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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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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면/쟁점기획

교과목을 넘어 일상의 실천 철학으로

알 수 없는 사용자 2023. 6. 27. 21:58

[기획의 변]

최근 발표된 ‘2022 개정 실과(기술·가정)/ 정보 교육과정에서 초등 실과 교육 내 정보 시수가 기존과 동일하게 편성된 것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오고 있다. 디지털화와 AI교육 등이 강조되는 사회 속에서 현실을 반영한 교육과정이 확대·심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2022 개정교육과정중 가정과 정보 교과를 중심으로 개정된 내용을 알아보고, 교육과정의 유연성을 제고하기 위해 동국대학교(WISE) 주수언 교수와 고려대학교 김자미 교수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교과목을 넘어 일상의 실천 철학으로

- 2022 개정교육과정의 주요 내용과 가정 교과교육의 본질을 논하다

 

가정학(家政學)은 개인·가족 등의 가정(家庭)과 사회·환경 등에서 일어나는 사회·자연과학의 여러 측면을 다루는 학문으로 초등교육에서는 실과’, 중등교육에서는 기술·가정교과로 편제되어 있다. ‘2022년 개정 교육과정은 제11차 교육과정이자 제7차 교육과정 이후 4번째 수시 개정 교육과정으로 2024년부터 2027년까지 단계적으로 적용되며 실과(기술·가정)’는 이번 개편

통해 다양한 변화가 예고되었다. 이에 본지에서는 ‘2022 개정 실과(기술·가정)’ 교육과정에서 나타난 변화와 가정학의 본질적인 목표를 톺아보기 위해 동국대학교(WISE) 가정교육과 주수언 교수를 만났다.

 

가정학의 학문적 배경과 근본적인 목표

가정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적 영역의 학문중 하나로 출발하여 1800년대부터 영미권을 중심으로 전문성과 체계를 갖추며 발전해왔다. 이처럼 인간의 삶과 매우 밀접한 학문으로서 가정학은 어떻게 성장해왔으며, 그 주요 목표는 무엇일까.

가정학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분류한 학문적 범주에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그는 인간 실천의 개념적 본질을 이해하는데 핵심이 되는 실천적 행동(Praxis)에 가정과 교육이 해당한다고 설명했죠.

이러한 인식에서 출발한 가정학이 구체적인 학문으로 확립된 것은 1800년대에 미국의 캐서린 비처 (C. Beecher)에 의해서였습니다. 그녀가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목격한 것은, 가정에서 위생을 신경을 썼다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을 식중독 등 질병으로 인해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아기 옷을 만들 때 소매 길이를 제대로 재단하지 않아 소매에 목이 감겨 죽는 등 영유아 사망률도 높았죠. 따라서 위생, 안전, 식습관 등 가정 내의 문제를 해결하고 대비하기 위해 비처는 1841년에 “A Treatise on Domestic economics”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가정학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이를 통해 가정학을 과학의 한 부분이 아니라 정치경제(political economy), 혹은 윤리학 등 과목과 동등한 위치에서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죠. 또한, 그동안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주로 책과 단순한 강의로만 이루어졌던 것을 지적하며 가정학을 보다 과학적이고 실천적인 방법으로 교수해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이것이 가정학이 과학뿐 아니라 생활의 영역에 깊이 관여하며 인간과 상호호혜적인 학문으로서 확립되기를 희망했던 비처의 학문적 목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편,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가정학은 더욱 체계적인 학문으로 정착되어 갔습니다. 18991, 엘렌 리차드(E. Richards)가 이끈 가정학에 관한 레이크 플래시드 회의(Lake Placid

Conference on Home Economics, 이하 LPC)’가 개최되었고, 여러 가정학자의 참여와 노력으로 1908년까지 총 10회에 걸쳐 개최되었습니다. 이 시기 현 주립 대학의 전신이었던 랜드-그랜트 대학교 (Land-Grant College)’가 미국 전역에 설립되기 시작하면서 대학 교과목 편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이때 LPC는 모든 대학에 가정학을 편제하고자 했던 것이죠. 따라서 회의에서는 가정학의 목적, 정의, 범위, 새로운 주제와 교육과의 관계, 교육기관에서 가르쳐야 할 내용 등을 결정하고 조직하는 등 가정학에 대한 총체적인 논의를 진행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이어지면서 1920~30년대에는 식생활, 주생활 등을 포함한 교육과정이 만들어졌고, 이후에도 시대적 흐름에 맞게 가정학을 재고하는 등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습니다. MIT의 첫 여성 대학원생이었던 리차드의 영향으로 가정학은 과학적인 체계에 기반을 두고 발전했고, 이러한 패러다임이 70여 년 동안 지속되면서 우리 생활을 기술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죠.

