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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진정한 ‘화해’를 위한 이해와 협의라는 필수조건 본문

3면/쟁점기획

진정한 ‘화해’를 위한 이해와 협의라는 필수조건

알 수 없는 사용자 2023. 5. 23. 01:42

 

- 한일관계의 현안과 전망을 논하다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핵심 외교안보 공약으로 삼으며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정상회담 개최를 비롯하여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최근 강제징용 피해 배상에 대해 ‘제3자 변제안’을 발표하면서 한일 간 역사 문제에 대한 정부 대응에 반대 여론이 강하게 일고 있다. 이에 윤 대통령은 “과거에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과거사 문제 보다는 경제·안보 등의 현안에 더욱 중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본지에서는 대일외교를 둘러싼 정치공학적 쟁점들을 짚어보고 현 상황을 종합적으로 진단하기 위해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의 조진구 교수를 만났다.

 

윤석열 정부의 대일 정책과 ‘협력 파트너’로서의 일본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와 현 야권의 ‘반일’ 정책을 비판하며 일본을 ‘안보·경제·글로벌 아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처럼 현 정부의 대일 정책의 기조는 무엇이며, 이전 정권과 비교했을 때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물었다.

  “먼저,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직후와 현재를 비교했을 때 양국의 국력 차가 현저하게 줄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1964년에 겨우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던 한국이 무역 강국으로 성장하면서 일본에서는 한국을 경쟁 상대로 인식하게 된 것이죠. 따라서 굳이 과거사 문제에서 한국에 대한 배려나 고려를 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기도 합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자국의 경제적·정치적 발전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보니 일본과의 관계를 대등하게 보려고 하는 경향이 있죠.

  이를 바탕으로 현 정부가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은 한일관계의 개선입니다. 2018년에 한국 대법원이 일본 기업에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에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리자, 이를 둘러싼 갈등으로 인해 일본은 한국에 대해 보복성 수출 규제를, 한국 정부는 지소미아(GSOMIA) 효력 정지를 통보하면서 한일관계가 악화되었습니다. 또, 코로나19 팬데믹이 지속되면서 민간의 교류까지 중단되어, 한일관계는 어두운 터널 속에 갇혀버렸죠.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한일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한국의 국익에 부합한다고 보았고, 그 일환으로 나온 것이 ‘제3자 변제안’입니다. 발표 이후에 일본은 한국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고, 곧이어 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경제·무역·안보 문제에 관한 합의와 지속적인 협력 의사를 밝혔죠.

  다만 아직까지 대일 정책의 구체적인 목표나 방향이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고 있습니다. 안보 측면에서 본다면, 한일관계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 미중 갈등, 대만 문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 등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매우 중요한 동맹국이기 때문에, 최근 국제질서의 변화와 한국의 달라진 위상과 역할을 단순히 대북 억제력뿐 아니라 동아시아와 한미·한미일 안보동맹동의 차원에서 폭넓게 모색하며 한일관계를 설정해야 합니다.”

 

한일 간 역사 논쟁과 ‘제3자 변제안’의 정치·외교적 배경

지난 3월, 피해 배상 책임이 있는 전범 기업 대신 한국 정부 산하의 재단이 배상금을 대신 지급하는 ‘제3자 변제안’이 제시되면서 일본의 전쟁범죄에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비판이 강하게 일고 있다. 이처럼 한일관계에서 역사 문제는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으며, ‘제3자 변제안’이 고안된 배경과 그 정치·외교적 함의는 무엇일까.

