, 10월에는 베를린에서 8~10만 명의 시민이 모여 이란 시위에 지지를 표하며 모이기도 했죠. 시위대나 재한 이란인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이러한 국제적 연대를 보며 시위대가 힘을 많이 얻는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사안에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냄으로써 시위대에게는 응원과 지지를 보내고 이란 정부에게는 압박을 가하기 위한 연대의 노력은 앞으로도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최서윤 기자 jensyc@daum.net

이영서 기자 youngseo51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