그러다 1980년대에 가정학은 다시 한번 철학적 성찰의 과정을 거치기 시작했습니다. 하버마스의 제자였던 브라운(M. Brown)과 파올루치(B. Paolucci)는 인간에 대한 관심에 기반을 두고 철학적인 관점에서 가정학을 다시 보고자 했죠. 브라운은 가정학이 문제해결 지향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어떠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때에는 이론적·기술적인 문제보다는 인간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며 한 세대나 어떤 상황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방법을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후 이러한 관점은 기술에 주목했던 과거의 가정학 패러다임에서 점차 철학적 관점까지 고려하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내 가정과 교육과정의 변화와 실천적 교과로서의 과제

6차 교육과정에서 중등학교 과목으로는 가사가정이 통합되었고, 7차 교육과정에서는 기술·가정으로 통합돼 운영되기 시작했다. 이렇듯 여러 번의 개편을 거친 국내 가정과 교육은 어떻게 변화해왔으며, 현 교과 과정의 특징은 무엇인지 물었다.

우리나라 가정 교과교육의 역사는 근대 교육의 역사와 동일합니다.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된 이화학당을 시초로 재봉과 가사를 가르치는 학문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미국의 영향이 많이 남아있죠. 따라서 1차 교육과정(1954~1963), 2차 교육과정(1963~1973), 그리고 3차 교육과정(1973~1981)까지는 의식주에 관한 내용이 가정 교과목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후 4(1982~1987), 5(1987~1992), 6(1992~1996), 그리고 7(1997~2009) 교육과정에서는 이러한 의식주 관련 내용을 실생활에서 활용하는 것을 강조했고, 2007년과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실천적 교과로서의 성격을 강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2022년까지 총 4번의 수시 개정이 이루어지면서 가정 교과목의 방점은 조금씩 달라졌죠.

현 교육과정에서는 가정 과목을 실천적 교과로서 강조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이를 충분히 다루고 있지는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학계에서도 가정학에서의 철학적 관점이나 실천적 양상을 두고 여러 입장이 있지만, 적어도 기술적인 측면에서 더 나아가 학생들이 자아를 탐구하고 일상성을 유지하며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특정 가치에 목표를 두고 그를 중심으로 여러 대안을 탐색하는 것, 그리고 선택한 대안을 언제든지 성찰로 바꿀수 있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가정학에서 이야기하는 실천적 추론의 과정이죠.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교육과정은 시대적·사회적 문제를 반영하며 진화해 가지만, 코로나19나 고도의 디지털화 등 최근에는 예측할 수 없는 변화가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변화 속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실천적 추론이라고 생각합니다. 깐풍기 만들기나 바지 만들기와 같은 기술적인 측면만 강조하는 수업의 목표와 본질은 금방잊히기 마련이죠. 가정학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항구적으로 존재하는 문제를 다루는 학문이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인 개념들도 함께 들어간 교육과정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1800년대에도, 2023년에도, 그리고 2083년에도 밥을 먹는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과거에는 가장 건강한 밥상으로 쌀밥과 여러 반찬이 제시되었다면, 현 교과 과정은 현미밥에 채소 위주의 밥상을 강조하고 있죠. 그렇다면 우리는 밥을 어떻게 먹으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어떻게 먹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게 교육과정에서의 유연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2022 개정 실과(기술·가정)’의 핵심 쟁점과 함의

지난해 12월에 확정된 ‘2022 개정 실과(기술·가정)’에서는 지속 가능한 삶의 실천 등 많은 내용이 개정되었다. 본래 시안에서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포괄하도록 용어를 수정·추가하고자

했지만, 일부 보수단체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면서 결국 양성평등용어가 그대로 사용되는 등 한계가 지적되기도 한다. 이처럼 교육과정 개편 과정에서 나타난 주요 논의 내용은 무엇이었으며, 개정 내용이 시사하는 점은 무엇인지 물었다.

