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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비거니즘, 소수가 아닌 모두를 사유할 수 있는 문화 본문
기획의 변: 2022년 F/W 서울패션위크에서 선보인 ‘비건타이거’의 비건패션은 비건이 식생활의 영역을 넘어 우리 삶의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처럼 ‘비거니즘(Veganism)’은 단순히 ‘채식주의’를 뜻하는 것만이 아닌, 의류, 화장품 등 생활 전면에서 동물에 대한 잔혹 행위를 배제하는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이에 본지에서는 ‘비거니즘’을 어떻게 바라보고 확장해 나갈 수 있는지를 톺아보고자 비건생활연구소 강소양, 최서연 활동가와 스웨덴 스톡홀름대학교 대학원 환경사회과학과 원혜림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비거니즘, 소수가 아닌 모두를 사유할 수 있는 문화
[기획 인터뷰]
과거 ‘비거니즘’은 소수의 문화로 여겨졌으나, 최근 코로나19 팬데믹과 기후변화를 계기로 동물복지, 환경보존 등에 관심 갖는 소비자들이 급격히 늘어나며 하나의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소비자들은 상품의 질을 넘어 환경보호와 생명까지도 함께 고려하는 ‘윤리적’ 소비를 추구하게 되었고 기업은 이러한 가치 소비의 수요를 반영하여 친환경을 강조하고 동물성 소재를 배제한 ‘비건 프렌들리’ 전략을 추진하고 있으며 시장 규모 역시 커지는 추세다. 이러한 환경적인 요인을 넘어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부각되고 있는 비거니즘을 단순 유행에 그치지 않고 일상생활로 확장해 나가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향이 필요할지, 비건생활연구소 강소영, 최서연 활동가에게 물었다
비거니즘의 지향점과 이를 위한 노력
‘비거니즘’은 식생활을 넘어 일상적인 삶 전반에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비거니즘이 그동안 어떻게 인식되어 왔고, 그것이 지향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물었다.“비거니즘의 시작점은 우선 채식인데, 이를 시작하시는 분들은 보통 동물복지, 기후변화, 환경문제 등 다양한 문제의식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관련 공부를 심도 있게 하고 실천도 매우 엄격하게 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급진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죠. 이런 활동가분들의 노력으로 인해 비거니즘 사회가 꾸준히 유지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최근에는 대학에서도 채식 동아리의 활동이 늘어나고 있는 등 젊은 세대의 참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요. 이렇게 각지에서 행해지는 다양한 참여와 실천들이 있기에 현재 비거니즘이 식생활을 넘어 우리 사회 전반에 정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채식과 더불어 소비패턴의 변화도 비거니즘의 일부입니다. 흔히 입는 모직물은 생산과정 중 가축에게 약물을 투입해 도축하거나 산채로 가죽을 벗기는 잔인한 경우가 많고 원재료가 어떻게 생산되었는지 일일이 확인하기도 어렵습니다. 육류 역시 항생제나 성장촉진제를 과도하게 사용해 사육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접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코트, 신발 등부터 샴푸, 화장품 등 점차 비건 친화적인 제품으로 바꿔 사용하게 되더라고요. 이것이 곧 비거니즘의 실천으로 이어지고 이는 플라스틱 사용 감소 등 다른 환경문제의 인식으로 확장되며 더 나아가 개인의 건강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그러나 비거니즘과 관련한 급진적인 모습을 외부에서 바라볼 때, 사람들은 이를 자신의 행동과 비교하여 큰 괴리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 자신과 먼 이야기라고 생각하죠. 식사요법 차원에서 채소를 많이 섭취하는 사람들에게 현재하고 있는 행동도 비거니즘의 일부라고 말하면 오히려 거부감을 느끼곤 합니다. 이렇듯 비거니즘의 가치를 처음 접하는 경우 해당 이야기를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고, 본인도 모르게 방어기제로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행동들이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무도 모르고 이런 가치의 작은 전파가 나비효과로 돌아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실제로 채식에 대해서 비관적으로 말씀하시던 분이 10년 후 채식을 하고 관련된 책을 쓰는 것을 직접 목격한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 항상 만나는 사람에게 진심을 담아 행동하려 합니다. 또한, 이러한 간극을 줄이고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 ‘비건 페스티벌’ 등을 매년 개최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비거니즘은 삶의 지향점이자 가치관이기 때문에 삶의 양식 자체를 규정하고 변화시킵니다. 저 역시도 이런 이야기를 자신 있게 하기 위해선 스스로를 거짓 없이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인 여러 어려움으로 자신과 타협하고자 하는 순간이 문득 찾아오는데 그럴 때마다 본인이 정립한 방향성을 상기하며 흔들리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아무래도 이런 것을 다른 분들에게 강요하기엔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육류산업에 종사하시는 분은 그 산업이 그분들의 생업이기에 무작정 채식을 강요할 수는 없는 것처럼, 경우에 따라선 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간극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지 비거니즘을 실천하고 관심 있는 분들과 소통하며 추후 나아갈 방향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비거니즘의 경제·사회 속 긍정적 영향