  “한일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자 마이너스 요소로서 존재하는 것이 바로 역사 문제입니다. 일본은 식민지배란 조금 부당하기는 했을지라도 국제법상 불법 행위는 아니었으며, 1965년에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을 통해 식민지배로 발생했던 인적·물적 피해를 해결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반면 식민지배는 불법이었고, 원천적으로 무효하다는 것이 한국의 일관된 입장이죠. 이러한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국교가 정상화되었고, 이후 현재까지 한일관계에 그대로 투영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만, 원론적으로 보면 식민지배의 합법성에 대해 국제사회의 통일된 견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국주의 시대의 비인도적인 행위에 대한 반성과 배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는 하지만, 식민지배가 불법이었다는 판결을 내린 것은 2018년 한국 대법원의 사례가 처음이었죠. 그런 맥락에서 매우 획기적인 판결이기는 했지만, 그 정치·외교적 파장은 민주주의 국가의 삼권분립 원칙 안에서 고려해야 합니다. 본래대로라면 행정부가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해야 하지만, 변제안은 사실상 대법원의 판결과는 다른 입장을 표명한 것입니다. 한편, 일본 최고재판소는 이미 1965년에 양측에 의해서 합의되고 해결되었기 때문에 개인이 소송을 통해 구제를 받을 수 없다는 일본 정부와 입장을 같이 합니다. 즉 이는 단순히 한일 정부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대법원과 일본 최고재판소, 양 정부, 그리고 한국 정부와 사법부 사이에서 의견이 충돌하면서 양국 관계가 매우 복잡해진 것이죠.

  한편, 이번 ‘제3자 변제안’이 나오게 된 배경을 조금 더 면밀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관련하여 1951년부터 시작된 한일 교섭에서 일본은 개인이 입었던 물적 피해에 대해 배상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 철수와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입증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기가 힘들다 보니, 일본 정부가 경제협력자금을 제공하면 한국 정부가 대신 나서서 배상하겠다는 입장을 일본에 전했습니다. 또, ‘배상’이나 ‘보상’이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박정희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 정부 자금으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구제했던 적도 있습니다. 특히 후자의 경우, 민관위원회가 구성되면서 일본으로부터 받은 경제협력자금 중 무상 3억 달러를 피해자 구제를 위해 사용했어야 했지만, 충분한 배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의견이 제기되었습니다. 이에 특별법이 제정되어 피해자들에게 6천억 원 정도가 제공되었죠. 한편,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지 못한 여러 문제 중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남아 있었고, 이에 한국정부는 2015년, 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위안부 합의’를 타결했습니다. 각각의 정당성을 떠나서, 이번 ‘제3자 변제안’은 현실적으로 양국 사법부와 정부의 입장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상황에서, 과거에 한국 정부가 대신 나서서 피해자를 구제하고자 했던 방식 자체를 선례로 삼아서 판단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이 식민지로 전락한 것은 근본적으로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따라서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식이 어느 정도 깔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양국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교섭을 통해 이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할 가능성이 없다고 본 것이죠. 물론 피해자들을 충분히 위로할 수 있는 방안은 아니지만, 적어도 강력한 반대여론에 부딪힐 것을 예상하고도 결단을 내린 이유를 이해하려면 이러한 종합적·정치적 배경과 논리를 고려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제3자 변제안’을 발표하면서 정부가 밝힌 기대처럼, 일본 측은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 사죄와 반성을 표명하고 일본 기업이 이번 배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피해자들에 대해 경제적 배상과 보상을 통해 성의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예컨대 독일의 경우 폴란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개별적 배상을 제공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 재원의 절반은 독일 정부, 나머지 절반은 전후에 설립된, 즉 전쟁과는 무관한 기업들까지도 참여한 독일 기업들로부터 마련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전범 기업 당사자들뿐 아니라 다른 기업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도모하는 등 여러 해법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한일 각국에서 ‘사죄와 반성’의 의미

  그동안 한일관계뿐 아니라 국제여론에서 일본의 과거사 문제는 수많은 논란을 일으켜왔다. 이처럼 일본의 역사 왜곡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계속해서 불거지는 이유를 일본 내 정치·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이해할 수 있을까.

  “식민지배 자체에 대한 해석의 차이는 곧 사죄와 반성에 대한 인식차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먼저, 역사적으로 보면 일본 스스로 제국주의 행적이나 전쟁에 관해 스스로 묻고 청산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를 문화나 종교적 차원에서 설명하기도 하는데,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전국의 대도시들이 폭격을 받은 트라우마가 일종의 피해자 의식으로 이어졌다고도 볼 수 있죠.