본래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에서는 가정일에 있어서 성 평등 역할에 대해 이해한다는 문장을 가정일에 있어서 가족의 역할에 대해 이해한다로 대체하는 등,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반영하고자 했습니다. ‘양성평등혹은 성 평등이라는 표현은 성소수자와 한부모 가정을 배제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었죠. 이전에는 교육과정 연구진이 대학교수 중심으로 구성되었다면 이번에는 절반 이상의 비율로 현직 교사들이 많이 참여하면서 그 연령층이 많이 낮아진 것이 이러한 논의의 배경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국민참여교육과정으로 진행되면서 이러한 개정안 내용을 둘러싸고 팽팽한 갈등이 일기도 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것이 바로 이러한 가족의 다변성이었는데, 특정 보수단체들이 개정 시안에 강력하게 항의했죠. 본래 교육과정은 중립성을 지키며 다양한 의견을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이러한 입장 차를 두고 어느 정도 타협할 필요는 있었습니다. 실제 개정 교육과정 논의에 참여했던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양성평등용어를 삭제하는 것뿐 아니라 1인가족이나 반려가족 등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더 폭넓게 추가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남습니다. 일각에서는 교육과정에서 전통적인 가족관계만을 강조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향후 교육 목표와 방향을 생각해보면 2010년 이후에 태어난 알파 세대가 살아갈 현실은 이미 과거의 가족 중심 생활에서는 많이 벗어난 사회이자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공존하는 사회입니다. 따라서 교과목으로서 가정학의 역할은 이미 변해가는 세상에서 가족의 본질은 무엇이며, 저출산·고령화 사회에서 기울여야 할 노력은 무엇일지 끊임없이 논의하고 고민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또 이번 교육과정 개편에서 다양성 관련 표현이 주목을 많이 받기는 했지만, 지속가능성이나 생태 관련해 개정된 부분도 유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의식주의 경우에도 가족생활로 구분하지 않고 일상성에 중점을 두고 인간적인 측면과 생활 자원적인 측면으로 나눴고, 인간의 형태 발달을 통한 삶의 일상성을 향상시키고 생활 자원을 지속 가능한 삶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일종의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도록 교육과정을 설계·계획한 것이죠. 여기서 말하는 지속 가능한 삶이란, 환경이나 사회적인 측면과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성을 발전시키고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으로서 지속적인 삶과 연관된 모든 의식주 생활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이번 개정 교육과정에서 목표로 제시한 것처럼 포용성과 창의성을 갖춘 주도적인 사람을 양성하고, 학습자의 삶과 성장을 지원하는 교육과정이나 디지털·AI 교육환경에 맞는 교수·학습 및 평가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 반영하고자 시도했죠. , 기술적인 것뿐 아니라 대화하는 방식, 삶을 관리하는 역량 등을 모두 일상성을 중심으로 다루고자 하는 것이 이번 개정안의 핵심입니다.”

 

필수학문으로서 가정학의 의미와 전망

가정학은 초·중등교육의 실과, 가정 교과와 대학의 가정교육과를 제외하고 대부분 의류학, 식품영양학, 아동가족학, 소비자학 등 세부 분과로 나뉘어있다. 이에 가정학이라는 학문이 교육체계에서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이유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마지막으로 물었다.

저는 최근의 다양한 사회변화와 가정 교과 과정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을 볼 때면 가정학의 미래에 대한 우려를 느끼곤 합니다. 따라서 식품영양학, 아동학, 소비자학 등 각 영역을 통합할 수 있는 이론적 구심점을 찾고, 가정학이라는 교과 내 융합을 통해 더욱 학문적 역량을 확대하고 강화해야 합니다. 식품과 소비자 분야는 식품소비의 형태로 융합될 수 있고, 의류와 주거 역시 디자인 측면에서 융합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또한, 가정 교과에 다른 교과를 융합하는 방법을 계속해서 고민하고 개척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K-문화라는 주제로 의식주 생활·문화 교육을 진행하거나, 불교라는 종교와 학문을 의식주 문화라는 차원에서 접근해볼 수 있겠죠. 이처럼 새로운 사회가 요구하는 새로운 문제에 도움이 되는 학문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학문과도 결합함으로써 학생들에게 더욱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물리적인 융합뿐 아니라 화학적인 융합까지도요.

가정학이란 누구나 하는 것이기 때문에 독립적인 교과목으로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특히 요즘은 요리법이나 가사 노동을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을 보여주는 유튜브 등 매체가 다양하니 더욱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생활과 밀접한 학문으로서 누구나 한다는 것은, 역으로 말하면 가정학이 없으면 아무도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200여 년 동안 삶에 대한 철학을 기반으로 이어온 가정학자들의 노력과 일상성에 대한 고민은, 인터넷에서 제공되는 단순한 요령들과는 다른 것이죠. 결국 가정학은 타 교과와 달리 사람의 일상성에 근접한 학문으로서 모두가 잘할 수 있는 기본적인 학문이기에 더 중요하고 더욱 신경 써야 하는 학문입니다.”

 

최서윤 기자 jensyc@daum.net

김연광 기자 dusrhkd99@korea.ac.kr