비거니즘 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으나, 아직 우리의 일상에 완전히 정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동안 비거니즘이 윤리학적으로 소비자들을 설득해 왔다면, 이제는 경제·사회학적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 따라서 비거니즘이 경제·사회적으로 어떠한 이점을 지니며, 이를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안이 있을지 물었다.“저희는 비거니즘이 지닌 경제적 효과가 높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경제적 효과가 높다고 말할 때 효용성 높은 물질을 생산해 판매를 극대화하는 과정을 말하지만, 그 과정에서 환경이 얼마나 파괴되는지는 고려하지 않습니다. 축산업을 3년 이상 운영한 토지에서는 그 오염으로 인해 10년 이상 농사를 짓기 어렵다고 하는데, 이는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 세대의 자원을 우리가 미리 끌어 쓴 것이고 책임져야 할 부분입니다. 또한, 초가공식품, 즉석식품 등의 소비와 섭취가 늘어나는 만큼 건강의 적신호도 증가하는데, 이는 의료·보건 비용과도 즉결됩니다. 이러한 비용 역시 경제성과 함께 고려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와 같은 환경·사회적인 경제 요소까지 고려하면 비거니즘은 우리가 직접적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게 합니다. 오히려 매우 경제적인 생활방식이죠.이를 더 적극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제도권에서 환경에 대한 비거니즘의 긍정적 영향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혁신적이고 단발적인 변화를 바라기보다는 아이들이 점진적으로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고 다음 세대까지 고려하도록 이끌 수 있는 교육이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학교에 가는 게 아니라 기후변화를 위해 시위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라고 말한 것처럼 문제의식을 교육에 담아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현세대는 충분히 여기까지 고민할 수 있는 의식 수준에 도달했다고 생각합니다.”
건강한 비건 제품을 위한 제도적 선순환의 필요성
비거니즘을 실천하고자 하는 인구는 점차 증가하고 있지만, 시장 내 비건 제품은 아직도 일반제품과 비교했을 때는 가격이 높은 축에 속한다. 이로 인해 소비자들의 진입장벽이 허물어지지 않는 경향이 있기도 한데, 이러한 현상의 근본적 이유에 대해 물었다. “유명 프랜차이즈 버거의 패티는 사실상 1천 원이 안 되는 가격으로 공급됩니다. 원가는 그보다 더 저렴하고요. 수제버거를 생각해보면 보통 1~1.5만 원 정도로 가격이 책정되는데 그게 햄버거의 정상적인 가격입니다.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이 가능한 실질적인 이유는 축산업을 지원하는 정책과 지원금이 소비자에게 돌아갈 수 있는 구조적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건 제품에는 이러한 지원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이미 2010년경 유럽에서는 거대한 공장식 축산업을 운영하는 다국적 기업에 환경부담금을 크게 책정하고 유기농이나 비건 제품을 생산하는 영세농들에게 많은 지원을 했습니다. 또한, 친환경, 유기농으로 양질의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에는 수출을 장려·지원하는 등 세금의 선순환 구조가 잘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비건 제품을 생산하는 많은 기업이 아직 영세한 규모인데 이런 경우에는 저렴하게 판매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아무리 합리적으로 가격을 매겨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비싸다고 생각해 판매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제도·정책적으로 많은 지원이 이뤄져 선순환의 구조가 자리 잡았으면 합니다. 아직은 비건 시장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으나 시장의 규모가 확장되면 개인 생산자도 대량생산이 가능해 저렴하게 판매가 가능해지고 이를 통해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소비가 가능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갈림길에 선 한국의 비건시장