  또한, 일본 정부가 실제로 여러 번 사죄와 반성의 의사를 밝힌 적이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서구 열강들은 과거 식민지배와 전쟁을 일으킨 것에 대해서는 사죄와 배상을 한 적이 없습니다. 독일조차도 홀로코스트에 국한되었던 것이죠. 그런데 일본의 경우, “치유할 수 없는 정신적·육체적 상처를 입은 위안부 여성들에게 진심어린 사과와 참회의 뜻”을 전하는 1993년 고노 담

화, 또 아시아 국가 국민들에게 엄청난 피해와 고통을 안겨준 것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한 1995년의 무라야마 담화가 발표되기도 했죠. 2005년 고이즈미 총리 역시 과거 식민지배와 전쟁 피해에 대해 사죄했습니다. 다만 ‘위안부’는 강제동원이 아닌 자발적 참여가 주를 이루었기 때문에 전쟁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등의 발언이 이어지면서 한국에서는 이를 ‘진정한 사죄와 반성’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죠.

  이를 둘러싸고 현재 일본 내에서도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충분히 반성했다고 생각하는 보수적인 시각에서는, 오히려 한국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다시금 사죄와 새로운 합의를 요구하는 것이 혼란스럽고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더 극단적인 보수주의자들은 전쟁 자체가 아시아의 국가들을 서구 열강들로부터 해방해주는 정당한 전쟁이었다고까지 하죠. 물론 그 반대 입장도 엄연히 존재하지만 현재 일본 사회의 80% 이상, 그리고 자민당 의원 대부분이 전쟁을 겪

지 않은 세대이다 보니, 사죄와 반성에 대한 요구는 오히려 일본의 자존심과 권위를 약화시킨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국제 사회에서 일본이 더욱 영향력 있는 국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전쟁에 대한 잘못과 책임을 시인하고, 지금껏 반성해왔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반성하겠다고 공개적으로 표명해야 할 것입니다.”

 

역사적·외교적 화해를 향해

  한일 간에 역사적·외교적 화해를 이루기 위해서는 다방면의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중 가장 핵심적인 과제는 무엇이며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지, 마지막으로 물었다.

  “외교에서 한쪽의 입장을 100% 관철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떠한 이해관계가 있고 어느 선에서 타협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일본 내 다양한 입장을 먼저 이해한 뒤, 그 속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관계를 그려나가야 합니다. 사실 한국이 일본을 보는 시각은 이중적이기도 한데, 때로는 반일감정이 들끓으면서도 동시에 군사·안보·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파트너이자 민간 차원에서도 선호하는 교류의 대상으로 보고 있죠. 따라서 현 상황을 종합적으로 바라보고, 감정적 앙금

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가 간에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특히 정치·외교적 관점에서 볼 때, 한일관계처럼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상황에서 ‘화해’란, 일본이 단순히 책임을 인정하고 반성한다고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독일과 프랑스의 경우를 보면, 엘리제 조약과 양국의 관계개선 뒤에는 끊임없는 소통과 협력뿐 아니라, 독일을 경제·안보적으로 억제하고자 하는 유럽연합의 현실적인 노력이 있었죠. 반면 아시아의 경우 이러한 억제력이나 화해의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계속해서 회자되는 것은, 양국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하며 우호-협력 관계로 발전시키기 위해, 즉 과거사에 대해 서로가 진지한 태도로 임하면서도 현재와 미래의 평화적인 관계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표명했기 때문입니다. 윤 정부에서도 이를 계승하겠다고 밝힌 만큼, 그간의 변화를 반영하고 새로운 한일관계의 지향점과 목표를 합의할 수 있는 관계로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분야에서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에 대해 긴밀하게 협의해야 합니다. 예컨대 한미·미일 간에 존재하는 외교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 사이의 이른바 ‘2+2’ 회담처럼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도 서로의 인식을 공유하고 구체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채널이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그 안에서 우리의 국익과 그에 따른 대일 정책의 목표와 조치들을 구체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희망하는 방향으로 일본을 유도하기 위해서라도, 한일 간의 주요 쟁점들을 폭넓게 고민하고 한일관계를 재설정하는 것이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최서윤 기자 jensyc@daum.net

■ 조수아 기자 lovelove992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