최근 시장에서 비거니즘은 마케팅 요소로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비거니즘의 지나친 마케팅화가 그 윤리적 본의를 퇴색시킨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 속에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물었다. “대기업에서 비건을 마케팅 요소로 사용하는 것을 저지할 순 없습니다. 그에 대한 긍정적인 효과도 분명히 있고요. 한국은 사회적 특성상 본인이 사회적으로 고립되거나 유별나 보이는 것에 거부감이 있기에 이러한 네트워킹을 통해 본인이 집단 안에 있다는 소속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소비자들이 자신 역시 안전한 그룹 안에서 정상성을 가지고 소비하고 있으며, 본인의 일상생활이 다른 사람과 특별하게 다르지 않다는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다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부분입니다. 저희도 과거에 비해 최근 비건이라는 단어가 거리에 즐비한 것을 보면 매우 생경합니다. 그러한 변화들이 비건의 실천을 남들과 특별히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할 수 있게 해서, 비건에 진입할 수 있는 문턱을 낮추는 것이죠. 대기업에서도 비건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은 그에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해서 저희는 이러한 현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요. 저희가 비건 페스티벌을 처음 진행했던 2016년에 비해서 지금은 검색수만 거의 100배 가까이 증가해 관심도가 높아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비건이 마케팅 요소로 활용되고 있는 반면, 현재 한국의 비건 시장은 북미과 유럽 비건 시장의 중간쯤 위치에 있습니다. 비건 시장은 크게 북미식과 유럽식으로 나눌 수 있는데, 북미식의 경우 1990년대 후반부터 대기업 중심으로 질 좋은 제품을 생산하는 소규모 식품회사들을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안에는 비건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도 많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비건은 건강한 제품과 단순 식물성 제품 모두를 의미합니다. 즉 식물성이면 비건이라는 이름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한데, 이런 경우 GMO 제품을 사용하는 등 친환경과 거리가 멀고 화학적 조미료를 사용해 맛을 내는 등 영양적으로도 좋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건 제품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비건 제품을 통해 회사의 이윤만 높이는 거죠. 그러나 유럽의 경우는 비건에 대해 정책적으로 접근해 정부, 시민단체 등과 연계가 잘 되어있습니다. 이에 비건 제품을 생산하는 농가를 적극적으로 지원을 하고 농가에서도 자발적으로 비건 활동의 주체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금 한국의 비건 시장은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저는 소비자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정부나 대기업에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모습을 보이면 좋겠어요. 오래 걸리고 느리더라고 균형을 잘 잡아가면서 성장해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두의 노력으로 완성되는 비거니즘
비건 제품이 대체물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확실한 시장 변별력을 갖기 위해 비거니즘 생산자와 소비자가 지향해야 할 태도와 정부 기관의 역할에 대해 질문했다.“비거니즘의 핵심은 사실 식단입니다.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그 시작점이기도 하고 생활방식까지 넓혀나갈 수 있는 중요한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소비자로서는 친환경 재료를 사용한 비건 제품을 생산하는 것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 소비자 커뮤니티를 통해 비건 생활방식에 부합되는 기준을 마련하고 그것을 정부와 기업에 요청하는 적극적인 소비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생산자의 경우 소비자들이 목소리를 반영해 좋은 제품을 생산할 필요가 있지만 본인들도 비거니즘을 직접 실천해보면서 소비자의 요구를 직접적으로 느끼고 부합하는 실천적인 동참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자연에 대한 인식을 강화할 수 있는 제도가 정부 차원에서 마련되었으면 합니다. 자연은 여러 세대가 사용하는 공공재입니다. 이를 위해 환경부담금 등의 제도적인 부분을 강화하고 유기농과 비건 제품의 생산기업을 지원하는 제도가 신설되었으면 합니다. 이러한 고민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해요. 여러 노력이 충분히 동반된다면 향후 K-비건제품이 큰바람을 불러올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연광 기자 dusrhkd99@korea.ac.kr
조수아 기자 lovelove992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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